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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흔히 이론과 실습의 상호대화라고 표현된다. 그러나 최근 진리를 찾는 새로운 방식 즉 컴퓨터시뮬레이션이 또다른 영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80년대 들어 이 방식은 과학의 전분야에 파고들었다.

때때로 시뮬레이션은 진리에 접근하는 유일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인간의 시공간(時空間)적인 유한함이나 대상의 복잡함으로 인해 낡은 방법으로는 더이상 총체적 진실에 다가서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론적 결함을 찾아낸다

천문학자들은 '별의 죽음'이라 불리우는 초신성(超新星, supernova)의 폭발에 대해 빠뜨리고 있는 지식이 있었다. 그것은 별의 중심이 수축하는 과정에서 극히 짧은 시간-추천분의 1초-동안 약간 부풀어올랐다가 폭발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은 천문학이론이나 관측으로는 도저히 포착하기 어렵다. 지난 10년 동안 컴퓨터는 이러한 이론적인 결함을 보충해왔다. 컴퓨터 속에 실제와 똑같은 질량, 화학적 성분, 내부구조를 가진 가상의 별을 설정하고 이것이 핵반응을 일으켜 폭발에까지 이르는 과정을 화면상에 나타나게 하는 것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이르면 매우 빠른 컴퓨터라 하더라도 실제 수천분의 1초 동안의 짧은 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데 몇분 걸리게 된다. 시뮬레이션 결과는 실제 관측된 사실과 비교하여 부단한 상호대화를 거친다.

천문학에서의 시뮬레이션 역사는 더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18세기 기어를 이용해서 태양계의 별과 위성들을 서로 움직이게 하는 기계몽형이 만들어졋다. B.C. 1게기 경 그리스해역에 침몰했던 배에서 나온 금속 덩어리는 고대인들도 태양계의 모형을 만들어 이용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보조기구에 불과했다. 20세기 중엽 첨단전자과학의 발달로 컴퓨터가 출현함으로써 시뮬레이션은 비로소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2차대전 직후 핵무기개발에 몰두하던 무렵 과학자들은 중성자의 운명에 대해 골머리를 썩히고 있었다. 중성자가 원자핵과 충돌하면 튕겨나오거나 흡수되거나 핵분열을 유발시키는 3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그후 중성자는 어떻게 되는가?

'스태니스로우 울름'이란 수학자가 간단히 해답을 구해냈다. 그는 루울렛(공굴리기게임)바퀴를 이용해 각각의 가능성에 대해 시뮬레이션함으로써 중성자의 평균적인 탄도를 찾아낸 것이다. 그후 이 방식은 '몬테카를로 방식'이라 명명됐다. 울름과 그의 동료들은 그후 최초의 컴퓨터 '애니악'이 출현하자 이를 도입해 연구를 더욱 진전시켰다. 시뮬레이션에는 점차 빠른 컴퓨터가 이용됐고 80년대에 들어 이 분야는 꽃을 피우게 된다.
 

슈퍼컴퓨터가 시뮬레이션한 빅뱅직후의 우주모습
 

쿼크의 한정성을 밝혀내기도

컴퓨터는 불가능한 실험에만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불충분한 이론을 도와주기도 한다.

70년대 이론물리학의 난제중의 하나는 '쿼크'(quark)의 한정성을 설명하는 일이었다. 쿼크는 양자내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이지만 핵력(核力)의 작용으로 거의 양자를 벗어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결정적인 해답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케네드 윌슨'은 컴퓨터시뮬레이션을 이용해 가장 근사한 해답을 얻었다. 이 방법은 가상의 4차원을 설정하여 역장(力場)의 계산을 단순화시켜버린 것이다. 그 결과 쿼크는 양자와 중성자안의 강력한 힘에 의해 결합돼 있다는 예측을 설득력있게 해주었다. 이 시뮬레이션은 더 나아가 온도가 수천억도에 이르면 쿼크는 강력한 결합에서 해방되어 '쿼크수프'라 불리우는 형태로 자유롭게 헤엄쳐간다는 사실도 보여주고 있다. 쿼크수프는 우주대폭발(BigBang)직후와 같은 상황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한다.

이러한 예는 전통적인 이론이나 실험이 실패한 극한상황에 컴퓨터가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분야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실험실의 과학'이라 불리우는 화학에서도 컴퓨터는 소중한 도구로 정착되고 있다. 화학자들은 양자역학의 기본공식으로부터 분자의 구조를 계산하는 데 컴퓨터를 이용한다. 또 폴리머(polymer)와 같은 큰 분자를 표현하거나 연료의 연소와 같은 복합시스템을 연구하는 데 컴퓨터의 힘을 빌린다. 그러나 컴퓨터는 종전에 실험을 통해 추측만 했던 실제 물질을 눈으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다. 가령 몇년전 IBM의 '엔리코 클레멘티'는 시뮬레이션하는 데 성공했다.

생물학에서 컴퓨터가 처음 쓰인 곳은 인구동역학분야였다. 가령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이 상호연관 속에서 어떻게 생존하는가'라는 연구이다. 컴퓨터는 몇분 동안 이들 동물들의 수십세대에 걸친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 비슷한 방법으로 전염병이나 에이즈(AIDS)의 확산효과를 연구하기도 한다.

기상예측은 컴퓨터가 이용됨으로써 비로소 장기적이고 분석적인 연구가 가능해졌다. 80년대는 우리 인류가 지구의 기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온실효과와 같은) 힘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시기였다.
 

화학연구에서 컴퓨터의 기여는 분자의 모형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했다는 점
 

천동설 오류

과학연구에 컴퓨터가 맡는 역할을 부정하는 견해도 없지 않다.

동물들과 같이 기거하면서 연구하는 생물학자나 암석을 채취하는 지질학자들은 체질적으로 컴퓨터의 효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이것보다 더 중대한 위험은 흔히 '천동설오류'라고 부르는 것이다. 컴퓨터가 상세한 결과와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할지라도 전부가 오류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즉 전제자체가 잘못된 것에서 출발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과학에도 이러한 오류는 수없이 많이 있었다.

또다른 위험은 컴퓨터가 해석해내는 과학 그 자체가 난해할 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컴퓨터시뮬레이션을 해석하는 새로운 학문들이 우후죽순격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이 드물지만 수학에서는 비슷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수학이론은 컴퓨터를 통해서만 증명이 가능하다. 1976년 일리노이대학팀이 증명했던 한 수학문제는 3대의 컴퓨터로 1천2백시간이나 걸렸다. 증명된 이 문제를 검토하는 데도 또다른 컴퓨터프로그램이 동원됐을 정도였다.

컴퓨터에 대한 또다른 반론은 컴퓨터시뮬레이션이야말로 전혀 새로운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주어진 데이타를 적당히 조합해서 계산하고 그 결과를 나타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계의 실험은 자연에서 뽑은 대상물을 적당히 조합한 것 이외에 어떤 새로운 것이 있는가?

컴퓨터가 이론이나 실험을 대신할 수는 없는 일이다. 컴퓨터가 실험을 만들어내고 상상력을 동원해 어떤 결론에까지 도달할 가능성은 전혀 없가. 컴퓨터는 단지 과학연구를 도울 뿐이다. 컴퓨터가 없다면 과학자들은 단순한 문제들조차도 반복작업을 계속해야 하고 실험적인 한계에 부딪힌 문제는 더이상 증명하기를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쉽게 간과하기 쉬운 허점을 발견하기 위해서도 과학자들은 컴퓨터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과학연구에서의 컴퓨터의 이용은 과학을 보다 폭넓고 자유로우며 복잡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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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동아일보사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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