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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에도 계급이 있다

노란색보다는 붉은색이 한수 위

푸르름으로 뜨거운 여름을 시원하게 해주던 산들은 가을이 되면서 울긋불긋 몸단장을 시작한다. 벚꽃놀이가 봄나들이를 대표한다면 가을에는 당연히 단풍놀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가장 아름답다는 우리나라의 단풍은 어떤 연유에서 그렇게 아름다운 자태를 갖게 된 것일까.

단풍이라고 하면 손을 벌리고 있는 듯한 붉은 색의 단풍나무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단풍(autumn coloration)은 특정한 나무의 이름이 아닌 가을철 잎이 떨어지기 전 나뭇잎의 색깔이 노란색이나 갈색, 또는 붉은색으로 바뀌는 현상을 말한다.
 

단풍에도 계급이 있다.


일단 엽록소가 파괴돼야
 

1. 노란 단풍^엽록소에 가려졌던 카로틴과 잔토필이 나타나서 노란색을 띈다.


광합성의 주역이자 잎을 푸른색으로 유지시켜주는 엽록소가 파괴돼야 단풍이 나타난다. 가을이 되면 잎의 생육활동이 막바지에 이르게 되고, 잎으로의 수분과 영양분의 공급이 둔화되기 때문에 엽록소가 여름만큼 왕성하게 생성되지 않는다. 그런데 잎속에 남이 있는 엽록소는 햇볕에 의해 계속 파괴되기 때문에 잎은 푸른빛을 잃게 된다.

단풍은 노란색부터 진한 빨강까지 갖가지 색이 나타난다. 색에 따라 단풍이 드는 경로가 다른데, 크게 두가지 경우로 나눌 수 있다. 먼저 노란색 단풍은 엽록소가 파괴된 뒤 원래 잎속에 있었던 노란색소인 카로틴(carotene)과 잔토필(xanthophyll)이 나타나 잎이 노랗게 보인다. 새로운 색소가 합성되는 것이 아니라 엽록소가 사라지면서 푸른색에 가렸던 노란색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 두가지 노란색소는 햇볕을 받아도 변화가 없으므로 엽록소가 파괴된 뒤에 잎 속에 계속 남아 있다. 그래서 노란단풍은 가을 내내, 그리고 해마다 비교적 색깔의 차이가 심하게 나지 않는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카시나무나 목백합이 이 경우에 속한다.

또 완전한 노란색이 아닌 갈색이나 황금빛 노란색을 띠는 단풍은 카로틴 이외에 타닌(tannin)이라는 갈색 색소가 있기 때문이다. 참나무나 너도밤나무, 느티나무 또는 은행나무가 갈색 빛의 단풍을 갖는다.

이렇게 원래 잎속에 있던 색소가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새로운 색소를 형성해 색깔을 만드는 단풍도 있다. 바로 붉은색 단풍인데, 노란 단풍보다 한수 위인 단풍이라 할 수 있다. 엽록소가 파괴된 후 잎속에 없었던 안토시아닌(anthocyanin)이라는 색소가 새로 합성되면서 잎이 선명한 붉은 색이 된다.
 

2.황금빛 단풍^노란색소에 타닌이라는 갈색색소가 섞인것


안토시아닌은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으로 탄수화물이 많을수록 생성이 촉진된다. 탄수화물이 많이 쌓일려면 낮에는 잎이 광합성을 많이 하는 대신, 밤에는 호흡작용을 적게 해 탄수화물의 소비가 적어야 한다. 즉 낮은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 햇볕이 잘 들어야 하고, 밤은 시원하면서 낮과 밤의 온도차가 많이 나야 한다. 물론 온도가 영하로 내려가서는 안된다. 같은 사과나무에서도 빛이 잘 드는 쪽의 사과가 먼저 불그스레 해지는 것만 봐도 안토시아닌이 광합성에 의해 탄수화물이 많이 생긴 곳부터 생성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안토시아닌은 햇볕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붉은 단풍은 노란단풍에 비해 날씨에 크게 좌우된다. 그래서 온도의 기복이 심한 유럽은 단풍이 곱게 물들지 않는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날씨는 기복이 심하지 않으면서 서서히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안토시아닌이 형성되는 좋은 조건을 제공한다.
 

3.붉은 단풍^안토시아닌이라는 새로운 색소가 형성되기 때문에 붉게 물든다.


흔히들 서리가 와야 단풍이 든다고 생각하지만 서리를 맞으면 잎은 얼어버리기 때문에 단풍은 고사하고 얼어죽고 만다. 붉은 단풍이 드는 나무에는 단풍나무를 비롯해, 벗나무, 붉나무 등이 있다.

한편 사시사철 붉은 잎을 유지하는 홍단풍(노무라단풍)은 단풍나무의 변종이다. 이 나무는 엽록소의 생성이 적고 안토시아닌의 생성이 많아 사계절내내 붉게 보이다 가을이 되면 낙엽이 돼 떨어진다.

노란색과 붉은 색의 중간쯤 되는 밝은 오렌지색을 띄는 단풍나무도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카로틴이 있으면서도 안토시아닌이 생성되기 때문에 오렌지색이 나타난다.
 

(그림)최근 7년간  단풍의 절정기 평균 날짜(절정기란 산의 80% 이상이 단풍이 드는 때)


겨울 채비의 전주곡

단풍이 든다는 것은 식물이 늙는다는 것이다. 단풍이 드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어느날 갑자기 잎이 노랗거나 빨갛게 물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초록색이었던 잎이 햇볕이 드는 쪽부터 부분적으로 노랗게 되었다가 붉은색이 첨가되면서 오렌지색으로 변한 다음, 완전히 붉게 물든다. 나무 전체적으로도 잎의 나이 순서에 따라 가지의 맨 밑에 달린 잎부터 시작해, 중간에 있는 잎, 마지막으로는 끝에 달린 어린 잎 순으로 단풍이 든다.

우리나라 전체적으로 9월 하순 설악산, 오대산을 시작으로 11월 상순 한라산까지 단풍놀이는 한달 정도 계속된다. 그러나 단풍은 보름정도의 짧은 시간동안만 지속되는, 나무의 겨울채비를 위한 전주곡에 불과하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나무들은 낙엽을 준비한다. 여러 가지 물질들은 나무 밑둥이나 뿌리로 내려가 저장되거나 조직의 한부분이 되고, 색소는 파괴되면서 단풍색은 점점 바래지고 드디어는 잎은 죽어서 나무에서 떨어지게 된다.

단풍은 잎이 떨어지는 낙엽수의 특징으로 알려져 있다. 침엽수에 비해 진화된 식물인 활엽수에서 단풍이 많이 나타나지만, 드물게 침엽수도 단풍이 든다. 후피향나무의 새로 나오는 잎은 붉은색을 띠다가 초록색으로 바뀌며, 남천은 가을철에 붉게 물든다.
 

단풍은 낙엽이 되기 위한 사전작업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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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10월 과학동아 정보

  • 곽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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