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라이브러리













그는 모든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소금보다 먼저 태어났다. 학교는 주거구역 한가운데에 있었다. 야트막한 언덕 위, 집들이 내려다 보이는 곳. 광산이 보이지는 않지만 광산의 소리와 진동은 느껴지는 곳.

소금은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일곱 살 때 만났다. 그가 코쇠1에 살기 시작한 지는 이미 십여 년이 지났을 때였다. 십 년은 긴 시간이다. 코쇠1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다른 항성계에서 이주민이 한 명 더 올 만큼 긴 시간은 아니지만, 코쇠1에서 새로 태어난 수백 명과 그새 죽은 수천 명을 기억하기에는 벅찰 만큼 긴 시간이다. 어쨌든 그래서, 소금이 그를 만났을 때에는 “표준어 교사가 우리 항성계까지 직접 온 건 시조세대 이후로 처음이래”, “어쩌다 여기 왔을까?”, “너무 젊은데?”, “혹시 본사 출신 아냐? 본사사람들은 다 외모가 좀…, 그렇잖아” 같은 그를 둘러싼 소문이며 수군거림은 이미 한 차례 지나간 다음이었고, 소금이 만난 그는 코쇠인은 아니지만 코쇠의 일부였다. 선생님. 모두들 그를 그렇게 불렀다. 코쇠에는 코쇠1이나 코쇠2에서 나고 자란 생활 선생님, 실습 선생님, 지리 선생님, 과학 선생님도 있었고, 본사의 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된 원격 교사들까지 합하면 많은 선생님이 있었지만, 코쇠1의 거주구역에서 앞뒤 설명 없이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사람은 그였다. 표준어 교실과 교실에 붙은, 주거구역 한가운데이기는 하지만 다른 집들과는 조금 떨어진, 조금 더 높은 곳에 있는 작은 집에 살고 있는 젊은 표준어 교사. 소금도 그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선생님은 표준어 말고도 아는 것이 많았다. 그래서 국어 선생님이나 표준어 선생님이 아니라 그저 선생님이었는지도 모른다.

코쇠는 광산 항성계였다. 코쇠1부터 코쇠7까지 행성은 일곱 개였지만, 사람이 사는 곳은 코쇠1과 2, 비상점에서 비교적 가까운 행성 두 곳뿐이었다. 나머지는 파견시설과 채굴설비만 있는 무인행성이었다. 그나마 가깝다는 비상점도 보통 우주선으로 두 달은 걸리는 곳에 있었다.

코쇠인들은 광물을 캤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광물을 캐는 것은 기계였지만, 코쇠의 사람들은 광산에서 일했고, 광산에서 살았다. 애당초 코쇠인들이 발 딛고 선 땅 아래가 모두 광산이었다. 사람의 판단이 필요한 일은 곳곳에 있었다. 때로는 기계를 세우고 고쳐야 했다. 고장이 날 것 같아 미리 손을 보아야 할 때도 있었다. 얼른 도망쳐야 할 때도 있었다. 땅은 신호를 보냈다. 물 떨어지는 소리, 먼지 날리는 소리, 기계의 진동. 본사는 아주 멀었고 기계는 낡아가고 있었으며 땅은 때때로 사람들을 삼켰다. 코쇠인들은 오백여 년을 광산에서 살아오면서 사람의 목숨이 가볍지는 않지만 본사에게는 광물만큼 무겁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본사의 판단보다 자신들의 경험을 신뢰했다. 애당초 생산량과 납기일만 맞추면 될 일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표준어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은 많지 않았다. 표준어는 현장에서 별 쓸모가 없었다. 쇄암기가 작동하는 소리가 어디까지 어느 정도 크기로 들리는지, 갱내에서 서로의 목소리가 얼마나 또렷하게 들리는지, 날리는 것이 어떤 쇳가루인지 돌가루인지 먼지인지 아니면 그 사이 무언가인지, 물통이 얼마나 찼는지, 갱도를 어떤 모양으로 꺾어 파는 편이 나은지 말하기에, 광산 안에서 숨이 막히거나 무언가에 깔리거나 파묻힌 죽음들을 구분하여 이름 붙이기에 표준어는 턱없이 부족했다. 모든 카두케우스 이주행성 학생들은 표준어를 배워야 했고, 모두들 배우는 시늉은 했다. 그러나 코쇠1은 행성 전체가 현장이었다.

표준어는 그 현장 가운데 십 몇 세대 전에 점을 찍듯 만들어 놓은 거주구역에, 또 그 가운데 있는 야트막한 언덕 위에, 그 중에서도 운동장 옆 구석에 있는 작은 교실에서, 일곱 살부터 열다섯 살까지만 쓰이는 고립어였다.

하지만 ‘선생님’은 표준어 외에도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선생님은 가끔 채굴기계를 고쳐 주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키워드로 본사가 준 데이터베이스의 어디를 검색해 보면 수리법이 나오는지 알려 주었다. 채굴 계획표를 살펴 주기도 했고 현장 비행경로를 조금 고쳐 잡아 주기도 했다. 본사에서 보내온 낯선 식재료를 손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거나, 어울리는 다른 식재료를 알려 주기도 했다.

그는 언덕 아래 거주구역을 찾는 일이 거의 없었고, 결코 탄광에도 공항에도 가지 않는 조금 괴팍한 사람이었지만, 그런 식으로 코쇠의 ‘선생님’이 되었다.

소금이 일곱 살에 만난 선생님이었다.



인구가 줄어들고 있었다. 눈에 띌 정도는 아니지만 균형이 안 맞기는 했다. 그는 항성계 동향 보고를 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지만 보이는 데에야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이런 정보를 재빨리 포착하는 교육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온 힘을 다해 익힌 지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온 마음을 무너뜨리는 좌절과 마찬가지로.

코쇠는 너무 외진 항성계였다. 항성계 전체에 유인행성이 두 개뿐인 것도 좋지 않았다. 코쇠에서만 나오는 희귀 광물도 없어 특별히 가치가 있는 곳도 아니었다. 비상점이 아주 가깝지도 않았다. 준광속으로 두 달이면 아주 멀지는 않지만, 딱 그 정도였다. 광물은 상하지 않는다. 꾸준히 공급되기만 하면 그만이다.

코쇠 항성계는 오래된 개척지였다. 개척시조로부터 이미 17세대. 아마 당시 발견된 비상점 중 적당히 가까운 곳에 있는 적당히 채굴할 만한 자원이 있고 딸린 행성도 적당히 많은 항성계를 골라, 모든 채굴시스템을 무인으로 가동할 수도 없으니 테라포밍 조건이 가장 좋은 – 비용이 가장 저렴한 – 코쇠1, 2를 유인행성으로 정해 개발했을 터였다. 코쇠1부터 코쇠7이라는 작명부터가 성의 없었다. 대부분 행성들은 대개 최소한 행성 이름이라도 따로 갖고 있었다. 17세대. 본사의 생계지원프로그램은 20세대에서 끝난다. 이미 본사는 비용분석을 하고 있겠지. 인구동향도 파악했지만 손대지 않고 있을 뿐일 가능성도 적지 않다. 사람과 달리, 카두케우스 본사는 죽지 않는다. 마지막 세대는 어떻게 될까. 코쇠에 남은 소수가 죽으며 끝날까, 다른 광산 항성계로 옮겨질까. 아니면 이 항성계를 새로이 개발할까.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삼 세대 뒤라니, 이미 서른을 넘긴 그가 훨씬 먼저 죽을 터였다. 아니, 마키옌데에 있는 본사에서 코쇠1로 왔던 그 날, 초광속 귀환비행에 실패했던 그 날, 그는 이미 한 번 죽었다. 지금은 그저 우주에 있지만 문명의 우주로부터 아득히 먼 유배지에서 서서히 마저 죽어가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도 십 년은 긴 세월이었다. 마키옌데의 비행학교에서 보낸 시간이 오 년이었다.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 비행학교에 입학하려고 준비한 시간이 십 년이었다. 대충 그 가까운 시간을 돌먼지가 날리는 이 땅에서 보내며 그는 예상보다 많은 죽음을 보았다. 광산에서는 사람이 참 쉽게 죽었다. 본사의 관심에서 멀어진, 본사 관점에서 보자면 유지보수 인력만 남은 행성에서는 죽음이 더 흔했다.

채굴은 위험한 산업이었고, 신규 이민이 없는 행성의 인구는 유지되어야 한다. 사람도 자원이다. 그래서 본사는 광산 출입 최저연령을 정하고 안전 매뉴얼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실제로는 낮에 딱히 할 일 없는 아이들은 때로 광산 일을 거들러 나갔고, 광산에서는 거의 해마다 사고가 일어났다.

먼지, 진동, 소리, 죽음.

그가 코쇠1에서 발견한 네 가지였다. 먼지. 두 번 다시 우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제는 우주선도 우주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거대한 코쇠 화물공항을 나섰을 때 그가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풀풀 날리는 먼지였다. 본사에는 – 비행학교에는 – 우주선에는 – 우주에는 먼지가 없었다. 코쇠1과 같은 돌가루는 더더욱 없었다. 우주비행사 자격을 박탈당하고 대신 현장 표준어 교사라는 임무를
명 받아 코쇠1에 하나뿐인 학교로 가는 언덕을 오르는 내내 그는 기침을 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 다음은 진동이었다. 기분 탓인지 모르나, 그는 날마다 발밑이 흔들리는 듯한 진동을 느꼈다. 아주 미세한 진동. 발밑을 깎아내고 파내고 터트리는 불안정한 느낌. 앉아 있으나 누워 있으나 걸어 다니나 그 진동은 그의 몸을 떠나지 140않았다. 코쇠 사람들에게 몇 번 말을 꺼내 보았지만, 광산 근처면 몰라도 여기는 괜찮은데요, 하는 어리둥절한 표정에 말을 접었다.

그 다음은 소리였다. 소리는 좀 더 선명했다. 쾅, 하고 진동과 함께 폭발음이 울릴 때도 있었고, 버석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날 때도 있었다. 드르륵 끼기긱 툭툭 쾅. 이 역시 코쇠에서는 일상이었다. 분주한 수도 마키옌데의 소음이나 우주선의 기계음과는 전혀 다른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처음에 그는 이 세 가지와 싸웠다. 교실을 쓸고 닦았다. 책상을 끌고 나르고 의자를 새로 놓았다. 학생들이 오면 사람의 움직임이 발밑을 흔드는 진동을 잠시 가렸고 학생들의 말소리가 낯선 소리를 덮었다.
하지만 죽음과 싸울 수는 없었다.

애당초 그부터가 죽어가는 항성계에 남겨진 죽은 사람이었다. 마키옌데에서 교육받은 표준어 교사라니 명분이야 좋았다. 원격 프로그램보다 산 사람이 있는 편이 좋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코쇠에서는 별 쓸모가 없었다. 본사와의 교신에 필요한 인력을 제외하면 우주로 나갈 만한 사람을 코쇠에서 찾기는 힘들었다. 17세대를 광산행성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우주에 관심이 없었다. 코쇠 항성계 바깥세상을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 아이들은 대부분 당연히 광부가 되었고, 모두가 광부의 가족이었다. 우주인이 아니었다.

우주인이 될 수도 있는 아이들이 있었다. 가끔. 첫 학생을 정성을 다해 가르쳤지만, 의무교육기간이 끝나자마자 광산에서 죽었다. 그 다음 아이도 죽었다. 백만 명에 하나 정도로 빛나는 재능을 가진 아이들도 몇 명 지나갔다. 우주비행사는 못 되어도 코쇠를 벗어날 정도의 재능은 있는 아이들이었지만, 그는 그들에게 왜 굳이 기본 교과목이 아닌 공부를 더 하고 광물과 식료품을 나를 때에나 쓰이는 우주선을 타야 하는지, 저 너머에 다른 직업과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왜 굳이 알아야 하는지, 시공간을 넘은 끝에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올 수도 있는 험한 길을 무엇 하러 가야 하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 자신, 그 길의 끝에서 멈추었던 사람이었다.



그가 소금을 확실히 발견한 것은 소금이 열 살 때였다. 누구도 그의 과거를 묻지 않고, 그 역시 교과서에 없는 이야기는 꺼내지 않은지도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다. 그래서 어느 날, 다른 아이들이 운동장에 놀러 나간 사이 혼자 그를 찾아온 소금이 그에게 한 질문은 불의타였다.

“선생님, 선생님은 왜 본사 사람인데 여기에 살아요?”

“…우주선을 다시 못 타서.”

아, 미리 답을 준비하지 못하면 진심이 나온다. 그가 무심코 뱉은 진심에, 소녀는 다시 물었다.

“왜 우주선을 못 타요?”

“무서워서.”

겨우 열 살짜리, 코쇠에서 나고 자란 아이다. 소금은 그를 한참 바라보더니, 다시 물었다.

“우주가요?”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아이다. 일억 명에, 아니 십억 명에 하나 정도 발견되는 재능. 우주인으로 태어나는 사람. 우주를 본 적이 없어도 그 공간감을 상상하고 느낄 수 있는 영혼. 어째서 지금까지 삼 년을 보면서도 발견하지 못했던 걸까? 내가 먼저 포기했기 때문에?

그는 천천히, 어른을 대하듯이 말했다.

“우주도 무서웠고, 실패도 무서웠단다. 무서워하면 우주인이 될 수 없거든.”

그리고 그는 한숨처럼 덧붙였다.

“게다가 우주여행은 비매품이란다. 우주는 내가 보고 싶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야.”

열 살에게는 어려운 말이었으나 그는 일부러 쉬운 말을 고르지 않았다. 이 아이가 우주인이라면, 당장이 아니라도 언젠가 그의 말을 이해하리라.

소금은 그를 또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갑자기 한결 천진한 어조로 물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선생님한테 여쭤 봐도 돼요?”

“그래.”

소금은 조용히 일어나 나갔다. 그는 학생 기록을 열어보았다. 출석률이 높고 성적이 좋은 학생이었다. 다른 과목의 성적도 모두 좋았다. 얼마나 뛰어난지는 알 수 없었다. 애당초 비교대상이 적었다. 틀린 감일 수도 있었다. 틀린 편이 나을지도 모르지. 그는 그리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소금의 말을 처음 제대로 들어 준 것은 소금이 열 살 때였다. 일곱 살 때부터 그의 수업을 듣고, 인사도 하고, 질문도 했지만 그의 눈에는 소금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존재 자체가 코쇠에서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아는 것이 많은 선생님이라고 했다. 유일한 외지 출신이라지만, 소금이 태어나기 전부터 코쇠1에 살았던 어른인 선생님이 그래서 다른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그저, 조금 달랐다.

처음에는 소금과 그가 다르다고 생각했다. 소금은 또래보다 훨씬 똑똑했고 – 스스로 그 사실을 알 만큼 똑똑했다 – 모르는 것이 없어 보이는 30대 중반 본사 출신 선생님이 자신과 당연히 다른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평소보다 돌먼지가 조금 덜 날려 다들 운동장으로 뛰어나간 날, 소금은 친구들을 따라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가, 운동장에서 하늘을 한 번, 표준어 교실 쪽을 한 번 바라보았다. 교실에는 선생님이 혼자 앉아 있었다. 그때 소금은 깨달았다. 자신과 선생님이 다른 것이 아니었다. 자신과 다른 아이들만 서로 다른 것도 아니었다. 자신과 선생님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었다.

발이 땅에서 조금 뜨는 것 같았다. 십 년을 딛고 섰던 땅에서. 소금은 교실의 문을 두드렸고, 선생님이 준 답을 오래 생각했다. 책을 찾아보았다. 자주들 쓰지 않아서 그렇지 코쇠1에도 카두케우스 표준 도서관은 있었다. 소금은 우주에 대해 읽었다. 항성계와 항성계 사이를 넘는 초광속 비행에 대해, 초광속 우주선이 통과하는 비상점에 대해 읽었다. 선생님이 살았던 본사가 있다는 마키옌데에서 이곳 코쇠까지는 최단경로를 최고속도로 달려도 표준시로 몇 주가 걸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 거리를 왕복하는 사이 세상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는 것도 알았다. 선생님은 그 거리를 넘어 이곳에 왔다. 선생님은 아마 사실 아주 오래 전에, 삼십 몇 년보다 훨씬 전에 태어난 사람이었다. 아무도 그런 얘기는 한 적이 없었다. 저 멀리 본사가 있고, 우리의 선조는 본사와 계약을 해서 채굴을 하면서 여기 살기로 했고, 우리 같은 항성계가 온 우주에 많이 있다는 내용 이상을 배운 적이 없었다.

소금은 선생님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소금은 선생님과 점점 더 비슷해졌다. 달리 말하면,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졌다. 가족과 친구들은 어느 광산에서 어떤 일을 하면 좋을지 생각할 때가 되었다고 했다. 대부분 가족이 일하는 곳을 따라갔다. 소금에게는 64광구에서 일하는 오빠가 있었다. 연애를 시작하는 친구들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어리니까 집에서 기다리라던 부모님이 소금을 데리고 상가를 찾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몸에 맞는 상복이 생겼다. 어른들을 따라 때로는 광산을, 때로는 무덤을 찾아 정중히 돌을 던지고 돌아오는 일이 익숙해졌다. 생리를 시작했다.

이 모든 코쇠의 돌먼지와 소금의 발 사이의 간격은 점점 더 벌어졌다.

선생님이 소금에게 좋은 질문을 하는 학생이라고 칭찬한 다음부터, 소금은 더 신중히 말을 골랐다. 예를 들어, 소금은 다른 아이들과 달리 선생님의 첫사랑을 묻지 않았다. 소금은 자신의 첫사랑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가족에 대해서는 절대 묻지 않았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궁금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알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소금이 우주는 어떤 곳이냐 묻자 선생님은 고요한 곳이라고 답했다. 여기는 광산이라 그런지 언제나 진동과 소리가 느껴지는데, 우주는 진공이기 때문에 아주 조용하다고. 소금은 진공이 무엇인지 알았다. 우주선을 본 적은 없지만 우주선의 구조와 작동방법도 이제는 알았다.

물론, 수업시간에 배운 것은 아니었다. 우주선도 조용한가요? 선생님은 잠시 망설이더니 답했다. 조용하다면 조용하지. 이곳보다는 훨씬 조용해. 우주선에는 불필요한 소리가 없단다. 그 점이 땅과 다르지. 그 다음부터는 소금에게도 코쇠1의 소리가 들렸다. 진동이 느껴졌다.

“카두케우스사는 훌륭한 곳인가요?”

선생님이 한참 동안 답을 하지 않았지만, 열 살 그 날 오후 이후 선생님이 소금의 질문을 무시한 적은 없었기에 소금은 기다렸다. 선생님이 말했다.

“카두케우스사는 그저 존재하는 거란다. 우주처럼. 본사가 훌륭한 사람을 구분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지.”

“교과서를 보면 카두케우스사는 전지전능한 존재 같아요. 시간여행도 할 줄 아는 것 아니에요?”

“그야 이미 하고 있잖니. 초광속 비행이 시간여행이란다. 알고 있지?”

그리고 선생님은 아주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마키옌데보다도 먼 곳. 소금은 문득 무서워져, 얼른 질문을 보탰다.

“과거로의 시간여행도 가능할까요?”

“상대적으로 따져보면 그런 셈이지.”

“그러면 저는 과거로 시간여행을 가서, 제 나이일 때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아니, 동갑이면 재미없겠죠. 지금 선생님은 나이가 엄청 많잖아요. 저보다 몇 살 위인 선생님이 궁금해요. 한 열 여덟? 열 아홉?”

“안 된다!”

선생님이 갑자기 언성을 높였다. 소금은 놀라 주춤 물러섰다. 선생님은 소금을 아이처럼 대하지 않았지만, 감정적으로 대한 적도 없었다.

“선생님?”

선생님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미안하다. 잠시만.”

“…저, 갈까요?”

“…그래.”

소금은 발꿈치를 들고 조용히 교실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밖에서 적당히 놀고 일찍 들어와 광산 일이든 집안일이든 조금씩 손에 익힐 나이가 되지 않았냐는 잔소리를 귓등으로 들어 넘기고 2층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2층인데도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 행성의 진동이. 소금은 고요한 우주를 상상했다.
 



그 다음날, 그는 수업시간이 끝난 후 평소처럼 말간 얼굴로 표준어 교실을 찾아온 소금에게 서류를 보여주었다. 카두케우스 비행학교 지원안내서였다.

그는 어느새 열세 살이 된 소금을 응시했다. 이 아이는 우주인이었다. 다른 우주인들로부터 갈라지고 우주에서 쫓겨나 붙박이가 된 그가 십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다시 만난 우주인이었다. 우주를 생각할 수 있는 마음과 우주로 나갈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외로운 행성에서 우주와 시간을 말하며 즐거워할 상대를 만나 안도한 사이에 표준시로 삼 년이 지나 버린 것이다. 열아홉에 그는 마지막 우주비행을 했고, 실패했고, 붙박이가 되었다. 열세 살은 아직 늦지는 않았지만 코쇠가 외지인 점까지 고려하면 빠르지도 않은 나이였고, 코쇠의 광산 사망률을 생각하면 위험한 나이였다. 자질은 확실했다. 마키옌데 같은 곳에 있었다면 진즉에 눈 밝은 사람에게 발견되어 입시를 시작했을 아이였다.

“우주에 가 보고 싶니?”

그가 소금을 보며 물었다. 소금은 그가 내민 서류를 이미 보아 알고 있었다. 도서관에서 예전에 읽었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 코쇠까지 왔을지 궁금했지만 차마 묻지는 못했을 때, 우주선을 탈 수 있는 직업과 방법을 찾아봤다. 그가 코쇠에 온 이유는 알지 못했지만, 코쇠에서 우주로 나가는 방법은 알아냈다.

그가 갱도에 철필로 글자를 새기듯 말을 이었다.

“너에게는 재능이 있어. 우주에 가려면 카두케우스 비행학교에 입학해야 해. 카두케우스사의 행성민이라면 누구나 시험에 응시할 수 있지만, 여기에서 가장 가까운 섹터 선발 시험에 준광속으로 다녀오는 데에도 상대시로 삼 개월 정도가 걸린다. 코쇠1과 너의 시간이 다르게 흐르기 시작할 거야. 한 번 시작하면 돌이키기 힘든 과정이란다. 이건 아주 중요한 결정이야. 지금부터 잘 생각해 보고….”

“가겠어요.”

소금이 그의 말을 잘랐다. 그가 입을 뻐끔거렸다.

“소금아, 잘 생각해 보고.”

“생각했어요.”

“가족과도 얘기해 보아야 하잖니.”

“카두케우스 비행학교 지원에는 보호자 동의가 필요 없잖아요. 추천인만 있으면 되죠.”

그는 눈앞의 소녀를 꼼꼼히 살펴보았다. 소금은 흔들리지 않는 눈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추천해주세요. 가고 싶어요.”

가고 싶어요. 그는 마치 보내 주세요, 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 착각에 머리를 흔들었다. 거부의 몸짓으로 오해한 소금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선생님, 저는.”

“알았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못 본 척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의 발이 이미 뜬 것을 안 이상 막을 수 없었다. 어떤 확신은 나이와 장소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동기는 보이지 않았지만 자질이 있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결과는, 그의 소관이 아니었다. 그의 인생조차 애당초 그의 소관이 아니었던 것을.

“내일 부모님 모시고 오고, 준비하자.”



소금은 만 열네 살이 되던 해 코쇠1 행성을 떠났다. 그가 내보낸 두 번째 제자였다. 본사는 추천인에게 입시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다. 보통 탈락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의무는 아니라 그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소금은 코쇠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몇 년은 새로운 학생들을 유심히 보았으나 그처럼 빛나는 재능은 다시없었고, 그는 다시 붙박이의 세계로 천천히 침잠했다. 외로운 채로 시간은 흘러갔다. 학교에 오는 아이들도 조금씩 줄었다. 광산에서는 작은 사고가 조금씩 늘었다. 따지자면 역시 자신의 제자이기도 했던 소금의 오빠는 서른이 못 되어 갱도에서 죽었지만, 그 딸은 학교에 들어왔다. 소금과 닮은 구석이 전혀 없는 붙박이, 코쇠의 18세대였다. 손과 피부가 돌가루 바람에 거칠어지고 머리가 세기 시작했다. 그는 먼지와 진동과 소리를 끌어안고 교실의 책상과 의자를 닦고, 여전히 때때로 고장난 기계나 이해하기 어려운 본사의 지시에 관해 ‘선생님’의 조언을 구하는 이들을 맞이하고, 해가 저물면 죽음을 향해 무거운 발을 끌었다.
 



결국 본사의 조사팀이 왔다. 본사의 조사팀원 중 한 명이 그를 공항으로 불렀다. 본사 사람들은 바쁘신 몸이라 거주구역까지 한가히 찾을 여유가 없었다. 조사팀원은 그가 기계 관리며 광산 관리에 관해 코쇠인들에게 했던 조언을 물었다. 배워 아는 것을 물어보니 가르쳐 준 것이죠. 그는 무심히 답했다. 이곳은 오래 된데다 외진 행성이니 도와줄 수 있으면 좋지 않습니까. 그는 조사팀원의 얼굴에 스친 붙박이에 대한 경멸을 놓치지 않았으나, 마음 쓰지도 않았다. 그의 발은 이미 코쇠의 땅에 붙어 있었다. 수십 년 만에 공항과 우주선을 보았지만 이상할 만큼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는 땅에 붙은 발을 끌고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 어느새 수십 년을 지내 온 표준어 교실의 문을 열었다.

소금이 일어섰다.

“관제사가 됐다고 들었는데.”

그는 제자의, 옛 말벗의, 우주인으로 태어났던 아이의 다 자란 얼굴을 보고 중얼거렸다.

“관제사도 했죠. 보기 이래서 그렇지, 제게는 많은 일을 해 볼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어요. 이번에는 비행사로 왔어요. 여기 이제 2세대 정도밖에 안 남았잖아요. 이주계획을 갱신할지 코쇠4를 개발할지 검토한대요. 모레 코쇠4로 가요.”

그는 천천히 교탁의 의자에 앉았다.

“그런 건, 기밀 아닌가?”

“따지자면 기밀이긴 하지만, 저도 선생님께 뭔가 가르쳐 드리고 싶어서 말해 봤어요. 언제나 제가 배우기만 했으니까요.”

소금이 작게 웃었다.

“정말 진동과 소리가 느껴지네요. 행성 전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코쇠는 광산이라 그런지 언제나 진동이 있다고요. 우주는 고요한데 여기는 좀 다른 소리가 난다고.”

“기억이 나지 않는구나. 나도 이제는 잘 못 느끼겠고.”

“저는 알겠네요. 저는 더 이상 코쇠 사람이 아니니까요.”

소금은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도 학교에 대해서도 묻지 않았다. 그의 안부도 묻지 않았다.

“선생님이 저한테 가르쳐 주셨던 것 중에 표준어가 가장 재미없었던 것 아세요? 게다가 저한테 가르쳐 주지 않으셨던 게 아주 많다는 것도 나가서야 알았어요. 선생님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왜 여기로 오셨었는지. 왜 잘 생각해 보라고 하셨었는지, 저 이제는 알아요. 그때는 그냥 어떻게든 우주로 나가기만 하면, 선생님이 경험한 걸 저도 경험해 보기만 하면 선생님한테 더 가까이 갈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멀어졌잖니?”

“그건 여기 남았어도 어쩔 수 없었을 부분이잖아요. 그리고 정말 멀어졌다고 생각하세요? 비행학교와 우주와 도약을 경험한 제가, 코쇠에서 자라났을 저보다 선생님에게서 더 멀까요?”

그는 답을 찾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몸은 의자에 앉았지만 발이 살짝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아주 오랜만에, 그의 발바닥이 땅으로부터 바람이 지나갈 만큼 아주 조금 떠오르고, 죽음과 그 사이에 우주만 한 작은 진공이 생겼다.

“좋아했니?”

마침내 그가 물었다.

“괜찮았고?”

“아 선생님, 지금 너무 ‘선생님’ 같아요.”

소금이 열 살 소녀처럼 웃더니, 뒤의 질문에 먼저 답했다.

“네, 괜찮았어요. 저는.”

그리고 늙은 스승의, 단 한 순간 우주비행사였던 남자의 눈을 보고 말했다.

“좋아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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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정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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