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때 해에 태어난 사람은 현명하고 재주가 많으며 독립심이 강하다고 알려져 있다.
오늘 날처럼 기차나 자동차 같은 교통기관이 발달하기 전, 말은 사람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존재였다. 운반용이나 농경용, 그리고 직접 타고 다니는 승용은 물론이고 여러 면에서 그 가치가 절대적이었다.
물론 지금이라고 해서 말이 인간생활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옛날엔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몸은 특별히 크지 않으나 힘이 세고 인내력이 많아 무거운 짐을 가득 실은 마차를 끌기도 했고, 쟁기를 끌어 논밭을 갈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걸음이 빨라 파발마로 이용되기도 했고 사람을 등에 태우고 싸움터에 나가 주인과 운명을 같이 하기도 했다.이런 말들이 야생에선 언제부터 살았을까.
여우만한 놈도
학자들에 따르면 말은 지금부터 약6천만년 전인 시신세(始新世) 때에 지구에 나타났다고 한다. 그때 살았던 말의 조상은 몸집이 겨우 여우만한 크기였으며 이름은 '에오히푸스'라고 불렸다.
말의 무리는 한때 세계의 거의 전 지역에서 서식했다. 옛날의 말은 계통이 적어도 20종류나 되었으나 거의 모두가 전멸했다.
현재 북아메리카의 서부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무스탕'이나 친코티그섬에 사는 '포니'를 많은 이들이 야생의 말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 두가지 말들은 모두 원래 가축으로 기르던 말이 다시 야생으로 돌아간 것이다. 왜냐하면 북아메리카에 살던 진짜 야생마는 콜롬부스가 아메리카대륙에 발을 내딪기 전에 이미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진짜 야생마는 1879년 러시아의 탐험가 '니콜라이 프셰발스키'가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발견한 '프셰발스키' 뿐인데 이 야생마도 불완전한 야생마일 따름이다. 지금은 동물보호지구나 동물원 등에서만 살아 남아 있기 때문에 글자 그대로의 야생마라고 부르기엔 좀 미흡한 데가 있다.
그래서 이 말을 현재 가축으로 사육하고 있는 60여종의 말과 같이 취급, 에쿠우스(Equus)속(屬)에 포함시키고 있다. 아무튼 '프셰발스키'는 그동안 사람들의 노력으로 많이 번식되어 사육·전시되고 있다.
서울대공원에도 세 마리의 프셰발스키가 전시되고 있다. 조심스럽게 사육중인 이 말들은 지난 1901년 중앙아시아에서 인도로 옮긴 11마리의 말이 퍼뜨린 후손들이다.
「씨」없는 노새
동남부 아프리카에 분포되어 있는 얼룩말 무리도 가축으로 취급되는 말과 매우 가까운 종류다. 이들은 두 개의 아속(亞屬)에 3종이 있다.
얼룩말의 대표는 3종의 말이다. '버첼얼룩말' '그레비얼룩말' '산(山)얼룩말'이 그들이다. 버첼얼룩말은 다시 '그란트얼룩말'과 '채프맨얼룩말'로 나뉘고 있다. 얼룩말 중에서 가장 체구가 큰 종은 그레비얼룩말인데 최고로 큰 놈의 몸무게는 4백51㎏이나 나갔다.
당나귀(학명은 Asinus)도 말과(科)에 속하는 짐승이다. 생김새는 말과 비슷한데 몸은 왜소하고 앞머리의 긴 털이 없으며 꼬리는 쇠꼬리와 같다. 또 귀는 토끼처럼 길며, 털색깔은 단색으로 황갈색 회황색 등을 많이 갖고 있다.
야생의 당나귀는 '쿨란' '키앙' '치게타이' '고르카'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 아시아의 야생당나귀(Equus hemionus)와 아프리카의 일부지역에서 사는 야생당나귀(Equus africanus), 두 종류가 있다.
말과(科)에 속한 동물 사이에선 잡종이 잘 태어난다. 물론 이 잡종 1세로부터는 새끼가 태어나지 않는다. 노새가 바로 그런 동물이다. 노새는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인데, 정자가 성숙하지 못해 생식능력이 없다.
생김새는 모두 나귀를 닮았는데 옛날 우리나라에선 주로 양반네들이 노새를 많이 타고 다녔다. 몸이 튼튼하여 아무 것이나 잘 먹고 갑자기 변하는 기후에도 잘 견딘다. 때문에 가축으로 기르기 쉽지만 워낙 꾀가 많아 불만이 있을 때는 사람에게 공격하는 심술을 갖고 있다.
줄무늬는 교란용(?)
야생의 말과에 속한 무리가 줄어든 것은 두 말할 나위없이 사냥이나 농업때문이었다. 특히 농경지의 개발로 산얼룩말은 살던 장소에서 쫓겨나 점점 멸종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버첼얼룩말에 속하던 '쿠아가'도 한때 아프리카의 깊은 숲속에서 드물게나마 종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19세기 말 이후에 이 말을 다시 본 사람은 없다. 1883년 암스테르담 동물원으로 옮겨 살던 마지막 한 마리가 죽으면서 대가 끊긴 것이다.
야생의 당나귀떼와 얼룩말 무리는 프셰발스키와는 달리 아직도 자연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 무리의 습성은 아주 다양한 편이다. 아시아 당나귀는 암컷이 무리를 거느린다. 반면 수컷은 발정을 했을 때를 제외하곤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생활한다.
그레비얼룩말은 수컷이 저마다 세력권을 만들고 혼자 살며, 암컷과 새끼말들은 10마리 정도가 모여 작은 무리를 이뤄 살고 있다.
그러나 버첼얼룩말은 정반대로 한 마리의 수컷이 6마리 정도의 암컷과 새끼말들을 거느리고 산다. 가족 가운데 누군가가 길을 잃어 무리와 떨어지게 되면 온 가족이 나서서 행방불명된 가족을 찾는다.
얼룩말의 무늬가 어떤 구실을 하는지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면 종류에 따라 무늬가 약간씩 다른 이유는 왜일까. 많은 학자들은 줄무늬의 차이를 통해 자신들의 동족을 구별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또한 얼룩무늬가 눈을 속이는 위장의(衣) 구실을 담당, 적에게 잘 발각되지 않게 한다는 학설도 있다.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얼룩말은 가끔 '투명동물'이 된다. 아지랭이가 피어오르고 2백~3백m 떨어진 거리라면 얼룩말의 모습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밤에는 검은 색깔의 무늬가 위장망 역할을 한다. 때문에 무늬가 없는 동물보다는 적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마련이다. 사자와 같은 맹수들이 얼룩무늬에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는 순간 얼룩말은 시속 60㎞로 달아나는 것이다.
얼룩말 가족은 사이가 매우 좋다. 늘 함께 쉬거나 놀고 몸을 서로 핥아주기도 한다. 가족 중에 늙거나 병든 식구가 있으면 끔찍이도 자상하게 보살펴준다.
얼룩말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역시 '밀림의 왕'인 사자다. 어쩌다가 사자에게 쫓기는 신세가 되면 가족 중에서 가장 발이 느린 가족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달아난다.
말은 천성이 온순하기 때문에 남을 공격하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마음놓고 편안하게 살 수 없는 가엾은 동물 중의 하나다.
이들은 언제나 방어자세를 취한다. 도망치는 것을 최상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도망가지 못할 경우엔 무리 중에서 가장 어린 새끼들과 허약한 가족을 한가운데에 몰아 넣고 힘센 수컷과 암컷이 공동으로 머리를 안쪽으로 처박아 원형을 만든다. 그런 뒤 뒷발질로 공격해오는 사자를 물리친다.
야생마의 뒷발질하는 힘은 실로 대단하다. 아무리 힘센 사자라도 한번 얻어 맞으면 치명상을 입기가 십상이다. 때문에 이런 경험을 한두차례 당해본 사자라면 섣불리 원형진지에 접근하지 않는다. 대개 공격을 포기하고 다른 장소로 옮겨 먹이를 구한다.
키 작은 과하마
얼룩말 사회에선 어미가 자식 보호에 서툴러 새끼를 사자에게 빼앗길 경우, 동료 얼룩말들로부터 강력한 징계를 받는다.
징계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최일선에서 파수병으로 근무하게 하거나 험한 길의 길잡이로 삼기도 한다. 또 대평원에선 무리의 맨뒤에 위치해 따라오는 맹수들과 대항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말이 들어온 것은 언제쯤이 될까.
우리나라 말의 선조에 관한 조사연구는 옛 문헌을 통해 꾸준히 진행되고 있지만 불행히도 아직까지 명확한 해답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까지 발견된 유적이나 기록을 토대로 추측해보면 우리나라 말의 역사는 신석기시대 이후부터 시작된다. 금석병용기(金石倂用期)에 와서야 몽고말의 유적이 발견되지만 그때까지도 우리나라 재래종은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뒤 위만(衛滿)이 왕검성(王儉城)에 도읍하여 세운 위만조선(현재 그 존재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때 한나라의 무제(武帝)에게 말 5천마리를 헌상한 기록이 남아 있다. 또 고구려와 예에는 키가 작은 과하마(果下馬)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말은 사람이 타고 과일 나무가지 밑을 지날 수 있다고 해서 과하마라고 작명되었다. 아무튼 이 말을 한국 재래말의 시초로 보는 이도 있다.
이빨을 드러내면…
사람들은 대개 제주도의 조랑말을 우리나라 재래종 말로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랑말이 제주도에 뿌리를 내린 것은 7백15년 전인 고려 충렬왕 원년(1275년)이었다.
당시 몽고군의 침략에 대항한 삼별초가 제주에 건너와 마지막까지 항전했으나 패하고 '탐라국'은 원나라의 속령이 되었다. 원나라는 이곳을 일본정벌을 위한 군사기지로 삼고 충렬왕 2년에 몽고말 1백60마리를 들여와 한라산 기슭에 방목한 것이 제주 명물 조랑말의 뿌리다.
이때부터 제주도에는 마장(馬場)이 설치돼 한때는 그 수가 3만여마리를 헤아릴 정도가 되었다. '사람은 낳으면 한성(서울)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내야 한다'는 속담은 이런 배경을 통해 나왔을 것이다.
지난 1965년까지만 해도 제주의 말은 2만여 마리의 대군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불과 20여년이 지난 85년에는 수백마리로 줄어들었다. 그래서 1986년 2월8일 정부에서는 엄선된 우수한 조랑말 62마리를 천연기념물 제347호로 지정, 보호하기에 이르렀다. 조랑말은 체구는 작지만 힘이 세고 성질이 온순하다. 뿐만 아니라 병에도 잘 걸리지 않아 아주 쓸모가 많았다. 또 잡초만으로도 기를 수 있어 인력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농업용 가축으로는 물론이고 군마로도 이름을 날렸다. 명나라는 고려와 조선에 제주조랑말을 보내주도록 요청했을 정도였다.
동양인들은 말의 해를 오(午)년이라고 한다. 특히 말때 해에 태어난 인물들은 현명하고 재주가 많으며 독립심이 강하고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로 붙임성도 있다고 한다. 반면 말띠생은 참을성이 적고 감정적이어서 주변 사람들과 잘 다툰다고도 한다.
필자가 대공원에서 관찰한 바로는 말은 참으로 영리하고 온순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크고 반짝이는 눈, 뾰족하고 작은 귀, 볼록하게 내민 볼…. 구석구석에 빈틈이 없다.
러시아의 작가 고골리는 "만약 사람의 가치가 그가 하는 일에 의하여 결정된다면 말은 어떠한 사람보다도 가치가 있다"고 했다.
모든 동물이 그렇지만 말도 의사표시를 몸가짐으로 한다. 귀를 뒤로 하고 입을 까뒤집으면 극히 위험하다. 그러나 귀를 위로 세우고 이빨만 보일 정도라면 기분이 좋은 상태다. 말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기 꼬리를 다른 말이 와서 자근자근 깨물어주는 것이다.
또 말은 사람에게 가장 충실한 동물이며 집으로 되돌아오는 귀소성이 뛰어나다. 서부영화에서 흔히 보듯이 말들은 주인이 의식을 잃으면 주인을 태운 채 자기가 있던 곳으로 되돌아 온다. 참으로 영특한 동물이다.
말은 포유동물 중에서 땀을 가장 많이 흘리는 동물이다. 그래서 경주마가 한번 경주에 출전하고 나면 몸무게가 10~20㎏이나 줄어든다. 말의 피부전체에 분포되어 있는 땀샘을 통해 수분을 땀으로 발산하기 때문이다.
암말의 임신기간은 보통 3백35일인데 수태한 암말은 스피드가 떨어지고 체력소모가 많기 때문에 경주마는 새끼를 갖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