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4℃에서 물을 얼게 한다

냉해를 일으키는 박테리아에서 뽑아낸 단백질

냉장고의 프레온보다 훨씬 우수한 냉매로 쓰일 가능성이 큰'분자냉동기'가 국내의 연구진에 의해 개발돼
 

빙핵활성 세균이 함유된 물은 -4℃에서 얼음으로 변했으나(왼쪽) 순수한 물은 얼지 않았다.(오른쪽)
 

물이 0℃에 언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과냉각한 순수한 물은 -20℃가 돼야 결빙한다는 사실은 지식이다.

최근 어쩌면 이 과냉각 온도를 현저히 높여줄지도 모르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유전공학센터의 한문희소장과 김정하박사는 -4℃에서 물을 얼게 하는 한 단백질을 5년의 연구 끝에 추출해냈다. 농산물에 냉해를 일으키는 미생물인 빙핵활성균주에서 냉해의 원인체로 보이는 순수한 단백질을 분리해낸 것이다. 이 단백질은 분리자들에 의해 '분자냉동기'라고 명명되었다.

"단백질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애를 먹였고, 특히 활성을 측정하는 법을 개발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직접 단백질의 활성을 잴 수 없으므로 리포좀을 이용하는 활성측정법을 마련했어요"

김박사는 연구가 5년이나 걸렸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학명이 슈도모나스 시린게(Pseudomonas syringae)인 이 빙핵활성균주는 자연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미생물이다. 영상의 기온임에도 불구하고 풀잎에 하얗게 끼는 서리에는 이 미생물이 암약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 미생물은 풀잎 나뭇잎 땅속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지금까지 모두 11종이 발견됐다.

"11종의 박테리아중 현재 단백질의의 아미노산 서열이 결정된 것은 2종 뿐입니다. 그런데 이들의 단백질 구조는 매우 비슷해요."

알다시피 냉장고는 프레온가스(기체)를 압축시켜 액체로 만듦으로써 그 속에 담겨있는 내용물을 차게 한다. 다시 말해 주위의 열을 '강탈'하는 액화작용을 이용하는 것이다.

프레온액체는 다시 기체로 변하게 된다. 이때는 빼앗겼던 많은 열을 도로 찾아 가므로 냉장고의 뒷부분이 늘 뜨거운 것이다.

유전공학센터에서 이번에 선보인 미생물은 결합과정에서 생기는 열 결코 미생물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내부에서 흡수한다. 따라서 프레온보다는 훨씬 우수한 냉매로 쓰일 가능성이 크다.

한박사팀은 순수한 단백질을 얻기 위해 다음과 같은 처리를 했다. 우선 이 박테리아를 배양기에 넣고 배양한 후 열을 흡수하는 기능을 가진 박테리아만 선발했다. 이어 이 박테리아의 세포막을 분리했다. 세포막의 외막에 문제의 단백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 단백질의 1차구조만 밝혀 낸 상태입니다. 앞으로 2차, 3차구조를 규명해 나가야지요. 이 작업이 끝나야 이 박테리아가 실제로 활용될 수 있을 거예요."

김박사는 분자냉동기가 인공적으로 만들어지면 여러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미생물에 대한 최초의 연구는 70년대 초 미국에서 수행되었다. 온도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발생하는 서리피해를 줄여보기 위해서였다. 지금도 연간 48억달러를 서리 때문에 날려보내는 미국이 그 원인균을 찾아나선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이에 비해 국내에서는 냉동산업이나 스포츠산업에 이 미생물이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겨울에 인공 눈을 만들거나 이 박테리아를 식품첨가물로 사용, 식품을 냉동보관하는 방법이 연구되고 있는 것.

"환경론자들은 자연 생태계를 파괴한다며 반대하고 있습니다. 물론 미생물을 직접 이용하면 그럴 우려도 있지요.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든 단백질은 자기 할 일을 한 후 곧 분해돼 버리기 때문에 문제될 바 없습니다."

아무튼 한박사팀이 개발한 냉매는 생물학적 냉매라는 점에서 우리의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주로 쓰이던 프레온 등 화학적 냉매의 '독'(毒)으로부터 우리 환경을 보호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199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 진로 추천

  • 생명과학·생명공학
  • 화학·화학공학
  • 환경학·환경공학
이 기사를 읽은 분이 본
다른 인기기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