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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Ⅴ 선박설계·생산자동화시스템

조선산업 사활을 건 승부

주문에서 선박인도까지 전과정을 컴퓨터와 로봇을 이용, 자동화한다.

우리 조선사업이 세계 최대의 조선국 일본의 턱밑에까지 추격한 적이 있었다. 지난 87년 우리나라의 선박 수주량(受注量)은 4백16만 t에 이르러 일본의 90%선에 육박했었다. '타토 일본'의 기치를 내걸고 조선산업 종사자들이 피땀을 흘린지 20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87년을 정점으로 우리 조선산업은 후퇴의 길을 걸어왔다. 세계적인 조선불황에 큰 타격을 받은데다 강력한 노동운도의 대두로 더 이상 저임금을 무기로 내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 대우 조선공사 등 대형 조선소들이 잇따라 노동쟁의에 휩쓸리고 치열한 수주경쟁의 결과 선가(船價)가 하락하여 조선산업은 더욱 불황의 늪에 빠지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한(韓)·일(日)간의 수주량을 보면 각각 2백56만 t과 7백13만 t으로 현격한 차이가 벌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본 조선산업이 무너지지 않은 비결은 물론 끊임없는 기술혁신이다. 80년대 중반 조선불황과 엔고(高)로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때 일본조선업계는 일부 감원과 시설축소를 감수했지만 이와함께 필사적인 '군살빼기'노력을 병행했다. 설계와 생산관리분야에서 전산화를, 생산현장에서 자동화를 추진한 것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결과 생산성이 대폭 향상되어 미국과 유럽이 거의 조선산업을 포기한 이후에도 부동의 선두주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이미 일본은 전세계 선박수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해 'GNP 5천달러 산업'이란 기존의 통설을 뒤엎고 'GNP 2만달러의 조선강국'이란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흑자로 반전

세계 조선경기는 지난해를 고비로 반전하기 시작했다. 출구없는 수렁에 빠진 것처럼 보였던 국내 조선업체들도 이미 93년까지의 작업량을 확보했다. 공급이 부족함에 따라 선가도 예전 수준을 회복했고 이에 따라 적자에 시달리던 조선업체들도 올해는 모두 흑자로 돌아설 전망이다. 업계 관련자들은 현재 수주받고 있는 선박의 경우 평균 40%의 이윤이 보장된다고 말한다. 사활의 기로에 섰던 대우조선마저 엄청난 부채더미에도 불구하고 설립이후 처음으로 올해 흑자를 기록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있다.

최근의 조선경기 상승은 주로 70년대 중반 중동사태로 대형화됐던 선박들이 노후단계에 들어선 데다 (선박의 수명은 보통 15년정도) 유가(油價)의 안정으로 세계적인 석유소비가 늘고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불과 몇 달전의 사활위기가 지금은 엄살이었던 것처럼 여겨지는 것이 조선산업의 현실이다.

그러나 조선산업에 종사하는 학계 업계 연구소의 관계자들은 지금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거의 10년 주기로 호·불황이 연속되는 산업의 특성상 장사가 잘 될 때에 기술개발에 집중 투자해 두지 않으면 불황시기에 더욱 심각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지난 몇 년간 절감했기 때문이다. 80년대초 호황기에 남겼던 엄청난 이익을 기술개발에 투자하지 않고 다른 산업이나 비생산적인 부문에 돌려버린 결과 조선산업 전체가 존폐의 위기까지 몰렸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분석이다. 더 이상 저임금에 경쟁력을 의존할 수 없고 의존해서도 안된다는 대명제 위에서 기술력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길만이 다시 한번 일본과의 격차를 좁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해사기술연구소 서인원실장(해사경제)은 "아직은 조선산업이 사양산업이 될 수 없다. 어느 분야를 봐도 세계 2위권에 당당하게 자리잡은 산업은 조선산업밖에 없다. 기술개발에 산(産)·학(學)·연(硏)이 일체가 되면 난공불락 일본도 넘볼 수가 있다"고 가능성을 제시한다.

처음 해보는 공동연구
 

(그림 1) CSDP 개념
 

이러한 명제하에 마련된 계획이 소위 선박설계·생산자동화계획(CSDP, Computerized Ship Design & Production System).

선박은 종류와 크기가 천차만별이고 가격 또한 척당 5천만달러에 이르는 고가품으로 수많은 부품과 기술이 총동원되는 전형적인 주문생산방식에 의해 만들어진다.

현재 일부 설계분야에 컴퓨터를 이용하고 생산현장에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경험과 수작업에 자동화가 이뤄지고 있지만 대부분은 경험과 수작업에 의해 선박이 건조된다. 조선소가 어느 산업보다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은 규모가 큰 탓도 있지만 그만큼 인간의 손을 많이 거치는 작업과정 때문이기도 하다.

CSDP는 주문에서 선박인도에 이르기까지 조선소의 전과정을 컴퓨터기술을 이용, 하나로 묶어 자동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림1)과 같이 주문단계에서의 견적자료가 설계에 그대로 전달되고, 이를 컴퓨터로 설계하여 복잡한 구조 및 성능계산 역시 컴퓨터가 도맡아한다(CAE개념). 또 설계도면은 곧바로 생산현장에서 수치제어(NC)머신이나 로봇에 입력돼 인간의 손을 빌리지않고 정밀하게 자로고 깎고 용접하고 조립된다. 자재 및 인력관리 또한 컴퓨터에 의해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지며 전체 조선소를 하나의 통신망으로 그물처럼 묶어 정보흐름을 원활하게 한다는 구상이다.

물론 일정 수준에 도달했다는 설계전산화 조차 거의 수입 소프트웨어에 의존하고 있고 생산자동화기술은 아직 초보단계에 불과한 우리 현실에서 보면 꿈같은 얘기지만 산·학·연이 똘똘 뭉쳐 노력하면 불가능할 것도 없다는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이론은 이미 이와 비슷한 '컴퓨터통합 조선생산시스템'(조선CIMS)을 개발하기 위해 97년까지 4백억엔을 투입, 이 프로젝트를 추진중에 있다.

CSDP는 이미 지난 88년부터 시작돼 오는 2001년까지 3천4백명의 연구인력과 1천4백79억원이 투입되어 3단계로 나눠 추진될 계획이다. 1단계(88~93년)에는 선박설계 및 생산관리전산화가 추진되고 2단계(94~97년)에는 생산과정 자동화가 이뤄지며 마지막 3단계(98~2001년)에는 이를 하나로 통합한 CSDP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해사기술연구소 (舊 기계연구소 선박분소)가 중심이 되고 전자통신연구소 선급기술연구소 등 연구소와 현대 대우 삼성 조선공사 등 조선 4사, 서울대 인하대 부산대 등 7개 대학이 참여하는 범국가적인 개발체계를 구성했다. 대학은 기초기술을 중심으로 하고 연구소는 요소기술과 시스템기본형에 주력하는 한편 업체들은 시스템적용과 확장기술을 맡겠다는 것이다. 이를 근간으로 이미 각 연구기관별로 세부과제를 확정짓고 프로젝트협의를 위해 정기적으로 세미나를 열고 있다고 한다.

CSDP의 실무책임을 맡은 이규열박사(해사기술연구소)는 "솔직히 전자교환기(TDX) 반도체공동개발 등 타분야의 거대 프로젝트에 자극받은 바가 크다. 그러나 조선분야는 다른 어떤 산업보다 기술력이 축적돼 있다고 본다. 단지 공동개발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업체들의 적극성과 정보를 공유하려는 자세가 프로젝트 전체의 성패를 좌우하리라 예상된다. 정부차원의 예산지원도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21세기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선박수주량의 30% 이상을 확보하겠다는 우리 조선업계의 원대한 구상은 곧바로 CSDP의 승부에 의해 판가름날 것이라는 예상이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김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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