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슐린과 관련된 연구에 이미 일곱번의 노벨의학·생리학상이 수여됐지만 아직도 노벨상감 연구가 많이 있다.
서아무개군은 17세 된 남학생인데, 보름전 경부터 갑자기 시작된 심한 갈증 때문에 물을 계속 마시게 되었고 수시로 화장실을 찾아야만 했다. 그런 증상이 계속되더니 급기야 살이 빠지고, 기운이 없어지고, 모든 것에 의욕을 잃다가 비실비실 의식이 흐려져서 급히 병원에 실려 왔다.
응급실에서 혈중 포도당농도를 측정해 보니 무려 4백50mg/dl나 되었다(보통 1백mg/dl 정도다). 혈액은 pH 7.02로 심한 산성(보통 7.4를 나타낸다)을 보였을 뿐 아니라 소변과 혈액에서는 아세톤이 검출됐다. 필자는 곧 인슐린 20단위를 정맥 주사했다. 그리고 시간마다 8단위를 추가로 주사하고, 생리적 식염수(0.9% NaCl)를 정맥주사했더니 이 학생은 4시간이 지나자 의식도 말짱해지고, 그후 회복의 길로 접어 들었다.
이 학생이 1910년대에 태어났다면 아마도 살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인슐린은 이 학생과 같은 불행을 겪고 있는 세계의 수백만명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이러한 심한 당뇨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많은 사람이 사망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생명을 구하는 신비의 호르몬인 인슐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거나 미신에 사로잡혀 그 사용을 회피함으로써, 당뇨병으로 인한 만성적인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수만명이나 있다.
방금 예를 든 17세 학생은 비교적 급작스럽게 몸 안에서 인슐린의 생산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발병하는 소위 당뇨병성 산혈증의 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심한 당뇨병이 어린이에게 나타나는 경우는 드물지만, 구미 백인사회에서는 어린이의 모든 암 발생을 합한 것 보다 더 흔하고 중요한 병이다. 이 병의 원인을 알아내고 완치법을 찾으려는 세계 과학자들의 경주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으며, 직접 간접으로 최소한 일곱번의 노벨 의학·생리학상 또는 화학상을 수여하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또 앞으로도 몇개의 노벨상이 기다리고 있는 분야라 할 수 있다.
1923년 인슐린을 발견한 공로로 밴팅(Frederick G. Banting)과 맥클레오드(J.J.R. Macleod)에게 주어진 노벨의학상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노블」의 일생일대의 실수
밴팅은 1916년 캐나다의 토론토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평범한 외과의사의 길을 걷고 있었다. 소정의 수련을 쌓은 뒤 그가 개업을 한 해는 1920년이었다. 그는 어느날 외과전문학술지에서 췌장이 막혀(결석으로 인해) 분비물(소화효소)이 장으로 들어갈 수 없게 돼 그 부위가 망가지더라도, 당뇨병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논문을 읽었다. 이 논문에서 힌트를 얻은 그는 개의 췌장 분비관을 잡아맨 채 내분비(혈액을 통해 몸안으로 분비물을 내보내는 일)기능을 살려주면 내분비물질을 외분비물질(췌장은 소화효소를 만들어 소장으로 내보내는 일을 한다)로부터 분리해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한편 1889년 폰 메링(J.von Mehring)과 민코브스키(O. Minkowski)는 실험동물의 췌장을 절제하면 그 동물이 당뇨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발견해 냈다. 아울러 췌장에 당뇨병의 발생을 억제하는 그 무엇이 있음을 발표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밴팅은 몰랐지만 4백여명의 학자들이 세계 각처에서 이 에센스(essence)를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었다. 밴팅은 자신의 생각에 몰두, 밤을 새워 연구계획을 세워 보았다. 수일 후 그는 맥클레오드교수(당시 토론토대학의 생리학교수로 세계적으로 저명한 탄수화물대사 연구의 권위자였다)를 찾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하고 두움을 청했다. 여러 곡절을 겪은 후 1921년 여름, 맥클레오드교수는 생리학·생화학을 전공하고 졸업하게 되는 베스트(Charles H. Best)를 밴팅의 조수로 추천했다. 추천된 두사람, 클라크 노블이라는 학생과 베스트는 둘다 그 일을 맡기 싫어했다. 하는 수 없이 그들은 이긴 사람이 그 일을 하지 않고 먼저 휴가를 가기로 정해놓고 동전을 던졌다. 노블은 자기가 이긴 것을 평생 후회했다.
밴팅과 베스트는 그해 5월 17일 10여년간이나 쓰지 않고 있던 연구실을 청소하고 실험을 시작했다. 그들은 우여곡절을 겪은 후, 드디어 7월 31일 췌장의 추출액을, 췌장을 절제당한 '당뇨병 개'에 주사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혈중 포도당농도가 0.2%에서 0.12%로 약 40%가 감소하는 게 아닌가. 실험이 성공리에 진전돼 가자 맥클레오드는 두 사람이 중대한 발견을 하고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훈련된 생화학자가 필요하리라 생각하고는 콜립(J.B. Collip)을 실험에 참가하도록 했다. 콜립은 수많은 시행착오끝에 1922년 1월의 어느 날(16일로 추정되고 있다) 경이로운 발견을 하게 된다. 모두가 잠을 자고 있는 깊은 밤이었다. 전에 밴팅이 쓰던 생리식염수를 사용하지 않고 알코올농도를 미묘하게 변화시킴으로써 불순물이 거의 없는 에센스를 깨끗이 추출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들은 이 물질을 인슐린(insulin)이라 명명했다. 이 인슐린은 1월 23일 톰프슨이란 14세된 당뇨병 소년에게 주사되었다. 수일이 지나자 아이는 화색이 돌기 시작하고 자신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고 얘기하게 되었다.
1923년 노벨위원회는 정밀조사 후, 밴팅과 맥클레오드에게 노벨상을 수여했다. 그들은 베스트와 콜립에게 상금을 나누어 주었다. 노벨상 수상을 전후한 네 사람 사이의 갈등과 연구과정은 과학사에 아주 흥미로운 부분으로 남아 있다.
살 찌게 하는 호르몬
벤팅과 베스트는 인슐린이 가져다줄 경제적 부에는 흥미가 없었으나, 미국의 엘라이릴리사, 덴마크의 노르디스크사 등 지금은 세계적인 제약회사가 된 연구소들이 인슐린의 발견과 더불어 생겨났고, 인슐린은 곧 산업화 되었다.
인슐린은 21개의 아미노산으로 된 A사슬과 31개의 아미노산으로 된 B사슬, 이 두개의 사슬이 연결된 구조를 갖고 있다. 그렇게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단백질 분자라는 점이 생화학자 생거(F. Sanger)를 흥분시켰다. 그가 처음 단백질의 아미노산 배열을 결정하는 방법을 고안한 뒤 실제로 적응해 보는 실험을 하기에 인슐린은 더할나위 없이 좋은 대상이었던 것이다. 생거는 1958년 이 업적으로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이 일은 왓슨과 크릭의 유전자구조 해명과 더불어 소위 분자생물학의 시발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그후 1960년대를 지나면서 프레프로인슐린이 먼저 만들어지고, 이어서 프로인슐린을 제조한 다음 연결펩티드를 떼어내면 최종적으로 인슐린이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는 인슐린의 유전자도 전모를 드러냈고, 인슐린의 3차원적 구조 그리고 인슐린 구조와 효과와의 상관관계까지도 밝혀지게 되었다. 인슐린이 입체구조를 밝힌 크로우푸트 호지킨(D.Crowfoot-Hodgkin)은 1969년 역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러한 생화학적 지식의 발달은 인슐린제품의 향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근래에는 유전공학적 기술을 이용, 대장균에서 추출한 인슐린을 엘라이릴리사에서 실제로 생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돼지의 인슐린을 사람의 것과 같게 전환시킬 수도 있게 되었다. 우리나라 당뇨병 환자들은 현재 동물의 인슐린보다 부작용이 훨씬 적은 사람 인슐린을 많이 이용하고 있다.
몸안에서 인슐린이 하는 주요작용은 섭취한 영양소를 몸에 저장시키고 나아가서 몸을 비대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동화작용을 일으키는 호르몬이다. 이런 사실은 인슐린이 모자라 당뇨병에 걸린 사람들이 섭취한 음식물을 잘 저장하지 못하고 그들의 근육과 지방조직이 소실돼가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인슐린은 여느 단백호르몬과 같이 표적이 되는 간 근육 지방조직 등의 세포막에 있는 특수한 수용체(receptor)와 결합, 세포내에서 복잡한 2차 효과를 유발한다. 예컨대 간에서는 포도당을 글리코겐(glycogen)으로 전환시키는 과정을 촉진한다. 또 포도당이나 아미노산이 근육세포로 이동하게 하고 지방조직에서는 지(脂)당백질 리파제를 활성, 지방의 생성이 증진되게 한다.
이러한 과정의 이해에 공헌한 코리부부(C.F.Cori와 G.T.Cori)와 서덜랜드(E.W. Sutherland)는 1947년과 1971년에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인슐린과 수용체의 결합 이후의 세포내 과정은 1980년대 카스가, 칸, 로스 등 여러 학자들에 의하여 맹렬히 추구되고 많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이 흥미로운 분야는 또하나의 노벨상을 기다리는 미지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글루카곤과 협조체제를 이뤄
인슐린은 앞의 민코브스키 실험에서 지적한 것처럼 췌장에서 만들어진다. 특히 췌장내에서 특별한 구조를 하고 있는 랑게르한스 섬(Langerhans islet)에서 분비된다. 랑게르한스는 유명한 병리학자인 비르효(R.Virchow)의 제자였는데, 그의 나이 22세 때 췌장의 외분비세포들과 구분되는 섬같은 구조가 있음을 밝혀 놓았다(1868년). 이러한 지식들이 모여 결국 밴팅과 베스트의 손에 의해 인슐린이 발견되게 되는 다리를 놓은 것이다.
인슐린은 음식을 섭취한 결과, 영양분이 몸에 들어오면 분비된다. 장에서 음식물을 소화하려면 소화효소가 필요한데, 이것이 췌장에서 나온다. 또 소화흡수된 영양소, 즉 포도당 아미노산 지방산 등이 다시 처리될 때에도 인슐린이 췌장에서 분비된다. 이처럼 우리 몸의 설계는 정말 오묘한 것이다. 어떻게 포도당이 랑게르한스섬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도록 하는가에 대한 자세한 생화학적 지식들도 이제 거의 확보돼 있다.
한편 랑게르한스섬은 A세포 B세포 D세포 및 PP세포 등 다양한 세포들로 이루어진 사회다. 그중 B세포가 인슐린을 만들고, A세포는 이화작용을 강하게 발휘하는 글루카곤(glucagon)을 만든다. 또 이 두 세포들은 서로 협동하며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랑게르한스섬의 A세포에서 나오는 글루카곤은 인슐린의 작용과는 반대가 되는 호르몬이다.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게 될 때 몸에 저장되어 있던 에너지를 동원, 생존을 유지하라는 신호를 온 몸에 보내는 역할을 밑고 있다. 이처럼 인슐린과 반대되는 작용을 나타내는 이화호르몬에는 부신피질호르몬인 코티솔, 부신수질호르몬인 아드레날린, 뇌하수체에서 나오는 성장호르몬, 그리고 염증이 생길 때 나오는 인터루킨, TNF 등이 있다. 사람의 몸은 기아상태나 세균에 감염돼 있을 때 살아남기 위해 에너지를 적절하게 동원하는 체제가 잘 갖춰져 있다. 복잡한 호르몬 체계를 발달시키고 있는데, 이들 각각의 호르몬들은 약간씩 그 역할이 다른 데가 있다.
한편 후사이(Bernardo Houssay)는 뇌하수체호르몬이 당뇨병을 유발한다는 사실을 발견, 1947년 노벨상을 수상하였다. 그것이 성장호르몬의 역할임을 그 후 여러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밝혀졌다.
저항증도
1957년 버슨(S.A. Berson)과 얄로우(R.S. Yalow)는 인슐린을 투여받고 있는 당뇨병 환자에게 나타나는 항(抗)인슐린항체(인슐린은 단백질이므로 항원의 역할도 한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항체가 생길 수 있다)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동위원소를 표지(labeling)한 인슐린을 잘만 이용하면 혈중의 인슐린 농도를 측정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방사면역측정법(radioimmunoasssay)의 시발이며, 이 방법의 개발로 얄로우는 1977년 노벨의학상을 수상했다(노벨상은 사망한 사람에게는 주어지지 않는다. 이 규정이 없었다면 버슨도 함께 받았을 것이다).
이들의 업적으로 당뇨병 환자들의 혈중(血中) 인슐린 농도를 측정해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일반의 생각과는 달리 어떤 당뇨병환자는 인슐린의 부족이 아니라 과잉상태에 놓여 있음이 알려지게 된 것이다. 물론 서두에서 예로 든 17세 학생은 혈중 인슐린 농도가 아주 낮은 소위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 환자다. 그러나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슐린은 많이 있으나, 인슐린의 작용이 모자란듯 해 보이는 인슐린 저항증 당뇨병도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새 지식은 인슐린 저항증을 보이는 수많은 당뇨병의 치료를 획기적으로 변경하도록 강요했다. 동시에 인슐린 수용체의 연구 쪽으로 연구의 방향을 틀게 했던 것이다.
요컨대 인슐린은 췌장의 랑게르한스섬의 B세포에서 소화·흡수된 영양소, 특히 포도당과 아미노산의 자극을 받아 혈중으로 분비되는 대표적인 동화호르몬이다. 따라서 영양소들을 간 근육 및 지방조직에 저장하라는 신호를 전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또 인슐린은 표적장기의 세포막에 있는 특이한 수용체와 결합하고, 세포내로 적절한 2차신호를 전달함으로써 그 임무를 다한다. 인슐린의 결핍이 심하면 곧 생명이 위험한 인슐린 의존성 당뇨병이 된다. 이들은 이제 유전공학적으로 제조된 인슐린 등으로 인해 극복되고 있다. 하지만 인슐린의 작용이 오히려 문제가 된 당뇨병도 있으며, 그 이유는 인슐린의 메커니즘이 불명(不明)한 현 시점에서는 자세히 모르고 있다.
벤팅과 맥클레오드가 시작한 인슐린의 연구는 수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오늘 날의 발전에 이르는 길을 닦은 여러 학자들은 그 감사의 뜻으로 노벨상들을 수상했다. 그러나 인류의 건강에 큰 적이 되는 이 병의 완치법이나 예방법은 아직 없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약 1백만명의 당뇨병 환자가 있는 실정이다. 아직도 세계적으로 수천만명이 당뇨병과 그 합병증으로 죽어가고 있으므로 이 분야와 관련된 노벨수상자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어쩌면 바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