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가 전세계를 한창 말춤 추게 하던 작년 10월 말, 트위터에서 낯익은 얼굴을 봤다. 시쳇말로 ‘아줌마 펌’을 한 아저씨였다. 누군지 바로 알아봤다. 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교수였다. 강인해 보이는 턱과 예의 ‘뽀글뽀글한’ 머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트위터에서 그가 한 말은 짧았다. “I love MIT!(MIT 진짜 좋아!)” 뭐가 그리 좋다는 건가, 옆에 나온 주소를 클릭했다. 나온 것은? 며칠 뒤 국내에서도 큰 화제를 모은 MIT의 강남스타일 패러디 뮤직비디오였다.
이 뮤직비디오는 뛰어난 화면과 대규모 군중, 교내 구석구석의 명소를 섭외한 우수한 연출 때문에도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명한 인물이 여럿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가장 유명한 건 노암 촘스키 언어학과 교수. 비록 노구여서(올해 86세) 함께 말춤은 못 췄지만, 차를 한 잔 홀짝이고는 ‘오빤 촘스키 스타일’이라고 말해 이 뮤직비디오의 클라이맥스를 이뤘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촘스키 교수와 그 모습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좋아하는 핑커 교수라면 분명 과학은 문화고 인문학이며 예술이라고 믿을 것이다. 실제도 두 사람은 자신의 원래 연구 분야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시사와 인지과학, 언어학 등)의 연구와 저술에 참여하는 박학다식한 학자의 대표다.
이들의 관심사가 그저 관심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책이 나왔다. 제목이 ‘과학은 문화다’라는 뜻인 ‘사이언스 이즈 컬처’다. 미국의 과학잡지 ‘씨드’에 연재된 대담을 모은 이 책은 파격적인 구성과 과감하고 상상력 넘
치는 주제, 그리고 빼어난 인물 섭외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예를 들면 핑커 교수는 ‘의식의 문제’를 주제로 대담을 나누는데, 상대는 소설가다. 촘스키 교수는 ‘전쟁과 기만’이라는 주제로 대담하는데, 진화생물학자와 함께 한다. 이런 식으로, 이 대담에는 과학자와 심리학자, 수학자가 디자이너, 음악가, 게임 개발자, 역사가, 큐레이터, 도시계획가 등과 만나 대담을 한다. ‘이터널 선샤인’, ‘그린 호넷’의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도 있다.

이야기가 중요해!
핑커 교수의 대담에는 흥미로운 문구가 보인다. “무슨 이유로 인간 정신에 내재하는 공감 능력이 밖으로 확장됐을까요? 다른 사람의 입장으로 우리를 끌어다 놓는 매체입니다. 언론, 역사, 리얼리즘 픽션이죠.” 핑커 교수의 말에 대담자는 바로 대답한다. “네. 스토리텔링이요.”
스토리텔링, 즉 이야기는 요즘 과학에서도 화두다. 과학의 역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스토리지만, 아쉽게도 ‘꿰어야 보배인’ 스토리다. 아무리 재밌어도 잘 쓰지 못하면 공감 가지 않는 소재다. 생각해보면 쉽다. 학교 다니면서 역사가 재밌었던 사람, 생각보다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제대로 된 스토리텔러의 과학사 책을 만나 보자. ‘갈릴레오의 딸’로 이미 국내에 팬이 많은 과학 저술가 데이바 소벨의 책이 새로 번역돼 나왔다. 유명한 과학사의 한 장면을 드라마처럼 묘사하기로 유명한 작가지만, 이번에 택한 장면은 그 중 정점이다. 지동설을 주장한 과학혁명의 아이콘 코페르니쿠스다. 감히 과학계에서 가장 극적이고 중요한 장면을 이야기로 엮다니! 하지만 ‘코페르니쿠스의 연구실’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소설 같은 구성에 그치지 않고, 한가운데에는 아예 희곡 대본이 들어 있을 정도로 파격적이고 섬세하다. 물론 저자가 완전히 상상을 통해 복원한 16세기의 장면이다. 소설처럼 묘사하는 일도 어려운데 대화를 복원하다니 야심과 상상력이 놀랍다.
이렇게 이야기의 근원은 상상력이다. 이야기 속의 상상력을 실현하는 과학책도 같이 볼 만하다. 영화 ‘아바타’의 상상력을 실제로 앞당기는 뇌-기계 인터페이스(BMI)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미겔 니코렐리스 듀크대 교수의 새 책 ‘뇌의 미래’는 이 분야의 지식을 가장 깊고 가깝게 전해준다. 현실이 이야기를 오히려 앞질러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뇌-기계 인터페이스가 여는 세상은 과연 현실일까 이야기 속 세계일까 궁금해진다.
체험하거나 인식하지 못하는 대상은 과연 현실일까 아닐까. 분명 존재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었던 현실을 만나보자. 현미경 속 세계를 탐구한 ‘와우! 현미경 속 놀라운 세상’으로 실제 현실과 가공의 현실 사이의 애매한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