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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기사][과동키즈] “실패는 다음으로 나아가는 과정일 뿐, 과학에서 배웠죠”

     

    탐구생활의 실패가 즐거웠던 시절

     

    저에게 과학의 시작은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숙제로 했던 ‘탐구생활’이었습니다. 탐구생활은 간단한 실험이나 만들기 활동을 하며 결과를 탐구 일지에 기록하는 숙제였는데, 저는 숙제 이상의 호기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끓는 물의 온도가 궁금해 수은 체온계를 물에 넣었다가 깨뜨리기도 하고, 리트머스 종이의 색 변화를 보고 싶어 동네 문방구를 찾아다녔죠. 그 당시 저에게 과학은 어설펐지만, 실패조차도 재미있고 즐거운 경험이었습니다.

     

    2008년 멕시코 생산 공장에 출장을 갔을 때. 내가 설계한 차가 여러 나라에서 생산되고, 일로써 세계 곳곳을 누빈다는 사실에 무척 설렜다. 

     

    제게 과학이 또 다른 의미를 갖기 시작한 건 중학생 때였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동네에 도서관이 많지 않았고, 과학 서적을 접할 기회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가 학교에 ‘과학동아’ 잡지를 가져왔습니다. 잡지에 실린 우주 사진과 설명은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망원경 하나가 저 멀리 우주의 사진을 찍어 보내는 것도, 우주에 정거장을 만든다는 것도 참 신기했죠. ‘어떻게?’라는 질문의 연속이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머리를 맞대고 사진과 기사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처음 e메일 아이디를 만들 때, 친구의 아이디가 ‘우주인’이었던 것도 그때의 감동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DNA 복제, 인간의 장기나 뇌의 기능 등 우리 몸도 우주만큼 신기하고 놀라웠습니다. 미토콘드리아나 T세포 같은 단어는 그저 아는 척하고 싶어서 외웠던 기억이 나네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도 과학에 대한 흥미는 계속됐습니다. 그때 당시 깨달았던 과학의 매력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주와 인체의 신비는 현재의 지식일 뿐이며 또 다른 발견으로 나아가는 과정이란 걸 알게 됐죠. 또 지금의 성취가 기적처럼 보이더라도, 그 기적 역시 수많은 실패의 과정을 지나온 결과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는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돌아보면 10대와 20대 초반 제 인생은 탐구생활처럼 실패로 가득 찼습니다. 과학고 진학에 실패했고, 원하던 대학에도 입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학을 사랑하며 얻게 된 교훈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 실패가 제 인생의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오히려 그 과정 속에서 또 다른 기회가 열릴 것이라고 믿었고, 결국 공대에 진학해 지금까지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SWE Korea에서 STEM 교육 일환으로 진행한 초음파 자율주행 RC카 제작 수업. 

     

    2022년 GM 한국지사 사장상을 수상했을 때.  

    3 2022년 SWE Korea 회장을 맡고 개최한 첫 콘퍼런스. 팬데믹으로 변화한 사회에 대해서 논의했다.

     

    좌절과 실패를 넘으며 얻는 성취감

     

    저는 자동차 설계 회사에서 자동차 차체 및 외장 설계를 담당해 왔습니다. 차체는 차량의 뼈대입니다. 외장은 차량의 외관을 구성하는 요소로 차체 위에 덧붙여져 차량의 모양과 기능을 완성하는 외형이죠. 설계자의 역할은 디자이너가 제시한 차량의 디자인을 최대한 지켜내면서 시스템별로 충분한 성능, 품질, 내구성, 생산성 등을 보장할 수 있도록 차량 개발 전 과정에서 긴밀하게 협력하고 조율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 설계에 참여한 차는 ‘스파크’라는 경차였습니다. 당시 차량 문 설계를 맡았는데, 문은 자주 사용하는 구조일뿐만 아니라 측면 충돌에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 곳이라 안정성과 품질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경차의 특성상 한정된 공간에 안전을 위한 여러 부품을 배치해야 하는 어려움이 컸습니다. 특히 경차에 안정성을 더하는 고장력강 임팩트 빔을 처음 적용했기에, 성능과 생산성을 동시에 만족하는 최적의 구성을 찾아야 했죠. 수식을 활용해 비율을 계산하고, 다른 차종을 벤치마킹하며 여러 번의 설계를 수정한 끝에 출시된 스파크는 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미국을 포함해 여러 나라에 수출되며 좋은 평가도 받았죠. 과정의 어려움과 극복 과정이 설계자에게 큰 보람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현재 차체 설계를 주로 맡고 있습니다. 차체는 차량의 거의 모든 부품을 지탱하는 플랫폼 역할을 하며, 충돌 안전성 및 내구성도 크게 좌우합니다. 기본적인 안전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먼저 개발되는 부위죠.

     

    이렇게 여러 개발 과정에 참여하며 느낀 것은, 자동차 설계와 출시 과정은 수많은 실패의 연속이란 점이었습니다. 실패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요. 실패한 제품은 출시할 수 없기 때문에 회사 동료들과 끊임없이 고민하고 논의하며, 집단 지성의 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 나갑니다. 실패를 극복하고 세계 시장에 출시된 자동차를 볼 때의 성취감은 말로 다할 수 없이 큽니다. 하지만 그 성취감은 무수한 좌절과 실패를 이겨낸 결과입니다. 만약 실패에서 멈췄다면 성취감은 없었을 것이고, 좌절 없이 성과만 있었다면 자만심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자동차는 기계공학, 공기역학, 인체공학부터 소프트웨어공학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기술이 총망라된 결정체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스마트 모빌리티, 친환경 기술, 그리고 디지털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는 지능형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죠. 우리의 일상을 더욱 편리하고 스마트하게 만드는 하나의 디지털 디바이스입니다. 

     

    자동차를 설계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예전의 자동차와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여정이 시작된 셈입니다. 이 여정에는 끝이 있을까요? 저는 이 변화가 시작될 무렵 두려웠습니다. 또한 자동차의 목적과 역할이 변한다면, 그 자동차를 만드는 사람의 마음가짐 역시 변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을 바라봐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컸죠. 그리고 그 고민은 ‘더 배우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올해 초 대학원에 진학했습니다. 퇴근 후 공부와 연구를 하는 일이 솔직히 쉽지 않습니다. 또 요즘엔 기술 발전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배움이 이를 따라잡기 어려운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지식에 도전하고 탐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즐거움은 여전히 저를 움직이게 합니다.

     

    2023년 2월, GM 브랜드 데이에 참석해 GMC 시에라 옆에서 찍은 사진. 브랜드 데이란 GM의 주요 차량과 전량을 소개 및 홍보하는 자리다. 

     

    기술의 진보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세상을 꿈꾸다  

     

    인공지능(AI)이 탑재된 스마트폰, 실생활과 연동 가능한 가상현실(VR) 장비, 그리고 나만의 생성 AI를 구현할 수 있는 GPU 노트북까지. 최신 기술은 이미 우리 곁에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이 발전할수록, 기술을 누릴 기회가 경제적 여건에 따라 제한되는 일이 많아질지 걱정됩니다. 누군가는 기술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하니까요. 자동차 분야에서 일을 하다 보니 걱정과 고민이 더 큽니다.  

     

    저는 2022년부터 2023년까지 ‘SWE(Society of Women Engineers)’라는 비영리 단체의 한국지부 회장을 맡았습니다. SWE는 국제 여성 엔지니어 비영리 단체입니다. SWE 회장이던 당시 저소득층 아이들에게 자율주행 차량의 기본 개념을 소개하고, 자율주행 RC카를 조립하는 행사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경제적 격차가 만드는 경험의 격차를 줄일 수 있는 활동을 꾸준히 이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다면, 누구나 그 힘을 느끼고 삶의 변화를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요. 기술의 진보가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즐거운 경험이 되길 바라며, 세상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진심으로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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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예은실 GM 기술연구소 Body Structures 1 설계팀 차장
    • 에디터

      김태희
    • 디자인

      이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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