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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저우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E스포츠, 국가대표 훈련 어떻게 받을까?

9월 개막하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E스포츠가 처음으로 정식 종목이 됐다. 채택된 종목은 도타 2, 리그오브레전드(LoL), 몽삼국 2,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스트리트 파이터 5, 펜타스톰, 피파 온라인 4 등 7개 종목이다. 한국은 이중 4개에 출전한다. E스포츠계에 큰 바람이 예고된 상황에 자타공인 ‘게임 덕후’인 기자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취재를 빌미로 한국스포츠과학정책원에 찾아가 E스포츠 국가대표들의 훈련을 직접 받아봤다.

 

E스포츠 선수들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어떤 능력을 올려야할까? 훈련을 받으면 평범한 사람도 게임 실력이 좋아질까? 궁금증과 사심을 가득 안고 8월 2일 태릉선수촌 옆에 있는 한국스포츠과학정책원을 찾았다. 한국스포츠과학정책원은 스포츠 경기력 향상을 위해 과학적 연구와 훈련이 진행되는 곳이다. ‘혹시나 페이커를 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졌지만 아쉽게도 E스포츠 선수들은 게임 시설 때문에 한국E스포츠협회 내에서 훈련하고 있었다.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요? 빠른 손놀림? 넓은 시야? 아무래도 막타를 놓치지 않는 반응 속도가 중요하겠죠?” 기자의 질문에 E스포츠 국가대표 선수들의 과학화 훈련을 담당하고 있는 장태석 한국스포츠과학정책원 스포츠과학지원센터 박사는 의외의 대답을 내놨다. “집중력”이었다. (꺾이지 않는 마음만큼 중요한 건 흔들리지 않는 마음이었다!)

 

장 박사는 “E스포츠는 바둑, 양궁, 사격에 버금가는 주의 집중력과 정신력이 필요하다”며 “수많은 관중 앞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심리적 부담 또한 이겨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장 박사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기로 예정된 15명의 선수들이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하고 있는 분석과 훈련을 하나씩 소개했다.

STEP 1 _ 시선 전환 훈련

 

먼저 장 박사는 기자를 한국스포츠과학정책원 3층 차세대스포츠과학지원센터 연구실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연구실 한 켠에 있던 요상한 안경을 건넸다. 전면에 카메라가 있고 안경 알에는 검은 점과 선들이 있는 아이트래커였다. 아이트래커는 사용자의 시선을 추적해 사용자가 무엇을 바라보는지를 확인하는 기구다. 전방의 카메라는 앞쪽의 화면을 녹화하고, 안경 알의 검은 선들은 홍채를 인식해 눈동자의 움직임을 파악한다. 두 데이터를 합쳐 사용자가 바라보고 있는 시선을 분석하는 것이다. 직접 착용해보니 일반 안경보단 무겁지만 시야를 크게 가리지는 않았다.

 

아이트래커 안경을 쓰고 ‘덕업일치’의 마음으로 LoL을 켰다. 10년 전이지만 나름 LoL 랭크 실버1(약 상위 46%, 마음만큼은 LoL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성적)이었던 기자는 비장한 마음으로 게임에 임했다. 아이트래커는 기자가 시선을 고정한 시간의 비율, 시선을 고정한 빈도, 시선이 이동한 횟수, 전체 영역별 시선 고정 위치 등을 알려줬다. 결과를 확인해 보니 게임을 하는 기자의 시선은 주로 자신의 챔피언과 상대방의 챔피언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었다. 전체적인 게임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맵을 확인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장 박사는 “게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곳을 보는가보다 빠르게 시선을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타(단체 공격) 시 시선이 전환되는 패턴을 확인해 개인별 주의 집중 영역을 파악하고, 빠르게 시선을 전환하는 훈련을 한다”고 설명했다. 기자의 게임 실력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STEP 2 _ 전전두엽 활성 분석

 

아이트래커를 내려놓은 기자에게 장 박사는 별안간 “머리를 꽉 묶어 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훈련을 위한 준비’라는 설명과 함께. 머리를 고쳐 묶은 기자에게 그는 여행용 베개처럼 생긴 크고 무거운 흰 장비를 건넸다. 장비를 착용해보니 왜 머리카락을 정돈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장비의 구멍들이 이마와 최대한 잘 닿아야 했기 때문이다. 주의 집중을 담당하는 뇌 영역인 전전두엽의 활성화 패턴을 파악하는 fNIRS 장비였다. fNIRS는 근적외선 빛으로 전전두엽이 활성화되는 뇌의 혈류 변화를 감지한다. fNIRS 장비의 수많은 구멍들은 전전두엽에 근적외선을 쏘거나, 전전두엽을 거친 근적외선을 흡수한다. 장 박사는 “장비에 근적외선이 얼마나 흡수되는지를 파악해 전전두엽 내 헤모글로빈의 농도를 추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흡수된 근적외선 양이 적으면 헤모글로빈 농도가 높고, 전전두엽이 많이 활성화돼 있다는 뜻이다.

조금 우스운 모습이지만 기자는 fNIRS 장비를 차고 다시 LoL 게임을 시작했다. 아쉽게도 게임을 하는 동안 기자의 뇌는 그다지 활성을 띠지 않았다. 집중력이 높지 않았던 것이다. 왜 자꾸 게임에서 지는지 이해가 갔다. 보다 못한 장 박사는 수학 문제를 풀어 진짜 집중할 때의 뇌 활성도를 확인해보자며 즉석에서 수학 문제를 냈다. 손가락을 조금 썼지만 암산으로 ‘24×35×11’을 계산을 해냈다. 실제로 fNIRS 장비로 측정한 전전두엽의 활성도가 꽤 높게 나타났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수학 문제를 보니 왠지 머리가 잘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장 박사는 그런 기자를 보며 “fNIRS 장비를 머리에 쓰면 게임 상황 변화에 따라 선수의 뇌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며 “게임에서 졌을 때 선수들의 뇌 상태를 분석해 상담 또는 코칭을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STEP 3 _ 영상 및 데이터 분석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다! 농구나 축구와 같은 전통 스포츠에서는 적의 전략을 아는 것이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다. E스포츠 역시 적의 전술과 우리의 전술을 정량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전통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경기 영상과 데이터를 본다.

 

스포츠과학지원센터 영상 데이터 분석팀은 선수들의 게임 영상을 통해 경기를 분석하고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다. LoL은 ‘금지 캐릭터(밴 챔피언)’라는 독특한 게임 규칙이 있다. 상대가 고를 수 없게 캐릭터를 사전에 지정하는 것이다. 밴 당한 챔피언을 피해 자신의 챔피언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전략을 잘 짜야 한다. 데이터 분석을 통해 적군이 어떤 챔피언을 주로 밴 하는지, 또 어떤 챔피언 구성으로 경기를 했을 때 승률이 좋았는지를 파악하면 전략 구상에 도움이 된다.

 

‘와드’ 설치에 대한 분석도 한다. 와드는 맵에서 보이지 않는 지역을 밝히는 아이템이다. 와드를 어디에 설치하느냐에 따라 적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알 수 있어 적군의 전략 파악에 유리하다. 데이터 분석팀은 경기 데이터 분석을 통해 상대 팀이 와드를 주로 설치하는 지역 등을 파악한다. 장 박사는 “LoL의 경우 챔피언의 능력치가 매해 바뀌어 유리한 챔피언을 분석하기보단 전략을 분석하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축구 게임으로 잘 알려진 피파 온라인 4도 영상과 데이터 분석이 중요하다. 경기마다 각 선수들의 볼 터치 데이터를 수집해 포지션별 출전 선수의 세부 데이터를 정리한다. 각 선수마다 분석 리포트를 뽑아 어떤 선수들로 구성했을 때 더 좋은 경기력을 보이는지 파악한다. 또 득점 상황에서 볼터치와 패스, 공략 패턴 등을 분석해 득점의 결정적 요인을 알아내고 이것을 활용해 많은 점수를 낼 수 있도록 훈련한다.

STEP 4 _ 신체 컨디션 관리

 

선수들에게 컨디션은 매우 중요한 요소다. 장두희 체력 및 컨디션닝 분석 담당 연구원은 “E스포츠 선수의 경우 41%가 척추 통증, 36%가 허리 통증, 23%가 손목, 어깨 등 그 외의 통증을 호소한다”며 “기본적인 체력 훈련과 스트레칭이 신체 컨디션 관리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E스포츠 선수들이 전통적인 스포츠 종목의 국가대표 선수들처럼 체력 훈련을 하고 신체 컨디션을 관리한다는 게 처음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그런 기자에게 장 연구원은 ‘캇슈’라는 장비를 건넸다. 양 팔, 양 다리, 몸통 등 신체 여러 부위에 공기 압력을 가해 정맥혈의 흐름을 제한한 후 풀어주는 장치다. 압력이 가해진 부위는 산소가 잠시 차단됐다가 공급되면서 대사 및 호르몬 흐름의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원래 선수들은 누운 상태로 사용하지만 기자는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앉은 채로 사용해봤다. 압력의 세기는 0부터 15까지 조절되고, 같은 팔 부위라도 4~5개의 영역으로 나눠 원하는 부위에 정확히 압력을 가할 수 있었다. 취재 오기 전날 격한 운동을 했던 기자는 회복 처치를 받으며 피로가 풀리는 듯한 느낌을 느꼈다.

 

그밖에 다른 종목의 아시안게임 국가대표가 훈련 중인 진천 선수촌에는 ‘고압산소처치’ 장비도 마련돼 있다. 선수에게 높은 농도의 산소를 공급해 혈액 내 헤모글로빈의 산소 수송 능력을 향상시키는 장치다. 운동 후 혈액의 산소 공급을 높이면 근육통, 관절의 가동범위 제한, 부종 등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를 누릴 수 있다.

 

STEP 5 _ 반응 속도 향상 훈련

마지막 훈련은 선수들의 시각 반응 속도를 훈련하는 ‘블레이즈포드’ 훈련이었다. 기자는 자리에 앉으며 보드게임 ‘할리갈리’를 하기 전의 긴장감을 느꼈다. 저장된 프로그램에 따라 6개의 블레이즈포드에 불이 켜지는데, 불켜진 장치를 빠르게 누르는 방식이었다. 훈련의 목표는 시각 자극에 대한 반응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화면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빠르게 대응해야 하는 프로게이머들의 블레이즈포드 반응 속도는 약 0.15초다. 그에 반해 기자의 반응 속도는 약 0.25초. 난이도를 높여 손을 교차해 불켜진 블레이즈포드 중 특정 색만 누르는 훈련에선 반응 속도가 0.4초로 더 느려졌다. 쩔쩔매는 기자를 바라보던 장 연구원은 미소를 띠며 “국가대표들에게는 너무 쉬운 훈련이라 몸과 뇌를 깨우는 목적으로 가볍게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한국E스포츠협회는 지난 5월 여러 가지 선발 과정을 통해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LoL, 피파 온라인 4,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스트리트파이터 등 총 4개 종목에 출전할 E스포츠 국가대표 최종 엔트리를 확정했다. 최종 엔트리는 벌써부터 승리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낸다. LoL의 경우, 세계 최고의 경기인 LoL 월드 챔피언십에서 한국이 12번 중 7번의 우승을 차지했는데, 승리를 이끈 선수들과 감독이 최종 엔트리에 대거 모였다. 피파 온라인 4의 국가대표 또한 지난 8월 열린 사전 대회 ‘로드 투 아시안게임’에서 다른 국가대표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두 종목 모두 충분히 금메달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 박사는 “LoL, 피파 온라인 4와 같은 E스포츠 종목들도 사격, 양궁처럼 금메달 효자 종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며 기대감을 내비쳤다. 그의 말처럼 오는 9월, E스포츠 국가대표들은 역사상 첫 국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거머쥘 수 있을까? 스포츠를 보는 마음으로 함께 응원해보자.

202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김미래 기자
  • 사진

    남윤중
  • 디자인

    박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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