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더운 여름날 물고기들이 동해에 모여 독도까지 경주를 하려고 한다. 탄탄하고 매끈한 몸매를 가진 참치, 통통하다 못해 퉁퉁 불은 복어, 그리고 호리호리하고 길쭉한 뱀장어 가운데 누가 가장 빠를까.
오늘도 바닷속을 유유히 헤엄치고 있는 많은 물고기들이 있다. 그들의 생김새는 각각 다르고, 빠르기 또한 제각각 다르다. 물고기의 빠르기와 생김새는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을까. 먼저 우리들은 도서관에서 여러가지 자료를 찾아봤다.
저항이 커지는 이유
유동하는 상태인 기체와 액체를 ‘유체’라고 한다. 유체 안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유체의 저항을 받는다. 유체의 점성이 표면과 평행한 방향으로 마찰력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또 공기보다 물에서 더 많은 저항을 받는데, 이는 물의 점성이 공기의 점성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유체에 담겨진 물체는 그 흐름을 방해하며, 유체는 물체 주위에서 가속된다. 이때 물체는 에너지를 잃게 된다. 에너지를 잃는 부분은 물체에 바로 접한 경계면이다. 유속이 빨라지면 더 많은 에너지를 잃게 돼 유체는 표면을 따라 흐르지 못하고 물체의 표면으로부터 분리된다. 이것을 ‘와류’라고 한다. 와류는 저압 상태의 불안정한 급류를 말하는데, 물체 뒤에 생긴다. 이런 조건 하에서는 물체의 앞면이 뒷면보다 압력이 크다. 결과적으로 와류는 물체의 속력을 줄이는 힘으로 작용한다.
유체 안에서 빠르게 운동하려면 물체와 유체의 분리를 막아 저항을 줄여야 한다. 그렇다면 물에서 운동하는 물고기는 어떤 형태를 가져야 저항을 줄일 수 있을까.
물고기의 속력은 측면 두께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측면 높이(d)를 몸길이(L)로 나눈 값이 곧 측면 두께값(d/L)이다. 이 값에 따라 저항이 달라진다. 측면 두께값이 0.25일 때 가장 적은 에너지로 가장 빠르게 운동할 수 있다고 한다. 만약 0.25보다 작으면(긴 몸체일 경우) 몸 표면과 물 사이에 큰 마찰이 생겨 속력을 빨리 낼 수 없다. 또 만약 0.25보다 크면(짧은 몸체일 경우) 난류가 생겨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직접 자로 측면 높이와 몸길이 재
백과사전을 보면 어류의 몸은 모양에 따라 방추형, 측편형(양측면압축형), 종편형(배복압축형), 세장형, 구형, 각형 등으로 나눈다.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방추형에서 옆으로 납작해진 연어나 청어와 같은 체형이다. 그러나 서식지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큰 해조류가 많은 곳에서 서식하는 어류는 측면이 압축돼 있어 좁은 공간에서 쉽게 이동할 수 있다.
우리들은 조사에 앞서 어류의 형태를 방추형, 구형, 세장형 등 3가지로 다시 정리했다. 측편형과 각형은 구형에 포함시키고, 종편형은 제외시켰다. 종편형의 측면은 세장형에 가까웠지만 위에서 본 모습이 구형에 가까워 다시 분류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어류의 형태를 먼저 정한 다음 우리들은 어류도감에서 그 모양의 물고기를 찾아 직접 자로 재면서 측면 두께값을 구했다. 그 결과를 조사한 자료와 비교했는데 대체로 일치하거나 근사한 값이 나왔다.
모형 실험으로 와류 확인
우리들은 물고기의 모양이 유속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간이실험을 실시했다. 먼저 참치, 복어, 뱀장어 등 대표적인 어류의 모형을 고무찰흙으로 만들었다. 이때 측면두께값은 참치 0.25, 복어 0.3, 뱀장어 0.1로 했다.
그런 다음 흐르는 물에 3가지 측면형의 물고기 모형을 놓고 물이 흘러오는 방향에서 스포이드로 푸른색 잉크를 떨어뜨렸다. 유속은 수도꼭지로 조절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보다 유속 조절이 어려웠고 잉크의 흐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우리들은 모형 주위에 서로 다른 물의 흐름이 생기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방추형(참치)에서는 물이 그 표면을 따라서 매끄럽게 흘러갔지만 구형(복어)에서는 뒷부분에 와류가 생겼고, 세장형(뱀장어)에서는 긴 표면에 물이 닿으면서 계속 와류가 생겼다.
물고기로부터 배운 지혜
물도 유체이지만 공기 또한 유체이다. 자동차, 비행기, 그리고 우리 사람까지도 공기라는 유체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 공기 중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들은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우리들은 대한항공에서 매월 발행하는 잡지 ‘모닝 캄’에서 비행기에 관한 자료를 구해 그 답을 찾았다. 이 잡지에는 항공기들의 길이와 높이가 나와 있었는데, 각각의 측면 두께값을 구해보니 대략 0.24-0.29가 나왔다. 공기 속에서 움직이는 비행기도 저항을 줄이고 빠른 속력을 유지하기 위해 와류가 없는 방추형의 모양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물고기 경주의 결과는
해마의 신호총 소리와 함께 참치, 복어, 뱀장어는 출발했다. 그들 뒤에서 여러 물고기들이 열심히 응원했다. 물살을 시원스레 가르며 쭉쭉 나아가는 참치와 달리 복어와 뱀장어는 아무리 지느러미를 빨리 움직이며 속도를 내려 해도 무언가 움직임을 방해하는 듯 잘 나아갈 수가 없었다. 마침내 결승선을 가장 먼저 가슴에 안은 물고기는 참치였다.
탐구학습을 마치면서
막연한 호기심과 잘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시작한 일이다. 그렇지만 물고기라고는 학교 어항 속의 잉어와 밥상 위에 오르는 생선밖에 몰랐던 우리들이었다.
당장 필요한 것은 물고기에 대한 많은 정보. 선생님이 인터넷에서 구해준 물고기 정보는 모두가 영문으로 쓰여 있어 이를 해석하느라고 2주일 동안 사전과 씨름해야 했다. 또 도서관을 헤매다가 수족관에 가면 자료가 많다는 이야기만 듣고 찾아갔더니 이상야릇한 물고기들과 1백살이 넘는 거북, ‘환상’의 인어쇼뿐이었다.
기말시험이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와 상관없이 실험은 진행됐다. 장소는 학교 수돗가. 다행스럽게 바닥이 경사져 있었기 때문에 굳이 비탈을 만들 필요가 없었다. 그렇지만 잉크가 없어 펜 속의 심지를 쥐어짜면서 실험을 진행해야 했다. 한참 후 스포이드를 생각해냈을 때는 이미 우리 손이 잉크로 물들어 있었다.
물고기 모형 주위에 뭔가 변화를 발견하자 그것이 모형으로부터 생긴 와류인지 아닌지를 토론하다가 와류라고 결론지었다.
보편적인 이론을 다시 처음부터 실험으로 증명해내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던 실험이기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더욱 많았다.
지도교사 의견
학생들은 탐구활동을 통해 많은 새로운 사실들을 알아냈을 것이다. 이번 탐구활동의 목적은 새로운 지식을 얻기보다 스스로 과학자가 된 기분으로 연구활동의 재미를 느껴본다는 데 있다.
지도교사로서 학생들 모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욱 보람을 느낀다. 아울러 이 탐구활동이 여기서 끝나지 않고 모두들 새로운 시각을 가졌으면 한다. 신문에서 초음속 항공기에 관한 기사를 볼 때 다른 사람들보다는 좀더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