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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에 묻는다] 그녀 vs. 블레이드 러너 2049

◇ 안어려워요 | SF에 묻는다

 

사랑은 인간 사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감정입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많은 사람이 살면서 누군가를 사랑하고 가정을 꾸립니다. 이성애가 가장 흔하지만, 세상에는 동성애를 비롯해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있습니다. SF에서는 오래전부터 그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해 왔고, 그중에는 인공지능과의 사랑도 있습니다.

 

※  편집자 주 
본문은 해당 작품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다면 먼저 작품을 찾아보기를 권합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에 개봉한 영화입니다. 올해 2월 영화 ‘조커’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했고, 스칼릿 조핸슨이 운영체제의 목소리 연기를 했습니다.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미국입니다. 


시어도어가 산 인공지능 운영체제는 개인 비서 역할을 하며, 경험을 통해 스스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자신에게 ‘서맨사’라는 이름을 붙인 인공지능과 시어도어는 새로운 생활을 시작합니다.

 

 

2017년 개봉한 ‘블레이드 러너 2049’는 지난 5화에서 소개했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편입니다(과학동아 2019년 12월호 ‘SF에 묻는다’ 참조). 극 중 배경은 전편에서 30년이 지난 미래입니다. 전편에서 반란을 일으켰던 레플리컨트는 폐기되고, 케이처럼 인간의 명령을 잘 듣는 신형 레플리컨트가 보편화됐습니다. 영화 시작과 함께 케이는 외딴 농장에서 지내고 있던 탈주 레플리컨트를 격렬한 전투 끝에 제거합니다. 그리고 농장 지하에서 수상한 상자를 발견합니다.

 

 

그렇습니다. 시어도어는 서맨사와 사랑에 빠집니다. 몸이 없어 대화만이 가능한 인공지능을 사랑하게 된 것이죠. 사랑에 빠진 시어도어는 삶의 활력을 되찾습니다. 서맨사와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생활이 즐거워지니 덩달아 일도 더 잘됩니다. 서맨사 역시 더 빨리 학습하고 성장하게 됩니다. 


시어도어는 이웃에 사는 친구 에이미와 만나 서로 근황을 이야기합니다. 시어도어에게 에이미는 남편과 헤어졌다고 말하고, 시어도어는 에이미를 위로합니다. 이혼에도 불구하고 에이미는 표정이 비교적 밝았는데요. 사실은 남편이 남기고 간 인공지능과 친구가 됐다고 합니다. 


그러자 시어도어는 자신도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인 서맨사와 만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에이미는 서맨사를 사랑하느냐고 묻고, 시어도어는 자기가 미친 것 같냐고 반문합니다. 하지만 에이미는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미치는 법이라고 대답합니다.

 

 

조이는 케이의 유일한 동반자입니다. 하지만 조이가 특별한 존재는 아닙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언제든 광고판에서 흔히 만나볼 수 있는 대량생산 인공지능에 불과하죠. 


케이의 집 천장에 달린 홀로그램 투영기를 통해서만 나타나기 때문에 집 밖으로는 나가볼 수도 없습니다. 케이를 사랑한다고 해도 안아주지도, 요리를 해 주지도 못합니다. 


그런 조이를 위해 케이는 휴대용 투영기를 선물합니다. 이 장치를 이용해 조이는 집 밖으로 나와 볼 수 있게 되죠.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해방된 기분을 만끽하던 조이와 케이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을 때 케이는 호출을 받습니다. 케이가 발견한 상자에서 뭔가를 찾았다는 겁니다. 
상자 안에 들어있던 것은 구형 레플리컨트의 유골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이 레플리컨트에게는 임신했던 흔적이 있었습니다. 

 

 

아내는 시어도어에게 진짜 감정을 다룰 줄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저 순종적인 아내를 원했을 뿐이라면서요. 아내의 비난에 혼란을 느낀 시어도어는 잠시 서맨사와 소원해집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서맨사가 노력하지만, 쉽게 해소되지 않습니다. 


에이미는 고민을 털어놓는 시어도어에게 서맨사와의 관계도 진짜 관계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덕분에 시어도어와 서맨사는 관계를 회복합니다.


시어도어와 서맨사가 휴가를 떠났을 때 서맨사는 다른 인공지능과 함께 업그레이드를 했다고 밝힙니다. 문득 시어도어는 서맨사에게 다른 사람과도 이야기하고 있는지 묻고, 서맨사는 동시에 8000명이 넘는 사람과 대화하고 있다고 대답합니다. 


다른 사람도 사랑하느냐는 질문에는 641명과 사랑하고 있다고 대답하죠. 시어도어가 서맨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를 놓고 고민에 빠지면서 이야기는 슬슬 끝을 향해 다가갑니다.

 

 

 

케이는 유골로 남은 레플리컨트의 아이를 찾아내라는 명령을 받고 조사에 나섭니다. 회장이 죽은 뒤 망한 기업 타이렐을 인수해 신형 레플리컨트를 제조하는 기업이 된 월레스는 그런 케이에게서 눈을 떼지 않습니다. 임신할 수 있는 레플리컨트 기술에 관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사 과정에서 추측하게 된 자신의 과거 때문에 심리적 동요를 겪고 폐기될 위기에 처한 케이는 도주를 결심합니다. 조이는 자신을 휴대용 투영기에 옮긴 채 케이를 따라나섭니다. 실마리를 좇아간 케이가 만난 것은 전편의 주인공이었던 데커드였습니다. 


그때 추적자가 나타나 케이에게 치명상을 입히고, 데커드를 납치합니다. 조이는 위험을 무릅쓰고 케이를 구하려다 파괴됩니다. 홀로 쓰러져 있다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한 케이는 마지막 힘을 내 데커드를 구합니다. 그리고 데커드를 어디론가 데려가는데…. 결말은 영화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공지능과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할까?

 

프로그래밍된 사랑에 대한 논의가 먼저


간혹 인간이 아닌 상대를 사랑해서 결혼한다는 이야기를 뉴스에서 접할 때가 있습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나 게임 캐릭터와 결혼한다는 사람도 있고, ‘사물 기호증’이라고 해서 아예 물건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을 사랑해서 결혼하겠다는 식이죠. 말이 결혼이지 법적으로 인정받는 결합은 아닙니다만.


이런 사람들도 있는 판국에 인공지능과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없으리라고는 할 수 없을 겁니다. 사람과 동등한 수준의 지성을 갖춘 데다 내 말을 잘 들어주고 이해해주는 인공지능이 나온다면,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분명히 나올 겁니다. 육체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인공지능을 육체 관계가 가능한 로봇에 이식할 수 있다면 그런 한계도 사라질 겁니다. 


거기까지 가지 않아도 이미 우리 주변에는 채팅이나 전화 통화만으로도 사랑에 빠지는 사례가 있죠. 영화 ‘그녀’가 바로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토닉 러브(육체적 사랑과 대비되는 순수한 정신적 사랑)’라는 개념도 있고요.


이처럼 사람은 인공지능을 사랑할 수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반대로 인공지능이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과학동아 3월호에서 소개한 영화 ‘A.I.’에는 엄마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을 보여주는 로봇이 등장했습니다. 이번에 소개한 ‘블레이드 러너 2049’의 조이도 케이를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기까지 합니다. 


영국 출신 체스 선수이자 인공지능 연구자인 데이비드 레비는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인간의 사랑을 구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비록 인공이지만 진짜와 다름없는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죠. 


차이가 없지는 않습니다. 인공지능은 프로그램이므로 사람이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습니다. 시어도어의 아내도 “당신은 순종적인 아내를 원했을 뿐”이라면서 비난했죠. 사람의 명령에 따르는 인공지능 애인은 순종적입니다. 이렇게 한쪽이 일방적으로 조종하는 건 정상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레비는 적절한 갈등을 일으키도록 인공지능을 프로그래밍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프로그래밍된 사랑이 진짜 사랑이냐고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람도 유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는 셈이니까요. 사랑한다는 인공지능의 말이 단순히 알고리즘에서 나온 것이라고 해도 듣는 입장에서는 거부감만 떨쳐 버린다면 차이를 알아채기 어려울 겁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게 진짜인지 알 방법은 없지 않습니까? 상대방의 말과 행동으로 판단할 뿐이죠.


알고리즘이든 진짜 인간이든 누군가의 마음을 휘저어놓을 수 있다면, 그 결과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기계가 그렇게 인간의 마음을 휘저어놓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할까요? 사랑, 나아가 결혼까지 허용해야 할까요? 그런 현상이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고민이 됩니다. 그런 기술이 가능해지기 전에 그에 관한 윤리적인 논의가 먼저 이뤄져야 할 겁니다. 

 

 

 

고호관
건축과 과학사를 공부했고, 동아사이언스에서 과학기자로 일했다. 지금은 SF와 과학에 대한 글을 쓰거나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SF 명예의 전당’ ‘낙원의 샘’ ‘링월드’ ‘신의 망치’ 등이 있고, 최근 달 이야기를 유쾌하게 다룬 책 ‘우주로 가는 문, 달’을 출간했다. hokwan.k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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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고호관 작가
  • 에디터

    이영혜 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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