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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지상에서 번개 일으켜 피뢰기 모의실험

세계 톱3 시험설비 노리는 중전기기 기반구축사업단

우리나라 전력망은 1970년대 중반까지 배전전압은 6.6kV와 3.3kV, 송·변전전압은 66kV와 1백54kV를 사용하는 체계로 구성돼 있었다. 1976년 정부는 전력망의 신뢰도를 향상시키고 송전손실을 감소시키기 위해 배전전압은 22.9kV, 송·변전전압은 1백54kV와 3백45kV로 격상시키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사용하던 중전기기는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자체기술은 전무한 상황이었다.

중전기기의 국산화 개발이 시급하게 요청되면서 정부는 1976년 한국전기기기시험연구소(한국전기연구원의 전신)를 설립했다. 연구소에는 3백50억원(현재의 약 3천5백억원에 해당)이 투자돼 중전기기 국산화 개발에 필수적인 고전압과 대전력 시험설비 건설이 착수됐다. 1981년 완공된 시험설비는 22.9kV, 1백54kV, 3백45kV라는 고전압 전력의 배전과 송·변전 선로에 사용할 수 있었다. 또한 당시 우리나라 전력망에 합선사고가 났을 때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전류(최대 사고전류)인 50kA까지 성능을 시험하고 평가할 수 있었다.

한국전기연구원의 시험설비는 그동안 배전용과 송·변전용 중전기기의 국산화 개발에 사용돼 현재 국내에서 사용되는 대부분의 중전기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 기술수준이 쌓이면서 수출용 중전기기도 상당수 개발돼 동남아, 중동, 미국 등지에 수출하기에 이르렀다.

폭발적 증가하는 전력수요

최근 10여년 동안 우리나라의 전력수요는 연간 10% 이상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이 중에서 40% 이상을 공급하는 원자력발전은 입지조건 등의 이유 때문에 국토의 남부인 고리, 월성, 울진, 영광에 모여 있다. 반면 전기는 서울을 비롯해 멀리 떨어진 대도시나 산업단지에서 주로 사용된다. 결국 장거리 송전에 따른 손실이 특히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1990년대 말 정부는 송전 손실을 줄이기 위해 최고 송전전압을 7백65kV로 격상하기로 결정했다. 7백65kV라는 초고전압용 중전기기를 개발하기 위해서 7백65kV용 중전기기의 성능을 평가할 시험설비가 무엇보다 시급히 필요해진 것이다.

또한 서울과 인근 지역에서 전력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지역의 전력망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 사고전류가 50kA를 넘을 수 있게 됐다. 전기에너지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63kA까지 평가할 시험설비도 필요해졌다.

더욱이 지난 20여년 간 당시에는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중전기기가 많이 개발됐다. 국제규격의 제정과 개정을 주도하는 유럽과 미국 등은 우리나라와 같은 경쟁후발국을 견제하고 있다. 성능평가방법을 좀더 가혹하게 하고 실제 전력망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고장과 더욱 유사하게 모의시험하도록 바꾼 것이다. 이는 기존의 시험설비로는 만족스럽게 평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시험설비를 도입한지 20여년이 경과하면서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일부 설비와 부품이 노후해 사용하지 못하거나 부품이 더이상 생산되지 않아 유지보수를 할 수 없는 것도 있다. 특히 계측장비의 경우 국제규격이 바뀌면서 더이상 사용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2000년부터 국제사회에서는 측정오차 대신 측정불확도(Measurement Uncertainty)가 사용되고 있다. 측정오차는 하나의 측정기로 하나의 물리량을 측정했을 때 측정이 정확하지 않을 정도지만, 측정불확도는 여러개 측정기로 여러개 물리량을 측정했을 때 측정이 정확하지 않을 정도다. 전체 시스템의 오차까지 고려하게 된 것이다.

초고전압 대전류를 만드는 비법


인공적으로 번개를 발생시켜 실험하는 장면. 오른쪽은 번 개를 비롯한 초고전압 실험을 위한 설비들이다.


결국 1999년부터 2000년 초에 고전압과 대전력 시험설비를 대대적으로 증축, 신축, 교체하기 위한 기획연구가 수행됐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체, 학교, 연구소의 공청회를 거쳐 마침내 ‘중전기기 기반구축사업’을 수행하기로 결정됐다.

과학기술부가 총괄하는 중전기기 기반구축사업(단장 한국전기연구원 박동욱)에는 2000년 6월부터 2005년 5월까지 5년 간 총 3백20억원이 투입된다. 20여년 간 누적된 시험설비의 문제점을 해소함으로써 중전기기 산업체의 오랜 숙원을 해결하게 된 것이다. 현재 활발히 진행중인 기반구축사업을 통해 마련되고 있는 중전기기 시험설비를 살펴보기로 하자.

대전력 연구시험설비로는 ‘5백50kV 63kA 합성단락전류 투입 및 차단 시험설비’가 있다. 여기서 5백50kV는 7백65kV 다음으로 높은 고전압이다. 63kA는 우리나라 전력망에 단락(합선)사고가 나서 흐를 수 있는 것보다 높은 수치다. 인간 치사량의 1백62만5천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전류로, 세계적으로도 톱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단락전류 시험설비는 차단기나 차단기가 내장된 GIS(Gas Insulated Switchgear, 가스절연개폐장치) 등 중전기기를 연구개발하는데 필요하다. 차단기나 GIS는 합선사고가 발생해 전체시스템이 무너지는 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시험설비에 필요한 전력은 너무 커서 발전기 제작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전류만 발전기로 공급하고 전압은 충전한 후 일시에 방전시켜 둘을 합성하는 방법이 채택됐다. 기반구축사업을 통해 만들어질 합성단락전류 시험설비는 현재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차단기와 GIS를 시험할 수 있다.


(그림) 가스절연개폐장치(GIS)의 내부 모습


강추위에서 화학물질까지 시험 가능해

다양한 고전압 연구시험설비도 중전기기 기반구축사업을 통해 마련된다. 피뢰기 연구시험설비로 2백kA 충격전류가 가능한 ICG(Impulse Current Generator, 충격전류 발생기)가 만들어졌다. ICG는 짧은 시간 동안 번개 전류를 발생시키는 장치다. 이 시험설비를 이용하면 번개를 열로 흡수하거나 대지로 흘려보내는 피뢰기를 효율적으로 연구할 수 있다.

비슷하게 번개 전압을 발생시키는 장치로 IVG(Impulse Voltage Generator, 충격전압 발생기)가 있다. 이번 사업을 통해서 4.2MV라는 극초고전압을 발생시키는 IVG가 새로 마련됐는데, 상당히 고가인 희귀한 시험설비다. 이 장치는 송·변전용 중전기기의 절연성능과 극초고전압 현상을 연구하는데 유용하다.

고전압 특성 연구시험설비로는 ‘1만A 온도상승시험장치’가 마련됐다. 이 장치는 1만A까지 중전기기에 전류를 흘릴 수 있고 이때 온도상승이 얼마나 되는지를 시험할 수 있다. 전류가 계속 흐를 때 이상현상을 일으키지 않고 규정된 온도상승범위 이내로 운전되는지 확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험설비인 셈이다.

한편 변압기의 특성시험을 하기 위해서는 변압기에 전원을 공급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60Hz 전원을 사용하지만 다른 나라의 경우에는 50Hz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변압기를 수출하기 위해서는 50Hz 전원으로 특성을 시험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50Hz 전원공급장치는 고가이기 때문에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은 거의 갖추지 못했다. 이번에 중소기업 수출지원을 위해 50Hz 전동기-발전기 전원공급장치를 구축한 이유다.

한편 비, 소금기를 띤 물, 안개, 화학물질 등에 대한 중전기기 특성을 시험할 수 있는 장치가 새로 구축됐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에 접해 있어서 상당한 송·변전 선로와 배전 선로가 해안 가까운 지역을 통과하고 있다. 또 일부 선로는 중화학공장지대를 통과하며, 일부 선로는 산악지대에 위치해 강추위와 눈, 결빙 등 극한 환경조건에 있다. 따라서 비를 만드는 장치, 소금기가 함유된 안개를 만드는 장치, 화학물질이 함유된 물을 만드는 장치, 결빙을 만드는 장치 등이 만들어짐으로써 우리국토에 맞는 중전기기 특성시험이 가능해졌다.

산업체와 가정에 혜택 돌아간다

중전기기 기반구축사업을 통해 고전압 및 대전력 연구시험설비가 확충됨에 따라 국내에서 생산되는 중전기기는 물론 세계 모든 곳에서 사용하는 중전기기의 대부분을 시험할 수 있게 됐다. 네덜란드 KEMA, 이탈리아 CESI 등 세계 유수의 공인시험기관과 자웅을 겨루는 세계 톱3 수준이 된 것이다.

아울러 그동안 어쩔 수 없이 해외시험을 할 수밖에 없었던 국내기업들의 기술노하우 국외유출을 방지할 수 있게 됐다. 중전기기 개발을 더욱 활성화시켜 수출주력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예상되는 경제적 이익만 해도 엄청나다. 국내 중전기기 산업체가 해외시험에 따른 시험료와 부대경비로 연간 40억원 이상 절감할 수 있다. 외국기업의 국내시험 유치로 인해 연간 10억원 정도의 외화획득이 가능하고 기술노하우도 수집할 수 있다. 각종 중전기기의 연구개발기간이 최소 3개월 이상 단축돼 개발비용을 연간 1백억원 이상을 절감할 수 있다.

더욱이 국내에 사용하는 중전기기의 성능과 신뢰성이 향상돼 전력의 안정적 공급과 정전시간이 단축된다. 또한 양질의 전력을 산업체에 공급하게 돼 반도체산업, 정밀산업 등 고품질의 전기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산업체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 있다. 무엇보다 더 뛰어난 중전기기가 우리나라 전력망에 사용돼 국민들이 더 안전하고 편리하게 전기를 사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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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9월 과학동아 정보

  • 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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