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틀과 흙이 준비되고 가족들이 모여 2,3일쯤 작업하면 20평 규모 집의 벽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문명의 발상과 함께 메소포타미아 유역에 형성된 최초의 도시들중 하나인 바빌론은 흙으로 축조됐으며, 유명한 바벨탑(약 90m)도 2천7백여년전 역시 흙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흙으로 축조된 고대의 도시들
또 인류가 최초로 건설한 마천루의 소재가 흙이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것인가. 인류의 3분의 1 이상이 아직도 흙집에서 거주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일류는 1만년 이상을 흑집에서 살아온 반면에 지금 우리들이 유일한 건축자재로 생각하고 있는 시멘트 철골 알미늄 기타 석유화학계열의 부산물 자재들은 기껏해야 1세기 전후해서 발명되었고 세계건축시장을 석권한 것은 2차대전후부터였다. 아직 반세기도 채 못되는 역사를 지니고 있을 따름이다.
이들 새로운 건축자재들은 생산과정에서 에너지의 소모가 막대하다. 예를 들어 벽돌 현장을 굽는데 2KW/h가 소모된다면 같은 크기의 흙벽돌을 약간의 시멘트를 첨가해 굳히는 경우에는 0.05KW/h, 즉 40분의 1 정도의 에너지를 소모할 뿐이며, 시멘트를 섞지 않은 순흙벽돌은 에너지소모가 거의 없다고 하겠다.
전통건축이 기후조건에 순응하는 자연적인 해결책을 모색한 것이었다면 현재 문명시대의 건축환경은 에어컨 보일러 환풍기 심지어는 가습기까지 동원해야 하는 인공적인 삶을 강요하고 있다.
노인들에게 토담집에 대해서 물어보면 "흙집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했지"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 시대의 노인들이 경험했던 이같은 전통적인 흙집은 짧은 세월동안에 망각되고 단절돼온게 사실이다. 이는 우리나라 기후풍토에 콘크리트문화가 가장 적합한 것이기 때문일까,아니면 흙은 이미 현대문명을 수용할 수 없는 낙후된 재료이기 때문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은 여러가지 차원에서 검토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세가지 측면에서 흙에 의한 건축을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흙건축을 고려하는가
첫째로 감상적이고 양식론적 시비에 그쳐왔던 전통건축의 연구는 그 시각을 기술적 차원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전통건축에 내재하는 건축기술의 재발견을 통하여 현대적 삶에 유익하게 재현될 수도 있는 가능성을 모색해야 현실적 의의가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흙건축 기술의 현대적 개량이 대표적인 예라고 하겠다.
둘째로 흙건축은 에너지 절감과 공해요인의 제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공사비를 절감할 수도 있는 건축소재라는 점이다. 이는 오늘날 심각히 제기되고 있는 주택보급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시사해주는 바가 크다.
세째로 도시는 물론 농촌에 이르기까지 콘크리트 시멘트 페인트 등 획일적으로 채색된 환경이 심각한 시각공해현상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흙건축의 건강성이 돋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시점에서 어떤 흙집을 지을 수 있을 것인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전에 우선 흙집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관념, 즉 흙집은 궁핍한 하찮은 빈민들의 집이라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실상 흙 그 자체는 가난이라든가 궁색하다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농민이 가난했던 것은 흙집에 살았기 때문이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여러 요인들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오히려 흙 그 자체는 떳떳함과 포근함의 상징으로서 현대인의 슬기로운 삶을 가능케 해주는 재료로 인식될 필요가 있다.
현재까지 세계에는 20여가지의 흙을 사용하는 축조방식이 있어왔다. 커다랗게는 흙을 가공한 방식과 자연상태를 변형, 동굴집으로 사용하는 원시적 방식이다. 전자는 다시 물을 섞어 사용하는가 아닌가에 따라 세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액체상태, 반죽한 상태, 또는 물을 섞지 않고 흙이 함유한 적절한 수분 상태만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이것을 다시 사용형태별 구조로 본다면 커다랗게 흙벽돌(adobe)조, 직접 붙이기 방식, 심벽(torchis)조, 그리고 토담조(pisé)로 분류해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심벽구조와 토담구조만이 통용되어 왔었다. 흙벽돌이 사용되지 않았던 것은 구운 벽돌의 사용이 금세기초 서울 명동성당건립에서가 처음이었듯이(물론 고대에 전돌이 있었긴 하지만) 근래에 와서 일부 농촌지역에서 일반화되었을 뿐이다. 그것도 간이건물에 사용하였는데, 대체로 그 위에 흙으로 미장한 것을 토담구조로 혼동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심벽이란 우리들이 가장 많이 접해온 것으로 목구조 가옥에서 양기둥 사이를 옥수수대나 대나무 또는 나뭇가지로 성글게 엮은 뒤 흙에 짚을 섞어 물로 재어 바른 다음 새벽칠로 마감한 벽을 지칭하는 것이며 때로는 회벽으로 마감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토암조는 심벽과는 달리 '흙' 그 자체가 가옥의 구조체이면서 벽체였기 때문에 흙을 본격적으로 건축에 사용한 예라고 하겠다.
토담집의 장점
바로 이러한 토담집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그릇되거나 각광받지 못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그속에 살던 사람들이 대체로 가난한 농민들이거나 천민이었기 때문에 조금이라고 경제적 여유나 신분의 변신이 있을 때에는 목구조로 전향했으며 무엇보다도 토담을 칠 수 있는 담틀이 양반들, 또는 마을의 부농의 소유였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어쨌든 중동지방 특히 모르코나 기타 예맨지역 그리고 프랑스 리용지역과 남미의 페루 등지에서 크게 활용되었던 토담구조는 우리나라에서 별다른 발전을못보았는데 프랑스의 경우 이 건축방식은 서민주택은 물론 2, 3층 이상의 주택에서도 빨리 지을 수 있으며, 가격이 저렴하고, 나무사용을 억제하고, 단열효과가 높고, 오래돼 허문 후에는 비료로 사용할 수 있고, 내화성과 내구성이 뛰어난 것으로 이미 18세기말에 보고된 바 있었다.
이상에서 열거한 토담집의 장점중에서 비료로 사용한다는 것 이외에는 모두 입증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11월5일부터 12일까지 서울 마포의 출판단지내에서 전시했던 토담과, 이를 축조하는데 사용했던 담틀제작 등을 통해 현대에 있어서도 흙집을 간편하고 신속하며 저렴하게 지을 수 있는 방식이 바로 토담구조임을 체험한 바 있다.
물론 100% 흙으로만 짓기에는 우리나라의 기후조건상 불합리하다. 현대생활에 맞는 난방·위생설비 및 전기배선 기타 창호공사 등을 감안해야겠지만, 6자길이(1.8m)의 담틀이 준비되고 적절한 흙(모래질이 40∼50%, 점토질이 25∼30%, 실트질이 15% 안팎 비율의 것으로서 물은 섞지 않는다)만 주어진다면 식구들과 친지들이 모아 2∼3일이면 20평 정도의 집에 필요한 벽체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흙별돌을 제작하여 건조하려면 충분한 시간과 넓은 장소를 필요로 하여 흙몰탈을 사용하는 미장이의 특수한 기술을 필요로 한다. 물론 따로 경비를 들여 해결 할 수도 있겠으나 흙건축 기술이란 '단순성'과 '적은 투자'에 그 장점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기집을 짓는 것으로부터 출발하여야 건축가들과 집장사들로부터 흙건축 기술의 또다른 제도적 횡포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흙건축의 실제
일반적으로 단층집인 경우 토담집의 기초는 전통적 방식이 가장 저렴하고 용이하다고 하겠다. 지면을 '지점돌'로 다지고 한자 정도를 잡석이나 흙으로 다져올려 일종의 기단, 또는 '담부자리'(충남지역에서 통용)를 형성하여 지면의 빗물로부터 벽체를 보호하는 방식이 있다. 또 하나는 보통 쓰이는 콘크리트 줄기초로 하는 방식이 있겠으나 특히 지면에 가까운 벽체의 하단부는 호박돌 치장이나 기타 방수처리에 특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개구부는 창문이나 문틀을 목재로 사용할 수도 있으며 코너부의의 보강을 겸하여 구운 벽돌로 인방부위에 아치를 틀고 수직부위는 어긋나게 쌓아 올릴 수도 있겠다. 이렇게 기초부위와 창틀부위의 흙으로 충족될 수 없는 것은 결국 현대 건축자재와 기술을 이용하되 문제는 흙의 장점을 최대로 살리는 것이 중요하며 이 경우 흙에 대한 특성과 취약점을 올바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흙건축의 현실적 필요와 가능성
흙을 구성하는 고체입자는 입자의 직경과 여러 성분의 함유율에 따라 구분하고 있다. 흙건축의 경우 흙이란 크게 모래질(2∼0.42mm) 점토질(0.05mm이하) 그리고 실트질(0.074∼0.05mm)로 구성되어 있으며 모래질은 강도의 균질도를 높여주며 실트질과 점토질은 상호간의 응집력을 강화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프랑스 페루 등지에서는 흙벽두께에 따른 참고기준치를 압축강도 15∼25kg/㎠ 정도로 규정하고 있으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규정이 없다.
앞으로 공인된 시험소의 시험을 통하여 우리나라 흙성분에 맞는 근거를 만들어야 할 것이나 일반적으로 흙이 가지고 있는 커다란 장점중의 하나인 작은 열관류율과 커다란 방음효과는 필자의 자료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위의 표에서와 같이 토담의 두께를 45cm 정도로 할 경우 열관류율은 0.9kcal 정도로 단열재 없이도 건축법규 기준치(0.5kcal/${h·m}^{2}$℃,중부지역 경우)에 근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적절한 내외 마감재까지를 고려한다면 흙이 가지고 있는 단열효과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단열제로 인하여 건축자재가 '숨쉬는' 것을 차단당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단열효과를 가지며 그 자체가 살아 숨쉬어 쾌적한 실내를 조성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또한 방음효과는 40cm 두께인 경우 500Hz에 대하여 56dB라는 높은 비율로 나타나고 있는 점도 주목할만 하다.
흙의 선별은 시험소를 이용하지 않아도 가능하다. 유기질이 없는 흙을 물병에 담아 흔들어 휴식시킨 뒤 굵은입자(모래질)는 가라앉고 점토질은 상부로 침전되는 단면을 통하여 분포를 계산하면 대략적인 구성비를 알아낼 수 있다. 흙을 손으로 쥐어서 손자국과 함께 형체가 유지되는 정도이면 수분함유량이 적절한 것으로 판정할 수 있다.
가격면에서도 시멘트 벽돌 조적조에 비해 훨씬 저렴하다. 대체로 절반값이 채 못되는 것으로 계산한 바 있다.
흙건축의 가능성 여부는 성급하게 장단점을 나열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실험과 측정 등을 통하여 시간을 갖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며 이 과제를 풀어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첫번째 조건은 위에서도 언급한 것과 같이 흙건축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관 내지는 가치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서 해외의 흙건축 기술을 수용하고 체험을 통한 기술축적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흙건축의 새로운 미래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현대생활에 부응하는 흙집을 실제로 짓는 것이다. 필자는 내년초에 이를 실행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또하나 흙건축이 구조체로서 건축법 규내에 수용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이에 따르는 실험과 절차는 의식있는 사람들의 동참을 필요로 한다고 하겠다. 특히 재개발계획으로 도심을 떠나는 저소득층의 주택문제 해결책으로 이러한 문제를 앞당겨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담틀 한개와 흙만 주워진다면 (물론 땅을 제공한다는 가정하에서) 그들은 쉽게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법규문제와 함께 또 하나의 문제는 기능공의 교육과 양성이다. 이는 기술축적의 기간이 지난 후 수요증대에 따라 틀림없이 대두될 문제이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