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담배는 부분적으로 미흡한 점은 있지만 거의 세계수준에 와있읍니다."
양담배가 어느새 우리의 생활주변에 스며들고 있다. 싼 가격과 광고 공세에 힘입어 하루가 다르게 국내담배시장을 잠식해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켄트'와 '말보로''카멜' 등등 담배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한 느낌이다. 이런 와중에서 국산담배는 과연 얼만큼이나 경쟁력을 발휘해줄 것인지 주목되고 있다. 날로 고급화되는 담배의 품질문제를 중심으로 국산담배의 현주소를 알아보기 위해 대덕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인삼연초연구소 이종화(李鍾華·58)소장을 만나보았다.
-양담배가 수입개방되면서 애연가들 중에는 '역시 양담배맛이 더 좋다'고 하는가하면, '국산담배가 오히려 더 좋은 것 같다'고 하는 등 엇갈린 반응이 나오고 있는데요. 전문가의 입장에서 한마디로 국산담배의 품질수준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사람에 따라 기호가 각기 다르므로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대체적으로 국산담배의 품질은 양담배에 비해 손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도 무방합니다. 저희 연구소에서 가끔 국산담배와 양담배를 구별할 수 없게 한 채 피우게 한 뒤 소감을 물어보는데요. 국산담배쪽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아마 과거부터 양담배 선호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어 일종의 선입견으로 작용돼 양담배를 찾고 있는 게 아닌가 보여집니다."
담배연구소여서 그런지 이종화소장을 비롯한 연구소 간부들 모두가 줄담배를 피우고 있다. 지금 무슨 담배를 피우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88라이트'라고 하면서 양담배는 독해서 못피우겠다고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국산담배의 우수성을 설명해주시지요.
"담배맛을 결정하는 요인중에서 원료, 즉 잎담배의 품질이 중요합니다만, 우리나라의 담배재배조건은 미국의 담배주산지인 노스캐롤라이나 일대에 비해 손색이 없읍니다. 일조량이 많고 비가 적당히 내려야 하는데, 우리의 경우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것이 흠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담배농사에 적합하다고 보겠읍니다. 따라서 잎담배의 품질은 세계적으로도 나무랄 데 없읍니다.
다음으로 필터부분도 담배품질과 관계가 깊습니다. 타르와 니코틴을 여과시키는 기능을 하고 외부의 공기로 담배연기를 희석시킬 수 있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져야 합니다. 현재 반인조섬유인 아스테이트로 필터를 만들고 있는데, 우리는 일부를 수입하고 또 일부는 국내기업에서 만들어 쓰고 있으므로 외국담배와 동등한 수준의 필터를 사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향료 역시 담배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원자재를 전량 수입해오고 있고, 이것을 합성해서 쓰고 있읍니다만 품질수준만큼은 손색없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읍니다. 제조시설도 세계최고수준의 기계를 도입해 쓰고 있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원료에서부터 제조에 이르기까지 최고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부분적으로 국산화가 됐을 뿐 여러 과정에서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게 걸리는군요.
"그렇긴 합니다만 최근엔 국산화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향료만 하더라도 다마스콘이라든가 다마세논 솔라논 등 자체에서 개발한 것들이 특허신청중에 있읍니다. 또 잎담배의 25~30%를 차지하는 줄기를 팽화시켜 과거 국산담배를 피울 때 '작대기'(줄기)가 나오던 현상을 개선한 것도 우리가 기술을 개발, 특허를 낸 경우입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국산담배의 품질은 세계수준에 와있다는 얘기인데요. 그렇다면 언제부터 우리담배가 국제수준에 도달한 것입니까. 한때는 양담배와 경쟁이 안되는 수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담배의 맛이라는 측면에서는 70년대초의 '청자'부터 수준급이라고 하겠읍니다만, 아까 언급한 줄기와 잎의 팽화기술 등이 개발된 70년대말 내지 80년대초에 세계수준급으로 향상됐다고 말할수 있겠읍니다. 60년대 또는 70년대초까지 양담배에 비해 여러면에서 뒤떨어졌어요. 가장 중요한 잎담배만 해도 후숙이 제대로 안된것을 사용해 제품을 만들었어요. 즉, 당시 잎담배가 부족했기 때문에 농민들로부터 잎담배를 수매한 후 2년 정도 숙성시켜야 하는데도 1년만에 제품화하는 식이었어요. 잎담배는 2년 정도 숙성시켜야만 발효가 잘되고 풋냄새를 제거할 수 있거든요.
●-'순한 담배' 만들려니 싱거워져
-국산담배가 양담배에 비해 뒤떨어지는 측면이 아주 없지는 않을 듯싶은데요.
"물론 완벽하게 대등하거나 앞서 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뒤떨어지는 점도 있읍니다. 좋은 예로 필터를 감싸고 있는 얇은 종이(tip paper)에 미세한 구멍이 뚫려 있어요. 88담배의 경우 4백50개의 구멍이 있읍니다. 이 구멍을 통해 공기가 유통되면서 연기를 희석시켜 주게 됩니다. 따라서 구멍이 고르게 적당한 숫자 만큼 뚫려야 하지요. 이 구멍을 외국에서는 레이저 빔을 이용해 정교하게 뚫고 있는데 비해 우리는 전자·전기적인 혹은 기계적인 방식으로 뚫고 있어요. 이는 기술적인 문제라기보다는 돈이 많이 들기때문에 종이 회사에서 꺼려하는 실정입니다."
-종이회사라고 하셨는데, 담배의 제조는 전적으로 전매공사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까.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담배는 여러 협력업체들의 참여로 만들어집니다. 담배를 감싸고 있는 종이, 즉 궐련지를 만드는 회사가 따로 있고, 풀 만드는 회사, 필터 만드는 회사가 각각 따로 있읍니다. 전매공사에서는 주로 잎담배를 다루며, 여러 재료들을 납품받아 최종완제품 생산을 맡고 있어요."
-지금까지 국산담배의 품질문제를 주로 알아보았는데요. 우수한 담배라면 어떤 것을 말하는 겁니까?
"좋은 담배의 기준은 사람에 따라 혹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는 타르와 니코틴의 함량이 적은 '순한 담배'가 인기를 끄는 추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켄트가 양담배의 대명사처럼 되고 있는 것도 바로 켄트가 상대적으로 순한 담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순한 담배를 만들다보니까 담배맛이 싱거워진다는 지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타르나 티코틴이 적으면서 순하고 또 담배고유의 맛도 내는 제품이 좋은 담배라고 할 수 있겠읍니다. 이런 점에서 싱거운 맛을 보완해줄 향료가 중요시되지요. 저희 연구소에서도 향료재료만 4천8백여종이나 확보해놓고 분석·합성실험을 거듭하고 있읍니다."
-인삼연초연구소의 연구인력이나 시설은 경쟁상대와 비교해 어떤가요.
"담배연구파트에만 10여명의 박사가 있고 기초적인 연구를 할 수 있는 장비들도 갖추고 있읍니다만, 한가지 아쉬운 것은 연구소 자체에서 완제품을 만들 수가 없다는것입니다. 세계적인 담배회사 'R.J.레이놀드사의 경우 연구원만 8백여명이라고 하니까 대단한 규모입니다. 이런 거대한 연구소에서 윈스턴 카멜 모아 셀렘 등이 개발돼 나온 것이지요."
-양담배 얘기가 나온 김에 화제를 돌려 보지요. 현재 세계의 담배시장판도는 어떻습니까.
"단연 미국담배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어요. 소련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니까요. 품목별로는 말보로가 최고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읍니다. 그리고 세계의 담배는 그 유형으로 보아 미국형과 영국형으로 구분합니다. 영국형은 황색종 담배인데, 잎담배를 건조실에서 열풍으로 건조시키는 게 특징이지요. 미국형은 오리엔트종 황색종 등 여러가지를 혼합해서 만드는데 우리도 미국형에 속한다고 하겠읍니다."
-국산담배가 양담배보다 못하지 않다면 수입개방에 수세적으로 맞설 게 아니라 수출을 해서 오해려 공세적인 입장에 설수도 있지 않을까요.
"실제로 최근들어 국산담배의 수출이 늘고 있읍니다. '거북선'과 '태양'이 일본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 게 5,6년 됩니다. 오스트레일리아 불가리아 등지에도 금년에 선을 보였고 중동에도 근로자파견을 계기로 우리담배가 알려져 있읍니다. 저는 국산담배의 수출 전망이 밝다고 봅니다."
국산담배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이종화소장의 말을 들으면서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양담배선호의식이라고만 하기에는 힘들 정도로 애연가들중에 국산담배보다 양담배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담배는 반드시 맛으로만 팔리는 것이 아닙니다. 포장 광고 등 상품화도 중요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양담배보다 떨어지고 있어요."
이소장은 담배야말로 종합적인 예술품이라고 하면서 소비자에게 어필할 수 있는 세련된 상품화를 강조한다. 1959년 연초시험장에 들어온 이후 약 30년을 담배·인삼과 함께 살아온 농화학전공의 박사는 이종화소장의 말대로 국산담배가 결코 양담배에 뒤지지 않는다면 양담배의 국내시장 잠식도 시간이 감에 따라 해결될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