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과학계는 고온 초전도체 개발경쟁이 몰고 온 뜨거운 바람으로 온통 달아올라 지난 한해를 그 열풍속에서 지새다시피 했다. 당초 이 초전도'열병'의 진원은 스위스에 있는 IBM취리히연구소였으나 도쿄와 휴스턴에서 북경과 뉴델리와 서울에 이르기까지 삽시간에 전세계로 번져나가 웬만한 연구소는 너도나도 이 경쟁대열에 뛰어들었다. 1911년 발견된 초전도현상이 75년이 지난 오늘날 과학계는 물론 산업계와 국가의 관심의 과녁으로 재등장한 것은 높은 온도에서도 이런 현상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재료들이 발견됨으로써 방대한 응용의 길을 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전기·전자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이신소재가 미칠 혁명적인 영향을 예견한 미국은 초전도현상 응용개발에서 기선을 잡기 위해 정부·연구계·산업계가 전례없이 똘똘 뭉치기 시작했다.
지난 7월 말 흡사 '전미(全美) 잼버리'와 같은 인상을 풍겼던 미국 초전도회의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고온 초전도재료개발을 부추기기 위한 11개 항목의 지원계획을 발표하는가하면 미국 상하원에는 3개의 지원법률안이 올라가 있고 연구개발자금을 제공하겠다는 초전도체 벤처캐피틀이 뒤를 이어 설립되고 있다. IBM은 이미 실용화연구에 들어가 초전도세라믹스의 엷은 필름을 뽑아 내는데 성공함으로써 이 개발경쟁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6백여명의 물리학자와 1백여명의 기업연구자들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는 일본은 초전도재료 컴퓨터칩을 비롯하여 3년내에 개막될 초전도체 상업화시대의 기수가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한편 노벨상을 지향하는 과학자들의 숨막히는 치열한 경쟁은 결국 고온초전도체를 처음 개발한 IBM 취리히연구소의 스위스인 '칼 알렉스 뮐러'와 독일인 '요하네스 게오르그 베트노르츠'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다.
포문을 연 반도체전쟁
반도체를 둘러 싼 미국과 일본의 치열한 경쟁은 마침내 무역전쟁으로 번졌다. 미국은 지난 3월 세계 반도체시장의 패자로 올라 선 일본의 덤핑행위에 대한 보복조치로서 텔리비전과 X선 필름을 포함한 여러 일제제품의 관세를 100% 부과 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일본이 86년 합의한 반도체협정을 어기고 주로 동남아 시장에서 생산가를 밑도는 헐값으로 일제 반도체를 마구 팔고 있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난해 세계 반도체시장에는 처음으로 1메가 D램 칩이 선을 보이기 시작했으나 일본의 NTT는 시제품이지만 벌써 16메가 D램 칩을 제작하는데 성공하여 반도체기술의 우위를 과시했다. 미국 반도체 메이커들은 반도체기술의 열세를 회복하기 위해 미국연방정부의 지원을 받는 반도체제조기술연구소(Sematech) 를 설립하기로 뜻을 모았다. 일본은 90년대 중반에 반도체생산을 지배할 X선 노광(露光)기술에서 미국보다 한발 앞섰으며 갈륨 비소연구, 레이저 시스팀 및 광전자기술에서도 미국보다 앞섰거나 같은 수준에 있어 미국으로서는 국가와 업계의 연구계의 공동노력으로 대처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컴퓨터계의 파랑을 일으킨 IBM의 신기종
세계 컴퓨터계의 '거인'IBM은 지난4월 퍼스널 시스팀/2라는 새로운 컴퓨터기종을 선보였다. IBM은 그동안 퍼스널컴퓨터시장에서 값싼 호환기종(클론)에게 크게 잠식당한 점유율을 만회하기 위한 반격전략의 하나로서 종래의 PC XT보다 처리속도가 2배나 빠르고 풍부한 그래픽 제작능력을 보유하며 다루기 쉬운 소프트웨어를 갖추었을 뿐 아니라 당분간 호환기종 메이커들이 모방할 수 없게 새로운 기능의 칩을 내장한 신기종을 내놓았던 것이다. 이 신기종은 성능이 매우 우수하다고는 하지만 일반고객들은 값이 비교적 비싸고 종전의 모델과는 전혀 호환성이 없는 이 신기종을 구입하기를 주저하고 있고 클론 메이커들도 이 신기종과 맞먹는 새로운 호환기종을 개발하고 있어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개발중인 새로운 운용시스팀이 완성되는 1989년께 까지는 퍼스널 컴퓨터의 표준기종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
선보이기 시작한 신경망시스팀 컴퓨터
지난 4월 미국의 HNC사가 말을 인식하고 인공시각을 갖춘 이른바 '신경망 시스팀'의 첫작품을 내놓음으로써 생각하는 기계가 실용화될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예고했다. 이어 '커즈웰 어플라이드 인텔젠스'사는 사무용 컴퓨터의 액세서리로서 2만개의 낱말을 인식할 수 있는 인공지능장치를 내놓았다. 사람의 뇌속의 신경패턴을 모델로 개발하기 시작한 이 혁신적인 컴퓨터는 미주알 고주알 상세한 프로그램이 필요 없으며 보기를 들어 가면서 기계를 훈련시키면 자세한 것은 기계가 알아서 처리하게 된다. 전문가들은 칩 한개에 1천개의 '신경'을 다져 넣을 수 있다면 오늘날 사무용 컴퓨터가 10초에 걸리는 일을 10분의 1초에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넓어진 유전공학응용분야
1987년은 유전공학을 이용한 최초의 대형 의약품이 등장하는 해로 기대를 모았던 생물공학계의 꿈은 당분간 연기되었으나 지난 해 유전공학은 의료분야에서 식물계에 이르기까지 응용의 나래를 더욱 넓혀나가 일찌기 없었던 풍요한 성과를 거두었다. 세계 유전공학계의 선발기업인 미국의 '제넨테크'사가 90년대초에는 연간 매출고 10억달러를 어림하는 시장을 형성할 혈전증 치료제 PTA의 생산허가를 신청했으나 미식품의약국은 지난 5월 29일 임상실험의 미비를 들어 허가를 당분간 보류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이보다 앞서 미국립보건원은 그효험을 인정하고 임상실험을 단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세웠었다.
한동안 그 효험에 대해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면역 시스팀의 항진 호르몬인 인터루킨-2(IL-2)가 암치료에 뛰어 난 효과가 있다는 임상보고를 지난 4월 권위있는 의학학술지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이 발표하여 새삼 각광을 받게 되었다. 지난 85년 레이건대통령의 결장수술팀의 대변인으로서도 널리 알려진 미국립 암연구소의 '스티븐 로젠버그'박사가 개발한 새로운 치료법은 우선 암환자에게 유전공학기법으로 생산한 대량의 IL-2를 보강함으로써 몸의 면역조직을 크게 부추긴다. 다음 단계는 환자의 피를 뽑아 백혈구를 분리한 뒤 IL-2를 담은 그릇속에서 '목욕'을 시키면 빠른 속도로 번식하는데 IL-2로 자극된 이 세포를 다시 환자의 혈관에 주입하면 암세포를 찾아가서 파괴해 버리는 것이다. 이 결과 108명의 환자중 29명의 악성종양은 50%이상 줄어 들었고9명은 완쾌되었다.
과학자들은 또 다른 의미에서 1987년을 생물공학을 위해서는 하나의 전환의 해라고 생각하고 있다. 지난 4월 미국환경보호청은 처음으로 재조립 DNA 기술로 생산된 미생물의 현장실험을 인가했다. 캘리포니아대학(버클리)의 과학자들은 작물의 상해(霜害)를 막아 줄 유전공학제품인 이른바 '아이스·마이너스' 박테리아의 실지 현장실험에 들어 갔다. 이리하여 한때 연구실에 갇혀 있던 기술은 마침내 야외에서의 대규모응용의 첫발을 내딛게 된 것이다. 이것은 15년의 유전자 재조립기술사에 새로운 국면을 열어주게 되었다. 가까운 시일내에 현장실험에 들어 갈 인공박테리아중에는 바이오테크 인터내셔널사의 질소고정용 박테리아인 '리조븀 멜리로티'와 '몬산토'사의 해충구제용의 '피 플루레신트'등을 포함하여 여러 종이 있다.
한편 유전공학을 이용한 축산용제품 개발연구도 지난해 많은 진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세계를 통해 4백50여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이 분야에서는 첫째, 가축은 물론 인간에게 위험을 줄 잠재성을 가진 질병을 정확하게 가려내는 값싼 진단제 둘째, 재래식보다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사용하기 쉬운 백신 세째, 젖소의 우유생산량을 늘이고 돼지의 비계를 줄이며 닭의 출하는 앞당길 수 있는 성장 호르몬 네째, 출산율을 높이고 가축의 질을 향상시키는 성 호르몬과 배조작 기술등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예컨대 몬산토사는 산유량을 20% 늘릴 수 있는 성장 호르면 BST를 개발하여 89년에는 시판할 계획이며 현재BST호르몬을 동물실험중인 '업존'사도 1990년까지 시판할 예정이다. 지난해 초에는 '인테그레이트드 제네틱스'사가 가축번식에 주요한 역할을 하는 BFSH 호르몬을 개발하여 미국식품의약국의 인가를 받았다. 이 호르몬으로 처리된 암소는 배란기에 6개의 알(종래는 1개)을 만들 수 있다.
서비스계로 진출하는 로봇
1990년까지 25만개의 산업용로봇대국으로 성장하리라던 미국은 예측을 크게 빗나가 올해에도 로봇 매출고는 계속 내리막 길을 걸어 겨우 2만 5천개의 로봇을 유지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엄청난 투자에 비해 기대했던 것만큼 효과를 얻지 못한 기업들이 로봇투자에 주저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으나 치밀한 사전 검토와 계획없이 서둘러 공장자동화를 도입하면 실패하기 십상이라는 하나의 교훈을 일깨워주기도 했다.
예컨대 지난 8년간 4백억 달러를 투입하여 공장자동화를 밀어 오던 GM 사는 1천여개의 메이커들이 공급한 자동장치들이 서로 다른'언어'(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른바 '통역시스팀'을 사용할 수 밖에 없어 자동차제작비는 자동화이전보다 높아진 결과를 가져 왔다. GM은 수년간의 노력끝에 최근 '제작자동차 프로토롤(MAP)'이라는 이를테면 만국공통용어인 '에스페란토'어를 개발하여 납품사들에게 기준을 설정하는 한편 지난 6월부터 '폰티액'등 자동차공장에서 MAP중심의 컴퓨터망으로 연결된 생산시설을 처음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로봇계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산업용 로봇보다는 서비스용 로봇의 개발이 활발해졌다는 점이다. 고령화사회가 진전되고 서비스임금의 상승으로 불구자와 노인의 시중을 들 수 있는 로봇의 수요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로봇은 이제 과일따기와 빌딩 및 호텔객실의 청소에서 빌딩의 경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서비스분야로 진출하고 있으며 머지 않아 해양유전 굴착장치의 건설및 보수, 건설현장의 작업, 우주스테이션의 조립, 패스트 푸드 만들기, 소방, 고압전선의 검사분야까지 진출하게 되어 90년대중반에는 산업용로봇시장의 갑절이나 큰 연간 20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역사적인 오존협정에 합의
지난해 세계 우리나라는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오존층 파괴물질인 CFC의 생산을 규제하자는데 합의하여 공해에 대해서는 인류가 공동노력으로 대처한 대해서는 인류가 공동노력으로 대처한다는 훌륭한 선례를 남겼다. 지난 9월 캐나다 몬트리얼에서 유엔 환경계획 주최로 열린 24개국대표들은 대기권의 오존층을 파괴하는 CFC의 세계소비량을 1999년까지 50%줄이는 계획에 원천적으로 합의했다. 이 협정은 세계 CFC 소비량중 최소한 67%를 사용하는 11개국이 이 협정을 비준한다고 가정하고 89년 1 월1일에 효력을 발생하게 되어 있다. 참여국가들은 1990년 7월까지 CFC의 소비량을 1986년 수준으로 동결하는 한편 CFC의 생산량을 86년수준의 최고 110%로 제한하기로 되어 있다. 그런데 냉동시설의 냉매와 해면모양의 플라스틱을 만드는데 주로 쓰이는 CFC는 대기권으로 올라가서 오존층을 파괴하고 지구의 오존량이 1%줄어들어도 연간 수만명의 피부암 환자가 새로 발생하며 2%줄어들면 47만명의 피부암환자가 생긴다는 연구보고가 있다. 듀퐁, 얼라이드 시그날, 임피리얼 케미컬 등 세계 주요 메이커들은 해가 없는 CFC대용품을 개발하고 현재 실험중이어서 이 협정이 발효될 무렵에는 대용품이 선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불꽃튀는 AIDS 백신개발경쟁
1991년까지 세계의 1천만인구가 후천성면역 결핍증(AIDS) 바이러스에 감염되리라고 추정되는 가운데 AIDS백신개발에는 30개에 가까운 연구그룹이 참여하고 있다. 연구자들 가운데는 1955년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너스 솔크'를 비롯하여 세계의 이름난 미생물학자와 면역학자들이 거의 모두가 망라되어있으며 머크, 쉬론, 시바-가이지, 존슨 앤드 존슨등 세계의 유명 제약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지난 봄 파리의 '피에르 에 마리 퀴리' 대학의 저명한 면역학자 '다니엘 자귀리'박사가 스스로 AIDS 백신의 실험대상이 되었다고 해서 의학계에 커다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오늘날 AIDS백신 개발은 서브유닛 백신, 수정백신, 아데노바이러스, 죽인 AIDS바이러스, 항-항체 등 5갈래로 추구하고 있으나 가장 낙관적인 전문가들도 백신이 완성되자면 아직도 최소한 5년은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수퍼노바 1987 A의 장관
1986년 핼리혜성으로 떠들석했던 세계 천문학계는 87년 3월 수퍼노바 1987 A의 대폭발로 또 다시 바쁜 한해를 보냈다. 지구에서 17만광년(1광년은 약 6조마일)밖의 은하 가장자리와 접한 별들의 섬인 대 마젤란운에 있는 이 별의 대폭발로 인류는 3백83년만에 가장 빛나는 별을 관측하게 되었다. 천문학계는 이것을 1604년이래 천문학에서 일어 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으며 현대기술을 통해 이 폭발의 상세한 내용을 관찰함으로써 별과 은하가 어떻게 작용하며 무거운 원소들이 어떻게 창조되는지의 과정을 실증적으로 알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활기 되찾은 우주발사
1986년의 미국 챌린저호의 참사에 이어 86년 5월에는 유럽우주청의 아리안로켓의 발사실패로 그동안 침체를 면치못하고 있던 우주발사는 지난9월 아리안3로켓이 2개의 통신위성을 성공적으로 발사함으로써 다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 당분간 자유세계에서는 유일한 우주발사체가 된 아리안은 1991년까지 이미 25억달러에 이르는 발사계약을 맺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다시 우주발사를 개시하려면 2년의 세월을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초연구진흥에 주력하는 각국의 과학정책
국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는 미국은 지난해부터 첨단기술의 우위성을 되찾기 위해 대학의 기초연구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한편 산학협동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레이건대통령은 87년연두교서에서 미국의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앞으로 5년간에 걸쳐 미국립과학재단의 예산(현재 16억달러수준)을 2배로 늘리고 미국의 경제적인 경쟁력에 직접 이바지할 기초과학에 초점을 맞출 새로운 대학부설 과학기술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미국립과학재단은 1992년까지 80에서 1백개에 이르는 새로운 과학기술센터를 개설할 계획이며 미의회는 앞으로 10년간에 걸쳐 미국의 대학 연구시설을 현대화하기 위해 25억달러를 지원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한편 종래 분산형의 과학기술정책을 지켜오던 영국은 지난해 집중적인 과학정책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지난 6월 총선에서 연거퍼 3번째로 승리한 마가렛 대처수상은 내각을 통해 수상에게 직접 보고하는 기관인 과학기술자문위원회(ACDST)라는 신설 기관을 설치하고 기초에서 응용에 이르기까지 과학에 대한 모든 형태의 정부지원에 대한 정책자문을 하게 되었다. 영국은 과학정책의 전환을 통해 종래 분산되었던 과학 기술노력을 집중함으로써 연구개발효율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