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서있는 고층 빌딩들, 여기에는 자꾸만 하늘로 향하는 인간의 꿈이 숨쉬고 있다. 장대한 규모의 고층 건축물은 과학적 구조공학이 이룩한 쾌거다. 바람과 지진에도 끄떡없이 서있는 마천루가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안을 들여다본다.
인간의 하늘을 향한 상승욕구와 도심지의 인구밀도 증가로 인해 자연스럽게 건물은 수직적으로 상승한다. 특히 서울과 같이 제한된 땅에서 고층 건물을 짓는 것은 경제적일 뿐 아니라 시대의 축적된 부를 과시하는 상징이기도 하다. 또한 인간은 종교적인 이유에서도 하늘로 향한 높은 탑을 건축해왔다.
35층 벽돌 건축물 바벨탑
인간이 문명초기에서 근대까지 사용해온 대표적인 건축 구조재료는 벽돌과 돌, 그리고 목재였다. 그 중에서도 벽돌은 철이 사용되기 전까지 고대의 고층건물에 가장 많이 쓰인 재료였다. BC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인이 세운 산 모양의 고층 사원인 지구라트 유적은 벽돌로 건설됐다. 잘 알려진 바벨탑 또한 벽돌로 만들어졌다.
처음의 바벨탑은 노아의 방주 이후 만들어졌으나 붕괴되고, BC 600년경 신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왕이 다시 세웠다. 이 탑의 높이는 약 90-1백m로 현대 건축물의 35층쯤 된다. 그후 유럽 중세시대의 사원도 아치구조의 원리를 이용해 거의 대부분 벽돌로 세워졌다.
18세기말 건축구조물에 콘크리트와 철이 사용되면서 그때까지 광범위하게 사용한 석조와 벽돌의 취약한 인장강도를 극복했다. 이에 따라 근대적인 골조형태의 새로운 구조시스템이 발전됐고, 결국 현대의 고층구조물이 가능하게 됐다.
흔히 마천루라고 불리우는 고층건물은 19세기말 미국 시카고에서 발달됐다. 1931년에 세워진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은 1973년 뉴욕의 쌍둥이빌딩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명성을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5번째로 높은 건물이지만. 구조적인 기술 이외에도 오티스(Otis)의 엘리베이터 발명도 마천루 건설에 큰 기여를 했다.
중력, 바람, 지진에 견뎌야
구조물은 외력에 대해 적절한 저항력을 가져야 본래의 형태를 유지할 수 있으며,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다. 고층건물에 작용하는 외력은 대체로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로 건물의 자체하중, 건물 안에 적재된 가구물, 그리고 사람들의 무게가 지구중심으로 향하는 연직방향의 중력이다. 건물의 높이와 층수가 높아질수록 무게는 비례해서 증가하므로 중력작용에 의한 연직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는 맨 아래층은 넓고 꼭대기로 갈수록 점점 면적을 감소시키는 것이 자연스럽다.
둘째로 건물이 높아질수록 바람의 세기가 증가한다. 꼭대기로 갈수록 바람은 주변 건물에 의한저항력이 감소하므로 바람속도가 제법 크다. 또한 바람과 더불어 지진이 발생하면 건물의 밑동이 흔들리게 되고, 이때 뉴턴 법칙에 따르면 건물의 질량과 지진에 의한 건물 밑동 가속도가 곱해져하중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외력에 저항하는 효율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이 고층건물구조 설계의 핵심이다. 인간은 종종 자연에서 문제의 해결점을 찾게되는데, 고층건물 구조의 효율적인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키가 큰 나무이다. 자연은 나무의 형태와 구조에서 고층건물구조의 설계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큰 나무는 밑동의 단면적이 크고 나무 뿌리가 나무의 줄기 만큼이나 깊고 넓게 뻗쳐 있다. 이 때문에 중력방향으로의 자체하중에 견딜 수 있으며, 바람에 넘어지지 않는 기초가 되는 것이다. 한편 일반적인 나무가 속이 꽉 차 있는 것과 달리, 건물은 내부를 우리가 사용하기 위해 어느 정도 속이 비어 있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속을 완전히 비워 원통형을 만드는 것으로 이는 건물의 안정성에도 매우 유리하다. 건물은 또한 창문이 필요하기 때문에 둘레에 적당한 개구부가 필요하다. 결국 건물 외피에 구멍이 난 튜브가 고층 건축구조물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간단한 개념을 고층건물에 적용시킨 것이 바로 튜브 시스템이라 불리는 고층구조 시스템이다(그림1).
여의도에 있는 쌍둥이 빌딩과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가 바로 튜브 시스템을 이용한 고층구조물이다. 바람과 지진 등으로 발생하는 수평방향의 힘은 튜브형의 구조가 안정적으로 지탱하고 중력방향의 힘은 건물 안쪽에 위치한 몇 개의 수직 기둥으로 견디게 만들었다. 근래에는 건물 전체를 하나의 튜브로 만들어 횡력에 저항하는 방법이외에도 몇 개의 튜브를 묶은 형태, 튜브의 안쪽에 다시 튜브를 배치한 형태, 그리고 바깥쪽에 대각선 방향으로 제법 큰 가새를 덧대서 횡력에 더욱 강한 구조를 만드는 등 기본적인 튜브 시스템을 변화시킨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그림2).
가새와 트러스로 강화
고층건물은 층수가 올라가면서 상하로 부피가 증가하고 무게도 증가하므로 기본적으로 횡력에 강한 시스템이 돼야 한다. 이 때문에 다양한 방법들이 모색됐는데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그림3).
먼저 사각형 골조 프레임 구조를 보강하기 위해 두 개의 삼각형 트러스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사각형 형태의 골조는 횡력에 취약해 원래 모양을 삼각형의 형태로 변형한다. 또한 이 변형을 되도록 최소화하기 위해 대각선 방향으로 부재를 덧댈 수 있는데, 이를 가새라 한다. 이러한 삼각형 형태를 이루도록 만든 구조는 외력에 매우 효과적으로 견딘다. 외력은 개별 막대의 접합부를 통해 전체적으로 분산되며, 각각의 막대는 압축력 또는 인장력에 견디게끔 돼 있다.
둘째로 건물의 빈 공간을 벽으로 채워 횡력을 지탱하는 방법이다. 면 형태의 구조는 같은 평면 내에서 작용하는 힘에 매우 강하다. 이 때문에 고층 아파트의 벽체는 집과 집을 가로 막는 물리적인 차단물로서의 역할 뿐만 아니라 횡력에 저항하는 역할도 해낸다. 대부분의 사무용 건물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부분은 콘크리트 벽체로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코아라고 부른다. 이 벽은 기둥과 보로 이루어진 골조와 함께 고층건물에서 횡력에 효과적으로 저항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셋째 사각형 골조의 수평 부재인 보와 수직부재인 기둥의 접합부를 강하게 만들어 휘는 것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은 다른 것에 비해 다소 효과가 떨어지지만 원래의 건축공간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횡력에 대해 충분한 저항력을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벽체로 지탱하는 방법과 함께 사용해 안정성을 높인다.
결국 효과적인 횡력 저항 시스템은 이상의 3가지 기본 시스템의 조합과 약간의 변화를 통해 만들어진 구조이다. 앞서 소개한 튜브 시스템도 넓은 의미로 보면 촘촘하게 배치한 기둥과 강한 수평 부재인 보로서 벽체구조와 같이 횡력에 대한 저항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양한 아름다움 추구
한편 철강 같은 압축재는 부재가 길어지면 압축력이 점차로 증가하다 별안간 옆으로 튕겨져 나가 부서지는 좌굴 현상이 가장 큰 취약점이다. 이 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작은 부재들을 엮어 만든 것이 트러스이며, 이를 고층 건축 구조물에 응용한 것이 가새 시스템과 메가프레임 시스템이다. 가새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트러스의 규모를 크게 만든 것으로 이해할 수 있고, 이러한 트러스를 다시 조합한 것이 메가프레임 시스템이다. 전체 구조 시스템 구성에서 커다란 골조를 연결해 공간 트러스나 프레임을 만든 것이 메가프레임 시스템이다. 메가프레임의 형식은 기둥에 적용하면 몇 개의 큰 기둥을 묶어 자체중력과 횡력에 견디게 만들 수 있다.
메가프레임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고층구조물은 다양한 형식으로 탄생하고 있다. 두 개 이상의 고층건물을 중간이나 상부에서 서로 묶어 다양한 공간을 연출하고 서로 역학적으로 연결된 메가 프레임을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홍콩의 홍콩은행 건물은 4개의 메가 프레임으로 구성되고 4-7개층을 묶어 달아맨 형태의 구조물이다.
페이와 로버트슨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홍콩의 중국은행의 구조는 메가 프레임 시스템과 가새 시스템이 입체적으로 도입된 피라미드 형태를 변환한 구조이다. 이는 전체적으로 상부에서부터 피라미드의 4개면이 미끌어져 내려오는 형태이다. 총 70층인 이 건물은 각각 12개 층이 한 개의 트러스를 이루고 5개의 메가프레임이 전체 구조를 이룬다. 이러한 커다란 트러스가 만나는 부분은 한층 전체가 튼튼한 바닥이 만들어지도록 트러스로 다시 엮었다. (그림4)를 보면 중앙부에 위치한 큰 기둥이 25층에서 없어지면서 모서리 4개 기둥으로 하중을 전달한다. 이 건물은 전체적으로 보면 상당히 특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고층 건물에서는 결국 구조의 다양성이 형태의 다양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늘로 자꾸만 상승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는 높은 건축물에 대한 도전으로 나타났고, 건축가와 엔지니어는 이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해왔다. 고층 건축 구조물의 실현에 대한 외부의 도전은 다름아닌 구조물에 작용하는 무게와 바람 그리고 지진이며, 이를 이겨내는 것은 인간이 개발하는 구조시스템이다. 고층 건물의 시스템은 인간이 자연에서 배운 지혜를 바탕으로 건축가가 의도한 공간과 형태를 만들어낸 현대건축의 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