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도 20대 박사가 양산되고 있다. 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우리나라 과학기술계를 양 어깨에 짊어진 이들은 대학에서 연구소에서 산업현장에서 어떠한 각오로 임하고 있을까.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인 20대 박사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서울대 87년 2월 박사학위 수여자(이학박사, 공학박사)의 면모를 살펴보면 55명 중 민주하(26세, 물리학)박사를 비롯 16명(29%)이 20대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대표적 고급인력양성기관인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경우는 더욱 이러한 경향이 두드러진다. 87년 2월 박사학위 수여자 67명중 김대영(25세, 화학)박사를 비롯 49명(73%)이 20대이다.
공자가 논어에 이르기를 30에 뜻을 세우고(立志), 40이면 세상사에 유혹되지 않으며(不惑), 50이면 하늘의 뜻을 깨닫고(知天命), 60이면 이순(耳順)이라 하였다. 그런데 20대박사인 이들은 뜻을 세우기도 전인 약관(弱冠)의 20대에 일가(一家)를 이루었으니, 옛 성현의 말씀이 수정될 수밖에 없는 오늘 날의 상황이 된 것이다.
선진국의 경우 보편적 현상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20대박사란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 일반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학령전 기간 6년, 초등교육 8~9년, 중등교육 3~4년, 대학 4년, 석박사 과정 3~5년에, 월반 조기진학 과목별진급 등 제도적 보완장치가 융통성 있게 운영되어 빠르면 25세 이내에 늦어도 30세 이내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프랑스 영국 서독 일본 등도 이와 대동소이하다.
재미과학자협의회보에 실린 포항공대의 장수영교수(전기전자공학)의 '미국인 노벨상수상자분석' 논문을 살펴보자. 이는 문학 및 평화상 수상자를 제외하고 현재 생존해있는 1백6명의 미국인수상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것. 이에 따르면 21세에 박사학뤼를 받은 사람이 2명(Julian Schwinger, Andrew Schally), 22세가 7명, 23세가 9명, 24세가 13명, 25세가 24명으로 가장 많고 26세가 19명, 27~29세가 20명, 30대에 학위를 받은 사람이 8명, 40대가 1명이다. 따라서 20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 전체의 89%에 해당된다.
더우기 구미 각국에서는 30세이후 학위를 받으면 직장을 얻기도 힘들다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특히 수학분야는 노벨상이 따로 없어 4년에 한번씩 그동안의 연구업적을 평가하여 '필드메달'(Fields Medal)을 수여하고 있는데, 이 수상자격에는 아무리 훌륭한 수학자라도 40세 이상이면 무조건 제외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3년이라는 병역의무가 부여돼있고 석사과정 2년, 박사과정 3년이라는 연수를 못박고 있으며 원칙적으로 월반 조기진학 과목별진급 등이 허용되지 않아 20대박사가 탄생한다는 것은 가뭄에 콩나기였다. 그러나 70년대 초반 한국과학기술원이 설립되면서 입학생에게 병역의무를 면제해주면서 우리도 20대에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여건이 형성되었다.
한국과학기술원은 78년부터 박사들을 배출하기 시작, 87년 2월까지 3백66명의 국내 박사를 양산하였다. 이중 69%인 2백51명이 20대에 학위를 받았다(표1). 특히 83년 8월부터 박사과정 조기진학제도가 시행되면서 학위연령은 더욱 낮아져 이 제도의 혜택을 받기 시작한 86년 8월 졸업자부터 25세박사(이재신, 한국전자통신연구소·재료공학)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87년 2월에는 25세 박사의 수는 3명으로 늘어났다.
박사과정 조기진학 제도란 석사과정 2년을 1년내지 1년6개월만에 마칠 수 있도록 한 것. 이는 선진국의 석박사과정 통합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한 것으로 아직까지 학과별 특성에 맞게 운영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확산되고 있지는 않지만 일부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년 이 제도의 혜택을 받는 학생 수는 20~30명 내외, 이 제도가 활성화되면 20대 초반 박사는 계속 증가될 추세이다.
한편 한국과학기술원 이외에도 서울대는 이공계 75학번(학부학번)부터 교수전문요원이라는 제도를 신설, 대학원 진학시 6개월만으로 병역을 마칠 수 있게 했다. 이 제도는 77학번 이후 특수전문요원제도로 바뀌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일정시험을 치르게 한 뒤, 합격한 학생에게는 교수전문요원 제도와 똑같은 병역혜택을 주었다.
이 두 제도로 학위 짜기로 소문난 서울대에서도 84년 2월부터 20대의 이학·공학박사가 탄생하기 시작, 86년 2월 12명, 86년 8월에 5명, 87년 2월에는 16명이 20대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시기
20대에 박사학위를 받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다.
"젊은 나이에, 집중적으로 공부할 시기에 연구활동에 몰입한다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지요. 일반적으로 20대라는 것은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세상 넓은 줄 모르는 시기 아닙니까? 인생에 있어서 기상천외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예를들어 '프리고진'이나 '파인만' 같은 사람들은 젊은 시절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아이디어를 획득, 노벨상을 받았으니까요."
20대 후반에 미국 텍사스대학(오스틴)에서 물리학박사학위를 받은 과학기술대학 장충석교수의 이야기다.
"박사학위가 학문의 종착역이 아닌 이상 빨리 학위를 받고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바람직하지요. 우리나라에서는 학위 자체가 목적이 되어 학위를 받고 나면 지쳐버리는 수가 많았으니까요. 또한 학문을 깊이 하려면 사람이 순수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집중력은 자연계 학문의 필수조건 아닙니까.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집중력은 떨어지지요."
서동엽(과학기술대·수학)교수의 설명도 마찬가지. 세상사에 젖다보면 '과학의 눈'으로 보아서는 이것은 분명 외도(外道)라는 것이다. 연구비 따가면서 하는 연구는 아무래도 실용적면으로 흐르기 쉽다는 지적이다. 이번에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학위를 받은 공영식박사(26세, 화학)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학문을 집중적으로 밀도있게 할 수 있는 전일제(全日制) 수업의 20대 박사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학문을 계속하려면 젊었을 때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자격, 즉 박사학위를 받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느껴집니다. 또한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집중적인 연구를 하다 보면 경쟁적인 분위기가 가열되지요. 이러한 가운데서 쌓아지는 연구실적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공학의 경우 연구소나 학교에서 사회경험 후 학위를 받는 것도 나름대로의 장점은 있겠지요. 자신들의 연구테마의 전망이랄까 아무래도 정보를 접할 기회가 많으니까요. 그렇지만 기업이나 연구소에서는 행정적인 일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을 테니까 교수나 선배들이 학위테마를 선택하는데 조언을 해준다면 아무 조건없이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전일제수업의 20대박사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보여집니다."
올해 한국과학기술원에서 학위를 받고 전자통신연구소 기반기술 연구부에서 근무하게 될 이경수(27세·재료공학)박사의 말이다. 공학의 학문적 성격이 응용 중심이긴 해도 박사학위 연구 테마가 바로 산업적 의미를 갖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스스로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박사라면 실제 활동영역에서도 뛰어난 자질을 보이게 된다는 것. 요즈음 배출되는 20대 젊은 박사는 일정한 좁은 분야만을 깊게 아는 '협사'(狹士)하는 일부의 의견을 통렬하게 반박하고 나선다.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능력
여기서 '박사란 무엇인가' 에 대한 현대적 의미의 해석을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박사는 3국시대부터 있었다. 고구려는 태학(太學)이라는 교육기관에서 가르치는 사람을 태학박사라 하였고 백제에서는 오경(五經)박사를 두어 시경 서경 주역 예기 춘추를 가르치게 했다. 신라에서는 국학을 두어 각 학과의 교수를 박사라 칭하였다.
이 당시 박사라는 말이 꼭 학문이 높은 사람을 일컫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른바 전문기술자들도 박사였다. '일본서기'를 보면 '탑학(塔學)박사' '노반(露盤)박사' 등이 백제에서 건너와 기술을 전수했다고 한다. 현대적 의미에서 이들이 오늘날의 이공계박사인 셈이다.
서양에서 박사의 원천은 중세 '신학박사'.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불가항력(不可抗力)박사, 불패(不敗)박사, 경탄박사, 백과(百科)박사라 불렸다. 전지전능한 자로서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무당적 개념' 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있어서 박사의 개념은 특히 이공계박사의 개념은 '독창적인 학문적 업적을 인정받은 자로서 스스로 학문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자'로 정의한다.
우리나라 유치과학자 1호인 한국과학기술원 이태규(84세,화학)박사는 이번에 학위를 받은 20대박사 제자들에게 "나도 29세에 학위를 받았지. 나는 너희들에게 '책보는 법'만을 가르쳤어. 이제는 너희들이 문헌을 찾아가면서 공부해야 한다"며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강조하였다.
서울대 교무부처장 장승필(토목공학) 교수는 "기업측에서 20대 국내박사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이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는 식이다. 박사는 자기 분야에서만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면 박사에 대한 올바른 개념확립을 강조하였다.
치열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
20대에 학위를 따는 젊은이들의 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그들은 어떤 의식으로 자신을 지켜나갈까?
"학위과정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경우 이론분야니까 꿈속에서 퍼뜩퍼뜩 생각나는 것을 자다가도 일어나서 메모하는 정도의 긴장감은 유지하지요. 공부를 직업으로 선택했기 때문에 규칙적인 생활을 하자고 스스로 다짐을 많이 합니다."
공영식박사는 자신이 느끼는 부담감정도는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도 받고 있는 하중일 것이라고 자제된 목소리로 표현했다.
"지루하고 단조로운 생활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식으로 기숙사와 연구실을 왔다갔다 하니까요. 박사과정초기에, 나의 관심사는 일반 사람들의 관심사가 될 수 없다는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더군요. 마지막 3년차에 일주일의 반을 꼬박 새하얗게 셀 때 오히려 그런 스트레스를 덜 받은 것 같습니다."
86년 8월 한국 과학기술원에서 학위를 받고 전자통신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이재신박사(26세·재료공학)의 말 속에서 그들의 의식세계를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하나의 결과를 위해 정신과 육체가 하나로 몰입되는 희열감은 자신들이 가지는 특권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나름대로의 소명의식으로 스스로를 무장하고 있다.
"기술은 공업화를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제 기술이 공업화를 주도하는 시대가 되고 있읍니다. 이러한 첨단기술사회에서는 2등이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관여하고 있는 반도체분야에서 더욱 그러하지요. 그중 한분야라도 톱이 되지 않으면 국제경쟁시대에 살아남기가 더욱 어려워지리라 생각합니다.
저는 태양열이용에 관한 논문을 썼지만 학위논문이 바로 사회에 활용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읍니다. 기대도 안했고 기대해서도 안됩니다. 우리나라의 여건상 사회가 요구하는 일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각오를 하고 있읍니다. 저희들에 대한 무언의 기대감이 심리적 압박을 주기는 하지만 이를 자극으로 알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일찍 결혼, 가정을 이루고 있지만 집에서도 책을 놓기가 어렵습니다. 안보면 불안할 정도니까요."
학위가 자신을 위한 연구였다면 이제는 조직, 사회, 나라에서 요구하는 연구를 하겠다는 다짐이 사생활의 일부를 보상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세월은 훌륭한 선생님이지만
25세, 젊은 나이라기 보다는 앳된 나이에 학위를 취득한 신은주(화학)박사의 말 속에는 그들의 성숙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여자이고 나이도 어리므로 저를 학교나 연구소에서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일종의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세월은 훌륭한 선생님이니까요. 그렇다고 거북이 걸음을 할 수는 없잖아요. 현대적 우화에서 토끼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습니다.
현재 제가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기업체에서 당장 응용할 수가 없는 형편이고 학교는 자리가 없어 걱정이 되긴 됩니다. 이러한 과도기적인 시기가 아무래도 3~4년은 계속될테니까요.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도 물질특허가 실행되면 기업체 특히 제약회사 같은데서 박사학위자를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기업측의 입장에서도 박사들을 과감히 고용, 고급인력을 양성하는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산업을 사올 수 있지만 과학 특히 기초과학 자체를 사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술선진국은 요원할 수밖에 없이죠."
'토끼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겠다는 표현은 스스로 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깊이 인식하는 현명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험장비 부족 절실
20대박사들이 학위를 받으면서 공통적으로 겪는 애로점 중의 하나가 장비와 자료부족이다. 심한 경우는 자료뿐만 아니라 장비를 자비로 구입할 때도 있다. 현재 국내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제외하고 심각한 문제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실험기자재를 비롯한 장비 구입 문제이다. 장비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6개월~1년을 앉아서 허비하는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고 심한 경우는 연필과 종이만을 가지고 학위 논문을 써야하는 대학도 있다는 것. 이런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박사가 탄생하기는 기대하기 어렵다.
여기에 학비문제 생활비문제까지 겹치면 상황은 더욱 어려워진다. 현재 KAIST에서는 등록금을 면제해주고 매달 학비 보조비용으로 1년차 월12만원, 2년차 13만원, 3년차 14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일반대학의 경우 한국 과학재단에서 지원하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러한 혜택이 전혀 없다.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시간강사 하기도 요즘은 쉽지가 않단다. 극단적인 경우 일부 박사과정 학생들 중에는 기술학원에 시간강사하면서 학비를 벌어 생활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띔한다.
서울대 김영식교수(과학사)는"일부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을 가는 동기가 외국에 가서 1년 정도 고생하면 학비는 물론 생활비까지 받아가면서 공부할 수 있는데 국내에서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며 박사과정에 대한 지원을 강조한다.
스스로 자처하는 1세대
국내에서 박사학위가 양산되면서 자연히 '해외박사 선호풍조'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 아직까지 일부 대학에서는 해외박사들을 우선으로 하는 경향이 있지만 앞으로 많은 부분 국내박사들이 양과 질의 측면에서 그들의 파워를 과시할 듯 하다.
"공학분야에서 국내 박사과정은 지난 70년대 후반부터 본궤도에 올랐다. 오히려 국내에 쓰일 학문이라면 국내박사가 훨씬 유리하지 않겠느냐"는 것이 20대 국내박사들의 공통된 견해다.
물론 자연계 학문의 성격이 '국제성'을 가지고 있고 정보시스팀이라든가 실험기자재 등이 선진국이 비해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 일부 대학에서 배출되는 박사는 지적 수준에서 절대 뒤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외국박사인 경우 적응력이 떨어져 고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
"모자라는 부분은 '포스트닥'(박사후 연수제도)으로 1~2년 외국에 가서 공부할 수도 있고 해외연수기회와 국제학술회의 참가 등이 보장된다면 쉽게 극복할 수 있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우리나라에서도 하루빨리 무조건적인 해외 박사 선호풍조를 떨쳐버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해외박사도 천차만별. 오히려 우수한 인재가 엉뚱한 대학에 유학을 가서 머리가 녹슬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일본의 경우, 전후(戰後) 많은 우수한 인력들이 미국 유럽 등으로 유학 갔지만 이제는 국내에서 학위를 받지 않으면 국내에서 자리잡기가 어려운 분위기이다. 이 점은 이제 본격적인 20대박사를 양산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박사과정 자체가 연구실적이므로 국내에서 학위를 받는다면 그만큼 많은 실적이 국내에 쌓이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박사와 해외박사는 정부출연연구소 등에서 거의 대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력이 없는 박사라도 선임연구원으로 임명되면 초임은 연봉 1천만원 정도이다.
'내가 설 자리는?'
"실험을 여러번 해도 원하는 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때의 어려움보다는 학위를 받고난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학계에는 자리가 없고 연구소는 당장 공업화할 수 있는 농약이나 의약품만을 찾고 있읍니다. 제가 마음껏 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가 쉽게 눈에 띄지 않는군요."
올해 KAIST에서 25년 7개월이라는 최연소 나이로 박사학위를 취득해, 매스컴의 스포트라이트를 가장 많이 받았던 김대영박사(화학)의 말 속에서 오늘날의 20대박사들의 갈등은 절정에 이른다.
현재 배출되고 있는 20대 국내박사들이 진출하는 곳은 교육기관, 정부출연연구소, 산업체(기업연구소) 등이다. 참고로 KAIST 출신 박사들의 진로를 보면 교육기관(37.5%), 연구기관(34.2%), 산업체(17.5%) 등의 분포를 보인다.
이 중에서 20대 박사들이 일반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곳은 교육기관. 자기 스스로 연구테마를 설정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연구할 수 있고 일반직장처럼 얽매이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계의 상황은 전산 등 몇몇 첨단분야를 제외하고는 20대박사를 수용할 태세를 전혀 갖추고있지 않다. 최근 과학기술대학이나 포항공대 등 교수 학생 비율이 10:1미만인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대학이 50:1을 넘고 있다. 특히 한 교수 당 박사과정 학생수만 10명이 넘는 경우도 있어 올바른 지도는 커녕 연구테마에 대한 토의시간을 내기도 어려운 실정. 이처럼 교수가 선진국에 비해 엄청나게 모자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뽑을 생각은 하지 않고 있다.
여기에 20대박사들이 '가르침'(Teaching)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회의론이, 설사 자리가 있더라도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 특유의 외국박사 선호경향도 교육계에 20대 국내 박사들이 자리잡는 것을 방해하는데 한몫을 거든다.
이번에 서울대에서 학위를 받은 황철성(29세, 토목공학) 박사의 경우, 마음가짐은 어떤 분야에서라도 자신이 마음껏 연구할 수 있는 곳이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만, 연구와 더불어 교육에 강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어 학교쪽으로 나가려 시도하고 있으나 아직 신통한 소식이 없다는 것.
특히 이런 상황에서 학교외에는 적절한 연구기관이 없는 물리 수학 등 기초학문분야 박사들은 갈 곳을 잃어 한순간 방황하지 않을 수 없다. '물리학의 입자분야인 경우 2000년까지 국내에는 한자리도 없을 것'이라는 말이 이들 사이에 공공연한 사실로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사람도 사올 수 있다는 생각 버려야
국내 산업계 또한 겉으로 보기에는 박사수요가 많을 것 같으나 실제 수용 능력은 매우 적은 형편이다. 86년 7월말 기준으로 2백20여개 국내 기업체 연구소에 있는 박사급 연구원은 2백여명으로 1개연구소에 1명꼴밖에 안된다. 아직 우리의 산업기술수준이 박사를 활용할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연구 프로젝트 수준이 박사를 요구할만한 것이면 대학에 외주를 주는 실정이다.
트랜지스터를 발명해낸 미국 AT&T의 '벨 랩'(Bell Lab)의 경우 기업연구소라 하더라도 기초연구에서부터 응용연구에 이르기까지 연구영역이 스펙트럼처럼 펼쳐져 있는 예를 보더라도 우리의 기업체질 변화는 시급하다 하겠다.
'기업은 슈퍼돼지에게만 관심이 있지 DNA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냉소적인 표현이 우리 사회에서 가시지 않을때 기술선진국으로서의 발돋움은 요원하다 하겠다.
서울대 장승필교수는 "우리나라의 고급 연구 인력은 절대량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것을 단시일 내에 메꾸려고 한다면 나중에는 화를 자초할 것이다. 특히 산업구조가 이를 뒤따르지 못할 경우 그 양상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기업측에서도 기초과학의 기본개념을 빨리 확립해야 한다. 몇억원씩 들여 유치과학자들을 모셔와서 매니지먼트만 배운다고 생각하지 말고 매니지먼트를 확보하는 과정도 스스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7백여명에 가까운 박사들이 근무하고 있는 정부출연연구소의 경우 20대박사들의 눈길을 많이 끌고 있다. 특히 학교와는 달리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장비나 돈 등에서 학교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여건이 좋기 때문에 의욕있는 젊은이들이 스스럼없이 선택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정부출연연구소는 아직 정착단계가 아니라 적지 않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연구소가 정착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과를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우리의 현실. 이는 당장 돈이 되는 쪽으로 토픽이 쏠린다는 뜻이다.
연구비를 따면 아웃풋(Output)을 요구하게 되며 이러한 체제에서는 심한 경우 외국에서 아웃풋을 사다가 여기에 연구를 맞추는 웃지못할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연구과제를 선택해서 착수하기 까지의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도 문제다. 2~3년 걸리는 프로젝트를 4년 걸려서 따내는,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상황도 종종 벌어진다. 결국 이렇게 되면 박사는 연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비를 따내가 위한 로비를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박사들이 연구소에서 연구를 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설자리를 잃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결과를 조급히 서두르지 않는 분위기와 함께 과학기술행정에 있어서 관료성을 빨리 극복해야 할 것이다.
"젊고 의욕있는 20대 박사들이 관료성과 타성에 젖은 분위기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2~3년내에 정부출연연구소의 분위기가 일신돼야 할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들어와 하나씩 해결해야 할 문제인지도 모른다." E연구소의 책임연구원의 표현대로 오늘날의 20대박사는 어느 분야에서든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산적해있는 것이다.
자리공백 현상은 비첨단분야일수록 더욱 심하다. 전문연구소가 따로 없는 분야인 경우 '학교 아니면 갈 곳이 없다'면 우리나라 고급인력양성계획은 전면 재조정의 위기에 몰린다. 그러나 본인들은 스스로 해결책을 제시한다.
먼저 대학의 경우 '전임강사 이상이면 평생직장'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필요가 있다는 것. 전임강사나 조교수의 경우 2~3년마다 그동안의 연구실적을 재평가하는 시스팀을 운영하고 부교수급 이상 평생직장을 보장하는 것이 이공계 대학에 적합한 제도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해야만 연구에 대한 자극이 생겨 대학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 물론 교수의 절대수가 부족한 현상을 빨리 해결해야 하는 것은 선결과제.
정부출연연구소도 앞에서 지적한 문제점 외에, 있는 맨파워(Man Power)를 효율적으로 조직화하는 것이 선진국의 기술력을 따라 잡는 지름길이라는 것. 그들의 의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치밀한 분야별 인력수급계획 세워야
정부의 장기적 고급 연구인력양성 계획도 좀더 치밀해야 함을 지적한다. '2000년까지 이공계박사 1만 5천명을 양성한다' 식의 막연한 계획이 아니라 정확한 수요를 예측, 각 분야별로 구체적 인력수급계획이 마련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일본이 몇년도에 박사가 몇명이었으니까, 우리도 이 정도면 되겠다' 라는 식은 산업구조가 일본과 다른 우리나라에서는 예상치 못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많다.
정부의 첨단산업 집중육성 계획도 일면 수긍가는 점이 없지는 않지만 좀더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대학에서는 균일하게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외국의 경우 기업이 응용에 치우친다면 정부는 기초분야 육성에 전력을 기울이는 예를 보더라도 나중에 절름발이 산업구조가 되지 않기 위해서 학문별 균형있는 지원은 절대적이라 하겠다.
비첨단분야인 경우 전문연구소도 부족하므로, 미국에서 처럼 '컨설턴트 그룹'(Consultant Group, 박사학위자들의 모임)을 운영, 기업측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를 전문적으로 해결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당장 돈이 되지는 않더라도
19C말 20C초 미국은 '존스 하킨스' 대학을 필두로 대학원중심대학을 중점 육성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하버드 등이 가세해 과학기술계 고급인력을 집중적으로 육성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KAIST도 이와 유사한 것이기는 하지만 산학(産學)연대를 중시하지 않고 학문을 중심으로 운영한 것이 특징이다.
여기에 사회적으로 특허제도가 시행되면서 산업쪽에서 인력양성에 가세하기 시작, 카네기 재단이라든가 록펠러재단에서 엄청난 돈을 댔다. 당장 기업에 이익이 돌아오지 않는 분야라도 상당한 양의 돈을 투자했다.
2차대전후는 연구위주대학을 중심으로 국방부 보건부회부의 예산을, 직접 관련이 있는 군사과학이나 질병, 암, 환경 분야가 아니라도 과감히 투자했다. 즉 정부는 기초연구에 기업은 응용분야에 과감한 인력양성 자금을 무한정 공급한 것이다.
85년에는 미국과학재단에서 기업의 생산기술과 아이디어의 원천인 대학을 연결시키기 위해 '엔지니어링 리서치 센처'라는 기구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대학별로 연구주제를 신청받아 5개부문(MIT 로봇센터 등)을 엄선, 5년동안 집중지원하는 것이다. 현재 이 제도는 상당한 성과를 내 각계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서울대 김영식교수는 "우리나라에서도 GNP의 2~3% 이상을 과학기술계에 투자할 계획인 것으로 안다. 이러한 계획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우리의 여건으로는 돈의 액수는 적지 않은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고급인력양성에 좀더 효과적인 투자를 하는 방안으로 국내 대학 박사과정에 육성자금을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 박사과정 자체가 연구업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대학연구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교수와 함께 포스트닥, 박사과정 학생, 석사과정 학생이 공존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며 요즘 젊은 20대박사들의 연구의욕을 만족시켜줄 수 있는 하나의 방안으로 국내에 포스트닥제도 정착을 제안하였다. 사람을 물건 사오듯이 생각해서는 안되고 사람을 양성하는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는 의미이다.
20대 초반의 박사도 가능
한국과학기술대학 87년도 입학생 5백33명 중 1백37명이 과학고등학교 2학년과정만을 마치고 입학했다. 또한 1학년만 마치고 입학한 학생도 8명이나 된다. 전체 수석 또한 2학년만을 마친 학생이 차지하였다. 86년도 입학생이 1년 동안 수학한 결과는 2학년만을 마치고 입학한 학생이 3학년 전과정을 마치고 입학한 학생보다 우수한 것으로 판명됐다. 이러한 현상은 인문계 고등학생도 조기 진학할 수 있게 한다면 더욱 증가될 추세이다. 여기에 무학년 무학과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과학기술대학은 20대 초반 박사의 요람으로 등장하게 될 전망이다.
이러한 결과를 놓고 한국과학기술대학 기획실장 문희정(화학)교수는 '20대에 학위를 받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며 이를 위해서는 교육제도가 개선되어야 할 것'이라면 선진국 교육제도의 유연함을 예로 든다.
"미국에서는 공부를 잘한다 싶으면 그 우수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도가 보장되어 있읍니다. 고등학교 때 AP(Advanced Placement)코스라는 것이 있어 대학강의를 미리 들을 수 있고 대학에서는 자신이 관심있는 분야는 대학원 학점을 취득할 수 있어 대학을 3년이내에 졸업할 수 있을뿐더러 석박사과정도 3년정도에 마칠 수 있읍니다. 물론 이러한 제도가 시행되려면 교수 수가 절대적으로 많아 우수한 자질을 보이는 학생을 즉시 지도할 수 있어야겠지요."
어쩌면 우리 사회는 20대박사의 탄생을 계기로 의욕있는 젊은 고급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 지식주입형태인 입시위주의 교육제도를 전면 개편해야 할지 모른다.
국민학교에서 스스로 선택한 하나의 주제를 갖고 6개월내내 공부한다고 하는 것은 당장은 어리석을 지 모르지만 어렸을때 부터 공부한 것을 스스로 정리해서 깊이있는 지식을 체계화 한다는 면에서 우수한 교육방식임에는 틀림없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이해할 것을 미리 다량으로 주입시키는 교육방식과는 출발선에서부터 다른 것이다.
창작기술시대의 밑거름
앞으로 다가올 첨단기술 사회의 주역이 될 20대박사.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너무나도 많다. 스스로 1세대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여러가지 불리한 여건 속에서 자신들과의 싸움을 이겨내야 한다. 이들은 학교에서 연구소에서 산업현장에서 산적돼있는 모순들과 부딪쳐야 할 것이다.
과도기에 탄생한 박사이기에 연구소에만 앉아 연구에 몰두할 수 없을지도 모르며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위하기 위해서 오랜시간 그늘에서 인내하지 않으면 안될지도 모른다.
이들은 모두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갓 태어난 기분이다. 무엇부터 해야할지 모르겠다. 보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3~4년이 고비일 것 같다. 다만 어떠한 상황이 닥치더라도 맡겨진 일을 능력이 닿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각오뿐이다."
90년대에는 이들이 밑거름이 되서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 창작기술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