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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취업·인사포털 인크루트가 발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직장인 863명 중 새해에 새로운 계획을 세운 사람은 전체의 91.1%인 786명이었다. 하지만 세운 계획을 한 달 이상 지키고 있는 사람은 그중 13.4%인 105명에 불과했고, 계획 중 일부만 실천하고 있는 사람이 68.8%, 전혀 지키지 못한 사람이 17.8%라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는 결국 10명 중 8명 이상이 계획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이 다짐을 지키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체의 40.2%는 “오랜 습관을 고치기 힘들어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그 뒤를 이어 “목표의식이 희미해져서”가 22.6%로 2위를 차지했고 “처음부터 무리한 계획이라 지키기 어려웠다”는 대답도 10.3%나 나왔다.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 지금의 내 상황과도 꼭 맞아떨어지는 대답들이다. 우리는 왜 끊임없이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실패하는 행동을 반복하는 걸까.

육식동물 왈, “내일부터 풀만 먹겠어”

과거에는 인간은 마치 빈 칠판 같은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어떤 내용을 쓰느냐에 따라 인격과 인생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빈 서판’이론이라고 한다. 하지만 생물학과 유전학이 발달하면서 지능이나 성격이 태어날 때부터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DNA가 동일한 쌍둥이 형제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입양돼 자라더라도 신념이나 행동이 매우 유사하다는 연구 결과가 이 주장을 뒷받침했다.

이 연구 결과는 키나 머리카락 색깔이 유전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성격의 상당 부분도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우리는 ‘빅 파이브(big five:외향성, 개방성, 우호성, 성실성, 신경증 성향)’라 불리는 기본적인 성격 특징을 타고난다. 따라서 내성적인 사람이 외향적인 성격이 되겠다고 계획을 세우는 일이나 늘 불안해하고 소심한 사람이 갑자기 낙천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팔 길이를 10cm 늘이겠다는 계획만큼 무모하다. 계획은 자신의 타고난 성격의 범주 안에서, 노력을 통해 바뀔 수 있는 부분만큼 목표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즉 새로운 목표를 정하기에 앞서 ‘나’에 대해, 또 나의 한계에 대해 정확히 알고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습관은 머릿속에 굳어진 기억 네트워크


사람들이 계획을 지키기 힘든 이유로 가장 많이 꼽는 것이 바로 습관이다. 매일 먹던 야식, 매일 하던 게임, 매일 피우던 담배를 하루아침에 떨쳐 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습관이 진짜 무서운 점은 계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습관 때문이란 것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들은 인간의 습관은 왜 쉽게 바뀌지 않는지, 습관의 신경 메커니즘을 밝히기 위해 뇌를 연구했다. 지금까지 연구된 내용에 따르면 인간의 뇌는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로 구성되지만, 뇌 전체를 보면 75%가 물이다. 여기에는 도파민, 아드레날린, 아세틸콜린, 세로토닌 같은 여러 신경전달물질과 나트륨, 칼륨 같은 이온이 들어 있다.

신경전달물질은 세포벽에 있는 수용체를 자극해 수용체가 이온을 세포 안으로 들여올지, 세포 밖으로 내보낼지를 결정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세포 안과 밖의 이온 농도 차이에 따라 전압이 발생하며 전류가 흐른다. 각 세포의 이런 물리적인 변화가 모여 생각과 판단 같은 고도의 사고행위를 만들어낸다.


만약 각각의 뇌세포가 이온 출입을 중구난방으로 결정한다면 생각이 안정적으로 이어지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신경전달물질은 뇌세포들 사이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이온의 출입을 일정하게 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생각은 이온, 전압, 세포, 신경전달물질이 작용하는 일종의 물리적 균형이며, 이 균형이 깨지면 우울증 같은 정신질환이 생기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흐름이 여러 번 반복되면 일종의 기억 네트워크를 형성한다는 사실이다. 처음 가는 장소는 약도를 일일이 확인해야 하지만, 늘 가던 집은 술에 취해도, 잠결에도 찾아가는 것처럼, 자주 하는 생각은 그 흐름이 머릿속에서 네트워크로 굳어진다. 이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습관이다. 네트워크는 만들어질 때도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없애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즉 한 번 형성된 습관은 고치기 어렵다.


습관이 무서운 또 다른 이유는 습관을 이기지 못하고 계획을 포기하는 것 역시 반복하다 보면 습관이 되기 때문이다. 실천하기 싫은 계획이라고 중간에 쉽게 포기하면, 계획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가는 능력을 기를 수 없기 때문에 나중에는 정말 꼭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어도 실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번 계획을 세웠으면 책임감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습관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농구를 잘하기 위해서 팔을 10cm 더 늘일 수는 없어도 꾸준히 운동해서 근력을 키울 수는 있는 것처럼, 좋은 습관을 가지기 위해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면 뇌 속에 자리 잡은 기억 네트워크도 조금씩 바꿀 수 있다. 계획이 깨지고 예전의 안 좋은 습관으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노력한다면 좋은 습관과 끈기,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이란 마음의 파도를 넘어라

실천 가능한 계획을 세워 꾸준히 노력하려고 할 때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적은 바로 감정이다.

하루에 30분씩 운동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막상 나갈 시간이 되자 날씨가 쌀쌀하다거나, 해야 할 일이 많다는 핑계를 대며 운동을 내일로 미뤘다면 ‘귀찮음’이라는 감정이 반영된 것이다. 우리가 단순히 ‘지겨워서’ 또는 ‘하기 싫어서’라고 생각하는 이유 뒤에는 화남, 슬픔, 들뜸, 불안함, 외로움, 귀찮음 같은 당시의 감정이나, 대인관계에서 비롯된 숨은 감정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같은 일이더라도 누가 시키느냐에 따라서 행동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어떤 여학생에게 가수 그룹 빅뱅의 탑이 물 한 컵을 달라고 부탁하는 것과, 공부 좀 한다고 잘난 체하는 오빠가 부탁하는 것은 그 반응이 하늘과 땅 차이일 것이다. 여기에는 빅뱅을 좋아하는 감정과 오빠에 대한 얄미운 감정이 각각 작용했다. 그래도 이런 감정은 어느 정도 본인이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조절이 가능하다. 더 큰 문제는 본인이 느끼지 못하는, 또는 인정하지 않는 감정이다.

대표적인 예로 은연중에 부모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자식을 생각할 수 있다. 자식에게 부모는 막강한 존재다. 경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을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많이 의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모와 갈등이 생기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신뢰감과 안정감이 사라지고, 그 대신 불안함과 외로움, 화남이라는 감정이 크게 작용한다. 이럴 땐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이유 없이 손에 일이 잡히지 않고 공부하기가 싫다. 하지만 반대로 자신의 의지가 약해도 누군가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의욕이 샘솟고 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긴다.

따라서 왠지 계획을 지키기가 싫고 어렵다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계획대로 억지로 행동하기보다는 마음속에 숨어 있는 슬픔이나 불안함 같은 감정을 신뢰할 수 있는 이에게 터놓으면, 그 다음 한 시간 정도 뒤에는 마음이 안정돼 차분히 계획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이다. 작심삼일이면 어떤가. 1년은 365일이므로 여러 번 실패해도 다시 결심을 밀어붙인다면 올해는 꼭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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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 최명기 부여다사랑병원 원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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