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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중력이론으로 우주의 실체에 접근

방한 계기로 살펴본 「호킹의 우주론」

블랙홀이론에 전기를 마련한 '호킹방사'를 비롯 우주수축 가능성 제시, 아기우주의 개념 등으로 현대의 우주론에 새로운 이정표를 마련한 호킹의 우주론은?

우주는 영원불변인가. 아니면 팽창하는가, 수축하는가. 우주는 어디에서부터 출발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아인슈타인 이후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알려진 호킹 박사는 지난 9월 10일 한국을 방문, 두차례의 강연을 마치고 돌아갔다. 호킹 방문 이래 국내에서는 우주론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살아있는 지구인으로서 우주의 생성 비밀에 가장 가깝게 접근해 있다고 알려져 있는 호킹의 우주론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

인류가 우주탄생에 과학적으로 접근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1915년 아인슈타인이 일반 상대성이론을 발표하고서 부터다. 아인슈타인은 이보다 10년 전에 빛에 가까운 속도로 운동하는 물체는 질량과 길이 등이 변화하며 시간의 흐름이 지체되는 등 특이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특수상대성이론을 내놓았다. 이를 가속도 운동을 하는 물체에까지 발전시킨 것이 일반 상대성이론인데, 이 이론은 질량이 큰 천체에 적용할 때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일반상대성이론의 방정식에 따르면 우주는 영원불변이 아니라 변수에 따라 팽창하거나 수축한다는 것이다. 소련의 수학자 프리드만은 상대성이론에서 팽창우주모델을 끌어냈다. 1929년 에드윈 허블은 대형망원경을 사용해 은하가 점점 멀어져가고 있는 것을 관찰해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상대성이론은 이로써 권위를 확보했다.
 

서울대에서 강연하고 있는 호킹 박사


대폭발이론으로 비약

1948년에 우주론에는 대혁명이 일어난다. 미국의 물리학자 조지 가모프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열역학방정식을 이용해 우주는 초고온의 한 점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탄생했다는 빅뱅(Big Bang)이론을 발표했다. 우주 초기의 뜨거운 불덩이에서 모든 원소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빅뱅이론의 아이디어는 매우 혁신적이었으나 우주탄생 순간의 상황을 정확히 설명해주지는 못했다. 더군다나 왜 우주가 빅뱅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자세히 답할 수 없었다.

그것은 탄생 초기의 상태가 크기가 무한히 작은, 즉 진공에 가까운 상태이면서 에너지는 무한대인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이다(특이점). 천체물리학은 입자물리학의 힘을 빌지 않을 수 없었다. 핵력 약력 중력 전자기력이 우주 탄생 초기에 하나의 상태로 통일돼 있다는 가정은 입자물리학 최대의 과제인 대통일장이론과 맞물리는 것이다.

최근(1981년)에는 우주초기의 진공이 물이 얼음으로 변하듯 상전이(相轉移)를 일으켜 급격히 팽창한다는 인플레이션이론과 거품이론이 빅뱅우주론의 이론적 배경이 되고 있다.

호킹은 우주기원의 특이점을 이해하기 위해서 양자(量子) 역학의 이론들을 빌리지 않을 수 없다고 보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이론을 접합시켜 '양자중력이론'을 주장했다. 양자역학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개발된 수학체계이며 일반상대성이론과는 전혀 이질적인 이론체계다. 양자역학의 핵심이론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 이 원리는 양자역학을 다른 일체의 물리학과 단절시킨다.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불확정성원리를 강하게 거부한 바 있다.

호킹은 결국 매우 이질적인, 그러면서도 20세기 물리학의 양대산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결합시켜 우주 생성의 비밀을 풀려하고 있는 이론물리학자의 한사람이다.

또한 호킹은 우주는 팽창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축할 수 있다고 가정해 세계 천체 물리학계를 긴장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가정은 우주의 밀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수축가능성을 보다 완벽하게 증명하기 위해서는 많은 보충이론이 뒤따라야 하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호킹 방사

블랙홀(black hole)에 대한 호킹의 이론은 매우 새롭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는 블랙홀에 대한 개념이 처음 제안된 것은 1783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미첼교수에 의해서다. 어떤 천체든 중력이 있기 때문에 이를 탈출하려면 중력이 잡아끄는 힘을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지구를 탈출하려면 초속 11.2㎞로 가속돼야 한다. 이를 탈출속도라 하는데 태양은 초속 1백6㎞다.

크기는 매우 작지만 질량은 대단히 큰 천체는 빛(초속 30만km)조차도 빠져나갈 수 없을만큼 큰 중력을 가질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빛보다 빠른 물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를 블랙홀이라 부른다.
블랙홀은 아무것도 방출하지 못하기 때문에 관측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주위의 별에 미치는 영향(중력효과)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블랙홀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별은 백조자리 X-1. 태양도 자신의 에너지를 다 소모하고나면 언젠가는 (50억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 수축돼 백색왜성 중성자 별을 거쳐 블랙홀이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블랙홀이론에 호킹은 전혀 새로운 제안을 했다. 블랙홀은 모든 물체를 빨아들이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입자를 방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호킹 방사(radiation). 처음에 이 이론이 제기됐을 때 대부분의 천체물리학자들은 '호킹 방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핵심 이론인 불확정성원리가 빛보다 빠른 입자를 가정함으로써 호킹방사는 뒷심을 든든히 하고 있다.

블랙홀이 입자를 방출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질량을 모두 잃는다면 어떻게될까. 그 의미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잃어버린 질량이 이제까지의 우주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호킹은 이번 방문에서 대중강연을 통해 '아기우주'란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공상과학 영화나 만화에서는 '블랙홀을 통한 우주여행'이 자주 등장한다. 블랙홀에 빠지면 새로운 우주에 도달한다는 내용이다. 상대성 이론에 비추어봐도 이런 상상은 충분히 가능성있는 얘기다. 호킹은 이에 대해 재미있는 가정을 하고 있다. 블랙홀에 빠지면 각 신체부위에 작용하는 힘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몸은 산산조각이 날 것이라는 것이다. 비롯 조각난 파편의 일부라도 새로운 블랙홀, 즉 아기 우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블랙홀에서 다른 우주로 빠지는 통로, 즉 웜홀(worm hole, 벌레구멍)에 대한 이론적 접근은 아직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직은 미지수

대학원시절부터 27년 동안 몸의 운동신경이 점점 마비되는 루게릭병(근위축성측색경화증)에 시달려온 호킹은 아직도 케임브리지의 루카시안 석좌(碩座)교수로 재직하면서 우주론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그의 연구업적을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것이 국내 전문가들의 의견. 마지막 생의 에너지를 모아 우주의 궁극적인 비밀을 밝혀낼 새로운 이론을 완성할지 미지수다.

국내의 3박4일 체류 기간 동안 호킹을 지켜본 서울대 물리학과 김제완 교수는 "현재까지 호킹 박사의 업적은 과거의 패러다임을 뒤엎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몸이 거의 마비된 상태에서도 의식은 자신의 연구테마에 깊이 몰두해 있음을 볼 때 앞으로 좋은 결과를 기대해봄직하다"고 말했다.

아무튼 이번 호킹 방문은 국내의 물리학계에 자극을 주고 미래의 과학도들에게 우주론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우주론 내용이 어려워 강의실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불만을 사기는 하지만, 불굴의 정신으로 연구에 몰두하는 모습과 대중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하는 그의 집념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그가 우주론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를 돕기위해 수식이라고는 E=mc² 하나만을 써 집필한 '시간의 역사'가 미국에서만 1백만부 이상 팔렸지만 실제로 내용을 읽어본 사람은 2%에 불과하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볼 때도 양자이론이 가미된 우주론의 이해가 쉽지않음을 알 수 있다.하지만 호킹방문을 계기로 모처럼 조성된 우주론에 대한 붐이 그동안 천대를 받았던 기초과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고양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다.

호킹은 어떻게 대화하나?

호킹 박사는 잘 알려진 대로 루게릭병때문에 몸을 거의 움직일 수없을뿐더러 폐렴 수술 후 목소리까지 잃었다. 손가락을 조금 움직일 수 있을뿐인 그가 어떻게 휠체어에 부착돼 있는 컴퓨터를 작동하고 있을까. 스위치에 모르스부호라도 치고 있는 걸까.

그는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워즈플러스 사의 이퀄라이저 프로그램을 PC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2차원 메뉴를 두 모드로 검색한다'는 것이다. 매우 어려운 듯한 표현이지만, 이는 음성합성기를 통해서 얘기하고, 문서작성을 하고 또 체스를 두는 아주 근사한 방법을 묘사할 뿐이다.

'데이터뷰'(Datavue) 컴퓨터의 실제 모니터화면이 왼쪽에 보여진다. 첫번째 그림의 노란색부분은 명령어들과 문장부호들, 알파벳으로 구성돼 있다. 그 중의 한 알파벳을 선택하면 그 글자로 시작되는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가 화면에 나온다. 하반부에는 영어에서 가장 많이 쓰는 36개의 단어를 나열해서 쓰도록 하는데 이는 영어회화의 40%에 해당한다고 한다. 여기서 어떤 명령을 원하거나, 어떤 알파벳으로 시작되는 단어를 보고 싶으면 이 화면에서 키를 누른다.

그렇지 않고 잠시 기다리면, 하반부가 하이라이트돼 한줄씩 옮겨가면서 밝게 표시된다. 호킹 박사가 'like'라는 단어를 보고 있다가 선택자(cursor)가 단어가 있는 줄에 이를때 누른다. 마침내 like에 선택자가 오면 또 누른다. 그러면 이퀄라이저 프로그램이 사용자가 사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6개의 목적어를 나열한다. 컴퓨터가 지난 6번의 사용중 나타난 단어들을 기억해서 제시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월트 월토즈(Walt Waltosz)는 "2천단어가 수록되어 있고 사용자가 6백단어를 추가하여 2천6백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호킹 박사에게는 충분한 용량"이라고 설명한다.

호킹 박사를 위해서 특별한 변화를 주었는데, 희랍문자를 많이 쓰는 경우를 대비해서 키보드 모방(emulation)을 통해 보통의 PC 키보드를 사용해서 쓸 수 있도록 하고, 쿼크(quark) 퀀텀(quantum) 등 자주 등장하는 q로 시작하는 단어를 쉽게 사용토록 q를 r보다 먼저 배열했다.

이런 여러가지 배려에 힘입어 호킹 박사는 1분에 15내지 20단어를 작성할 수 있다고 한다. 매우 빠른 솜씨라 할 수 있다. 그는 글을 컴퓨터에 입력시킬 수도 있고 휠체어 뒤에 장치돼 있는 음성합성기를 통해서 말을 할 수도 있다. 호킹 박사의 단 하나의 불만은 그 발음이 미국식 억양이라는 점이다.

영국전화회사에서 영국식 발음의 합성을 개발중에 있지만 어려운 작업이어서 호킹 박사는 음성을 못 바꾸게 될 지도 모른다. 음성합성기가 지난 번에 새로운 음성을 선보였지만, 호킹 박사는 내 음성이 아니라며 옛날 음성을 되돌려달라고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호킹 박사의 연구실엔 가족사진과, 아인슈타인의 사진, 사하로프와 같이 찍은 흑백사진이 걸려있고 또 호킹 박사를 묘사한 게리 라슨의 만화가 있다. 라슨의 독특한 세계가 천재 물리학자와 교감을 이루고 있는지도 모른다. 라슨은 과학세계를 묘사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호킹박사의 훨체어 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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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김두희 기자
  • 도움

    유승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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