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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봉 구석기 유적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30만년전의 나비 비늘 발견

두루봉유적의 나비비늘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발견된 옛날나비이며, 세계 최고(最古)의 것이다.

30만년전의 어느 따뜻한 봄날, 오늘날의 충청북도 내륙지역의 산중턱 숲속에서 팔랑거리던 나비를 다시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흥미진진한 일일까. 요즘의 나비와 생김새가 얼마나 다를까. 또 어떤 빛깔을 띠고 있을까. 그러나 무엇보다도 흥미로운 점은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떨어진 먼과거의 생명체를 오늘에 와서 목격하고, 확인한다는 사실일 것이며, 학술적으로는 당시의 자연환경과 동·식물상에 접근해 볼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같은 희한하고 기적적인(?) 일이 현실로 나타났다. 30만년전에 이땅의 숲속을 날던 나비가 우리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비록 나비의 전체모습 그대로는 아니지만 날개의 편린들, 즉 비늘(鱗, scale)을 여러개나 확인하게 된 것이다. 과연 어떻게 해서 우리는 수십만년전의 나비의 일부분을 오늘에 와서 볼 수 있게 되었는가?
 

두루봉의 새굴 8백cm 지층에서 출토된 나비비늘. 20만년전으로 추정. 이 페이지의 나비비늘과 다음 페이지의 나비비늘 및 꽃가루사진은 현미경(Olympus Vennox)을 이용, 4백배로 확대촬영한 것이다.


바람에 날려 동굴속에 퇴적된 것으로 추측
 

꽃가루의 현미경사진(4백배 확대촬영). 위에서부터 진달래와 서나무속 오리나무속의 꽃가루들로서, 동굴에서 채취한 흙시료를 분석, 이들을 찾아내던 중 나비비늘이 발견됐다.


필자는 지난 1976년부터 83년까지 충북 청원군 가덕면 두루봉일대와 단양군 적성면 수양개마을 등을 발굴하여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을 여러 군데 확인하고 지금까지 그에 관련된 연구·분석결과를 발표해오고 있다.

두루봉일대에는 석회암지대가 발달돼 있었는데, 충북대 박물관에서는 여러 동굴들을 계속적으로 발견하여 연차적으로 발굴하였다. 그 결과 '제2굴' '새굴' '흥수굴' '처녀굴' 등의 동굴에서 당시 살던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각종의 석기 뼈연모 쌍코뿔소 큰원숭이 등의 동물뼈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또 2개체분의 인골(人骨)도 출토되어서 이 방면의 학문연구에 결정적인 자료를 안겨주기도 했다.

한편 고고학자들은 유적지발굴을 통해 얻어지는 꽃가루를 분석해 당시의 식물상이라든지 기후환경을 알아내고 있다. 이 꽃가루들은 구석기유적지의 지층(地層)을 이루는 흙속에 섞여 있으므로, 발굴작업시 각 지층의 흙을 시료로 하여서, 여러가지 과정을 거치는 현미경 분석을 통해 어떤 나무 혹은 꽃의 꽃가루인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이번에 발견된 나비의 비늘은 이처럼 두루봉과 수양개유적의 각 지층에서 채취된 토양을 분석, 꽃가구를 추출하던 중 박문숙·이경숙 연구원이 발견했는데,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꽃가루의 현미경사진과는 전혀 다른 사진이 찍혀나온 것이다. 필자를 비롯한 충북대 박물관의 연구팀이 이 사진의 정체가 바로 나비의 비늘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3년만인 최근이었다.

지금까지 발표된 세계의 고고학연구보고를 통틀어 나비의 잔해가 나왔던 것은 단 한번 있었는데, 그때의 발표사진과 우리나라에서 나온 나비비늘의 사진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었다.

즉, 미국의 고고학자 '소레키' (R.Solecki)가 1960년부터 발굴한 이라크의 샤니다르동굴의 흙시료를 1968년에 분석하다가 나비비늘을 찾았는데, 이 사실을 'A. 르롸 구랑'이라는 학자가 미국의 과학잡지 '사이언스'(SCIENCE) 75년11월7일자에 발표한 바 있다. 당시의 잡지를 보면 '그림2, 샘플313에서 나온 나비의 날개(4백배)'라는 사진제목과 함께 현미경사진이 실려 있고, 기사내용은 "샘플313에서 이상한 물체를 찾아냈는데, 그것이 나비날개의 비늘(a scale of a butterfly wing)로 확인됐다"는 정도로 짧은 것이었다.

샤니다르동굴의 구석기유적은 두루봉유적보다 훨씬 뒤의 시대여서 당시 출토된 나비비늘은 약 3만5천년~4만년전의 것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이번에 확인된 두루봉유적의 나비비늘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발견된 옛날나비이긴 하나 세계최고(最古)의 것으로 고고학적 의미를 갖고 있다.

이번에 확인된 나비의 연대는 출토된 지층에서 함께 출토된 동물화석의 특징으로 상대연대(相対年代)를 알 수 있는데, 두루봉유적에서 발견된 나비비늘의 경우는 최고 30만~40만년전('처녀굴'의 2백55㎝ 지층출토)에서 20만년전('새굴'의 8백㎝ 지층출토) 경의 것들로 여겨진다. 또 수양개유적에서 출토된 나비비늘은 빙하기의 추운 날씨에 살았던 것들로 추측된다.

현재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이 나비의 비늘들이 어떤 종류의 것이며, 어떻게 해서 동굴속에 들어왔는지 알기는 어렵다.

다만 당시 동굴부근의 나무나 꽃에 앉았던 나비가 떨어뜨린 비늘들이 바람에 날려 꽃가루 등과 섞여 동굴속에 들어왔다가 그대로 흙속에 퇴적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앞으로 구석기의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가 좀더 진척되고 작은 동물상(microfauna)의 관계가 고생물학의 뒷받침을 받아 종(種)의 재구성작업 등이 진척된다면, 좀더 자세한 나비의 전모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에는 관계되는 분야의 전문학자들의 공동연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또 거꾸로 이 나비의 비늘들을 연구함으로써 수십만년 전의 지구와 우리 주변의 환경을 더욱 확실히 해석해보는 단서도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아뭏든 일부분이긴 하나 수십만년전에 한반도의 숲속을 날아다녔던 나비의 모습을 현대에 사는 우리가 목격할 수 있게 된 것은 학문적인 의미를 떠나서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일이라 하겠다.

이 연구를 가능하게 해준 백제문화 연구원과 현미경촬영에 성공한 강상준교수께 감사한다.
 

두루봉의 처녀굴 2백55cm 지층에서 출토된 나비비늘로서 30만년전 이상의것으로 추정된다.
 

1987년 04월 과학동아 정보

  • 사진

    강상준 교수
  • 이융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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