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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식물호르몬─생로병사의 열쇠

식물유전공학의 뿌리

식물의 생장을 돕는 옥신 지베렐린 시토키닌이 있는가 하면 「이를 악물고」저지하는 아브시산과 에틸렌도 있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태어나서 자라고 자손을 번식하고 죽는 과정을 되풀이 하고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식물도 예외는 아니다. 대부분의 식물은 씨앗으로부터 싹이 돋아나 생장하며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만들어 번식하는 생활사를 되풀이 한다.
그런데 같은 종의 식물이라도 생육환경에 따라 발아의 시기, 개화 및 결실의 시기가 다르다. 이런한 사실은 식물체내에 생활사(生活史)를 조절하는 과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노쇠까지도 책임져

이렇게 식물의 생장과 발달 및 노쇠에 이르는 생활사를 조절하는 물질중의 하나가 식물호르몬이다. 식물호르몬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는 19세기 말 독일의 식물하자 '줄리우스 콘 세크스'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식물은 기관형성에 필요한 물질을 스스로 만들 수 있는데, 어떤 물질은 줄기의 생장을 유발하며 또 어떤 물질은 잎 뿌리 꽃 과실의 생장을 유발한다"고 가정했다.

20세기에 들어와 식물생장 조절물질에 대한 많은 연구가 진행되었고, 식물의 특정 조직세포에서 극히 적은 양의 식물호르몬이 만들어짐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또 식물호르몬은 식물체내에서 작용부위로 이동할 수 있고 이동부위에서 생리활성을 나타내는 물질로 정의됐다.

대표적인 식물호르몬으로는 옥신 지베렐린 시토키닌과 같이 식물성장의 촉진물질이 있는가 하면 아브시산 에틸렌과 같이 성장의 억제물질도 있다. 여기에서는 중요한 식물호르몬의 발견과정과 작용 메커니즘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자엽초의 굴성실험


옥신-굴광성의 주역

화분에 심은 식물을 창문 가까이 놓아두면 식물체가 햇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굽는 현상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생물의 진화론으로 유명한 다윈은 일찌기 귀리의 자엽초가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굽으며, 줄기의 끝을 잘랐을 때에는 이 현상이 없어지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 결과를 "식물체에 햇빛을 쪼여줌으로써 줄기 끝에서 생성된 어떤 물질이 줄기의 아래 부위로 옮겨짐으로써 굴광성을 나타낸다"고 보았다.

또한 덴마크의 보이센옌센도 1910년에 이와 비슷한 실험을 수행했다.

이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네덜란드의 식물학자인 벤트는 귀리 자엽초의 굴광성 원인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실험을 했다. 그는 귀리의 자엽초 끝을 잘라 한천조각위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나서 이 한천조각을 잘려진 자엽초 끝의 한쪽 부위에 올려 놓고는, 어두운 곳에 두었다. 그랬더니 한천조각을 올려놓은 반대 방향으로 줄기가 굽었으며 굴성의 정도는 생장물질의 농도에 비례해서 굽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결과로부터 그는 식물체가 굴광성을 나타내는 것과 식물체의 줄기 끝에서 만들어진 물질에 의한 생장의 조절과는 깊은 관계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마침내 1933년 독일의 퀘건은 이 생장물질을 사람의 오줌에서 분리해 내었다. 또 그는 귀리 자엽초의 굴성실험을 통해 그 물질의 활성을 측정하고 옥신이라고 이름지었다. 그후 이 물질은 인돌아세트산으로 밝혀졌으며 식물체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나아가 식물의 생장과정에서 햇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줄기가 굽는 이유도 이론적인 설명이 가능하게 되었다.

줄기의 끝부분에서 만들어진 생장촉진물질인 옥신은 아래 쪽으로 이동하는데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의 줄기 부분에 있는 옥신은 햇빛에 의해 쉽게 분해된다. 그러나 햇빛을 받는 반대방향으로 내려오는 옥신은 분해되지 않아 같은 줄기에서도 옥신의 농도 차가 생긴다. 따라서 옥신의 농도가 높은 쪽의 세포들은 세포신장이 촉진되고, 옥신의 농도가 낮은 쪽에서는 세포신장이 적게 된다. 그 결과 줄기가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굽게 되는 것이다.

옥신의 생장촉진작용에 관한 연구는 그후로도 계속되었다. 한 식물체에 있어서도 조직에 따라 생장촉진효과가 다르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예컨대 극히 적은 옥신의 농도로도 뿌리의 발육은 촉진시킬 수 있으나 줄기의 생장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더 높은 농도의 옥신이 요구되는 것이다.
 

식물암은 아그로박테리아의 감염 등에 의해 생긴다. 담배줄기에 형성된 식물암


지베렐린-곰팡이에서 추출되고

벼의 키다리병은 1809년에 일본에서 처음으로 알려졌다. 이 병은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양에서는 과거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 병의 주된 증상은 미감염 식물보다 엄청나게 크게 자라서 수확량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금세기 초에 이 병은 곰팡이의 일종이 일으키는 감염으로 밝혀졌다. 이 곰팡이의 감염성을 연구하던 일본의 구로사와가 1926년에 지금은 지베렐린으로 판명된 단일 화학물질이 원인임을 밝혀낸 것이다. 그는 곰팡이를 키운 배지의 여과물만을 처리, 벼와 옥수수 등에서 생장촉진효과를 유도하는데 성공했다.

이들의 연구보고가 서구에 알려지면서 미국과 영국의 식물학자들도 지베렐린의 분리와 구조해명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곰팡이의 배양을 통해 전혀 새로운 지베렐린을 분리하고는 지베렐릭산이라 명명했다.

곰팡이에 의해 생산된 지베렐린이 정상적인 식물의 생장과 발달을 촉진한다는 사실은 지베렐린이 고등식물에서도 만들어질 것으로 추측하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고등식물로부터의 지베렐린 분리는 1958년에 최초로 강낭콩의 미성숙 종자를 통해 이루어졌다.

시토키닌-세포분열을 유도하고

식물에서의 세포분열이 특정 화학물질에 의해 촉진되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19세기 말에 처음 제시됐다. 그후 20세기 초 하버란트가 감자괴경(塊莖, 덩이줄기)의 성숙한 유조직(柔組織) 세포가 체관액(液)의 존재하에서 분열을 재개함을 발견함으로써 실험적 증거를 얻게 되었다.

또 1950년대 초 미국의 수쿠거와 그의 동료들은 담배 수조직(水組織) 절편을 옥신이 첨가된 인공배지에서 배양했다. 원래 담배의 수조직은 세포분열 없이도 엄청나게 신장하는데 관다발조직을 수조직 위에 올려 놓았더니 수조직에서도 세포분열이 일어났다. 이는 곧 하버란트의 결과를 입증하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

그들은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물질을 찾으려는 시도를 계속했다. 마침내 냉장고에 보관해 둔 청어 정자로부터 추출한 DNA에서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물질을 찾아내었다. 그것이 바로 키네틴이다. 그러나 이때 발견된 키네틴은 식물체에서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1960년대 초에 밀러와 레담은 성숙하지 않은 옥수수 낟알의 추출물에서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물질을 분리, 제아틴이라 명명했다. 그후 제아틴과 같이 식물의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물질을 통틀어 시포키닌으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아브시산-식물의 동면과 관련돼

캘리포니아대학의 아디코트 등은 잎이 떨어지는 것을 촉진하는 물질이 식물체내에 존재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실험을 수행했다. 마침내 그들은 1961년에 어린 목화 꼬투리로부터 낙엽을 촉진하는 물질을 분리해 아브시신이라 명명했다.

한편 영국의 웨어링 등도 나무들의 동면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겨울잠의 원인이 생장저해물질의 축적에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가을에 접어들면서 잎에서 생성된 생장 저해제가 생장부위로 이동, 생장을 정지시키고 꽃눈 형성을 유도한다고 본 것이다.

그들은 단풍나무의 잎에서 추출한 물질을 나무에 처리했을 때 나타나는 생장저해효과를 관찰하고 이 물질을 도민이라 불렀다.

또 같은 시기에 런던대학의 로스웰 등은 꽃의 낙화에 관여하는 물질을 루핀 종자에서 분리, 아브시신Ⅱ라고 명명했다. 이 아브시신Ⅱ는 분자구조중에 산기가 있어 나중에 아브시산으로 개칭하게 되었다.

아브시산이 최초로 발견된후, 이 물질의 식물호르몬으로서의 기능도 서서히 드러났다. 낙엽과 낙화의 촉진, 생장 부위의 동면유도 외에도 수분결핍에 반응, 기공을 닫게하는 작용도 있음이 밝혀졌다.

에틸렌-수평생장을 일으키기도

또 하나의 식물호르몬인 에틸렌의 발견과정은 상당히 색다르다. 다른 식물호르몬이 천연물로 검출된 뒤 내재적 호르몬으로 밝혀진 것과는 여러 모로 달랐다. 에틸렌의 효과에 대한 초기의 연구는 식물생장에 미치는 발화가스의 해로운 효과와 깊이 연관돼 있다. 실제로 이 분야의 최초의 보고는 가스가 유출되는 광산근처 식물의 낙엽을 관찰한데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또한 넬주보브는 1903년에 실험실에서 발아한 완두가 엉뚱하게 수평으로 생장함을 관찰하고는 일련의 실험을 실시했다. 이 실험을 통해 그는 그 비정상적 생장의 원인이 배양조건 때문이 아니라 실험실내의 발화가스에 기인된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그후 그는 체계적으로 식물생장에 미치는 석탄가스의 효과를 조사, 에틸렌만이 수평생장 증상을 유발시킨다고 발표했다. 이때 에틸렌은 0.06ppm의 극소량으로도 수평생장을 일으켰는데, 이 가스를 제거했더니 곧 정상적인 수직생장으로 회복됐다.

그후 에틸렌은 생장저해제로 널리 쓰이고 있다. 예컨대 푸에르토리코의 파인애플재배가와 필리핀의 망고재배가들은 농장 가까이에 불을 피워서 농작물의 개화기를 일치시키고 있다.

캘리포니아의 레몬재배가들은 열과 습기가 레몬의 탈(脫) 녹색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이 전통적인 케로센연소난로 대신에 새로운 형태의 난방기구로 대체하자 레몬은 익지 않았다.

1960년대에 데니는 불완전연소된 케로센의 연기중 에틸렌이 과일의 숙성에 필수적임을 발견했다. 그리고 과일의 성숙시기에 과일의 조직으로부터 에틸렌이 생성된다는 사실도 입증했다.

단독플레이는 없어

식물을 잘 모르는 사람은 식물의 생장과 분화 등이 특정호르몬의 기능으로만 일어난다고 잘못 이해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식물이 살아가는 동안 발생하는 대부분의 생리적 반응과정에서는 여러 호르몬들간의 상호작용이 보다 중요시된다. 실제로 한 종류의 호르몬이 여러 기능을 동시에 갖는다.

식물들은 그들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서로 다른 호르몬 사이에 일어나는 서로 다른 작용에 반응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의 대표적인 예를 들면 잎이 떨어지는 현상에 참여하고, 식물조직 배양시 재분화에 관여하는 옥신과 시토키닌의 상호작용이다.

여기서는 잎의 떨어짐, 즉 낙엽현상에 가담하는 호르몬의 상호작용을 살펴보자. 왕성하게 생장하고 있는 어린 잎이나 줄기 끝에서 만들어진 옥신은 성숙한 잎의 잎자루로 이용돼 성숙한 잎의 노쇠를 지연시켜 준다. 그러나 성숙한 잎과 생장하는 기관 사이에 형성되었던 물질이동의 평형이 깨어지게 되면 성숙한 잎의 노쇠가 촉진된다. 이때부터 이 층에서는 노쇠를 일으키는 호르몬인 에틸렌의 생성을 유도하고, 이 에틸렌은 기저부에 위치한 세포의 생장을 억제시킨다. 에틸렌은 이 세포에 들어가 세포벽 분해효소의 생성을 촉진함으로써 자신의 임무를 완수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아브시산도 증가돼 성숙한 잎의 노쇠와 늙은 잎이 떨어지는 것을 돕는다.

오늘날 식물조직배양학자들은 수많은 식물에서 조직배양을 통해 재분화식물체를 얻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고 까다로운 것은 배양배지에 식물호르몬을 적절하게 첨가해주는 일이다. 예를 들어 담배의 세포배양을 수행하면서 시토키닌의 농도를 높여주면 세포괴(塊, 덩어리)로부터 눈과 줄기의 분화를 유도시킬 수 있으나, 옥신에 대한 시토키닌의 농도를 낮게 하면 뿌리가 잘 형성된다.

다시 말해 식물조직배양에서 두 호르몬의 비(比)를 적당히 조절해주면 많은 종류의 식물에서 유래된 세포괴로부터 완전한 식물체를 재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식물체의 분화는 식물호르몬의 상호작용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을 뜻한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식물조직배양시 옥신이나 시토키닌과 같은 식물호르몬을 적절히 사용하면 세포괴로부터 완전한 식물체를 재분화시킬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실로부터 식물체 내에서 호르몬의 내적 평형이 깨어지면 비(非)정상적인 현상이 유발될 수도 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식물체내에서 호르몬의 내적 평형이 깨져 생겨나는 식물암의 생성메커니즘을 살펴보자. 토양세균의 일종인 아그로박테리움은 식물체의 상처난 부위에 감염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전자의 일부를 식물세포에 옮겨 주어 식물암을 유발시킨다. 아그로박테리움에 의해 전이(轉移)되는 유전자 중에는 옥신과 시토키닌의 합성에 관여하는 유전자도 있다. 이 유전자가 식물세포로 전달되면 식물세포가 과량(過量)의 옥신과 시토키닌을 합성하게 된다. 그러면 마침내 식물세포내 호르몬의 균형이 깨어지고 세포분열이 계속 진행되면서 식물암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아그로박테리움의 감염에 의한 식물암 유발은 농작물에 엄청난 피해를 입혀 왔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이 분야의 연구가 일찍부터 활발하게 진행돼 암유발 메커니즘이 상세히 밝혀지게 된 것이다.

암유발 메커니즘이 알려짐에 따라 이 박테리아들은 더욱 쓸모가 많아졌다. 유용한 유전자를 식물세포에 전달하는 매개체로 활용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그로박테리움의 식물체 전이유전자를 인위적으로 조작, 여기에 유용한 유전자를 삽입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유전자를 아그로박테리움을 통해 식물세포에 전달함으로써 새로운 식물체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 방법은 유전자재조합기술 그리고 식물조직배양기술과 더불어 오늘날 식물유전공학의 발달을 가능케 하였다.

요컨대 식물체에 암을 유발하는 토양세포, 아그로박테리움에 대한 연구는 마침내 이 세균의 유해한 면들을 인간에게 유용한 방향으로 돌려 놓았을 뿐더러 식물유전공학의 길을 열게 하였다. 또한 옥신의 일종으로 인공합성된 2.4-D는 식물의 과속(過速) 생장을 유발시켜 결국 식물은 죽게하는 제초제로 개발되었다.

식물호르몬에 대한 연구는 동물호르몬 연구에 비교하면 아직 미미한 상태에 있다. 그 주된 이유는 호르몬의 발견역사가 짧은 점, 합성기관이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점, 호르몬의 작용메커니즘이 독립적이기 보다는 상호연관성을 갖는다는 점 등이다.

이러한 문제들을 이해하면서 호르몬 연구가 계속된다면 식물의 생명현상을 보다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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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07월 과학동아 정보

  • 김상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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