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칩차문명

황금과 석상(石像)의 이중주

콜롬비아의 보고타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이 다양한 인디언문명은 화폐 도가니 방직기술로 대표된다.

무척 다양한 인디오문화가 남미대륙의 지금의 콜롬비아에서 오래 전에 꽃을 피웠다. 이들 토착 원주민 사회조직중에서 가장 발달한 조직이 칩차(Chibcha)동맹이었다. 그들은 보고타(Bogotà) 우바테(Ubaté) 치킨키라(Chiquinquirà)와 퉁하(Tunja)에 이르는 비옥한 평원지대와 레이바(Leiva) 파초(Pacho) 텐사(Tenza) 카케사(Càqueza) 후사가수가(Fusagasugà)등 계곡지대에 자리잡고 있었다.
 

소금산 동굴성당^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약 1시간 거리의 교외에 위치한 거대한 소금강 동굴성당. 콜룸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이전, 콜롬비아의 원시종족인 칩차족이 소금을 캐 먹으면서 동굴생활을 했던 곳이다. 스페인군이 점령한 후에는 이곳에서 소금을 생산, 시중에 판매했다. 후대 사람들은 이곳에 세계 최대규모이고 유일한 소금산 동굴성당을 건립했다. 산 전체가 소금으로 된 바위인데 관광 명소중의 하나다.


가장 추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칩차족은 스페인의 신대륙 정복당시 남미대륙의 북부지방에서 가장 막강한 부족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콜롬비아 남부에 위치한 산 아구스틴(San Agustín)지방에서는 신대륙 발견 이전에 사라졌던 이 생생한 인디언문화의 유적지와 석상(石像)들이 발견되고 있다.

이 석상들은 넓적한 코, 큰 입,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다. 또 길고 겉으로 드러난 송곳니를 갖고 있으며 머리는 비정상적으로 크다. 그러나 몸은 작고, 짧고 굵은 다리를 가지고 있다. 한 마디로 불균형한 인간의 모습인 것이다.

칩차제국의 인구는 1백20만 정도였으며 시파(Zipa)와 사케(Zaque)라는 두 부족장이 이들을 통치했다. 시파는 주로 보고타지역에 이르는 남부지방을 지배했고 사케는 북부지방을 다스렸다고 한다. 그러나 이 두 왕이 모든 국가를 통치한 것은 아니다. 각각의 주에 족장을 뽑아 정치와 제사를 담당하게 했던 것이다.

왕권을 모계로 세습하고

시파는 군사통치권까지 거머쥐고 있었다. 그는 영토내에서 가장 덩치가 좋고 용감하고 날렵하고 사려깊은 젊은이들로 구성된 잘 훈련된 군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 젊은이들은 게차스(Guechas)라고 불렸다. 이들은 국경을 지키는 의무를 지니고 있었다. 시파왕은 때때로 그들에게 귀족의 지위를 주어 일부 지역의 족장으로 임명하기도 했다.

왕권의 세습은 부계가 아닌 모계에 의해 이뤄졌다. 따라서 여자형제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 받았다. 그러나 일반 부족민들은 가부장제를 따랐다. 일반인들은 일부다처제를 신봉했는데 '다처'는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사회계층은 세그룹으로 구분되었다. 첫번째가 시파와 사케이고 두번째가 제사장, 세번째가 농업과 공업에 종사하는 부족민들이었다.

칩차족이 숭배하는 신들에게는 높고 낮은 등급이 주어졌다. 그중 창조신들이 1등급이었다. 칩차인은 빛의 창조신인 치미니가구아(Chiminigagua)신과 부족의 어머니인 바체(Baché)신 그리고 태양신과 달신을 숭배했다. 태양신과 달신은 부부였는데 그들이 가뭄과 비 등을 창조한다고 믿었다. 여러 신중에서도 태양신을 가장 숭배해 웅장한 수아모스(Suamós)사원을 건축했다. 이밖에도 메케타(Mequetà)지역에 많은 사원을 세웠으며 치아(Chía)에는 달신에게 바치는 사원을 건설했다.

보치카신을 용으로 묘사하기도

2등급에 속하는 신은 주로 인간의 생활에 관여하는 신들이었다. 예컨대 상인들을 보호해추는 칩차쿰(Chibchacum)신, 여인들의 잉태를 도와주는 추차비아(Chuchavia)신, 은혜의 신인 보치카(Bochica)신이 있었다.

칩차인은 하얀 피부에 수염을 길게 기른 보치카신이 먼 곳에서 와서 자신들에게 직물 짜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사라졌다고 믿고 있었다. 또한 보치카신을 농작물의 수확을 관장하고 질병을 치료해주고 전쟁을 치를 때 승리를 가져다 주는 은혜의 신으로 여겼다. 그래서 칩차족은 이 신을 용(龍)의 형상으로 묘사하기도 했다. 특이한 사실은 신에게 제사를 지낼 때 15살 또는 16살짜리 처녀를 제물로 바친 것이다.

칩차족은 모든 사원의 바닥에 항아리를 목 부분까지 파묻어 두기도 했다. 아울러 속이 텅빈 우상의 형상들을 묻어 놓았다. 신자들은 이 속에 공물을 채워 넣었다고 한다. 공물은 주로 금가루와 에메랄드 등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항아리가 가득 채워지면 진흙 뚜껑으로 덮어 은밀한 장소에 파 묻었다고 한다.
 

3인의 우상^산 아구스틴 국립 고고학 공원 안의 장례를 거행하는 사원에 세워진 거대한 3인의 우상. 칩차족의 거석문화가 상당히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화폐를 사용하고

칩차족이 거주했던 지역은 호수를 끼고 있어 토지는 비옥한 편이었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엄한 법률이 제정돼 있었고 공식적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있었기 때문에 칩차족의 산업은 자연 농업 위주였다. 따라서 그들은 대단한 수준의 농업발전을 이루었고 풍요로운 수확을 할 수 있었다.

칩차족의 상업망은 전영토에 걸쳐 뻗어 나갔다. 상업 중심지에서는 장이 서기도 했다. 그들은 특히 방직기술이 발달, 모포나 망토를 잘 짰다. 거래에도 제법 체계가 있었다. 상인들은 물건값으로 바닷조개나 정제된 금을 받았다.

칩차족은 그때 이미 교환화폐를 사용하고 있었다. 이 사실로 미루어 보아 그들의 발달된 문명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칩차족의 화폐는 원형이었는데 직경이 3.4㎝ 정도였다. 화폐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 그저 목적에 따라 금을 틀에 부어 만든 것이다.

도자기공들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는 물론이고 실을 짤 때 사용하는 실패, 부조인쇄에 사용하는 롤러, 은세공을 할 때 쓰는 광내는 도구, 금·은을 용해하는 도가니를 활용하고 있었다. 오늘날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는 기구들을 14,15세기에 이미 만들어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이러한 도구에 지나칠 정도로 화려한 장식을 해 놓았다. 이 장식들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미(美)를 중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관식^순금으로 재현한 칩차인 일부인 무이스카(Muisca)족의 대관식 장면. 보고타에 있는 금박물관에 소장된 콜롬비아 국보다.


개구리는 힘의 상징으로

현재 콜롬비아의 쿤디나마르카(Cundinamarca)지방과 보야카(Boyacà)지방이 칩차문명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곳에는 안데스산맥의 동부평원이 펼쳐져 있다. 필자는 이곳에서 적색 잉크로 색칠돼 있는 암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 묘한 암석들은 콜롬비아의 다른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이다. 암석들은 끌로 정교하게 조각돼 있었다.

칩차족의 무덤은 높이는 3m 정도였다. 중앙에 기둥을 여러 개 세웠고 기둥 끝에는 조각장식을 해 놓았다. 그 주변에는 여러가지 색상의 그림을 걸어 놓았다. 색상은 흰색 검은색 빨간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칩차족의 그림에는 개구리형상이 많이 나타났는데 개구리는 힘과 원기를 상징했다고 한다.

콜롬비아의 역사를 살펴보면 고대사는 완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12세기 무렵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타이로나문화가 꽃을 피웠다는 것이 콜롬비아역사의 첫 페이지다. 그뒤 현재의 보고타 근처에서 칩차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지방문화가 발달했으나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붕괴되었다. 스페인 사람들은 1536년 콜롬비아에 처음 발을 들여 놓았는데 그뒤 38년에 걸친 지배권쟁탈전에서 승리, 칩차족을 완전 정복하게 되었다. 칩차족을 멸망시킨 뒤 그들은 산타페요새를 구축, 콜롬비아를 영구지배하는 거점으로 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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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우덕룡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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