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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이(소원이) 있소!” 얼마 전 개그콘서트에 출연한 가수 박재범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에 관객석에서 큰 웃음이 터진 일이 있다. 나름대로 노력한 것이지만, 익숙하지 않은 발음에 혀가 꼬인 것이다. 우리도 외국어를 유창하게 발음하고 싶지만 생각만큼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나이가 들수록 ‘혀가 굳는다’고 하는데, 굳은 혀를 풀어주는 방법은 없을까.

혀는 우리 몸에서 가장 자유로운 근육이다. 다른 근육들은 뼈나 인대에 양쪽 끝이 고정돼 있어 움직임이 제한되지만 혀는 한쪽 끝만 뼈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 몸에서 가장 유연하고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우리가 프렌치 키스를 하거나 혀로 체리꼭지 묶는 묘기를 부릴 수 있는 것도, 랩 음악을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혀 근육의 유연성 덕분이다.

성대와 입술, 치아 등이 모두 발성에 영향을 주지만 혀는 이런 유연성 덕분에 특히 자음과 모음을 만드는 ‘발음’과 관계 깊다. 횡경막과 성대를 움직여 목소리나 성량을 조절하는 발성과정을 뿌리에 비유한다면, 입 안에서 이뤄지는 발음과정은 꽃에 해당한다. 성대를 지나 올라오는 공기의 흐름이 약간만 바뀌어도 우리 귀에 전혀 다른 소리로 들리는데, 이 때 기류를 알맞게 변형하기 위해서는 혀의 섬세하고 유연한 움직임이 필요하다.

발음에는 보통 8개 혀 근육(내근 4개, 외근 4개)이 동시에 사용되는데, 음에 따라 주로 사용하는 세부 근육은 조금씩 다르다. [k] 발음은 붓혀근과 입천장혀근, [t] 발음은 혀위세로근과 같은 식이다. 각각의 발음을 하면서 혀의 어느 부위가 수축되는지 느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노홍철이 잘 발음하지 못하는 [s]발음은 기본적으로 어려운 발음이다. 턱끝혀근과 턱끝목뿔근이 긴장한 상태로 혀를 치아 뒤쪽에 밀착시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혓몸이 위로 떠버리면 [θ] 발음이 나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말하기 힘들어 하는 ‘R’ 발음의 경우, 혀위세로근이 잘 수축되어야 정확한 발음이 가능하다. 혀위세로근은 혓몸 윗부분에 앞뒤로 길게 뻗어 있는 근육으로, 수축 시 혀끝을 위로 둥글게 말아올리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아래쪽에 위치한 혀아래세로근과 수축·이완의 호흡이 잘 맞아야 빠르고 정확한 ‘혀 굴러가는 소리’를 낼 수 있다.



사투리와 발음 습관이 혀 운동능력 바꿔

어떤 사람은 잘되고 어떤 사람은 되지 않는 어려운 발음들. 이론상 혀를 움직이는 근육을 모두 갖추면 아무 문제없어 보이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이런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한국과 중국의 지역별 사투리를 분석한 2개의 연구 결과는 오랜 언어 습관이 혀 운동성에 영향을 미치고, 다음 세대로 유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역적·언어적 환경이 발음 능력과 혀 운동성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먼저 구회산 중앙대 영어교육과 교수는 사투리를 쓰는 사람의 발음 습관이 영어 발음을 할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구회산 교수는 지역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영어 모음을 발음할 때 어떤 특성을 보이는지 음성학적으로 분석했다. 턱과 혀의 움직임에서 비롯되는 성도의 공명 특성을 분석한 것이다.

연구 결과 영어 모음을 발음할 때 서울 토박이들은 혀 활동 폭이 좁아서, 영남 토박이들은 혀가 너무 앞으로 나가서, 호남 토박이들은 반대로 혀가 너무 뒤로 들어가서 발음에 문제가 생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투리에서 쓰던 발음 습관 때문에 영어를 발음할 때도 무의식적으로 혀가 익숙한 위치를 찾아가는 것이다.

지난해 중국 연구진들이 발표한 연구는 혀 근육의 운동능력이 유전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 과학자들이 지난 15년간 20여 개 소수민족을 조사하면서 축적한 데이터를 정연빈 중국 텐진사범대 교수팀이 분석한 결과, 광둥어 사용자의 혀 운동능력이 북방언어 사용자보다 선천적으로 낮게 나타났다.

중국의 북방언어에는 한국 사람들도 발음하기 힘들어 하는 평설음(z, c, s)과 권설음(zh, ch, sh, r)이 포함돼 있다. 반면 중국 남쪽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광둥어’에는 이런 발음이 없다. 오랜 시간 혀를 움직이는 습관의 차이가 굳어져 근육의 운동능력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발음이 더 복잡하고 혀를 다양하게 쓰는 언어권일수록 혀의 운동능력이 높게 나타났다.

최홍식 강남세브란스병원 음성언어의학연구소장은 “발음에는 혀의 섬세한 조절이 필요한데, 특정 발음을 쓰지 않으면 그 발음을 만드는 혀 기능도 차츰 떨어진다”고 말했다.




잠자는 유전자 깨우면 혀 운동능력 살아나

사용하는 언어와 지역, 유전적 요인이 혀의 운동능력을 결정짓는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다. 잠자고 있는 유전자를 깨우는 것만으로 혀의 운동능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혀의 운동능력은 1940년 처음 연구를 시작한 이래로 다섯 가지 기준, 즉 ‘혀 말기’, ‘혀 접기’, ‘혀 비틀기’, ‘혀 클로버’, ‘혀 좁히기’로 구분해서 평가됐다. 이 동작들은 모두 상염색체에서 우성 또는 열성 유전한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 유전자들이 ‘잠들어’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중국 연변의학원의 연구에서 훈련으로 잠자고 있던 혀 비틀기 유전자를 깨울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진들은 연변지역 중학생 1846명을 대상으로 혀의 운동능력을 평가했는데, 첫 테스트에서 ‘혀 비틀기’가 가능한 경우는 21.51%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 학생들에게 정확한 혀 동작을 알려주고 한 달 동안 반복해서 훈련시킨 결과 13.74%의 학생들이 추가로 혀 비틀기가 가능해졌다.

다섯 가지 혀 동작 모두 유전된다는 게 그동안 학계에서 인정받던 사실인데, 불과 한 달간의 연습으로 혀 비틀기가 가능해지자 연구팀은 어리둥절해졌다. 연구진은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학생들의 가계도를 조사했다. 그 결과 연습 후 동작이 가능해진 학생들은 원래부터 혀 비틀기가 가능한 유전형을 가지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잠재 유전자’라고 표현했다. 잠재 유전자는 같은 열성 유전인 ‘혀 접기’ 등에도 존재한다. 부모님과 조부모님의 혀 운동능력을 알면 나에게도 어떤 혀 기능이 숨어 있는지 간단히 알 수 있다.



발음에 좌절한 당신,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어라

잠재 유전자도 없고 혀 운동능력도 부족한 사람은 ‘뻔하지만’ 혀를 혹사시켜야 한다. 부지런히 혀 근육을 움직이고 정확한 위치에 혀를 놓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습만 하면 발음은 향상된다. 선천적인 혀 운동능력이 발음에 미치는 영향은 5%가 채 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양병곤 부산대 교수는 일부 아나운서나 앵커들이 발음 향상을 위해 연습한다는 ‘나무젓가락 물고 발음하기’가 실제 발음에 효과가 있는지 분석했다. 양 교수는 대학생들이 아무런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자유롭게 발음했을 때와 나무젓가락을 물고 발음했을 때 혀 위치에 어떤 차이가 나타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 자유롭게 발음할 때는 차이가 없었던 일부 단어를 나무젓가락을 사용했을 때는 혀가 구분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전 KBS 리포터이기도 한 임유정 라운제나스피치 대표는 “나무젓가락을 입에 물면 턱이 고정되기 때문에 혀의 움직임이 더 정교해진다”며 “간편하면서도 효과가 있어 학생들을 가르칠 때 많이 해보라고 권유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발음과의 관계만 놓고 볼 때 가장 중요한 건 혀를 정확한 위치에 재빠르게 가져다 놓는 부지런함이다. 임 대표는 “발음이 좋지 않은 것은 혀가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혀를 단어에 맞게 상하좌우로 부지런히 움직여야 정확한 발음에 다가갈 수 있다. 혀가 게으르면 오히려 말이 빨라지면서 발음이 부정확해지고 혀 짧은 소리가 난다고 한다.

혀를 부지런히 움직이는 방법으론 평소에 ‘혀 체조’를 해 주는 게 좋다. 랩을 하는 가수나 아나운서들은 발음을 빠르고 정확하게 하기 위해 ‘경찰청 철창살 새 철창살…’과 같은 발음 훈련을 한다. 조동욱 충북도립대 교수는 잠깐의 혀 체조가 발음의 정확성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을 최근 발표했다. ‘지터’와 ‘쉼머’라는 음성분석기기를 이용해 발음의 특성을 측정한 결과 ‘혀 체조’와 ‘발음 정확도’ 사이의 상관관계를 발견한 것이다. 조 교수는 “일반 사람들이 막연하게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정량적으로 분석해서 실제 효과가 있는지 검증하는 것도 과학”이라고 연구의 의의를 밝혔다. 발음이 꼬일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입과 혀를 우물거리며 풀어준다. 혀의 세부근육과 발음 사이의 관계를 알면 내가 잘못하는 발음 부위를 집중적으로 풀어줄 수있지 않을까. 헬스장에서도 근육의 생김새를 알고 운동하면 효과가 높아지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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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과학동아 정보

  • 변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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