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IST가 연구중심대학에서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의 모토는 창의성과 다양성. 그동안 많은 벤처기업을 탄생시키면서도 창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냉혹했던 KAIST가 벤처기업 육성에 발벗고 나선 것이다.
97년에 들어서 교회 헌금이 3분의 1로, 사찰의 연등 보시가 5분의 1로 줄었다고 전해진다. 80년대 초 장영자 사건 이후 최고의 기업 부도율을 기록했다는 통계보다 더 암울한 현실로 들린다. 갈수록 추락하는 한국경제에 날개가 있다면 과연 어떤 것일까. 그 날개를 많은 사람들이 벤처기업에서 찾는다.
정부는 현재 통산산업부, 정보통신부, 재경원 세계화 추진위원회 등 관련 부서에서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또 벤처기업에 우수한 연구원들을 공급하기 위해 국방부에서 병역특례 등도 확대하고 있다. 서울, 인천, 대전 등 지방자치단체에서는 벤처단지와 벤처빌딩을 조성함으로써 벤처기업 지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정당 역시 여·야를 막론하고 벤처기업 육성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기업에선 사내벤처 육성과 외부 벤처기업과의 제휴를 활발하게 추진중이다. 이 모든 것은 벤처기업 육성이 일시적인 바람이 아니라 꼭 이룩해내야 할 과제로 이식되는 까닭이다.
벤처기업의 산실
얼마전 벤처기업협회에서 회원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벤처기업 대표의 출신학교로 서울대가 33%로 1위, KAIST가 20%로 2위, 연세대가16%로 3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다른 대학의 10분의 1도 되지 않는 학생수와 졸업생수를 감안한다면 KAIST의 성적은 대단한 것이다.
이번에 과학동아에서 실시한 설문에서 KAIST 학생들의 61%가 타대학에 비해 KAIST 출신이 벤처기업을 창업하는데 유리하다고 응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대답은 23%에 그쳤다. 왜 KAIST가 벤처기업 창업에 유리하냐는 질문에 주변에 대덕단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44%, 그리고 우수한 인재가 모인다는 대답이 41%를 차지했다. 이밖에 학교지원(10%), 정부의 지원, 정보 수집, 실전 위주의 프로젝트 교육 등도 장점으로 꼽았다.
한편 KAIST 학생들은 벤처기업가들이 KAIST에서 많이 나오는 까닭은 현장 중심의 실험실습교육(38%), 우수한 산학연계(23%), 좋은 시설(21%), 교수들의 관심과 지도(10%), 학교의 지원(8%), 그리고 학생들의 많은 관심(기타 의견) 때문이라고 보았다. 결국 현장 중심의 교육이 벤처기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KAIST출신 벤처기업가와 창업동아리'KBC'(KAIST 비즈니스클럽)의 회원들을 만나면 약간 얘기가 다르다. 얼마 전까지 KAIST교육은 공부 외엔 다른 것을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만약 창업을 생각하고 준비하거나 기업에서 용역을 받아 일할 경우 학점은 나빠질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학교를 떠나야 했다. 다만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모두 교육내용이 우수해 많은 벤처기업가들이 KAIST출신에서 나왔다는 것은 인정했다.
"과거에 학생들을 공부에만 전념하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KAIST의 교육은 분명 달라지고 있다. 우선 창업학제(창업에 필요한 과목을 신설해 이를 이수할 경우 학점과 부전공으로 인정하는 제도)등을 도입해 창업에 뜻을 둔 학생에게 도움을 주려고 한다. 또 현장실습 등을 학점으로 인정하는 거도 검토 중이다." 장호남 학장은 앞으로 사회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점은 연구 중심 대학으로 성장해온 KAIST의 교육에 일대 변혁을 의미한다.
실제로 KAIST는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하고 있다. 92년 설립된 창업지원센터 인큐베이터 안에는 현재 20개의 벤처기업이 자라고 있다. 또 1백 80억원을 들여 1만2천평의 하이테크놀러지 복합건물(HTC)을 지어 벤처기업 육성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그동안 장소 제공과 교육에 그쳤던 창업지원센터의 역할을 벤처 자본가 소개, 신기술 접목 등 벤처기업 창업과 경영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내용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KAIST의 변모를 읽을 수 있는 또다른 예가 있다. 오는 6월 2일 '기술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를 통해 참신하고 창의적인 기술을 발굴하고 그 아이템을 창업화할 수 있도록 나선 것이다. 지난 5월 말 모교 방문 프로그램인 'SEE-KAIST'에서도 벤처기업 세미나와 전시회가 주요 프로그램이었다. 올해는 KAIST가 세계 10위권 대학으로 발돋움하겠다고 선포한 'KAIST TOP 10'사업의 원년이다. "이제 교육의 질을 생각할 때가 왔다. 단지 논문 수만으로 연구의 수준을 평가하는 때는 지났다. 논문 수만 보면 KAIST는 분명 세계 10위권에 든다. 그러나 논문의 질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장호남 학장은 KAIST 교육과 연구의 근본적인 개혁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또 창의성을 중시하는 교육풍토는 벤처기업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희망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