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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과학교류 추진하는 원병오교수

"북한의 모교에 가서 조류학 특강을 하고 싶어요"

원홍구(元洪九)와 원병오(元炳旿). 두 사람은 남북한의 대표적인 조류학자이며, 부자지간이다. 이들은 이른바 이산가족이었는데, 자신들의 연구대상인 새를 통해 남북을 오갔다. 그렇다고 새의 발목에 편지를 묶어 소식을 주고 받았다는 얘기는 아니다. 국제조류학회 등 새와 관련된 국제학술모임을 통해 서로의 안부를 묻고 활약상을 지켜봤던 것이다.

해방 전 원홍구씨는 '3천만중 유일'한 새학자였다. 한때 개성 송도고보에서 교편을 잡았던 그는 제자였던 정준택(북한의 부수상역임)씨의 도움으로 해방 후 김일성대학 생물학과 교수를 거쳐 북한과학원 생물학연구소장을 지냈다. 지난 70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대표적인 업적이자 저서는 북한의 조류상을 정리한 조선조류지 3권.

6. 25가 나자 고령이었던 그는 북한에 남고 아들만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중 한사람이 원병오박사(경희대 생물학과 교수·63).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레 새와 친해졌던 그는 어려서부터 일생을 새와 더불어 살기로 결샘했다. 그래서 원산농업대학에 진학하였고, 월남 후에도 계속해서 새연구에 전념, 마침내 세계적인 조류학자가 되었다. 따지고 보면 다른 이산가족들과는 달리 부친의 생전에 소식이나마 전해들을 수 있었던 것도 그가 학계에서 꽤 이름을 떨쳤기 때문.

이제 이순을 넘긴 원로학자가 된 그에게는 마지막 소망이 있다. "비록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고향에 돌아가 모교에서 조류학 강의를 한번 해밨으면…" 하는 꿈이다. 그래서 그는 일년 전부터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실현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즉 북한의 조류생태연구를 위해 우리 학자들이 북한지역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해 달라고 남북한 당국에 신청한 것이다.
 

원병오 교수
 

●-4계절을 답사해야…

-현재 계획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학계에서는 처음으로 제가 통일원에 남북간 학문교류를 하자고 요구했어요. 그게 작년이었는데 국회에서 통과가 되지 않았어요. 보안법과 일괄 처리하고자 한 야당의 반대에 부딪친 것이지요. 그 후 공안정국이 불어닥쳐 한동안 거론되지 않다가 지난 10월 30일에 대통령지침으로 남북예비접촉 허가를 받았어요. 북한에서 초청장을 받아내면 보내주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일본 야조학회 사무국장에게 의뢰, 북한에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고 있어요."

-북한이 허락할 것으로 보십니까?

"비정치적인 순수한 학문적 교류이니만큼 허용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하지만 다소 시간은 걸릴 것으로 봐요."

-만약 북한에 가면 어떻게, 어떤 연구를 할 작정이십까?

"방북을 한다 할지라도 규제는 어느 정도 따를 거예요. 그곳 학자들과 행동을 같이 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어요. 우선 북한의 조류와 그 생태계를 조교 1~2명과 함께 답사해보고 싶어요. 물론 이런 연구는 한 계절에 국한된다면 가치가 떨어져요. 적어도 춘하추동 4계절을 망라해야 제대로 된 학술논문이 나와요. 아무튼 교수 학생간의 교류가 계속 확대돼, 남북간의 이질감을 줄이고 통일을 앞당기는 밑거름이 되었으면 해요."
인터뷰가 이뤄진 곳은 원교수의 널찍한 교수연구실이었는데 꽤 썰렁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화제가 '부자 조류학자의 새를 통한 교류'로 이어지자 원교수의 연구실은 금방 후끈 달아 올랐다.

-60년대는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남북관계가 얼어 붙어 있었는데, 그 와중에서 간접적으로나마 부친과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언가요?

"60년대 초에 미국 육군성의 원조를 받아, 1백35종 20만마리의 새의 발목에 알루미늄 가락지를 끼우는 작업을 했어요. 철새가 전염병전파의 숙주가 될 수 있으므로, 철새의 수명 이동루트연구를 한 것이지요. 이 일은 연간 1만달러 이상의 보조를 받아 6~7년간 지속된 꽤 거창한 사업이었어요. 그런데 그때 가락지를 낀 새중 몇 마리가 평양의 모란봉 상공을 날다가 부친의 제자의 눈에 띠었어요. 이 사실이 당시 프라우다 도쿄신문 노동신문 등에 실려 세계에 보도되면서 저와 부친과의 관계가 알려지게 되었어요. 그 후부터 국제학회에 참석하면 부친을 만났던 소련 폴란드 헝가리 체코 불가리아 학자들이 자발적으로 소식을 들려 주었어요. 제가 직접 편지를 쓰고도 싶었지만 법에 저촉되는 일이라서 공산권 학자들에세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어요. 또 아버지의 저서를 보내준 서양학자가 있어, 부친의 연구현황을 지켜볼 수 있었어요."

-북한의 조류학은 어떤 수준이라고 보십니까?

"작년에 북한의 조류학과 조류보호 관리실태를 조사한 적이 있어요. 물론 직접 가보지 않았으니 문헌조사에 그쳤지만, 북한조류연구 논문의 95% 이상을 조사했다고 자신합니다. 그중 조선조류지에는 북한에서 새로 발견한 미기록 종이 잘 나타나 있고, 두루미류의 도래와 월동실태, 남한에는 1쌍만 남아 있으나 북한에는 꽤 많은 크낙새의 생활사가 희귀조류의 실태조사는 높이 평가할만한 연구성과로 보여집니다.
그러나 세계수준과 비교할 때 북한의 조류학은 아직 걸음마 단계예요. 이 점은 남한도 마찬가지예요. 동물생태학을 연구하는 학자는 극히 드문 상태이고, 식물생태학도 수명에 불과하잖아요? 남한의 조류학자는 거의가 제 제자들인데, 아직 수적·질적으로 많이 보완돼야 해요."

●-새들의 수난을 막기 위해
 

새들의 수난을 막기 위해
 

1961년 일본 훗카이도대학에서 '한국의 야생조수류에 관한 여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원교수는 그해 경희대 교수로 부임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4명의 박사, 10여명의 석사 제자를 키운 그의 제자에 대한 배려는 각별하다. 거의 전원이 대학의 교수로 진출, 원병오사단'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조류학을 전공하기를 바랍니까?

"조류학은 그저 새 이름이나 외는 학문이 아니예요. 우선 새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인내력이 있으며, 물리 수학 컴퓨터 등 기초가 튼튼한 사람을 필요로 해요. 특히 수리적인 원리에 밝아야 하므로 수학적인 머리를 요구해요. 아울러 어학실력도 제대로 갖추고 있어야지요. 영어 일어는 물론이고 러시아어를 잘 해 둘 필요가 있어요."

어릴 적부터 각종 새표본과 관련서적에 둘러싸여 살았던 그는 중학교 시절에 이미 조류학 전공서적을 두루 독파했다고 자랑한다. 현재 국제조류학회 이사로 있는 그는 '조류의 생태와 보호'를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장차 범위를 넓혀 '국토의 관리와 보호'를 생태학적으로 다룬다는 계획아래.

새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져 있었다.

"현재 국내에서 절종위기에 있는 새는 53종입니다. 그중 국제적인 감시대상으로 등록된 새만도 19종이나 있어요. 특히 크낙새 노랑부리백로 황새 등은 잘 보호해야 해요."

실제로 새의 보호는 시급한 숙제이다. 전 세계적으로 11%(약 1천종)의 새가 멸종위기에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할까요?

"우선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주어야 해요. 그리고 번식지 도래지를 마련해 주어야 하지요. 어쨌든 이제는 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법으로 강력하게 보호해 줘야 이 땅의 소중한 새들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그래도 새들의 보금자리를 정해주기 쉬웠다고 그는 회고한다.

"그렇다고 산이나 새, 자연이나 보고 살자는 얘기는 아닙니다. 적어도 전 국토면적의 0.1%라도 자연의 성역을 만들어야죠. 영국은 국토면적의 1%, 중국은 2%, 이스라엘은 자그마치 20%를 자연의 성역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0.001%도 안돼요. 인간이 진짜 자연과 만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를 남긴다는 시각으로 문제를 봐야 해요."

최근 휴전선 근처의 작은 섬 신도를 노랑 부리백로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게 한 것을 그는 큰 보람을 여기고 있다. 아마도 그의 새는 '알프렛 히치콕'의 '새'와는 다른 새일 것이다. 자신이 일생을 받쳐 연구한 새를 '타고' 그는 지금 북녁을 향하고 있다. 동서 베를린의 장벽이 뚫린 역사적인 시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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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2월 과학동아 정보

  • 박태균 기자
  • 사진

    지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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