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아연석(菱亞鉛石)으로 불리는 광물의 영어 이름은 ‘스미스소나이트(smithsonite)’다. 이미 눈치 챈 독자들도 있겠지만, 미국 스미스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이름과 유래가 같다. 영국 화학자이자 광물학자인 제임스 스미스슨의 이름을 딴 것이다. 능아연석은 1832년 이극석(異極石)이라는 광물과 구분되기 전까지는 ‘이극광’으로 불렸는데, 1802년에 이극광을 처음 발견한 사람이 바로 스미스슨이다.
스미스소니언 박물관과 능아연석
스미스슨은 프랑스 태생이지만 국적은 아버지의 나라인 영국이다. 옥스퍼드대에서 화학과 광물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년 뒤 22세의 나이에 영국 왕립학회 회원이 될 만큼 학문적 재능이 대단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그는 죽기 3년 전 유언을 남겼다. ‘유산은 조카에게 주되, 만약 조카에게 상속인이 없을 경우 미국 워싱턴에 지식의 확장과 확산을 위한 연구소를 설립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스미스슨의 조카에게도 상속인이 없었고, 50만 달러가 넘는 재산과 책, 연구노트, 광물 수집품들이 미국에 기증됐다. 이 금액은 당시 미 연방정부 전체 예산의 66분의 1에 해당할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30년 뒤 미국이 러시아로부터 사들인 알래스카 주가 720만 달러 정도였으니 스미스슨이 남긴 유산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유산은 미국에게 특별한 선물이 됐다. 미 정부는 그의 유지를 잘 살려 미국인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깊고 넓은 지식을 제공하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을 1881년 건립했다.
1905년에는 이탈리아 제노바의 영국인 묘지에 안장돼 있던 스미스슨의 시신을 미국으로 가져와, ‘미국의 위대한 후원자’란 이름과 함께 스미스소니언 연구소의 예배당 지하에 안치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스미스슨은 최고의 박물관과 광물에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새겨놨다.
‘광물수집가의 성지’ 추메브 광산
사진 속 능아연석의 고향은 추메브 광산이다. 추메브 광산은 아프리카 남서부 대서양 연안에 자리 잡은 나라인 나미비아의 북부에 있다. 구리, 납, 아연, 은, 게르마늄 등의 광물이 주로 채굴된다.
지금까지 추메브 광산에서는 3000만t(톤)에 이르는 광석이 채광됐다. 추메브광산에서 나온 광석은 별도의 분리 과정없이 바로 제련소로 보낼 수 있을 만큼 품질이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 희귀하고 특이한 광물들이 산출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여기서 채굴되는 광물 243종 가운데 56종은 추메브 광산에서만 볼 수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7개 원소가 발견된 스웨덴 이테르비라는 작은 마을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원소의 성지’로 불리는 것처럼, 추메브 광산은 ‘광물 수집가의 성지’로 불린다. 지금은 대량 상업 채굴이 끝났지만, 신생 광산업자들이 소규모 채광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사진(144쪽)의 능아연석은 능아연석 중에서도 아주 특이한 생김새를 가졌다. 지구 지질 활동의 긴 역사를 따라 4~5번의 변화 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 구리의 탄산염 광물인 남동석 결정이었다가, 지질 변화 과정에서 남동석은 빈 껍질만 남고 내부는 용해됐다. 이후 알 수 없는 지질 활동으로 충격을 받아 그 껍질이 쪼개졌다. 그런 뒤 능아연석으로 치환 되면서 쪼개진 뚜껑이 간신히 경첩처럼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오랜 세월에 걸쳐 신비한 광물을 창조한다. 지질학자라고해도 광물이 겪은 모든 현상을 세세히 밝혀낼 수는 없다. 때로는 상상과 유추의 힘을 빌린다. 그게 바로 자연의 신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