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에서도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이 성공을 거뒀다. 이를 계기로 심장이식의 어제와 오늘을 알아본다.
먼저 채 피어보지도 못하고 숨진 명노열군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 아울러 슬픔을 극복하고 자식의 장기를 제공, 죽어가는 다는 생명을 건져준 명군의 부모에게 감사를 드린다.
아뭏든 명노열군의 장기제공으로 인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심장이식수술이 시행되었다. 아직 심장전체이식까지는 아니었지만 사람에게서 떼어낸 대혈관과 판막을 다른 사람에게 이식하는데 최초로 성공한 것이다.
물론 대혈관과 심장판막의 동종이식은 미국, 영국을 비롯한 선진국에서는 이미 보편화된 수술이다. 그만큼 인조판막이나 동물의 조직판막에 비해 인체의 판막이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인체의 판막은 살아있는 조직이므로 판막의 수명이 반영구적이다. 또 자연적이고 정상적인 혈액학적 특성을 지니고, 인조판막이 갖고 있는 혈전증의 위험이 없다는 것도 인체판막의 좋은 점이다.
심장이식을 어렵게 하는 2개의 고리
이렇듯 여러가지 면에서 낫다고 보여지는 인체판막의 이식수술이 여태까지 지연된 이유는 무엇일까? 심장기증자가 없다는 사실과 보관방법이 까다롭다는데 기인한다.
심장기증이 보다 활발해지려면 현행법의 보안과 의식의 대변환이 뒤따라야 하므로 시간이 걸릴 성 싶다. 하지만 떼낸 장기의 보관방법의 개발과 수술의 신뢰성 제고는 우리 의사들을 포함한 과학자들의 몫이다.
현재 떼낸 장기를 어떻게 보존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적출된 심장은 즉시 4℃의 링거액에 넣는다. 이어 필요한 부분만 뗀 뒤 조직배양액인 RPMI1640과 다섯 가지 항생제를 주입한다. RPMI1640은 각종 아미노산, 비타민, 당, 염을 섞은 용액으로 인체의 산도와 같은 산도를 갖게 만든 것이다. 24시간마다 배양액과 항생제를 갈아주다가 72시간이 경과한 뒤 냉동고속에 넣는다. -186℃의 질소냉동고에 보관하면 장기는 필요한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아무 탈없이 대기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보관하면 심장이식의 최대난점인 이식거부반응을 뿌리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사실 서로 다른 생체를 접합하면 거부반응을 일으키기 마련이다. 혈액형이 다른 사람에게 수혈하면 혈액응고가 발생,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는 것도 거부반응 다름아니다. 일란성쌍동이끼리 이식할 때만 거부반응이 발생되지 않는 것이다.
거부반응을 극복하기 위해 이식학자들은 무진애를 써왔다. 항(抗)면역제의 개발과 이용은 그 단적인 예다. 그런데 항면역제도 오래 쓰면 몸에 좋을 리 없다. 항면역제에 필시 숨어있을 독성이 이식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생체의 이식거부반응과 항면역제의 사용은 서로 맞물려 심장이식을 어렵게하는 두개의 고리로 작용하고 있다.
심장이식이 불가피한 경우
1950년대부터 시작된 심장외과분야는 최근들어 더욱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몇년 전만 해도 불치(不治)라고 여겨지던 대부분의 선천성 및 후천성 심장질환에 외과의사의 손길이 닿게 된 것이다.
이렇게 극복되고 있는 질환들은 어떤 것인가 알아보자. 가령 심장의 심방이나 심실의 벽사이에 비정상적인 구멍이 난 경우, 혈액이 흐르는 심장내의 통로가 좁아져 있거나 막힌 경우, 심장의 막판기능이 소실된 경우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심장자체에 영양과 산소를 공급하는 관상동맥이 좁아졌다든지 하는 질환등도 역시 서서히 불치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나 지금 열거한 경우들은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심장의 주임무인 펌프역할을 맡은 심근의 기능은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런 질환들의 외과적치료는 비교적 간단하다고도 말할 수 있다. 비정상적으로 뚫려있는 구멍은 막아주고, 혈액이 흐르는 통로가 좁아졌거나 막힌 경우에는 좁혀진 통로를 넓혀주거나 새로운 혈로를 만들어주면 만사 해결된다. 또 판막의 기능이 소실된 경우에는 판막을 수선하거나 인조판막이나 동물의 조직판막을 이식해주면 될 것이다. 관상동맥협착증을 보이는 경우에는 관상 동맥우회술을 시행함으로써 심장의 기능을 되찾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작 심장의 펌프역할을 맡은 심근이 심하게 손상된 심근병변증의 경우에는 얘기가 좀 달라진다. 앞에서 열거한 치료방법으로는 심장기능의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다행히도 이런 심근병변증을 보이는 환자는 숫적으로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 소수의 고통을 모른 채 할수는 없다. 시한부인생을 사는 심근손상 환자에게도 외과적 치료라는 따뜻한 손길이 미치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오랫동안 숙의돼 왔다.
많은 심장외과의사들사이에서 연구가 진행되었고, 결론적으로 크게 2가지 방법이 상정되었다. 다른 이유로 분명하게 죽음에 이른 환자에게서 건강한 심장을 기증받아 심근병변증을 가진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 그중 한 방법이다. 또 하나의 방법으론 인공심장이 제기되었다.
버나드박사의 심장이식은 시기상조
심장이식술의 연구는 미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태동, 동물실험과 면역학적 연구에 힘입어 서서히 발전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67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크리스천 버나드박사에 의해서 인체에 첫 심장이식술이 시도되었다. 교통사고로 숨진 젊은 처녀의 심장을 떼어 임종을 앞둔 노인에게 이식, 그의 삶을 18일간 연장시킨 것이다.
그후 이에 자극을 받은 몇몇 세계적인 심장센터에서는 경쟁적으로 심장이식수술을 시행했다. 심장이식을 받은 사람이 연간 8천명을 상회한 적이 있을 정도로 붐을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매우 실망스러웠다. 심장이식을 한 환자의 생명이 별로 오래 지속되지 않았던 것. 그후 1970년대 후반까지 간간히 심장이식술이 발표되었으나 1960년대말보다는 상당히 주춤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발전이 멈춰진 건 아니었다. 되려 이 기간중에 이식에 따르는 많은 문제점들이 파악되기 시작하였다.
이때까지 심장이식에 따른 사망원인이 집중적으로 연구되었다. 연구 결과 사인(死因)이 주로 거부반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거부반응을 없애거나 줄이는 방법의 발전없이는 심장이식술의 발전은 불가능한 것 처럼 생각되기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 말에 심장이식술이 시행된 것은 무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면역학적 연구도 미비하기 그지 없었고 항(抗)면역제의 개발도 없었던 시기였다는 측면에서 보면, 다소 시기상조라는 비난을 받을 소지도 있다는 얘기다. 반면 이런 문제점들이 집중연구되는 계기가 마련돼 심장이식 발전의 전기가 되었다고도 할수 있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이클로스포린 A라는 효과적인 항면역제의 개발과 함께 심장이식술은 다시 활기를 띠게 되었다. 특히 일생을 심장이식 연구에 몸바쳐온 스탠퍼드대학의 흉부외과장인 셤웨이박사를 중심으로 한 심장이식팀의 공헌은 지대했다. 그들에게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게 되었다. 장기(長期) 생존율이 현저히 향상된 것이다. 최근에는 장기생존율(심장이식 후 5년)이 80%를 상회하는 좋은 결과를 내고 있다.
전체이식보다 부분이식이 더 유용할 수 있어
한편 심장의 부분적인 이식에 대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1970년대 초반부터 영국의 로스박사와 뉴질랜드의 바랏보이스경에 의해 대동맥, 대동맥판막, 폐동맥 그리고 폐동맥판막의 동종(同種) 이식수술이 활발해지기 시작하였다. 이 대혈관과 판막의 동종이식은 어린이 판막질환자, 가임여성에게 판막을 이식해야하는 경우, 복잡한 심장기형의 해결에 필수불가결한 분야로 등장했다.
특히 대혈관과 판막의 이식대상 환자는 심장전체 이식환자에 비해 월등히 많다. 따라서 보다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음은 물론이다. 수술결과도 매우 만족스럽다는 장점이 있어 미국과 유럽에서는 보편화 되어가고 있는 추세다.
또한 심장제공자가 완전히 숨을 거둔 뒤 24시간내에만 기증하면 이용이 가능하므로 제공자를 얻기가 수월하다는 큰 장점이 있다. 우리나라처럼 뇌사를 인정치 않는 풍토에서도 쉽게 발전할 수 있는 분야라고 생각된다.
심장이식의 발전이 느렸던 이유
그러면 우리나라의 심장이식은 어디까지 왔는가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심장이식분야는 다른 의학분야에 비해 비교적 정체 상태에 있었으나 최근들어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발전이 느렸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뿌리깊은 유교적인 전통에 있다고 믿어진다. 장기제공을 사체훼손으로 간주, 금기시 되어온 사회적인 풍토에 연유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심장을 비롯한 장기의 제공자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둘째 이유는 현행법에 있다. 심장이식을 위해서는 박동하는 심장을 떼내야 떼내야 하는데 현행법이 뇌사를 사망으로 인정치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뇌사불인정이 심장이식을 제한하는 하나의 벽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최근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명노열군의 심장기증을 계기로 분위기가 크게 달라졌다. 아뭏든 뇌사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을 집중시켜 여론이 환기된 점은 심장이식학발전의 큰 전기가 되리라고 생각된다.
처음 명노열군의 부모가 명군의 심장기증의사를 밝혔을 때 우리 세종병원 심장외과팀은 완전 심장이식을 위한 법적인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검토결과 아직은 어렵다는 결론이 도출됐다. 현행 법상으로는 박동하는 심장을 떼는 일은 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에 근거, 완전이식을 포기해야만 했다.
결국 사후에 대동맥과 대동맥판막, 폐동맥과 폐동맥판막을 획득, 조직배양액에 보관하였다가 그중 폐동맥과 폐동맥판막을 부분이식에 사용했다. 심한 폐동맥판막형성부전증을 보이는 10대의 신모군에게 성공적으로 이식, 국내에서 처음으로 대혈관과 판막의 동종이식에 성공하게 된 것이다.
뇌사불인정은 난센스
뇌사문제를 좀 더 심도있게 살펴보자. 필자의 생각인데 국민들 사이에 이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부족한 듯 싶다. 뇌사는 식물인간이나 안락사의 개념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뇌사의 정의는 뇌가 완전히 파손되어 전혀 소생의 가망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적극적인 치료를 시행해도 보통 1주일내에 대부분 사망하는 완전 사망직전의 상태인 것이다. 의식이 없이 장기간 생존하는 식물인간은 결코 뇌사상태가 아니므로 회복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생존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환자가 뇌사로 판정받을 위험은 결코 없다. 따라서 뇌사를 법적인 사망으로 인정하여도 의학적, 법률적, 윤리적으로 문제될 바 없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다. 동시에 세계 각국의 추세이기도 하다.
대혈관과 판막동종이식의 연구는 필자가 미국 오리건대에서 전임의로 재직할 동안 줄곧 연구해온 주제였다. 그곳에서 상당한 케이스의 임상경험과 기초연구를 쌓았다. 귀국 후에는 세종심장병연구소의 사업의 일환으로 동물실험에 참여했다. 약 12마리의 양을 대상으로 대동맥판막 동종이식수술을 실시한 것이다. 다행히 수술한 동물이 오래도록 생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또 한 떼낸 장기의 보관방법의 향상을 위한 연구도 진행하고 있다.
다만 완전심장이식에 있어서만은 뇌사문제가 가로막아 현재까지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하지만 몇몇 심장센터에서는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법적인 뒷받침이 되는 때를 기다리며 착실히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