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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품종에 의한 단일재배의 농업형태는 뜻밖의 재난을 가져올 수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어느해 갑자기 전 한국의 벼가 모조리 같은 병에 걸려 수확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이런일은 공상과학소설이 아닌 실제 사실로 일어날수가 있다. 지난 1978년에는 일조량이 모자라 타일랜드의 랑부탄이라는 과일이 전멸되어 수출산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 1981년에는 대만 전체의 파파이아 나무가 병해로 죽어버려 맛은 떨어지지만 내병성이 강한 하와이계 품종을 급히 수입한 일도 있었다. 이보다 좀 앞서는 유럽에서 라인강변의 포도가 전멸한 일도 있었다.
이렇게 농작물이 갑자기 광대한 면적에 걸쳐 전멸하는 예가 실제로 지구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것은 대체 어째서 일까.

대량생산 농업의 빛과 그림자
 

우량종자개발로 농산물이 대량 생산되고 있다.


원래 농업은 조상대대로 전해내려 온 종자를 소중하게 보존하여 때가 되면 뿌려 가꿔서 거둬들이는 것을 되풀이하여 오는 것. 이것은 세계 어디에서나 꼭 같다. 그 토지마다에 가장 알맞는 성질이 갖춰져 만들어진 '재래종'작물은 엄청난 양의 증수같은 것은 기대할 수 없어도 위험한 병충해나 기후변화에 강하여 안정되게 재배 할수 있다. 이런 안정된 농업이 오랜동안 인류를 살려왔다.

그러나 지금은 대량생산 시스템이 도입되어 이런 안정 농업에 급격한 변화가 오고 있다. 이것을 모노컬처화(化)라고 한다. 양질의 작물을 대량으로 수확할 수 있는 우량품종을 종자회사가 농가에 공급한다. 양질의 종자는 어디에서나 누구나 필요로 하므로 그 품종이 대량으로 보급되어 오랜 옛날부터 재배하여온 그 토지의 재래종과 대체되게 된다. 농업의 대량생산인 이 모노컬처는 기계화 영농에 알맞아 생산단가가 낮아지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도 알맞다. 그래서 보급속도가 대단히 빠르다.

그러나 이런 잇점이 있는 반면에 어떤 일이 생기면 앞부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엄청난 사태가 일어난다. 예를들면 종자를 공급하는 종묘회사의 어미(P)식물에 문제가 있어 잡종 제1대(F1)종자를 만들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될것인가. 그때까지 종묘회사에서만 종자를 구입하던 농가는 어디에서 종자를 구입할 것인가. 구입할 길이 없다. 이렇게 심각한 사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뿌려놓은 품종을 해치는 병충이나 균이 나타났을 때는 대량으로 넓은 면적에 걸쳐 감수되거나 전혀 수확을 못하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그 작물이 만약 주식작물이면 그 사태는 더욱 심각하여 질 것이다.

만약 한국 전체의 벼가 모노컬처화되어 한 계통의 종자만으로 공급되고 있다고 하면 그것은 바로 전체인구의 생사문제와 직결될 것이다.
이런 모노컬처의 예를 보면 현재의 농업이 '식물산업'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에 흡수되고 있음을 알수 있을 것이다. 식물산업은 식료품은 물론 일상생활물자에서 화학물질(고무, 알콜등)에 이르기까지 생산하는 거대산업이다. 앞으로 자원고갈과 인구폭발이 절박한 문제가 되면 식물산업의 비중이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한편으로는 자연파괴나 모노컬처화에 의한 예기하지 못한 재해와 곡물의 전략적 이용을 초래할 우려도 있다.
이런 식물산업에 고삐를 단단히 매어 인류의 내일을 위한 자원을 확보하려는 것이 '자원식물학'이라는 아직 한국에서는 귀에 익지 않은 학문이다. 이 자원식물학은 선진국의 곡물전략과 종묘회사, 바이오테크널러지 분야에서도 대단히 중요시하고 있다.

다가온 식물산업혁명시대
 

영하 섭씨 18도, 습도 50%의 종자저장고 내부(위)와 중국 종자은행을 관리하는 컴퓨터실(왼쪽)


자원식물학은 식물산업의 자원이 되는 유용식물을 세계 각지에서 찾아내어 그것이 원료가 되도록 개발하거나 유용식물의 유전자원이나 종자를 보존하고 교잡으로 세대가 달라질 때마다 품질이 떨어져가는 유용식물자원의 재생산성을 유지하도록 연구를 하는 것이다.

특히 후자는 식물산업혁명의 주역인 바이오테크널러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현재 시도되고 있는 유용식물에 대한 바이오테크널러지 적용은 종래의 육종법보다 교배의 범위를 비약적으로 넓혀 품종을 개량하는데 필요한 시간을 대폭 단축할 가능성이 있다. 지금까지는 신품종 육종에 10년씩 걸렸는데 앞으로는 이듬해에 바로 신품종을 육종해낼 수 있을 정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료공급을 위한 유전자 은행이 필요하다. 재배식물의 재래종 계통보존은 물론 육종의 재료로 쓰이는 원종, 재배종의 원종, 모종, 관련종 등을 모두 보존하여 두어야 한다. 예를들면 기름의 원료가 되는 식물이 필요한 경우에는 기름과 관계되는 식물 모두를 모으는 '계통적 인벤트리'를 갖추는 것이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석유파동이후 이것을 이미 실행하고 있는데 그 종자를 모으기 위한 노하우나 어떤 것을 모을 것인가는 자원식물학에 의존하게 된다.

식물산업은 곡물뿐만 아니라 의료용에서 석유대체물이 되는 화학물질까지 만들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각의 목적에 맞는 방대한 '계통적 인벤트리'를 갖출 필요가 있으며 그 노하우를 자원식물학이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런 노하우는 식물산업혁명으로 생기는 마이너스요인을 억제하기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예를들면 타일랜드에서는 한때 유럽 사료 시장용의 전분원이되는 카사버(Cassava)를 대량으로 심었다. 그때문에 많은 삼림을 벌채하여 생태학적으로 대단히 나쁜 결과가 나타난 일이 있었다. 이런 사태가 일어났을 때 생태학은 사전에 생태환경을 나쁘게 한다는 것을 경고할수는 있어도 그에 대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한다. 해결책을 제시하는 쪽은 자원식물학이다.

어째서 자원식물학이 해결책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은 카사버를 대신할 대체식물을 개발할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대체식물을 심는 것이 카사버를 심는 것과 경제적으로 어떤가. 즉 카사버를 심었을 때와 같은 수입이 가능한가 하는 국제관계론과 경제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시야로 문제를 파악하기 때문이다. 또 앞에서 말한 모노컬처화한 농작물의 안전판으로 재래종이나 대체식물의 유전자은행 체계를 세우는 것도 자원식물학의 중요한 역할이다.

여러분야에 걸쳐 이렇게 식물산업이 급격하게 진전되고 있는 오늘날 이것을 조정하는 것도 농학이나 식물학에만 맡겨둘 수 없게 되었다. 국제관계론이나 경제학등의 사회과학까지 포함한 여러학문분야에 걸친 입체적 종합연구에 의한 식물학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원식물학이 근래 20여년 동안에 클로즈업되어 왔다.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이런 관점에서 전세계에 걸친 식물자원체계를 세우는 유전자은행을 갖추어가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중요한 농작물의 모종이 적은 나라인데도 이 방면이 많이 뒤떨어져 있다.

위기를 초래할 종자전쟁

이런 추세속에 '종자를 장악한 사람이 세계를 제패한다'는 말이 지금 유행어처럼 되어있다.
종자기업에서는 잡종의 F1종자를 만들어 판매하면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F1이 수확이 많은 성질의 것이면 농가에서 조상대대로 재배해오던 종래의 품종에서 F1식물재배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F1종자는 3대인 F2가 되면 고르지 않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분리되어 버리거나 경작지의 지력이 떨어지거나 한다. 그때문에 농가에서는 해마다 종자기업에서 F1종자를 구입해야만 하게 된다.

이런 F1종자를 어떤나라에서 대량으로 생산하여 다른나라에 독점 공급하면 결국 종자생산국이 종자수입국의 농업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수요가 많은 F1종자를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1대식물의 유전자은행을 갖출 필요가 있으며 그런 대규모의 종자은행을 갖춘 종묘기업이나 국가가 종자전쟁에서 이긴다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렇지만 이런 방법으로 종자공급을 조정하는 것은 인류평화를 위해 극히 위험한 일이다. 식물자원의 전략적 사용은 지구상의 빈부격차를 더욱 확대하게 되고 식물자원소유국의 자원내셔널리즘을 조장하는 결과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사태가 계속되면 결국 빈곤한 나라나 자원이 없는 나라는 식량확보도 하기 어렵게될 위험이 많다.

이런 '종자전쟁'의 징후에 대비해 세계가 모두 같이 살수 있도록 하는 곡물전략을 자원식물학을 통해 세워나가면 그런 위기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방법으로 식물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이라는 특징을 이용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가령 미국에서 파를 개발하는 것보다 한국에서 파를 개발하는 것이 여러가지 조건이 훨신 좋다. 파의 원종이 아시아, 특히 동남아에 많고 또 재래종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방식으로 한국에서는 파나 쌀을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미국은 옥수수를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고 유럽에서는 밀을 개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렇게 각 지역의 환경조건에 알맞는 품종을 개발하여 나가도록 노력하면 세계가 모두 번영하여 갈길이 열릴 것이다. 식물산업의 혁명적 발전이 종자전쟁을 초래할 것인가, 또는 인구문제나 자원고갈을 해결할 돌파구가 될것인가, 이것은 앞으로의 중대한 과제다.

국제기구와 각국의 현황

곡물이나 채소의 우량품종을 만들어내려면 필연적으로 그 어미가 되는 품종이 필요하다. 그 어미는 언제나 어디에나 있는것이 아니다.
미국이 우수한 콩의 새품종을 개발했던 것도 수십년전부터 전세계의 콩종자를 모아 보존하여온 결과다. 여러가지 종을 교배하여 그중에서 우수한 것을 남겨가는 방법으로 세계 곡물시장을 좌우할 수 있는 종자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이렇게 바이오테크널러지의 발전으로 각종의 품종개량이 진전되고 농업생산의 획일화로 효율좋게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품종만 재배하게 되자 재래품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거기다 도시화와 환경오염 사막화등으로 귀중한 식물이 멸절되고 있다.

식물도 이제는 자원의 하나가 되었다. 바야흐로 멸절되려는 종이나 품종이 늘어가고 있는 이때 아무리 바이오테크널러지가 발전되어도 이런것을 보전하여 두지 않으면 앞으로 새로운 품종을 탄생시키려 할때 기본이 되는 유전자가 없어 어떻게 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인식에서 발족된 국제기구가 국제식물유전자원이사회(IBPGR·본부 로마)다. 이 이사회는 각국에서 식물유전자원을 보존하는 것을 지원해 주고 있다.

그러나 몇몇 국가는 이런 점에 착안하여 종자를 수집 보존함과 동시에 자국의 식물이 다른나라에 흘러나가는 것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예를 들면 중국에서는 특히 약용식물유출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종자를 계통적으로 모아 보존하는 시설을 '종자은행'(Seed bank)이라 한다. 미국은 콜로라도주의 포트콜린즈에 농무부 산하의 시설이 있고 소련은 코마로프식물연구소에 종자를 저장하고 있다. 또 일본은 츠쿠바학원도시에 농림수산성의 종자저장시설이 있으며 5만여점을 보존하고 있다.

식물의 유전자를 보존하는 데는 종자뿐만 아니라 식물표본과 살아있는 채로의 식물까지 보관해야 한다.
중국은 지난 85년 농업과학원 산하에 북경종자은행을 설치, 세계 최대의 것으로 만들고 있다. 종전에는 소련의 코마로프 종자저장시설이 세계최대로 40만점의 종자를 보존했고 이어 미국의 포트콜린즈에 18만점의 종자가 보존되어 있다. 국제식물유전자원이사회는 89년 9월부터 북경에 지원사무소를 두고 중국의 보존태세를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남미등의 저개발국에는 풍부한 식물자원이 남아 있으나 보존할 태세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그중 특히 심각한 곳이 중국으로 본토가 넓고 자원이 많은데도 수집보존 전문가가 적다.
그래서 국제식물유전자원이사회가 지원하게 되었다. 지난 85년 개설된 중국 종자은행은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으로 87년부터 종자저장을 시작, 현재 약30만점을 모았으나 국제이사회가 전문지도원을 두어 앞으로 벼, 보리, 콩, 과수등 보존자원을 50만점까지 늘리도록 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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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이희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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