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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겨울지내기

겨울눈(芽)으로 추위를 견딘다

유난히도 추운 한국의 겨울 날씨를 식물들은 용케 참아낸다. 동물들과는 달리 제 자리에 서서 추위와 맞서야 하는 용감한 식물들의 이야기.

우리나라는 겨울이 몹시 추운 곳이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기온을 같은 위도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우리나라의 겨울이 얼마나 추운지를 알 수 있다(표1). 아래 표에 의하면 비슷한 위도에 있는 중강진과 로마의 1월 평균기온의 차가 27.8℃나 되며, 신의주와 뉴욕에서는 그 차가 9.8℃, 서울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13.6℃나 된다.

이와 같이 추운 겨울이 되면 자유로이 이동할 수 있는 동물은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간다. 또 뱀 개구리 같은 동물은 땅속에 들어가서 겨울내내 동면을 한다.

그러나 자유로이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은 추운 겨울을 그 자리에서 견디지 않으면 안된다.
 

(표1)우리나라와 같은 위도에 있는 다른 나라와의 기본비교


-80℃에서 살아 남는 식물도
 

대개 온대지방에 사는 식물은 무서운 추위에도 잘 견디고 있다. 독일에서는 추운 겨울 밤에 나무줄기가 요란한 총소리를 내면서 터진다. 일본의 북해도에서도 나무줄기가 얼어 터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나무줄기가 얼어 터졌다는 소리를 듣지못하고 있다.

그런데 낮은 온도에 견디는 정도는 식물에 따라 다르다. 어떤 식물은 0℃ 이상의 온도에서도 상해(傷害)를 입는다. 그런가 하면 어떤 식물은 나무줄기가 얼어도 견딜뿐만 아니라 -62℃에서도 살아남는 것이 있다.

식물학자 사카이(Sakai)에 의하면 북미의 록키산에 사는 송백류(松栢類)는 -80℃에서도 견디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추운 곳으로 알려진 시베리아의 베르호얀스크 지방에도 수목이 울창하며 거기에는 침염수외에 포플라, 자작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다.

또 추위에 견디는 정도는 같은 식물에서도 생장의 시기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수목류(樹木類)의 싹모(seedling)는 늙은 나무에 비하여 추위에 약하다. 초목류(草木類)는 그 반대로 어린싹모일수록 추위에 강하다.

우리는 겨울에 또 이른 봄에 민들레 냉이 토끼풀 달맞이꽃 질경이의 어린 싹모가 땅가에 착 붙어서 살아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다. 또 가을에 파종한 밀보리가 싹모로 겨울을 지내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 식물을 죽게하는 온도를 살펴보면 (표2)와 같다.

 

(표2)식물을 죽게하는 온도(치사온도)


겨울눈은 정상 위치를 늘 고수해

우리나라의 초목류(草木類)는 겨울에 기온이 0℃ 이하로 내려가면 지상부(地上部)가 시들어 죽는다. 대신 다년생(多年生)일 경우에는 땅 또는 땅속에 겨울눈(冬芽)을 남기고, 일년생(一年生)일 경우에는 종자로 겨울을 지낸다. 한편 나무종류(樹木類)중 활엽수는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눈만 남은 앙상한 가지로 겨울을 지낸다.

겨울눈(冬芽) 속에는 보드라운 생장점이 있는데, 그것이 이듬 해에 잎 가지 꽃으로 발달한다. 만약 이 생장점이 상해를 입는다면 그 식물은 더 이상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다. 생장점을 추위에서 보호하기 위하여 겨울눈은 여러 겹의 털껍질로 싸여 있게 된다. 겉껍질은 납(蠟·wax) 수지(樹脂·resin) 등으로 덮여 있어서 외부의 극단의 온도를 막을 수 있다.

다년생 초목류의 땅속줄기에 달려있는 겨울눈은 땅이 녹으면 땅속을 뚫고 지상으로 나와서 자라게 된다. 그런데 만약 땅속에 있는 겨울눈이 정상적인 깊이에 있지 않고 좀 더 깊이 있거나 좀 더 얕게 있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

어떤 이유로 지면에 흙이 덮여서 겨울눈이 정상보다 더 깊이 묻히게 되면 겨울눈의 순(싹)은 먼길을 걸어서 나와야 한다. 이렇게 흙을 뚫고 나오는 동안에 여름마저도 지나고 말 것이다. 그와 반대로 겨울눈 위의 흙이 파헤쳐져셔 겨울눈의 땅속의 위치가 정상보다 지표면 가까이 있게 되면 싹은 지상으로 빨리 나오게 된다. 그러면 늦서리의 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래서 땅속에 있는 겨울눈은 언제나 정상 위치에 있기 마련이다. 만약 더 깊이 있을 경우에는 겨울눈이 비스듬이 위로 자라서 정상의 위치를 취한다. 더 얕게 있을 경우에는 비스듬이 밑으로 자라서 정상의 위치를 고수하는 것이다.

그 예로 땅속줄기를 갖고 있는 둥굴레는 그의 겨울눈이 스스로 자기의 위치를 알아차린다. 좀 위쪽에 놓여있으면 비스듬이 아래로, 좀 얕게 놓여있으면 비스듬이 위로 자란다는 것이 라운키어(Raunkiaer)에 의하여 실험적으로 증명되었다.

과냉각으로 버티는 식물들

그러나 나무의 어린가지나 도토리 박 감자같은 것은 추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으므로, 따로 추위 대비가 필요하다.

먼저 나무들의 어린 가지는 수액(樹液)이 많아서 모진 추위에 얼기 쉽다. 사실 나무의 줄기나 가지는 겨울에 꽁꽁 얼어서 단단하기 짝이 없다. 나무통을 도끼로 쳐도 도끼가 탕탕 튈 정도이다.

그러나 그러한 줄기나 가지는 겨울이 깊어감에 따라 점점 수분이 줄어들면서 사정이 달라진다. 수액의 농도가 커지기 때문에 어는점이 내려가서 수액은 좀처럼 얼지 않는다. 소위 나무가지가 경화(硬化·hardening)되어서 웬만한 추위는 넉넉히 견딜 수가 있다.

기온이 몹시 내려가서 나무통이 얼게되면 남아있는 수액은 얼게 된다. 그러나 목재(木材)와 결합된 물은 얼지 않으므로 나무는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를 과냉각(過冷却·Super Cooling)이라며 하며, 과냉각에 의하여 식물은 상당한 저온(-89℃)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 식물이 어느정도까지 과냉각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면(표3)과 같다.

그런데 과냉각은 곤충에서 흔히 볼 수 있으나 고등식물에서는 매우 드물다. 대부분의 곤충은 성충이나 유충이 모진 추위에도 얼지 않고 겨울을 지낸다. 이것은 과냉각이 잘 되기 때문이다.

과냉각될 때 물이 얼마나 남을 수 있느냐는 모세관의 지름에 반비례한다. 즉 세포가 작을수록 과냉각이 잘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포가 작은 곤충이 세포가 큰 고등식물보다 더 과냉각 될 수 있는 것이다.

겨울을 지난 도토리 밤 감자같은 것은 매우 달다. 즉 이것들은 저온이 계속됨에 따라 세포액 속에 당분(suger)이 많이 생겨서 맛이 단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식물은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 이러한 당분의 증가는 나뭇가지나 다년생 초본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른 봄에 산에 가서 달콤한 송피(松皮)를 벗겨 먹었으며, 개울가에서 반디나물의 달콤한 뿌리를 캐먹은 기억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표 3)식물이 자연상태에서 얼마나 과냉각될 수 있나늘 관찰한 것


겨울철에 풀이 시드는 사연

산과 들의 풀들은 겨울이 되면 누르스름하게 색깔이 변하고 시들어서 마치 잠자는 것처럼 보인다. 여름에 꼿꼿이 위로 뻗쳐있던 붓꽃의 잎도 겨울에는 힘없이 땅위에 털썩 주저 앉아 있다. 꽁꽁 얼어 붙은 땅위에 서 있는 가을보리 겨울배추 제비꽃 등도 비슷한 상태를 나타낸다.

이처럼 시드는 원인은 무엇인가? 낮은 온도에서 뿌리는 물을 천천히 빨아 올리지만 잎은 비교적 많은 물을 날려보낸다. 그러므로 식물 몸 속에는 물이 부족, 땅위에 있는 기관의 팽압이 줄어든다. 이것이 시들기로 나타나는 것이다.

겨울에 낮은 온도가 계속되는 동안에는 식물 몸 속에 있는 용액은 대부분이 얼음으로 변한다. 이로 인해 물의 이동은 크게 방해된다. 특히 담배 붉은강남콩 표주박같은 열대식물은 0℃ 이상되는 낮은 온도에 대하여도 단단히 예민, 곧 시들어 버린다. 이러한 낮은 온도에 오랫동안 있으면 시들어서 결국 죽고 마는 것이다.

식물은 언제 죽는가

식물이 0℃ 이하의 퍽 낮은 온도에 계속 노출될 때에는 그의 용액이 대부분 얼음으로 변한다. 예컨대 겨울의 추위에 노출된 감자는 돌같이 굳어진다. 얼음이 녹을 때 감자는 상당히 하얗게 되며 동시에 물을 내보낸다. 감자가 이미 얼어죽은 상태이다. 또 얼음이 녹음에 따라 각 기관 속의 물이 빠져나와 하얗게 보이는 것이다.

다알리아 표주박 오이 그밖에 다른 식물의 잎은 겨울에 얼음이 굳게 형성되기 때문에 죽는다. 그리고 얼음이 녹음을 따라 하얗게 되며 시든다. 동사(凍死)의 원인은 낮은 온도가 아니라 얼음의 형성인 것이다.

얼음은 먼저 세포의 바깥 벽이나 세포의 틈에 형성된다. 세포 틈에 있는 물이 매우 순수해서 온도가 어는점 이하로 떨어지면 제일 먼저 어는 것이다. 얼음이 형성되면 세포내의 물이 빠져나오게 되므로 원형질은 물을 잃게 된다. 그로 말미암아 단백질이 침전되어 결국 죽게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동사(凍死)는 주로 원형질이 많은 물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일어난다. 몰리스히(Molisch)박사는 현미경으로 세포간격에 얼음이 형성되는 것을 직접 관찰하였다. 또 세포에서 물이 빠져나와서 얼음이 점점 커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그래서 그는 식물의 동사(凍死)는 탈수(脫水)에 의한 건조사(乾燥死·말라 죽는 것)와 같은 것이라고 갈파하였다.

그렇다면 식물은 녹을 때에 죽는 것이 아닌가?

이 문제는 많이 토론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아직 많은 사람들은 식물은 얼때에 죽는 것이 아니라 녹을 때에 비로소 죽는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언 식물을 천천히 녹일 때에는 살지만, 빨리 녹이면 죽는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이 맞는 경우도 있으나 몇몇 예외라고 볼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용설난, 어떤 사과 종류 등은 겨울에 꽁꽁 어는데, 천천히 녹이면 살릴 수 있으나 빨리 녹이면 살릴 수 없는것이다.

일반적으로 식물은 얼 때 죽는다. 하지만 죽은 식물이 살아나는데 있어서 빨리 녹이느냐 천천히 녹이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대개 우리나라는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들면서 점진적으로 기온이 내려가므로 식물은 자연히 경화된다. 따라서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지 않는한 식물의 생사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극한(極寒)의 경우도 가끔 예상이 되므로 이에 대한 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컨대 배추의 뿌리가 예년보다 땅속으로 깊이 들어가거나 개구리나 뱀이 깊이 묻혀 겨울잠을 자는 경우, 그해 겨울이 몹시 추울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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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02월 과학동아 정보

  • 김준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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