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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학·경계학문이 가능성 커

과학 지망생에게 주는 글-학과선택을 앞두고

"만원버스를 피하라. 그곳에서는 고도의 연구성과를 거두기가 무척 힘들다"

대학으로의 진로결정은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다. 고교까지의 학문은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제3자(사회, 국가)에 의해 마련되어 있었고, 본인은 주어진 교육제도에 순응만 하고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대학진학을 결정하는 때부터, 앞으로의 인생의 경로가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대학의 학과선택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것은 그 분야의 학문이 지닌 가능성이다. 오늘의 이 순간에도 사회·경제의 양상은 크게 변하고 있으며, 아무리 가까운 장래일지라도 그 모습을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다. 다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앞날의 변화를 가져오는 가장 큰 요소가 '과학·기술의 혁신'이라는 사실이다.

학문분야도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10년 전부터 컴퓨터분야는 그 잠재성이 예측되어 있었으나 실제 대학에서는 별로 주의깊게 생각되지 않았다. 겨우 전기통신과나 수학과의 한구석을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컴퓨터는 이제 완전히 독립된 분야로 성장, 이 분야에 수요되는 인재는 다른 어떤 과학분야보다 많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현재 인기있는 분야라는 짧은 시각만으로 학과를 선택하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보다는 본인의 '소질'과 '가능성'을 따져야 할 것이다.

●- 변화하는 학문의 세계

1세기 전만 해도 생화학·유전학은 물론, 생물학이라고 불리울 정도의 학문은 없었고, 겨우 동물학·식물학이나 이 둘을 합한 박물학이 고작이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과학분야는 기초과학 공학 의학 농학 정도로만 나누어져 있었다. 기초과학은 수학 생물 물리 화학 천문 정도였었고, 공학은 토목 전기 기계 건축 화학공학 정도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서면서 이러한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이같은 분류만으로는 활발하게 연구되는 새로운 학문을 모두 수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런데, 대학은 비교적 보수적인 면이 강하여, 교육행정이나 학과의 구성면에 있어서 새로운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각 분야마다 겉보기의 학과나 교과과정과는 별도로, 각 학과가 수용할 경계학문이 크게 발달했다. 수학의 경우를 예로 들면 물리학 화학 생물학과 결합한 이론물리학, 생물수학(Biometrics), 경제수학(econometrics) 등의 학문이 형성돼 있다.

무기화학 유기화학으로 분류하는 것도 의미가 없어졌다. 무기물질의 연구가 깊어짐에 따라서 실리콘과 같은 무기화학물질의 연구에는 유기화학의 지식이 필요해졌고, 마찬가지로 유기물질의 연구에서도 물리학과 나란히 무기화학이 큰 영향을 주고 있다. 화학을 유기·무기로 분류하는 고전적인 방법은 새로운 연구에 오히려 부적당한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

종래 심리학은 철학에 포함되거나 아니면 인문 또는 교육학분야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현재에는 생리학과 심리학의 한계도 거의 없어져 가고 있다. 사회학과 행동과학, 논리학은 이제 수학의 중요분야로 전자계산기 분야와 결합되어 있다. 언어학은 분명한 인문과학이지만 지금은 통계학 기법을 크게 이용하고 있으며, 실제로 20세기 최대의 수학업적은 '촘스키'(chomsky)의 수학을 이용한 언어학이었다.

●- 과학적 소질이란 무엇인가


과학·기술의 혁신


출세하여 돈벌고 이름을 남기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일이다. 그러나 열심히 노력한 결과가 자연스럽게 그와 같이 되는 것과, 처음부터 그것을 목적으로 미래의 진로를 선택하는 것과는 크게 차이가 있다.

적어도 과학자가 되겠다는 사람은 후자와 같이 출세지향적이서는 안된다. 노력에 비해서 세속적인 보답을 크게 받을 수 없는 것이 과학자의 길이기 때문이다. '잘 살아보자'란 물욕적인 생각 보다는 '보람있게 살아보자'라는 의지를 지닌 인간이 과학자로서의 첫째 자질이다.

그리스의 한 철학자는 '학문이 생길 때 처음에 놀라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눈앞에 전개되는 여러 현상에 순수한 놀라움을 느끼고, 그 놀라움의 원인을 묻는 강한 지적 호기심이 있음으로써 과학(학문)이 생긴다.

천재적인 과학자 중에는 학교성적이 나쁜 사람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역으로 '과학자는 학교성적이 나쁘다'라는 명제가 성립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평범한 우등생보다는 강한 호기심을 지닌 사람이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자질의 사람은 학교에서 보는 시험에는 약한 경우가 많다. 뉴턴 에디슨 아인슈타인 등은 모두 그런 유형의 사람들이었다.

요즘 고등학교 진학지도의 내용을 보면, 수학점수가 좋으면 대부분 이공계(과학)쪽으로 보내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방법은 편의상의 분류일 뿐이지, 진정한 과학자의 소질은 입시수학성적과는 관계가 없는 것이다.

나는 과학에 소질이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 즉 '나는 지적 호기심이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에게는 과학분야로의 진학을 권하고 있다. 본인의 소질을 살린다는 뜻도 있지만 특히 미래는, 적어도 고교생들이 사회로 첫출발을 할 때쯤이면 과학적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야 훌륭한 사회의 일꾼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가오는 시대가 급격히 변화할 것이라는 지적은 많은 학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저명한 미래학자들이 그 변화를 두고 '불확실성의 시대' '단절의 시대'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극적인 표현이 내포하고 있는 뜻은, 현재의 상황에서 내일의 양상을 정확히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탈공업사회니 정보화사회니 하는 말들이 많이 쓰이고 있다. 일정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지식·정보의 생산이 주가되는 사회이다. 유형(有形)의 물건이 중심이었던 사회가, 무형(無形)의 지식·정보가 중심이 되는 사회로 되어 간다. 이같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이질적인 사회가 우리앞에 다가오고 있는데, 그 주원인은 컴퓨터·통신수단을 비롯한 여러 과학·기술의 혁신에 있는 것이다.

정보화사회에서는 사회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 체계화가 시도되어야 하고, 각 요소 사이의 관계는 수학적 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어떤 대상에 대해서도 과학적 사고·과학적 분석이 상식화된다. 이 사회의 중심적인 인물은 과학자이며, 실제로 공업사회에서의 노동자 만큼이나 많은 수의 과학자가 필요하게 된다.

●- 다양해지는 과학자의 영역

과학자의 길은 다양하다. 지금까지 과학자라면 흰 가운을 입고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모습을 가장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세계의 각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딴 과학자들의 진로를 살펴보면, 사회의 각 분야에도 파고 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육에 주력하는 사람, 연구소에서 한분야만 연구하는 사람, 실업계의 관리자는 물론 행정가, 저술이나 TV매체를 통하여 계몽적인 일을 하는 사람,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 등 이들의 사회 위치나 영향력은 지금까지 생각되어온 상식의 범위를 넘어서 매우 다양한 것이다. 일류대학의 교수직에 있던 학자가 TV강의를 맡음으로써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어 낼 수 있었고, 과학잡지의 편집인으로 전향한 사람도 있다.

또 연구소의 같은 연구원이라 해도 실질적으로 저마다 수행하는 연구내용이나 관련업무 등에는 큰 격차가 있는 것이다. 과학자의 일은 결코 연구실에서 정해진 일에 골몰하는 것만은 아니다. 과학적인 교양을 지닌 기업가 정치가 에술가들이 크게 활약할 수 있는 가능성은 앞으로 더욱 더 많아지고 있다. 또한 고도로 세련된 정보 매체는 그 가능성을 확대 시킬 것이다.

●- 기초과학과 기술이 손잡는 추세

과학정책의 입장에서는 '어느 분야가 가장 긴급한가'라는 문제가 늘 대두된다. 하지만 아무도 어느 분야를 우선적으로 해야 한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현상이나 기술혁신으로 전혀 예상 하지도 않았던 분야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지식이 즉시 과학계에 큰 충격을 주고, 그것은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을 각 분야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과학(또는 기초과학)이 중요하다는 주장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순수과학이 큰 경제적 성과를 가져다주거나 새로운 생산적 효과가 있어서가 아니다. 대부분의 과학자가 자신이 좋아서, 구태여 말한다면 취미에 가까운 입장에서 순수과학을 많이 한다. 누가 이용하건 안하건 과학연구의 가능성만을 보고 연구하는 것이며, 후일에 남이 그것을 아용하여 경제적 성과를 얻는다는 것과는 상관하지 않는다.

레이저 연구로 노벨과학상을 수상한 '타운스'(C.H.Townes)는 단언하길, "아무리 훌륭한 과학자일지라도 순수과학의 연구와 응용의 관계를 예측하는 사람은 없다" 고 했다. 그리고 과학자의 특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연구를 하는 데에 있다고 했다.

예컨대 20세기 최대의 발명인 전자계산기 레이저 등에는 뚜렷한 발명가의 이름이 없다. 수많은 과학자가 참여하여 만들어낸 작품이었던 것이다. 이 연구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자기가 맡은 특정한 연구과제에만 몰두했었다. 그러한 각자의 과학업적을 하나의 거대한 작품으로 구성하는 것은 또다른 작업을 낳는다. 이것이 소위 시스팀공학이며 수학자의 수학에 대한 연구도 그런 태도였었다.

천문학자가 새로운 별을 발견했다 해서 그 지식이 곧바로 인간생활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천문학자는 계속 자신의 지적 호기심 때문에 새 별을 찾는다. 기초과학분야로 진출코자 하는 사람은 특히 그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요즘의 과학의 추세는 기초과학분야가 갑자기 기술과 손을 잡는 경우가 흔하다. 이런 점을 감안하여 학부과정에서 기초과학공부를 해둠으로써, 대학원과정에서 많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 기대되는 유망분야


과학연구


앞으로의 과학의 작업은 거대한 과학기구 안에서 여러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 많아진다. 과학의 진로는 실험실이나 연구실에 혼자 결정할 수가 없다.

오히려 많은 과학자들 사이에 어느 정도 그 진로에 대한 공통적인 의견이 모아지고, 그 의견의 흐름 위에서 각자의 연구가 진행되는 것이다.

현재 많은 과학자 사이에 앞으로 중요시 될 것으로 예측되어 있는 분야는 다음과 같다.

우주과학: 지구주변에 행성에 있는 물질의 분석, 행성에 대한 무인탐사기 발사, 태양열 이용, 우주기지 건설, 세계적 교통시스팀, 고성능 신재료 개발, 우주공장→우주선의 대중화(우주공간에서 무중력 상태를 이용한 공간)

지구과학: 화산연구, 지진예측, 해수에서 금속의 채취, 조수발견, 해양도시 건설, 해수의 담수화, 해양온도차 발전소의 개발

생명과학: 암예방, 노인병 퇴치, 대뇌의 생리연구(기억장치 해명), 인공장기의 발명, 유전자의 조작

전자계산기 통신: 인공두뇌, 광섬유의 보급, 5세대의 전자계산기, 로봇공학

유전공학: 광범위한 유전공학의 발전, 농작물·가축의 품질개량

위의 과학분야에서 앞으로 10년~20년 내에 실현될 연구의 결과는 엄청나며, 또다시 거기에서 새로운 개발 가능성이 제기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분명히 짚고 넘어갈 사실은, 위의 과학들이 모두 서로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령, 고성능 로봇연구에 있어서는 인공두뇌의 문제와 그것을 뒷받침하는 수학의 각 이론, 소재개발, 고도의 전자궤도 등 여러 분야가 얽혀 있다.

●- 지원자 몰리는 '만원버스'는 피하라

새로이 대학을 진학, 학과를 선택하는 입장에 있는 학생에게는, 오히려 이처럼 많은 가능성에 당혹스로운 느낌을 받을 것이다. 결국 어디를 택히야 할지 구체적인 답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과학계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람은 거의 어느 분야를 택해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또 아무리 본인이 우수하다 해도 학부과정의 4년 공부만으로는 도저히 전문과학자가 될 수 없다. 어떤 분야를 택하든 어느 수준급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지식과 엄청난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박사과정을 마친 후에도 공부는 계속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평생 동안 연구를 한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과학자를 꿈꾸는 것은 좋은데, 공부·연구 그자체에 즐거움을 갖는 사람에게만이 그 길은 열려 있는 것이다.

학과선택에 있어서 또하나 중요한 점은 '만원버스'를 피하라는 것이다. 아침에 도심의 직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만원버스에 매달려 실려가고 있는 모습이 바로 대학입시 원서접수장이다. 인기학과라면 너나없이 스스로의 소질과는 무관하게 덤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만원버스와 같아서, 인생의 종착점까지 그많은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이른바 인기학과에는 우수한 사람이 집중하므로, 좀처럼 두각을 나타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별로 경쟁이 심하지 않은 과는 열심히만 하면 쉽게 인정받을 수 있으며, 미개척 분야이기에 인재로 발탁되는 기회가 많다.

과학분야는 그 밑뿌리에서 서로 얽혀 있어, 결국 어느 분야로 진출해도 어느 정도의 수준에만 이르면 반드시 빛을 볼 기회가 있다. 그러기에 '만원버스'속에서 심한 경쟁에 시달리지 말고, 스스로의 소질과 재능에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까지 말한 사실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앞으로의 세대는 인문·사회·자연 어느 분야든 과학적 소양을 지녀야 한다.

둘째 과학자·연구자로서의 길을 택하는 사람은 평생 연구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세째 기초과학분야는 직접 기술과 연결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학원 연구과정에서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여유만 있으면 기초과학분야가 뜻밖에 유리할 수도 있다.

네째 경계학문·학제간(学際間)의 학문에 많은 가능성이 있다.

다섯째 미래의 과학분야는 매우 넓고, 어느 분야를 택하든 가능성은 있다. 소질에 맞는, 자신의 호기심과 일치되는 분야를 골라라.

여섯째 만원버스를 피하라, 그곳에서는 고도의 연구성과를 거두기가 무척 힘들다.

1988년 11월 과학동아 정보

  • 김용운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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