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펀하고 배우기 쉬운 「고려수지침」이 대학가를 중심으로 일반에게 전파되고 있다. 수지침의 과학적 원리는 무엇인가?
손바닥과 손가락을 눌러주거나 침으로 찌름으로써 온몸의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것의 과학적 원리는 무엇인가.
간단한 침구술과 기구로 자기손에 직접 침을 놓는 '수지침'(手指鍼)이 폭넓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전국에 5만명의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고려수지침학회는 올해 2월에도 대학강의실 등에서 공개강좌를 마련하고 있다. '의료혜택에서 소외된 민중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있는 이들은, 연세대학교에서 진행중인 기초강좌에서도 주부 대학생 교사등 1백여명의 호응을 받고 있다.
수지침의 치료사례 역시 수없이 많다. 예컨대 심한 축농증으로 고통받던 14세 소녀가 수지침술가 안용모씨로부터 30여회 치료를 받고 완치한 경우, 46세 간경변증 환자가 6개월의 수지침 치료결과 간기능검사 및 간 스캔(scan)검사에서 정상을 되찾은 경우 등을 꼽을 수 있다. 수지침은 생리통으로부터 갑상선 기능항진, 종양 늑막염에 이르는 병까지 치료할 수 있다고 한다.
'고려수지침'은 1972년 한의학자 유태우박사가 개발해냈다. 원리는 다음과 같다. 인체의 모든 부위는 에너지(기혈, 氣血)의 줄기인 경락(經絡)에 의해 연결되어 있으므로 경락의 반응점인 경혈(經穴)을 자극시킴으로써 질병을 치유한다는 것. 특히 수지침은 한의학에서 손을 인체의 단순한 일부분으로 보는 것과 달리 손이야말로 우리 몸을 대표하는 경혈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라 보고 있다.
수지침은 옷핀만한 크기의 침을 침통에 넣어 손위에 얹고 통의 꼬리부분에 반동을 주어서 놓는다. 일반인이 놓기에도 매우 쉬운 방법이다. 일반침술(몸침 혹은 체침)과 달리 수지침은 침술을 배우는 기간이 짧고(1~3개월) 침을 놓는 깊이가 얕으므로(0.5mm~1mm) 초보자가 직접 침을 놓을 때 발생할 수 있는 위험과 부작용이 거의 없다. 게다가 자기 몸에 놓는 침을 개인이 각자 소장할 경우 타인의 병원균이 옮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손은 우리몸의 축소판
그러나 고려수지침은 현재 국내 6개 한의대 어디에서도 정식으로 강의가 개설돼 있지 않다. 또한 한의학계에서도 정식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한의학 일반의 과학성 여부는 논외로 치더라도, 경혈이 손에 집중되어 있다는 논리부터 비과학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지침의 치료효과가 과장된 것이 아닌가 의혹을 사고 있기도 하다.
일반적인 침의 과학적 효능으로는 침이 체액의 이온분리를 일으켜 보다 많은 에너지, 즉 ATP를 분비시킨다거나 모세혈관의 역할을 조절해 주어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수지침의 원리는 이러한 침의 효능이 몸의 어느 부분보다 우리 몸의 축소판인 손에 놓을 경우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뇌피질의 넓이는 그에 해당하는 신체부위의 넓이와 똑같은 비례가 아니며 기능정도에 따라 넓은 곳과 좁은 곳이 있다. 손의 운동중추에 해당하는 대뇌피질의 넓이는 몸통부위에 해당하는 넓이의 6~7배가 된다는 것. 이는 손의 감각이 다른 부위보다 얼마나 더 민감한가를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 우리나라 민간요법중 급체나 인사불성시 손가락을 사혈(瀉血, 피를 뽑아줌)하는 것이 그 실례이다.
또한 교감신경의 지배가 다른 부위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손을 자극, 교감신경의 활동을 억제하여 부교감신경과의 균형을 유지시켜 준다는 사실이 밝혀져 있다. 실제로 인체는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이 균형을 이루었을 때 정상이 유지된다.
임상실험의 결과로 얻어진 수지침의 효과 역시 주목할만하다.
지난 85년 니혼(日本)대학 마쓰도(松戶) 치의학부는 체온표(thermopraphy) 혈류계 심부체온계 등을 가지고 수지침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해봤다. 심장부의 체온이 지나치게 높은 23세의 남성에게 수지침 진료를 한후 체온표로 측정한 결과 심장부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옸음이 관찰되었다. 이 실험은 심리적 요인이나 기타 실험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철저히 격리시킨 채 이루어졌다. 그 밖에도 뇌파검사 혈압검사 효소량검사의 결과 역시 수지침이 뚜렷한 질병 치유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었다.
그러나 이런 실험만으로 수지침의 효과를 확증할 수는 없는 일. 임상실험 몇개와 치료 사례만을 들어 수지침이 만병통치라고 못박기에는 과학적 근거와 논리가 빈약하다. 우선 기(氣)나 혈(血)이란 용어의 개념조차도 과학적으로 규명된 바 없는 상태다.
신비가 벗겨져야
신촌지역에서 수지침을 전수하고 있는 '다살이 살판'의 대표 김재훈씨는 "침의 원리는 과학적인 근거를 따질 수 없는 동양의학의 체계라는 이유로 과학적 접근조차 시도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그는 수지침의 생화학적 원리를 규명하기 위해 생화학과에 편입하는 열성을 보이며 과학과 동양의학의 간극을 좁히려는 시도를 했다.
침의 역사는 석기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류가 돌을 사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용해 온 침의 효능을 단순한 플라시보(Placebo, 심리적 위약효과)라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런데도 침술 일반은 물론 수지침의 원리가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은 신비의 영역에 놓여있다. 지금 필요한 작업은 이러한 수지침의 '신비'에 '과학성'을 부여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