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게임으로 과학 한 판!’ 연재는 이번 달로 마무리됩니다. 함께 고속도로도 만들고 쌀농사도 짓고 테라포밍도 함께 해 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화성 테라포밍 특집 기사를 읽고 나니 직접 화성에 생명을 심어보고픈 마음이 들지 않나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게임으로 과학 한 판!’ 연재 마지막 회에서는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게임, ‘테라포머스(Terraformers)’를 해봅니다.
서기 2050년, 지구는 인구가 급증하고 환경 오염이 심해지며 살기 힘들어졌고, 인류는 행성 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그곳은 바로 화성! 테라포머스는 테라포밍을 다룬 여느 게임처럼 초라한 정착지 하나로 시작합니다. 저는 도시 이름을 지구에서의 추억을 담아 ‘행운동 주민센터’로 짓겠습니다(기자가 사는 동네입니다). 그리고 주변을 탐색하며 물, 타이타늄, 전력 등의 자원을 수집합니다. 실제 화성의 지형이 그대로 구현돼 있어 정말로 화성을 돌아다니는 탐험가가 된 기분입니다. 자원을 모으면서 건물을 짓고, 작물을 키우고(당연히 감자도 있습니다), 주민을 늘리고, 연구를 진행합니다.
생존에 필요한 자원이 쌓이면 테라포밍을 시작할 차례입니다. 이 게임에서 테라포밍은 온도, 산소량, 습도, 대기량 등 네 가지 요건을 맞춰야 진행됩니다. 이산화탄소나 메테인 등의 기체를 뿌려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대기를 두껍게 만들어 행성 지표면에 내리쬐는 우주 방사선을 차단합니다. 수분을 공급하면 박테리아나 지의류 같은 단순한 생물이 살 수 있고, 이들이 광합성을 하면서 산소량이 증가합니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지구과학 등 다양한 각도에서 테라포밍을 고민해야 하죠.
테라포밍을 실현할 환상적인 아이디어도 여럿 등장해 제 기분을 설레게 했습니다. 화성이 너무 추워? 화성에 화산 활동을 일으켜서 대기에 이산화탄소를 공급하자! 물이 부족해? 그러면 토성의 고리나 위성 엔켈라두스에서 얼음을 떼와! 산소가 희박하다고? 유전자 조작한 남조류를 퍼뜨려! 한 편의 SF소설을 읽는 듯한 경이로운 기분입니다.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찾게 될 테라포밍의 윤리
화성을 개발하고 테라포밍을 진행하면서 화성의 모습은 점점 변해갑니다. 어느 정도 수분이 공급되자 고도가 낮은 북반구 지역에 바다가 생겼습니다. 남반구의 헬라스 분지도 거대한 호수가 됐죠. 미국의 SF작가 킴 스탠리 로빈슨의 작품처럼 ‘붉은 화성’에서 ‘푸른 화성’으로, 다시 ‘초록 화성’으로 변해가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탐사했던 화성의 황량하고 아름다운 지형이 물에 가라앉는 광경을 보며 어느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테라포밍이란 이름 아래 해왔던 행동이 실은 파괴일 수 있다는 섬뜩한 자각이었죠.
그곳이 아무도 없는 빈 땅이라면 우리는 마음대로 개발하고 파괴하고 모습을 바꿔도 될까요? 몇몇 천문학자와 철학자, SF작가들은 다른 세계를 테라포밍하려는 시도가 윤리적인지 논쟁합니다. 이 문제를 ‘테라포밍의 윤리’라 부르죠. 테라포밍 옹호자들은 인류와 지구 생물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떠나고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테라포밍 반대자들은 테라포밍이라는 발상 자체가 제국주의적이라고 비판합니다. 화성을 테라포밍하는 탐험가들은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아시아 대륙을 착취한 과거 유럽의 식민주의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이들은 테라포밍이 인간 중심적인 발상이며, 외계의 고유한 환경을 파괴한다고 비판합니다.
테라포머스에서는 이런 문제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탐험 도중 종종 아름다운 수정 동굴과 마주치게 됩니다. 이때, 동굴 속 광물을 채취해 자원으로 쓸 수도 있고, 동굴을 자연유산으로 보존할 수도 있죠. 개발과 보존의 선택을 직접 해야 하는 겁니다. 당장 목숨이 경각에 달린 정착 초기라면 자원으로 써야겠지만, 여유가 있다면 동굴을 보존할 수도 있죠. 여러분의 선택에 화성의 미래가 달려있습니다.
테라포머스는 과학적 사실과 SF적 상상력, 테라포밍의 윤리에 관한 고민까지 다층적으로 담아낸 게임이라는 것이 제 감상입니다. 탐험이 정복과 착취와 동의어였던 시절에서 우리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까요. 테라포밍이 끝나자, 화성은 사슴이 뛰노는 푸른 행성이 됐습니다. 기분은 뿌듯하지만, 어쩌면 저는 가끔 황량한 붉은 행성을 그리워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