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의 겨울은 매우 혹독하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포유동물들은 '치밀한' 생존전략을 짠다. 온 몸을 두터운 털로 감싸거나 피부에 지방층을 단단하게 붙이는 것이다.
그러나 '알래스카의 겨울쯤은' 하면서 여유만만해 하는 동물이 있다. 북극땅다람쥐다. 이 동물은 겨울의 시작과 동시에 겨울잠을 자는데, 놀랍게도 그때 체온이 빙점 이하로 내려간다.
이 사실은 최근 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소재 북극생물학연구소의 동물생리학자 '브라이언 반스'에 의해 밝혀졌다. 그의 발견은 의학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 특히 생체조직의 보존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중요한 힌트를 주었다. 차게 하면 할수록 더 오래 보존할 수 있음을 실제로 확인시켜 준 것이다.
회색 마못에 기대 걸어
과거에는 다람쥐의 동면에 관한 연구를 실내온도가 5℃ 정도인 실험실안에서 했다. 그러나 반스는 직접 야외로 나가, 자연환경에서의 실험을 시도했다. 그는 우선 12마리의 다람쥐의 배에 방사능을 방출하는 작은 온도계를 이식했다. 그런 뒤 다람쥐들을 일정한 범위 내에서 마음껏 돌아다니도록 풀어 주었다. 이같은 감시장치를 설치한 그는 다시 실험실로 돌아가 8개월 동안의 동면과정을 유심히 지켜 보았다.
다람쥐의 체온은 주기적으로 올라갔다가 떨어지곤 했다. 특히 겨울잠을 '쿨쿨' 자고 있을때는 체온이 빙점 이하인 -2.8℃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노폐물을 배설하기 위해 3주에 한번씩 잠에서 깨어났을 때는 체온이 급작스럽게 상승했다. 거의 정상체온인 37.2℃까지 순식간에 뛰어 올랐던 것.
빙점 이하의 체온을 기록하자 반스도 처음에는 장비에 이상이 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람쥐의 배 속에 있던 장비들을 다시 꺼내 점검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장비에는 아무론 고장도 없었다.
실제로 빙점 이하의 체온은 그동안 어떤 포유류도 작성하지 못한 신기록이다. 예컨대 곰의 경우 정상체온(37.8℃)보다 불과 5℃ 정도 떨어진 상태로 겨울잠을 잔다. 이 방면에서 종전챔피언이었던 마못류(woodchuck)도 빙점보다 조금 높은(1℃ 정도) 체온으로 겨울을 보냈다.
저온생물학자들은 1950년대부터 빙점 이하의 체온과 생존과의 관계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주로 냉동시킨 쥐와 햄스터를 사용, 실험을 했는데, 실험동물들은 체온이 빙점 이하로 내려가자 한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얼음결정들에 의해 세포가 커다란 손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어류 양서류 곤충류 등은 빙점 이하의 체온으로도 생존이 가능하다. 여기에는 세 가지 '비결'이 있다. 즉 체액의 빙점을 낮추는 용질(溶質)을 만들어내거나, 얼음결정에 붙어서 결정의 성장을 방해하는 항냉(抗冷)단백질을 생산하거나, 아예 빙점 온도를 무시해 버리는 경우가 그것이다.
반스는 북극다람쥐들을 분석하면서 항냉(antifreeze)분자나 용매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다람쥐들이 슈퍼쿨(super cool)체질일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빙점 이하에서도 얼지 않는 체액을 가졌다는 것이다.
동물들의 체액을 0℃ 이하에서 얼게 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체액의 온도를 천천히, 그리고 동요없이 낮추면 -3℃ 가까이 되어도 얼지 않는 것이다. 물론 체액에 불순물이 존재하면 이 작업은 실패로 돌아간다. 불순물이 응결핵이 돼 체액이 곧 바로 얼기 때문이다.
그런데 북극다람쥐의 혈액에는 지방 등 응결의 '씨앗'이 될만한 물질이 포함돼 있지 않다. 게다가 동면시에도 계속되는 심장박동이 혈액에 에너지를 전해준다. 혈액 등 체액이 액체로 남아 있을 만큼.
슈퍼쿨링 현상의 비밀을 캐고 있는 반스는 회색 마못에 기대를 걸고 있다. 왜냐하면 이 동물이 매우 추운 환경에 끄떡없이 견디기 때문이다. 만약 이 동물의 체온이 빙점 이하가 아니라면, 그의 집 주위의 얼음이 녹을 것이고, 결국 그는 '익사'하고 말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