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 싶다’는 바램은 인류의 허황된 꿈 중 하나다. 고대 이집트의 미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이를 위한 다양한 시도가 이뤄졌으나, 결국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하지만 최근 죽은 후 생전의 모습을 생생히 보존하는 플래스티네이션 기술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죽은 이가 어떻게 다시 부활하는지 플래스티네이션 과정을 알아보자.
사람은 태어나면 늙고 병들어 마침내 죽음을 맞음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이 생노병사의 과정은 지극히 당연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자연계의 법칙이다. 하지만 인류는 고대로부터 이 자연스런 과정을 거부하고자 수많은 시도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고대 이집트인들이 제작한 ‘미라’는 죽음이라는 과정을 부정하고자 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집트인은 몸이란 개개인의 진정한 주인인 ‘바’(ba)가 잠시 머무는 장소쯤으로 생각했다. ‘바’는 사람마다 고유하며 몸과 함께 태어나는 영혼인데, 사람이 죽어 몸이 썩어 없어지면 바가 깃들 영원한 집이 없어지므로 바도 함께 사라진다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죽은 이의 시신을 영구히 보존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머물 미라를 만들어 ‘영생의 꿈’을 실현하고자 했다.
최근에는 첨단 물질과 기술을 이용한 새로운 보존 기술이 개발됐다. 바로 냉동기술과 합성수지를 이용한 ‘플래스티네이션’(plastination) 미라다.
눈물 없는 해부학 실습
지난 2000년 어느 화창한 봄날, 독일 쾰른의 한 전시장에 느닷없이 ‘미라’가 대거 나타났다. 박물관의 유리관 속에서 앙상한 뼈만 간직한 채 지난날의 ‘영화’만 회상하는 생기없는 미라가 아니라, 금방이라도 전시장을 뛰어나갈 것 같은 생기와 따뜻한 피가 도는 듯한 말랑말랑한 피부를 가진 미라였다. 이 전시회는 현대판 미라 제조법으로 불리는 플래스티네이션으로 제작된 미라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자리였다. 총 2백여 장기와 20여구의 인체, 그리고 3-5mm 두께로 인체의 특정 부위를 횡단면으로 자른 투명하고 얇은 ‘포육’이 전시됐다.
플래스티네이션은 1978년 독일 하이델베르그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인 군터 폰 하겐스 박사에 의해 처음 고안됐다. 그는 해부학 강의를 진행하며 학생들이 ‘일반 해부샘플’로 인해 고통받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일반 해부샘플은 해부학 교실이나 생물 실험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크릴 통에 들어있는 액체 표본이다.
시신이 해부학 교실에 기증되면 방부와 보관을 위해 포르말린이나 알코올 등의 액체를 시신의 동맥을 통해 주입한다. 이렇게 준비된 표본은 포르말린 등의 특성 때문에 해부하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거나 냄새로 인한 곤란을 호소하게 만들었다. 그때까지 해부학 수업은 학생들의 눈물과 고통을 대가로 치러야 하는 매우 힘든 과정이었다. 물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시신을 냉동 또는 냉장 보관하고 알코올만을 주입하는 비교적 단순한 보존술이 쓰이기도 했는데, 이 방법은 시신을 오래 보관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하겐스 박사는 시신을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인체의 장기와 조직을 누구나 쉽게 보고 관찰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존의 알코올와 포르말린을 대신할 새로운 물질을 찾기 시작했고, 마침내 현대판 미라 제조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플래스티네이션’ 방법을 고안했다.
핵심은 수분 제거
이집트의 미라나 플래스티네이션 같은 시신 보존기술의 핵심은 예나 지금이나 시신에서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초기 이집트인들은 시신을 아마천으로 싸고 광택이 나도록 수지(송진과 같은 나무진)를 발라 사막에 묻는 비교적 단순한 방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뜨겁고 건조한 모래에 의해 습기가 제거되는 과정을 막았고, 결과적으로 만드는 미라마다 썩고 말았다.
이처럼 부패는 자연계의 모든 동식물에게 적용되는 필수과정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죽으면 썩을까? 공기나 신체 내부에 존재하는 각종 부패균들이 인체를 이루는 단백질 성분을 주로 이용해 부패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곤 이 과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수분이다.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하면 죽은 사람의 몸을 썩지 않게 보관할 수 있다. 즉 인체 내의 수분을 없애고 시신을 보관하는 환경에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수백년에 걸친 시행착오 끝에 시신에서 수분을 없애는 그들만의 방법을 개발했다. 일단 죽은 이의 몸에서 뇌, 소장과 대장, 간장, 폐를 꺼낸 다음 이들을 따로 보관하며, 시신은 ‘네이트론’이라는 건조제로 몸의 수분을 모두 제거한 후 기름으로 윤기를 낸다. 기름을 칠한 시신을 수지와 아마천으로 감싸 공기 중의 수분과 부패균이 더 이상 미라에 침투할 수 없도록 했다. 꺼낸 내장기관들도 모두 ‘네이트론’으로 건조시킨 후 각각의 호리병에 따로 담아 미라와 함께 매장했다. 네이트론은 천연 탄산나트륨(${Na}_{2}$${CO}_{3}$)으로 이는 공기 중에서 수분을 흡수하는 성질이 매우 강한 화합물이다.
고무처럼 말랑말랑한 시신
플래스티네이션은 이집트의 미라보다 강력하고 효과적인 수분 제거 방법을 이용한다. 또한 보통의 미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복원 과정이 있다. 이 기술 덕분에 플래스티네이션 미라는 보통 미라보다 더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더욱 생생한 모습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해부학에서 시신을 처리하는 과정은 기본 목적이 다르다. 시신의 영구보존이 목적인 보통 미라와는 달리, 교육 또는 연구를 위해 해부하는 과정 동안 시신이 일정기간 부패하지 않고 가급적 살아있을 때의 무른 정도를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집트 식의 미라는 비교적 오랫동안 시신을 보존할 수 있지만 수분을 제거한 후 대체물을 채우지 않기 때문에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의 인체를 확인하기 힘들다.
플래스티네이션이라는 용어는 영어의 ‘플라스틱’(plastic)에서 따왔다. 성형외과를 의미하기도 하는 플라스틱은 원래 ‘찰흙 따위로 어떤 형체를 만드는’이라는 뜻이 있다. 합성수지를 이용해 사후의 시신을 새롭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플래스티네이션이라는 용어를 붙인 것이다.
플래스티네이션의 기본 원리는 인체 내 모든 지방과 수분을 합성수지(polymer)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렇게 제작된 미라는 시신이 ‘쪼그라드는’ 현상을 막을 수 있어 생체처럼 탄력 있고 고무처럼 말랑말랑한 일정한 무르기를 지녀 ‘생동감’이 아주 뛰어나다. 또한 포르말린을 채운 유리병에 장기를 담아 보관하는 이전의 경우와는 달리 냄새가 안나고 건조한 상태에서 장기와 인체를 사실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 더욱이 표본을 영구히 보존할 수 있으며 실제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인체 표본을 만들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플래스티네이션 과정은 수분을 제거하는 과정과 합성수지를 주입하는 과정, 이렇게 크게 두단계로 나눌 수 있다. 보다 상세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표본을 만들 대상을 정한 뒤 이를 움직이지 않게 고정시킨다. 이 표본 위에 포르말린을 부어 더 이상의 부패를 차단한다. 다음은 탈수 과정이다. 표본에 남아 있는 수분이나 일부 지방을 제거하는 과정으로 이 과정에서 체액성분이 유기용매로 대체된다. 유기용매로는 알코올이나 아세톤이 주로 이용되는데, 최근에는 주로 아세톤을 이용한다. 다음 단계에서 합성수지와 치환할 때 아세톤이 알코올보다 치환이 더 잘되기 때문이다. 소수성 용매인 아세톤에 비해 친수성인 알코올은 체내로 들어가 조직과 결합하기 쉽기 때문에 치환하기 까다롭다. 또한 표본이 줄어드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15 ~ -25˚C 에서 탈수 과정을 거친다.
사람이 죽으면 세포수준에서의 각종 생명현상이 멈추어 세포 소기관의 크기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시신 자체의 부피가 줄게된다. 하지만 이 온도에서는 세포 수준에서의 모든 생명현상이 멈추기 때문에 표본이 더 이상 줄어들지 않는다. 탈수 과정은 표본에 수분이 1% 이내로 남을 때까지 계속된다.
다음 과정은 플래스티네이션의 핵심인 합성수지 주입 단계다. 체내의 수분과 치환된 아세톤을 진공펌프를 이용해 액체 합성수지와 2차로 치환시킨다. 표본으로 들어간 아세톤은 보통의 조건에서는 잘 빠져나오지 않기 때문에 진공상태에서 강제로 이를 빼낸 다음 그 자리에 합성수지를 넣는다. 주입을 보다 쉽게 하기 위해 강력한 진공펌프를 이용해 표본 주위를 진공상태로 만든 다음 아세톤을 합성수지로 대체시키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표본 내로 들어온 액체성 합성수지를 가스나 자외선을 이용해 일정한 정도로 굳도록 만드는 ‘경화 과정’을 거치면 플래스티네이션 미라는 완성된다.
생물 표본으로 활용 가능성
플래스티네이션 미라는 현재 독일을 중심으로 오스트리아, 남아프리카, 미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서 보다 나은 기술개발을 위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중이다. 독일의 경우 하겐스 박사를 중심으로 인체와 장기를 보존하는 자체 연구소를 하이델베르크에 설립,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미시건 주립대학에서 인체를 포함해 동물이나 식물, 곤충에 이르기까지 표본을 만들어 플래스티네이션을 이용한 응용범위를 넓히고 있다.
현재 국내의 경우 몇몇 의과대학에서 단편적인 시도가 있었으나 완전히 시설을 갖춘 곳은 없다. 기증되는 시신이 비교적 많고, 표본 전체를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하는 육안해부학을 전공으로 하는 해부학자가 있는 대학 등의 가능한 조건을 고려해보면 국내의 여건은 그리 좋지 않다. 최근에는 필자의 응용해부학 연구실 등을 중심으로 국내에서도 플래스티네이션 연구를 본격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그러나 조상의 시신에 손대는 것을 금기시하는 한국의 경우는 플래스티네이션 표본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기증 받은 시신을 플래스티네이션 표본으로 만들려면 기증을 서약한 당사자나 유가족의 동의가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미국의 미시건 주립대학의 경우처럼 플래스티네이션 보존술을 다양하게 이용하면 단지 의학분야뿐 아니라 그 응용범위는 무궁무진하다. 예를 들면 현재의 초등학교나 중·고등학교 생물표본전시실에서 전시된 액체 표본이나 모조 표본 등을 모두 플래스티네이션 표본으로 바꿀 수 있다. 액체 표본은 눈으로 보고 만족하는 수준이었으나 플래스티네이션 표본은 손으로 직접 만져가며 생체 조직의 내부를 보는 것이기 때문에 교육 효과는 엄청날 것이다.
또한 플래스티네이션은 극소수의 경우에 해당하지만 특수한 장례기술로 이용될 수 있다. 필자의 연구실을 중심으로 몇몇 플래스티네이션 연구실은 죽은 이의 모습을 영구히 간직하고 보존하고 싶은 유족을 대상으로 ‘현대식 미라 보존술’ 신청을 받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조상의 모습을 생전의 모습 그대로 복원해 영구히 보존할 수 있는 플래스티네이션 미라로 만드는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그토록 염원했던‘영원한 삶’이 최첨단 기술을 이용한 플래스티네이션으로 부활했다. 이제 더 이상의 공수래공수거는 없을 듯하다. 가까운 미래에는 빈손으로 왔다가 미라로 보존되는‘공수래미라거’의 삶이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