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모양의 빙산을 헤쳐 나가기 3개월, 어린이도 동반한 탐험대의 파도와 바람과 얼음속 항해기.
'제롬 폰세트'가 처음 남극을 방문했던것은 1970년대의 초였다. 길이 10m의 다루기 까다로운 목조요트로 갔던 이 최초의 여행목적은 과학적 탐구라기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것이었다.
어린아이들까지 태우고
그러나 1977년, 대학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샐리'와 팀이 된 뒤로는 남극반도 연안의 야생동물 관찰이라는 뚜렷한 목표를 세웠다. 그들은 얼마 뒤 결혼했고 매년 여름마다 새로운 해안선을 답사하는 항해를 거듭했다. 남극의 야생관찰에 요트를 사용한다는 것은 너무 파격적인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대단히 효과적인 것이다.
폰세트 부부는 길이 15m의 스쿠너형요트 '대미안Ⅱ'를 건조했다. 대미안Ⅱ는 지금까지의 빙하해역 항해에서 쌓은 여러사람의 경험을 토대로 극지방해를 항해하는데 알맞은 여러가지 기능을 갖춘것이다. 선체에 비해 80마력이는 강력한 엔진이 앉혀졌고 강철선체의 가장자리는 1.5m 간격으로 단단하게 보강되었다. 그리고 플라스틱제의 돔이 갑판으로 나갈수없는 악천후에도 앞을 가로막는 유빙을 살피는 망대역할을 할수있게 되어있었다.
이렇게하여 대미안Ⅱ는 1987년 1월10일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혼'곶에서 동쪽으로 2천km도 더 떨어져있는 사우드 조지아섬으로 향해 출발했다. 탐험가족은 폰세트 부부와 그들의 세 아들 '디온'(6세) '리브'(4세), '디티'(만 1.5세) 그리고 샐리의 동생 '리사'와 카메라맨을 겸한 필자(벤 오즈본)로 모두 7명이었다. 최종 목적지는 마거리트만의 '머슈룸'섬이다. 왕복 3개월이 걸리는 여정이다. 사우드조지아섬에서 남극반도까지는 직선거리로 1천5백km. 그 사이에 있는 '스코티아' 해는 악천후의 명소로 빙산에 부딪쳐 난파되는수가 많은 곳이다. 이런 바다에서 항해에 익숙하지 못한 필자는 갑판 당번을 할때 불과 5m차이로 빙산과 충돌할뻔한 위험을 겪기도했다.
처음부처 이렇게 어려운 항해였으나 36시간 뒤에는 무사히 사우드 셰틀랜드제도의 킹 조지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섬에는 10개국의 연구기지가 있어 코즈모폴리턴 문화의 꽃이 피어있다.
그러나 이와함께 환경파괴도 진전되고 있었다. 버려진 자재나 녹슨 기계류가 여기저기 흩어져있고 마구 달리는 캐터필러에 짖밟힌 귀중한 식물이 죽어가고 있었다.
1985년에 중공기지가 이곳에 설치 되었을때 동독의 생물학자도 그 성대한 기념파티에 초청을 받아갔다. 그때 그는 요리 메뉴를 보고는 깜짝 놀랬다. 동독생물학자가 연구대상으로 하고있는 펭귄요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중공기지에서도 식량의 현지조달을 중시했지만 비슷한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평화로운 낙원의 오후
남극반도는 서경 57~70도사이와 남위75도 부근에서 북쪽으로 남위 63도15분 까지에 이르고있다. 지질학적으로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안데스산맥과 이어진 환태평양조산대의 일부를 이루고있다. 습곡산맥과 대지가 이어져있고 눈이 많이와 산지나 해안에서는 얼음에 의한 침식이 심하다.
조산운동이 있었던 증거의 하나가 '디셉션'섬에있다. 이곳에는 직경 9km나 되는 분화구가 있으며 여러개의 각국 기지가 있었으나 최근의 분화로 파묻히고 말았다.
우리는 이 섬의 천연사우나를 만끽하고난 뒤 '트리니티'섬에서 패러다이스 항(港)을 향해 남으로 내려갔다.
도중에 연료탱크에 구명이 생겨 연료가 거의 반이나 흘러버렸다. 그러나 폰세트시는 냉정하게 대처하여 수년전에 폐쇄된 아르헨티나기지에서 버려져있는 드럼통을 몇개 배에 싣는데 성공했다.
뼈가 부서지는것같이 고된 그 작업이 끝난뒤 우리는 신선한 빵과 치즈와 포도주로 전형적인 프랑스풍의 점심을 들었다. 어린이들은 마냥 즐겁게 해안을 뛰어다녔다. 끝없이 맑고 푸른하늘, 주위를 둘러싸고있는 빙하의 웅대한 봉우리들, 그야말로 낙원의 오후였다.
저녁식사 뒤에 일행은 일몰을 지켜보았다. 이웃 '르메르'섬의 산들과 좀 더 먼곳 '안베르'섬의 산들이 핑크색으로 물들다가 드디어는 자색으로 변해갔다. 그리고 태양볕의 따스함이 황혼과 정적속에 사라지자 마지막에는 산들이 차디찬 흰세계로 변해갔다.
아무도 가보지않은 만을 향하여
맑은 날씨 속에 우리는 계속 남으로 내려갔다. 샐리는 고무 보트를 타고 혼자 먼저 가면서 여러 펭귄집단을 살피곤했다. 한편 우리들의 요트는 조용한 하구연안을, 유빙을 이리 비키고 저리비키면서, 관측도 해 가면서, 천천히 나아갔다.
영국탐험대의 '패러디'기지에서 남쪽으로는 얕은 암초와 '비스코'제도가 2백km에 걸쳐 펼쳐져 있었다. 이런 섬들은 모두 펑퍼짐하고 살풍경하며 노출된 바위꼭대기는 얼음에 덮여있었다. 그러나 몇개쯤은 얼음이 없는 섬도 있었다. 그런 섬은 극지새들의 중요한 번식처다. 그 중에는 아주 넓은 번식지도 있었다. 아델리펭귄 도둑갈매기 등검은 갈매기…등등. 비교적 살풍경한 해안선만 따라 며칠이고 가다가 갑자기 이런 야생동물이 떼지어 있는 곳에 이르렀을땐 약간 충격적이었다.
필자는 바쁘게 셔터를 눌렀다. 샐리와 리사는 섬에있는 동물들의 정확한 수를 헤아리느라 바빴다. 이것은 아주 어려운 작업이다. 수집된 이런 정보는 케임브리지에 있는 영국남극조사본부로 보낸다. 거기서는 이것을 야생동물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분류하는 것이다.
'베델'바다표범이 바위위에서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얼마 없었다. 될수있는대로 빨리 마거리트만에 도착해야만했다. 이미 2월 중순이다. 마거리트만은 1년의 거의 반동안 얼어붙은 채여서 소형선박으로는 항해할수없다. 그러나 여름이 끝날때 쯤에는 얼음이 적어 짧은 기간동안 작은배로 유빙을 피해가며 접근할 수있다.
특히 올해는 따뜻한 겨울이어서 남극의 얼음도 적었다. 그래서 요트로는 아직 가보지 않은 마거리트만까지 가기로 한것이다. 만 안으로 들어가자 요트는 깨어진 유빙과 거대한 모자이크같은 빙산등에 둘러싸였다. 낮 동안의 태양아래서는 윤곽이 뚜렷하지 않지만 석양무렵에는 비스듬히 비치는 광선이 기괴한 빙산에 생명을 불어 넣은것처럼 뚜렷히 드려내 보였다.
이런 광경을 볼때면 우리는 어려운 상황도, 두꺼운 얼음에 갇혀버린것도 전혀 걱정할 것이 없는것 같은 황홀경에 빠졌다. 다만 중요한것은 그곳에 있다는것과 석양이 얼음바다에 오렌지와 황색의 빛을 방사하는 숭고한 드라마속에 몸을 두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어디서나 오래있을수는 없었다. 가장 좋은 작전은 목적을 빨리 성취하고 날씨가 사나워지기 전에 빠져나오는 것이다. 6주간에 걸친 남하작전 끝에 남위 69도에 이르렀을때는 이미 탈출해야 할 시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