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엄을 치거나 달리거나 하는 기능과 언어로 나타내는 사실은 뇌속의 각각 다른 곳에 기억돼 있다.
갑자기 되살아난 20년전의 기억
어떤 사람이 왕년의 야구계 명선수 '미키 맨틀'의 자서전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차츰 읽어나감에 따라 그 자신이 리틀리그 선발테스트를 받은 어린 시절의 일이 생생한 기억으로 되살아났다.
그것은 1963년 4월27일의 일이었다. 당시 그는 아홉살로 할아버지를 따라 테스트장에 갔다. 작은 손에 '네리 폭스' 의 글러브를 쥐고 머리에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스파이크는 테스트 전날 아버지가 사준 중고품이었다.
긴 테이블이 있는 접수부에서 테스트 등록을 마치고 기다리고 있으니 이윽고 이름을 불렀다. 다이아몬드에 나가자 스톱워치를 가진 사람이 있었다. 수염을 기르고 시카고 커브스의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 사람은 소년이 베이스를 도는 시간을 기록했다.
그런 뒤 코치 한 사람과 캐치볼을 하고 다른 코치가 던지는 공을 2~3회 방망이로 때렸다. "상당히 좋아"하고 칭찬을 했는데 그것은 건성으로 말한 것이 아닌 것 같았다. 테스트가 끝나고 얼마 뒤에 할아버지와 소년이 앉아 있는 곳에 한 여성이 다가와 야구 유니폼을 건네주었다.
회색 모직의 셔츠와 바지 하늘색 스타킹 그리고 리틀리그 마크가 있는 모자….
20년 이상이나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이런 일이 미키 맨틀이 오클라호마의 시골에서 지낸 소년시절의 야구생활을 회상하는 과정을 읽어가는 사이에 되살아난 것이다. 먼 옛날 리틀리그시절의 기억이 그의 머리 속 어디엔가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밖에도 어떤 옛날의 추억이 '그곳'에 감추어져 있는 것일까. 그것은 물론 '그곳'이라는 장소가 있을 때 해야 할 표현이지만….
"기억이란 커다란 양산처럼 넓은 범위를 덮고 있다. 또 기억은 뇌가 인간의 경험을 능력으로 변환시키는 과정 전체를 말하는 것이다."
존 홉킨즈대학의 심리학 교수 '닐 코엔'박사의 말이다.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고캠퍼스의 정신의학 교수로 외상과 병에 의한 정신장애도 다루고 있는 '래리 스콰이어'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억과 행동의 연구는 지금 황금시대를 맞고 있다. 분자레벨에서의 연구로 1개의 신경세포가 어떻게 하여 다른 신경세포에 항구적 영속적인 변화를 일으키는가가 밝혀져 가고 있다. 이것은 기억을 물질의 레벨에서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 된다"
스콰이어교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종의 감각정보가 어디에서 처리되고 저장되어 여러가지 다른 기억이 되는가도 밝혀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뇌라는 '블랙박스'를 이해하는 첫발을 내딛으려 하고 있는 것이다"
기억에는 두가지 형이 있다
최대의 이론적 돌파구는 기억에는 적어도 두가지 타입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 두종류의 기억은 각각 다른 생화학적 구조에 의하여 뇌의 다른 부위에 저장되는 것이다. 이것은 1950년대에 실시된 기억상실증환자에 대한 일련의 실험 결과로 밝혀진 것이다.
처음에 실험한 환자는 'H.M.'이라는 기억상실증의 남자였다. 그는 원래 중증의 간질환자로 치료를 해도 효과가 없이 발작이 심해져 갈 뿐이었다. 그래서 의사들은 1953년 그가 27세 때 아주 극적인 처치를 하기로 결단했다. 즉 그의 뇌속에서 해마(海馬·hippozamus)와 편도핵(扁桃核·amygdaloid nuclius)을 거의 절제해버린 것이다.
이 수술결과는 기대한대로 간질발작을 줄였다. 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다. 수술 후 H.M.은 새로운 것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다. 의사를 소개받고 난 뒤 몇분이 지나지 않아 이름을 잊어버렸다. 몇번이고 되풀이하여 소개하여도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또 평소에 좋아하던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 사실을 다시 들을 때마다 쇼크를 받아 비탄에 빠지곤했다.
기계적인 퍼즐을 푸는 것은 수술 전보다 오히려 능숙하여졌으나 몇번을 해도 퍼즐을 풀었다고 하는 사실 그 자체는 기억하지 못했다.
그와같은 타입의 기억상실증은 기억에는 몇가지 형이 있어 각각 뇌의 다른 부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 하나는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이라는 형으로 이름 장소 날짜 야구의 스코어 등 사실에 관한 기억이다. 이 형의 기억은 "이 퍼즐을 푸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고 생각하여 서술할 수가 있다. H.M.이 잊어버린 기억은 이런 형의 것이었다.
다른 또 하나의 형은 조작적 기억(procedural memory)이라고 하는데 해마나 편도체가 손상되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런 형의 기억은 훈련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자전거를 타는 법 같은 여러가지 기술습득이 이에 해당된다. H.M.이 퍼즐을 푸는데 사용된 것은 이 조작적 기억이다. 그러나 서술적 기억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퍼즐을 푸는 방법을 배웠다는 사실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H.M.의 케이스에서 뇌의 어느 부분에서 어떤 형의 기억이 처리되고 있는가를 연구하는데 필요한 중요한 지식을 얻었다"
미국 메릴랜드주 베데스다에 있는 국립정신위생연구소 신경심리학 부장 '모티머 미쉬킨'박사가 말했다. 그는 곧이어 뇌가 감각정보를 어떻게 처리하여 서술적 기억으로 변하게 하는가를 밝히기 위한 교묘한 실험에 착수했다.
눈으로 본 것에 대한 기억의 구조
미쉬킨박사는 원숭이의 호기심을 이용하여 시각정보처리의 구조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한장의 나무판에 구멍을 뚫고 그 속에 피너츠를 넣어둔다. 이 구멍은 나무를 쌓아 막아놓는다. 원숭이가 쌓아 놓은 나무를 들어내면 구멍으로 피너츠를 볼수 있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판에 새로운 구멍을 뚫고 그 구멍에 크기와 모양과 색이 처음에 쌓아 놓은 나무와 다른 것을 쌓아 막아 놓고 원숭이에게 보였다. 이번에는 피너츠가 들어 있는 곳은 새로운 나무를 쌓아 막아 놓은 구멍쪽이다. 원숭이는 새 나무를 들어내면 피너츠가 있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된다. 최초에 쌓았던 나무의 겉모양을 기억하고 있어 그것을 피하는 것이다.
원숭이에게 이 룰을 익히게 한 뒤 시각정보처리와 저장에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는 뇌의 조직을 절제하거나 그런 조직 사이의 연결을 절단하거나 했다. 2주간 뒤 수술에서 회복된 원숭이에게 시각기억에 대한 영향을 테스트했다. 이 실험을 되풀이하는 동안에 시각신호가 뇌속에 어떻게 전달되고 어디에 기억으로서 저장되는가를 나타내는 도표를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시각정보의 기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마와 편도핵(모두 대뇌변연계의 일부)이라는 것을 밝혀 냈다.
"물건을 인식하는데는 이 두 개의 조직 중 한쪽이 다른쪽보다 훨씬 쉽게 대체되기 때문인 것 같다"
미쉬킨박사의 설명이다.
그러나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니 해마와 편도핵은 각각 독자의 기능을 갖고 있었다. 해마를 절제한 원숭이는 두 개의 물체의 위치관계를 기억하는 능력을 잃어버렸다.
사람의 해마기능이 없어졌다해도 이웃집 한집 한집의 모양이나 색은 기억할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집과 어느 집이 나란히 있는지 하는 위치관계는 기억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편도핵에는 감정적 내용의 정보가 저장되어 있다. 원숭이의 편도핵을 절제하면 공간적인 감각을 시험하는 데서는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집단 속에서의 자신의 사회적 순위를 잊어버렸고 사회적 지위에 맞는 몸가짐을 할줄도 모르게 되었으며 공포에 대한 반응도 없어졌다.
사람은 편도핵을 떼어버려도 고향 마을 거리모양은 기억할 수 있지만 그 거리가 그리운 옛거리라는 감정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기억의 종류에 따라 저장고도 다르다
대뇌변연계가 어째서 감정과 기억의 자리가 되어 있는가를 연구한 학자는 적지 않다. 그중에서 미쉬킨박사는 감정은 기억정보의 관문이 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경험한 일 모두를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뇌는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 볼 때 가장 강하게 기억나는 것은 가장 감정이 강하게 엉겼던 일이었을 것이다"
미쉬킨박사의 설명이다.
사람의 기억에는 그때그때의 기분이 대단히 강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심리학자 '고든 바우어'박사는 "어떤 기분(슬픔이나 즐거움 등)일 때 있었던 일은 같은 기분일 때 잘 기억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서술적 기억의 다른 면에서도 편도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미쉬킨박사와 공동연구를 한 '엘리자베드 매리'여사는 앞에 설명한 실험과는 좀 다른 실험을 했다. 그것은 먼저 어둠 속에서 원숭이에게 제1의 물체를 접촉하게 한다. 그런 뒤 그것을 제2의 물체와 함께 원숭이에게 보여 어느 쪽이 새로운 물체인가를 식별하게 했다. 그러자 해마를 절제한 원숭이는 시각으로 바르게 선택했으나 편도핵이 없는 원숭이의 선택은 전혀 엉망이었다. 즉 편도핵은 시각기억과 촉각기억을 통합하는데 분명히 필요하다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오감신경이 편도핵에 이어져 있다는 것은 다른 연구로도 뒷받침되고 있다.
편도핵에 어떤 물체의 감각자극이 전해지면 편도핵은 같은 물체에 대한 시각정보를 저장한 피질부위를 활성화시킨다.
스탠퍼드대학의 심리생물학자 '리처드 톰프슨'박사는 오랜 연구끝에 조작적 기억은 서술적 기억과는 다른 부위(후두부의 소뇌)에 저장되어 있다고 밝혔다. 톰프슨박사는 토끼의 뇌의 여러 부위에 많은 미소전극을 집어넣어 그 토끼에게 다음과 같이 하여 소리와 불쾌자극과의 연결을 학습시켰다. 그리고 각 부위의 신경세포의 전기적 활동을 기록하여 보았다.
먼저 토끼의 눈 속에 훅하고 공기를 불어넣어 주자 토끼는 반사적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다음으로 눈에 공기를 불어 넣기 직전에 어떤 소리를 듣게 한다. 이것을 몇번 되풀이하면 토끼는 이 두 가지를 연결하게 된다. 즉 토끼는 조건반사를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토끼가 이 조작적인 과제를 학습하고 있는 사이 소뇌의 몇곳인가의 부위에서 전기적 활동이 높아진다는 것을 톰프슨박사는 발견했다. 소뇌의 그 부분을 떼어내버리자 토끼가 한번 학습한 반사를 곧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마를 떼어내도 그 조건반사능력은 전혀 손상되지 않았다.
톰프슨박사의 이 실험으로도 타입이 다른 기억은 다른 부위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 실증되었다.
뉴런에 엄청난 변화가
미쉬킨박사와 톰프슨박사의 연구는 기억의 물리화학적 성질―기억이 형성될 때 뇌 속에서 어떤 물리화학적 변화가 생기는가―을 연구하는데 기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기억이 저장되는 부위만 알면 그 부위의 뉴런(neurone·신경세포을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뉴런이 변화하는가 어떤가 또 그 변화에 따라 기록을 항구적으로 저장하는 뇌의 능력을 설명할 수 있는가 등을 조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대학의 '엘릭 캔델'박사와 국립위생연구소의 '다니엘 앨콘'박사의 연구에 의하여서는 기억에 물리화학적인 변화가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가 처음으로 나왔다. 연체동물인 해우 등 해산동물에 여러가지 학습을 시켜 특정의 뉴런에 지속적인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또 다른 연구팀은 해마의 뉴런에 어떤 일정한 패턴의 전기자극을 주면 그 후 몇주간에 걸쳐서 그 전기자극에 대하여 특히 민감하여진다는 것을 밝혀냈다. 장기부활화(賦活化)라고 이름붙인 이 효과가 장기기억형성을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으로서 제시된 최초의 것이다.
이 현상에 흥미를 가진 캘리포니아대학 어빈캠퍼스의 신경과학자 '게이리 린치'박사는 쥐의 뇌조직에 같은 실험을 하여 보았다. 그러자 기대했던대로의 장기부활화가 관찰되었다. 그것 뿐이 아니었다. 놀랍게도 신경세포의 구조까지 변화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뉴런끼리 결합하는 수가 늘어났을 뿐만 아니라 뉴런의 특정부위가 지금까지 아무도 본 일이 없는 모양으로 변한 것이다.
린치박사와 공동연구를 한 '마이클 보들리'박사는 해마의 뉴런에 초점을 맞춰 신경의 흥분이 시냅스(Symapse·뉴런과 뉴런의 접합부에 있는 틈)를 가로질러 다음 뉴런에 이르는 구조를 연구했다. 하나의 뉴런이 신경전달물질이라는 화학물질을 방출하고 신경전달물질은 확산하여 시냅스를 가로질러 다음 뉴런 앞에 있는 리셉터(receptor·受容体)에 결합한다. 이에 의하여 리셉터가 활성화되면 그 시냅스 뒤의 뉴런의 막(膜)을 하전입자가 통과하여 흥분이 전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린치박사와 보들리박사가 해마의 뉴런을 전기자극하여 장기부활화상태로 만들자 일련의 놀라운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시냅스 뒤의 뉴런이 이상할 정도로 많은 양의 칼슘이온으로 넘쳐 이 칼슘이온이 칼파인이라는 효소를 활성화시킨 것이다.
어떤 종의 단백질을 분해하는 것이 칼파인의 중요한 역할이다. 칼파인으로 분해되는 단백질의 하나가 포도린이라는 단백질로 이것은 뉴런 돌기의 주요한 구성재료이다. 칼파인이 포도린을 분해하기 시작하면 신경전달물질의 하나인 글루타민산과 결합한 리셉터가 노출된다는 것이다. 글루타민산은 해마의 뉴런끼리 신호를 서로 교신하는데 필요한 신경전달물질인데 글루타민산의 리셉터가 늘어나면 시냅스 뒤의 뉴런이 글루타민산에 대하여 반응하기 쉽게 된다.
이런 상태의 시냅스 뒤의 뉴런을 다시 전기자극하면 뉴런 속에 다시 많은 양의 칼슘이온이 흘러든다. 그리고 칼파인이 활성화하여 또 포도린을 분해한다. 린치박사에 의하면 이 시점이 되면 "단백질의 골격이 무너져버리기 때문에 뉴런의 모양도 자유롭게 변한다"는 것이다.
뉴런의 모양이 변하면 뉴런끼리의 새로운 결합도 생길 것이다. 이 일련의 반응이 기억의 메커니즘이라고 볼 수 있다고 린치박사는 보고 있다. 그리고 뇌속에서도 서술적 기억에 관계하는 부위(해마)에서 특히 이런 구조가 가장 잘 기능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두 종류의 기억에 두 종류의 화학반응
서술적 기억이 해마에서 형성될 때 거기서 무엇이 일어나고 있을까. 이것을 연구하는데 장기활부화는 좋은 모델이다. 그러나 살아있는 동물의 뇌 속에서의 기억형성에 실제로 칼파인이 관여하고 있다는 증명이 없으면 앞에서 설명한 칼슘―칼파인―포도린 이론도 해마의 뉴런에서 이따금 발생하는 생화학반응의 하나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린치박사는 서술적 기억에서의 칼파인의 역할을 확실히 하기 위해 로이펩틴이라는 화학물질을 작용하여 보았다. 로이펩틴은 칼파인이 포도린을 분해하는 것을 저해하는 작용을 한다. 린치박사는 쥐에 작은 펌프를 달아 이 화학물질이 뇌 전체에 순환하도록 했다.
그 결과 쥐의 섭식 물마시기 수면 등의 행동에 아무 변화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복잡한 미로시험에서는 정상적인 쥐라면 아무 것도 아닌 정도의, 어느 루트를 가면 먹이를 찾을 수 있는가를 기억할 수가 없게 되어버렸다. 해마와 편도핵을 떼어낸 쥐에서도 같은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린치박사는 이렇게 설명한다. "쥐가 미로를 뚫고나가는 능력은 진화과정에서 획득한 것임은 분명하다. 정상적인 쥐는 필사적으로 미로테스트에 도전하여 곧 빠져나갈 길을 찾아내게 된다. 그러나 로이펩틴으로 처리한 쥐는 전혀 어떻게 할 수 없게 되어버린다. 이런 점에서 서술적 지식의 습득에서는 칼파인과 그에 의한 시냅스의 변화가 중요하다는 추론이 성립된다"
그러면 조작적 기억 쪽은 어떻게 되어 있는 것일까. 몇몇 연구팀이 이 형의 기억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뉴런이 새로운 단백질을 합성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래서 린치박사는 쥐를 2개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의 뇌 속에는 단백질합성을 저해하는 아니소미오신이라는 화학물질을, 다른 쪽에는 로이펩틴을 주입했다. 이 2 그룹의 쥐에게 조작적 과제인 쇼크기피 학습능력을 테스트한 결과 역전 되었다. 즉 로이펩턴으로 처리한 쥐는 처리하지 않은 쥐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학습했는데 아니소미오신을 주입한 쥐의 성적은 심할 정도로 나빴다.
결국 서술적 기억에서는 칼파인이 두드러지게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조작적 기억에는 단백질합성을 동반하는 미지의 반응의 연쇄가 관여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두 가지 화학시스팀은 서술과 조작이라는 2종의 행동시스팀의 성격에 잘 맞는다. 조작적 기억이 형성되는데는 상당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지만 단백질합성도 생화학반응으로서는 천천히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서술적 기억의 형성이 빠른데 대응하여 칼파인―포도린반응도 생화학적으로는 상당히 빨랐다.
이렇게 하여 서술적 기억에 대하여 타당한 분자모델을 발전시킬 수 있게 된 것은 분명히 하나의 전진이다. 그러나 린치박사에 의하면 그의 분자모델만으로는 우리가 어떻게 배우고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아직 알 수 없는 점이 많다고 한다.
그는 말했다. "인간의 지적사고에 도전하는 데는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협력하여 지혜를 짜내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어쨌든 도전은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2~3년 사이에는 기억의 본질에 관한 철학적 논의가 서구사상의 큰 테마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철학에 흥미를 가진 사람들의 관심이 진화를 향하고 있었지만 앞으로는 기억이 그 위치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기억은 어디에서 처리하고 어디에 저장되는가
눈으로 들어온 시각정보는 후두부의 제1차 시각영역으로 들어간다. 정보는 거기에서 2개의 다른 경로로 동시에 보내져 처리된다. 측두엽에 보내진 정보는 물리적 성질(크기 모양 색)을 판단하고 두정엽으로 보내진 정보는 공간적 성질(물체상호의 위치관계)을 처리한다. 그리고 측두엽과 두정엽으로부터의 정보는 기억저축장이라 생각되고 있는 해마와 편도핵으로 보내진다. 해마나 편도핵을 떼어내버려도 주위의 것을 이해할 수는 있으나 기억을 할 수는 없게 된다.
기억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해마의 뉴런에 자극을 주면 뉴런의 돌기가 변형한다. 먼저 최초의 전기자극으로 뉴런에서 방출된 신경전달물질이 그림과 같이 다른 신경돌기 위의 리셉터에 결합한다. 이것이 방아쇠가 되어 칼슘이온이 뉴런 속으로 흘러든다. 칼슘이온이 보통때는 잠자고 있는 효소 칼파인(오렌지 색)을 활성화하여 이 칼파인이 돌기구성단백질인 포도린을 분해하고 다시 전기자극을 가하면 점점 포도린이 분해하여 그림처럼 수많은 리셉터가 나타난다. 리셉터의 수가 늘어나면 칼슘 유입도 늘어 다시 많은 칼파인이 활성화하고 포도린분해가 한층 진전된다. 대량의 포도린이 없어진 결과 돌기는 변형 되어버려 새로운 돌기가 나타난다. 이런 변화에 따라 뇌 속의 뉴런끼리 사이에 새로운 결합이 생겨 기억이 형성되는 것이다.
기억의 복잡성
도대체 기억이란 어떤 것일까. 이 문제의 복잡함을 나타내는 예로서 '사과'라는 말을 예로 들어 보자. 이 단순한 말에서 뇌가 얼마나 많은 정보나 개념을 끌어내는가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사람의 뇌가 사과에 대해 만들어 내는 기억은 빨갛고 베어먹을 때 사각사각하며 맛있는것 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과=빨갛다, 사과=사각사각 하는 것, 사과=먹는 것이라는 세 가지 개념이 각각 다르게 기억되어 있다.
빨갛다든가 하는 여러가지 개념의 하나하나가 각각 독자의 기억으로 저장되어 있다는 것은 실어증환자 연구로 뒷받침되고 있다. 그 전형적인 예가 뇌의 좌측 졸중으로 쓰러진 M.D.라는 35세의 남자다. 그의 실어증은 처음에는 중증이었으나 1개월이 지나자 거의 회복되었다.
노리개 도구 동물 몸의 각 부분 식기 색 옷 등 여러가지 것을 사진이나 실물로 보이고 그 이름을 말하게 했다. 그는 어느것이나 쉽게 말했으나 과일과 채소를 보이면 입이 닫히고 말을 못했다.
그러나 M.D.는 과일과 채소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여러가지를 보이고 "어떤 것이 사과입니까"하고 질문하면 분명히 사과를 지적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사과에 대하여 설명을 하라고 하면 정확히 설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M.D.는 사과에 대한 많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무엇입니까"하는 포괄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답을 할 수 없는 것이다. 바른 명칭을 선택하기 위한 기억에 접근하는 기능에 장해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뇌가 여러가지 각각의 정보를 단편으로 저축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생각해내기 위한 테두리에 맞춰서 정보를 조직화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