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화학'을 출발시킨 연금술이 걸어온 파란많은 길을 더듬어 본다. 수학적으로 철저히 무장되어 있었던 위대한 뉴턴이 그 반대편에 서있는 연금술에 매료되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연금술(鍊金術 : Alchemy)은 이를테면 중세의 '화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화학이 현대과학으로 발전되기 전에 과학자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던 여러 종류의 화학적 변화와 관련된 기술이었다. 또 연금술은 수은이나 납같은 비(卑)금속들을 금이나 은으로 바꾸려는 노력들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었다. 그래서 연금술사(Alchemist)들은 소위 '철학자의 돌'(Philosopher's Stone)이라는 것을 찾아내어 이것을 천한 금속과 섞어 금으로 만들려는 시도들을 해왔다.
연금술사들은 금속이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어머니'인 흙속에서 성장하여 완전한 금으로 변환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같은 이론을 바탕으로 그들은 토양내에서의 성장과정을 실험실내에서 인공적으로 단축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런 과제를 진지하게 연구하여 화학의 발전에 매우 귀중한 공헌을 하였다.
또 일부 연금술사들에게 이러한 금속의 변환은 매우 신비한 의미를 가졌었고 이를 인간에게까지 적용시키기를 원했다. 이들을 가리켜 '철학적인 연금술사'라고 부른다. 그들은 사람이 물질적인 육체와 비(非)물질적인 영혼의 배합이라고 보았다. 또 모든 물질은 어떤 종류의 생명이나 정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믿었다. 특히 신비로운 징조나 기호(Symbol)를 강조했으며 물질과 마음을 연결할 수 있는 마술이나, 천체의 현상과 인간을 연결시켜주는 점성술같은 것에 깊이 심취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금속을 금으로 만드는 일 즉 '철학자의 돌'을 찾는 일과 인간을 불로장생시킬 수 있는 약을 찾는 일을 동시에 진행했다. 불로장생약은 먹으면 사람의 모든 병이 치유되며 늙지도 않고 심지어 죽지도 않을 수 있다는 만능의 약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연금술사들 중에는 사기꾼이나 허풍장이가 많았다. 자신이 금을 만들 수 있는 '철학자의 돌'을 찾아내었다고 자랑하여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여 돈을 벌어내곤 한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베이컨(Francis Bacon)은 연금술사들이 비밀을 독점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함을 통렬히 비난하기도 하였다.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연금술은 당대에 큰 유행을 일으켰다. 자연(또는 흙)이 만물의 어머니(특히 금속을 잉태하는 자궁)라는 생각과, 인간의 죽지않으려는 욕망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어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연금술이 붐을 이루었던 것이다.
●―금을 만드는 액을 먹어 장수를 꾀해
인도 힌두교의 경전 '베다'경에는 금과불사(不死)의 연결을 강조하는 대목이 보인다.'라자'라는 액으로 수은 등을 금으로 바꾸려고 시도했었다. 또 중국에서는 이런 연금술적인 사고가 도교와 관련을 맺고 있다. 금을 만드는 연금액을 흡수시킨 그릇으로 식사를 함으로써 육체적인 불사(不死)가 얻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생각은 그후 성인의 신체내부에 직접 연금액을 투입함으로써 노화(老化)를 멈추게하려는 시도로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기독교의 한 분파지만 정통파로부터 이단시되었던 네스토리아교도들은 5~6세기경 박해를 피해 시리아와 페르시아쪽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의 연금술 관련책자들을 많이 지니고 있었으며,주변의 아랍인들에게 연금술을 전해주었다. 그 여파로 8세기 경에는 아랍에서 연금술이 무척 발달하게 된다(연금술이라는 말의 영어 Alchemy도 아랍어에서 유래한 것이다).
12세기무렵 아랍이 쇠퇴해 감에 따라 서유럽쪽으로 연금술이 유입되었다. 여기서 연금술은 영혼의 불사(不死)나, 육체의 구원 등 기독교 신앙과 연결됨으로써 급속히 퍼지게 된다.
또 당시에는, 고대 모세(Moses)와 같은 시기에 살았으며 인간의 구원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믿어졌던 헤르메스(Hermes)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여겨지는 책들이 발굴되어, 이 신비적인 세계관에 한층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신비적인 세계관의 배경하에서 비천한 금속을 금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얼마나 깊고 널리 퍼져 있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20세기에도 연금술을 이용한 사기가
첫번째 얘기는 1920년경에 독일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에는 이미 화학지식이 상당히 쌓여진 상태였고 보통 사람들도 연금술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는데, 1925년 독일의 '프란츠 타우젠트'(Franz Tau-esnd)는 비금속을 금으로 바꾸는데 성공했다고 공표했다. 그는 이것이 우연한 폭발에 의해서 얻어졌고, 이 폭발은 몇 10만년에 걸쳐서 자연이 이룩할 일을 단 몇시간에 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놀랄만한 사건을 가지고 뮌헨의 조폐국전문가들에게 접근했지만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1차세계대전에서 독일최고의 장군중 한사람이었으며 나중에 국회의원이 된 루텐도르프(Lutendorf)에게 접근하였다. 루텐도르프는 그의 주장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으나 자신의 의붓아들을 시켜 사실여부를 조사해 보도록 하였다. 면밀히 조사한지 2년뒤 장군의 의붓아들은 타우젠트가 실제로 변환의 비밀을 발견했다고 확신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엄중한 감시속에서 40~50번의 실험을 하였는데 대부분의 실험에서 바늘귀만한 금을 얻을 수 있었다고 보고하면서 사기의 가능성은 없다고 단언하였다.
보고를 듣고 루텐도르프장군은 법정대리인에게 지시하여 회사를 설립토록 하였다. 회사의 주주들은 대부분 장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독일의 지도급 인사이거나 귀족들이었다. 이런 명사들이 주식을 산 것은 금을 얻겠다는 욕심과 당시 불안정한 독일경제를 개선시키려는 의도에서였다.
어쨌든 이 돈으로 타우젠트는 타우젠트 남작이라고 자칭하면서 궁전과 같은 저택에서 호사스런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이런 생활은 오래가지 못했다. 실제로는 금을 많이 만들지 못했으므로 1929년 연말에 사기혐의로 체포되었던 것이다.
재판과정에서 함부르크의 한 공장주인은 조그만 금조각을 제출하면서 이것을 타우젠트가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또 타우젠트의 비서는 법정에서 타우젠트가 분명히 20g의 금을 만드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화학전문가들이 증인으로 채택되면서 사태는 역전되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자기들의 면전에서는 타우젠트가 금을 만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 증인중 한 사람인 조폐국의 이사는 타우젠트가 금을 만드는 실험에서,금으로 된 펜촉의 만년필을 지녔음을 지적했다. 이어 타우젠트가 만들었다는 금을 분석해본 결과, 만년필의 펜촉의 금과 같은 합금이었다고 밝혔다. 이로써 모든 사실이 밝혀졌다.
타우젠트는 유죄판결을 받았으며 3년8개월의 금고형을 선고받았다. 또한 그가 실험실에 가지고 있던 금을 모두 몰수당했다. 이 선고는 어처구니없는 사기로 막대한 돈을 얻어낸 것에 비해 비교적 가벼운 처벌이었다.
이 사건은 개인적인 욕심이 연금술과 연결되어 나타난 일종의 에피소드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1920년대에 나타났다는 점에서 뿌리깊은 연금술의 위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뉴턴의 한계
연금술과 관련된 또 하나의 이야기는 하늘이 보낸 과학의 영웅 뉴턴(Issac New-ton)에 관한 것이다. 우리에게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뉴턴은 '근대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우고 있다. 현재 우리가 활용하는 과학의 기틀을 어느 정도 규정하여 준 영국의 위대한 과학자인 것이다. 그는 만유인력이라는 단일한 힘을 도입했고,몇개의 운동법칙에 바탕하여 지구를 포함한 천체들의 운동을 정확하게 기술하여 주었다.
그후 많은사람들은 뉴턴이 실천한 수학적인 엄밀성이나 합리성 등을 근대과학의 특성을 내세우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과학을 '뉴턴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뉴턴과학은 가설이나 독단을 배제하고 수학적, 합리적, 경험적, 실헙적 방법을 중시했다. 이는 18세기 유럽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파급효과는 뉴턴을 대중적인 영웅으로 신격화시키기까지 했다.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와 키이츠(John Keats)같은 시인은 뉴턴을 가리켜 '3각형의 3변처럼 분명하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또 뉴턴이 무지개를 프리즘의 색깔로 환원해 버림으로써 무지개의 시(詩)를 파괴해 버렸다고 불평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뉴턴의 모습은 과장된 것이지만 일반사람들이 뉴턴에게 느끼는 모습을 일부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의 연구에 의하면 뉴턴은 엄밀과학에 쏟았던 것 이상으로 '화학'이나 신비적인 색채의 '연금술'에 정열을 쏟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뉴턴의 소장도서에는 점성술과 화학을 종교와 연결시킨 로시크러션(Rosicrusian)이라는 비밀결사단체와 관련된 책이 많이 보인다. 또 수백권에 이르는 화학과 연금술에 관한 책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이성의 시대'의 아버지라고 불리운 그가 연금술과 같은 신비적인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당혹시키고 있다. 그의 이러한 모습은,그가 만유인력을 체계적으로 기술한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일명 Princi-pia 프린키피아)'에서도 볼 수 있다. 그는 이책 마지막 3권에서 세계의 원리에 대해서 애써 그의 방법과 성취의 한계를 규정하고 있다.
'항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신(神)'에 대한 찬가를 드린 후 그는 '어떤 사물의 진정한 본질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또 그는 만유인력의 원인(왜 그들은 서로 잡아당기는가?)을 암암리에 신에게 귀결시키고 있다. 중력의 법칙을 인정한 상태에서 세계의 원리를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계의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신비적인 느낌에 대해 점점 깊이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일생동안 자신의 경험을 둘러싼 이성능력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으며, 이것이 그로 하여금 성경과 예언에 끊임없이 관심을 쏟도록 만들었다.
그의 연금술등과 관련된 방대한 분량의 원고들이 제대로 분석이 되지는 않고 있다. 하나 일련의 연구에 의하면 약 65만단어가 연금술에 대해 언급되어 있고,1백30만단어가 성경과 신학적인 주제들에 관한 것임을 밝혀주고 있다.
●―한층 승화된 신비주의
그는 연금술에 대해 흥미를 가졌던 보일(Robert Boyle ; 보일의 책중에는 자신이 빗물을 흙으로 변화시켰다는 내용등도 들어있다)과 수차례 편지왕래를 했다. 그속에는 인력과 화학결합에 대한 이론들과 자신의 추측들이 담겨 있었다. 여기서 뉴턴은 금속을 금으로 변환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다.
"연금술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는 것이 온당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연금술관련자들의 말을 퍼뜨리면, 세계에 큰 위험을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기에는 더 고상한 일에 이르게 하는 입구가 있을 수 있다."
이 말은 연금술에 대한 그의 부정적인 시각과 호의적인 태도를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또 그는 성경의 예언서의 주해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요한계시록이나 다니엘과 이사야의 예언에 나타난 신비로운 내용들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어의(語義)적인 분석을 하고 있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예언이란 신이 인간을 예언자로 만들기 위해 미래의 사건을 미리 가르쳐준 것이 아니고,'세계가 신의 섭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원리는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천문학적인 지식을 활용, 성서속의 사건들의 정확한 시일을 알아냄으로써 예언의 진실성을 확증하기 위해 애를 썼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그의 신비주의는 오히려 '신비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신비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무척 많은 시간과 정열을 신비주의나 연금술에 바쳤음은 명백하다. 만약 그의 이러한 면이 체계적으로 연구된다면 인간 뉴턴의 모습에 대해 좀더 잘 알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의 과학적 상상력의 근원이 얼마나 복잡했었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흑연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든다
끝으로 연금술과 관련하여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다. 이는 원자에 대한 연구가 진척됨에 따라 꼭 금은 아닐지라도 모종의 변환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미 1896년 방사선이 발견되면서 자연에서 어떤 원자들은 저절로 변환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30년대에는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그 주위의 전자로 구성됨이 알려졌다. 이로써 원자가 중성자나 전자 등의 수를 바꿈으로써 변환이 가능하다는 생각이 얻어졌다. 실제로 원자폭발과 관련된 원자핵붕괴는 우라늄이라는 물질이 더 안정한 원자핵으로 변환되는 현상인 것이다. 또 현대 물리학에서는 가속기라는 장치로 원자들을 인공적으로 붕괴시키는 방법을 다각도로 이용하고 있다. 원자의 변환을 꾀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최근의 변환시도들은 고대서부터 이어진 연금술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연금술의 고유의 목표 즉 비천한 금속으로 금을 얻어내는 일은 아직 성취되지 않고 있다.
이와 비슷한 직업으로 같은 원소인 탄소로 이루어진 흑연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드는 작업은 현재의 과학기술로도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수지가 맞지 않아서 실용화시키지 않고 있다.
연금술은 분명히 '근대 화학'의 효시였다. 또 이러한 노력들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부산품들―즉 다양한 화학물질의 발견이나 실험방법, 지식의 축적―이 얻어져 비로소 근대 화학이 탄생하였다는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연금술사들의 사행성이나 비밀성과는 별개로 그들의 노력과 업적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