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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장비 동원 두 건축가가 밝혀낸 피라밋의 신비

"왕의 방은 무게 중심, 2500t의 화강암 아래 있었다."

4천 6백년이 지난 후에야 '쿠푸'왕의 피라밋이 두 사람의 건축가에게 몸을 허락했다.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맺혀있었고 손에는 착정기가 들려있었다. 두사람은 왕비의 방으로 통하는 비좁은 통로를 무릎을 꿇고 기어들어갔다.

 


침범 못하게 만든구조
 

쿠푸왕의 피라밋 내부구조^1.입구 2.지하실 3.왕비의 방 4.왕의 방 5.대회랑 6.중량확산을 위한 구조물 7.쿠푸왕의 석관 8.상승통로 9.동혈 10.하강통로


그 옛날 이 거대한 건축물을 지었던 노예들은 돌을 쪼는 것 이외에는 아무런 도구도 갖고 있지 못했었다. 하지만 오늘 피라밋속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텅스텐 송곳과 첨단 전자장비를 갖추고 있다. 또한 이들은 역대 이집트왕들의 저주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마스크를 쓰고들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악령들의 저주를 두려워해서가 아니고 오랜 세월동안 밀폐되어 있던 실내에서 자란 독버섯때문에 생긴 일종의 알레르기성 질병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화강암 정도로 딱딱한 석회석을 팔 수 있도록 송곳들은 날카롭게 특수제작되었다. 마찰열을 떨어뜨리기 위해서 물이 분무되는 장치도 되어 있었다.

실내온도는 숨이 막힐 정도로 높았다. 2차에 걸친 작업끝에 송곳은 마침내 모래층에 닿을 수 있었다. 채취한 모래는 체로 쳐진 것 같은 고문 모래였다. 이것은 모래가 발견된 지점에서 당시 석공일이 행해졌다는 증거가된다.

상(上)이집트와 하(下)이집트를 동시에 지배했던 '쿠푸'왕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원한 묘를 갖고 싶어 했다. 쿠푸왕은 거대한 피라밋을 건축했고 그것이 오늘날 '기자'에 서있는 3개의 피라밋중처음 것인 쿠푸왕의 피라밋이다.

쿠푸왕의 꿈은 실현된 것일까? 수천년이 흐른 후에도 그의 이름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시인 '드 릴르'는 "저 거대한 덩어리를 허물다 허물다, 세월마저 지쳐버린다." 고 읊었다.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모든 정복자들은 예외없이 인류의 위대한 유산인 이집트의 피라밋을 찾아와 고개를 숙였다. '알렉산더'대왕, '시저', 그리고 '나폴레옹'황제 등이 피라밋 앞에서 인생의 무상함과 위대함을 절감했었다. 정복자들은 으례 기하학자와 건축가들을 데리고 피라밋을 찾았었다.

 


피라밋신비는 요즘에 벗겨지기시작


구벙을 뚫는 작업과정


정복자들이 지나가고 난 후에는 고고학자들과 이집트 연구가들이 뒤를 이었다. 이들은 모두 나름대로 가설을세워 신비를 풀어보려고 애를 썼지만 연구가 더 진행될수록 의문과 신비는 더욱 더 늘어만갔다. 피라밋의 비밀을 완전히 밝혀낼 수 있다는 확신이 든 것은 첨단 탐사장비가 개발된 요즈음 들어서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서 피라밋에 기계를 대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서기 820년중 아라비아의 '칼리프'는 피라밋을 뚫어 부장품을 약탈해 오라는 명령을내렸다. 그의 부하들은 곡괭이와 큰 못을 가지고 피라밋을 파들어갔다. 엄청난 금은보화가 쏟아지리라는 희망속에 이들은 몇개월동안 열심히 피라밋을 두둘겼다. 그러나 파도 파도 끝이 없었고 끝내는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기진맥진한 채 물러서고 말았다. 오늘 다시 피라밋에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두 사람의 건축가는 금은보화가 아니라 진지한 탐구심에서 일을 하고 있다.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피라밋을 떠받치고 있는 물리학의 법칙뿐이다.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일수록 언제나 인간은 피라밋을 쌓았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영국에서 켈트족은 '돌멘'을 쌓았고 남미의잉카, 아즈테크, 마야문명권의 사람들은 신전과 함께 높은 피라밋을 쌓아올렸다.

 



왕의침실 못찾게 2층을 없애

작년 4월 '장 과뎅'은 단순한 여행자의 신분으로 이집트의 '기자'를 찾았다.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과뎅'은 친구들에게 이집트와 역대왕들 그리고 피라밋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려주었다. 과뎅은 무엇보다도 건축가인 자신의 눈으로 본 피라밋의 기묘한 건축술에 대해 열띤 목소리로 시간가는줄 모르고 이야기를 했다.

며칠 후 과뎅의 말에 흠뻑 빠진 '질 도리미용'은 우연히도 '피라밋의 비밀'이란책에 실린 삽화를 보게 되었다. 그림중에는 쿠푸왕 피라밋의큰 회랑을 자세하게 묘사해 놓은 것이있었다. 회랑 양쪽에는 큰 구멍즉 동혈(洞穴)들이 나란히 늘어서 있었다. 두사람은 이후 피라밋 관계전문서적을 구입해서 함께 연구를 시작했다.

기이한 일 이었다. 어느 책을 봐도 설명이 모두 달랐다. 어떤 학자는 조각품들을 보관하기 위한 공간이라고 했고 또 어떤 이들은 피라밋을 밀봉하기 위한 받침대라고도 했다.

두사람은 그 동혈들이 양쪽을 잇는 장부구멍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현재의 바닥위에 지금은 제거되고 없지만 또 하나의 층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제거되고 없는 두번째 바닥이 있었던 위에는 벽을 따라 가면 망치질을 한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었다. 이것은 두번째 바닥을 떼어낼 때 남은 망치자국이었다.

위와 같은 사실을 종합해볼 때 우선 생각해볼 수 있는 첫번째 결론은 없어진 두번째 바닥은 현재 남아있는 첫번째 바닥과는 다른 곳으로 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 피라밋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을 쿠푸왕의 방과 통하고 있음에 틀림없을것이다.

두 사람의 의견은 하나하나 일치되어 나갔고 하나 하나 퍼즐게임을 풀듯이 비밀을 밝혀내고 있었다.

열에 들뜬 두사람은 자신들의 가정을 토대로 서류를 작성했다. 도르미용과 과뎅, 두사람은 서류를 들고 문교부를 찾아갔다. 하지만 담당직원들은 "당신들 말고도 말도 안되는 엉뚱한 안건을 들고 찾아오는 교수들이 하루에도 10여명은 된다"고 하면서 힐끔힐끔 곁눈질만 할 뿐이었다. 그러면서 직원은 "5분 후에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나가 봐야한다"고 하면서 자리를 떴다. 도르미용과 과뎅은 우습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지만 사무실에서 그대로 한시간 반동안이나 기다렸다. 외무부를 찾아갔지만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인문과학 담당관인 '필립 기유멩'은 두사람에게 "간단하게 용건만 말해보시오" 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두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필립 기유멩은 태도를 바꾸어 두 사람을 내실로 인도해들였다. 한참동안 세사람 사이에는 진지한 토론이 벌어졌고 그날 이후 쿠푸왕의 피라밋 탐사계획은 본격적으로 실행해 옮겨지게 되었다. 역사유적탐사전문가들에게 문의도 했고 카이로에서 직접 동양 고고학자와 피라밋 전문가를 초청하기도 했다. 두사람의 제안설명을 들은 카이로의 고대이집트 유적지 탐사자들은 흔쾌히 두사람의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세가지 일이 계속적으로 이루어졌다. 첫째로, 지난해 2월 두사람은 비밀리에 작업을 한다는 조건으로 현장탐사 허가를 받았고, 두번째는 4월에 프랑스전력공사측이 마이크로중력측정기로 자세한 측정을 해주어 왕비의 방 낭하벽뒤에 동혈이 실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두사람은 직접 피라밋속으로 들어갔다.


과뎅 은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탐사에 대해 설명을 했다.

 


놀라운 정교성에 감탄
 

「기자」상공에서 본 쿠프왕의 피라밋


"건축가인 우리 두사람이 피라밋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먼 옛날 이거대한 집을 지은 동료의 숨결을 느낄 수가 있었읍니다. 4천6백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물리학의 법칙들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읍니다. 당시의 무게와 지금의 무게가 같았고 중력과 추력(推力)도 동일했읍니다. 게다가 각 건축요소들, 즉 벽과 벽을 연결하는 이음과 상인방(上引枋), 궁륭 등이 각기 모두 정확한 기능을 갖고있었어요.

피라밋의 경우 건축의 비밀과 정교함을 발견해야 할 사람은 바로 우리 건축가들입니다. 한 건축물에 대한 공학적 분석은 설계도와 정확한 세부명세서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리 현장에 가서 건축물을 보더라도 작업은 설계도를 봐야만 비로소 시작됩니다. 현장보다 설계도가 더 필요한 요소입니다. 필시 피라밋의 설계도들은 이집트의 측량단위로 기록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당시의 기본단위는 오늘날 단위로 따지면 52.5cm입니다.

피라밋 앞에서면 왠지 신비하고 두려운 느낌을 받게 되는데 건축가인 우리들로서는 비합리적인 감정에 휩쓸려 들어갈 수는 없었읍니다. 이 피라밋을 지은 건축가가 그 옛날에 간단하게 지을 수도 있었는데 고의로 복잡하게 집을 지었다면, 거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피라밋이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거나 약탈되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해가면서, 일부러 복잡하게 지은 이유를 밝혀가고 있읍니다. 이런 추측이 정확한 것이라면, 피라밋에는 언제 있을지 모르는 침략자들로부터 왕의 묘실을 보호하기 위해 많이 거짓통로를 지었을 것입니다.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희랍신전인 아틀란티스와는 달리 피라밋은 건물만 남아있고 자료는 찾아볼 수가 없읍니다. 결국 우리는 4천6백년 전에 피라밋을 지은 고대이집트의 건축가와 묘수풀이 장기를 두고 있는 셈인지도 모릅니다. 이미 그 사람은 자신이 놓을 장기를 다 놓고 우리보고 풀어보라는 것이죠. 설계도가 없는 우리로서는 매번 가능한 모든수를 다 따져보는 수 밖에는 없었읍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미로처럼 만든 내부

"우리가 풀어야 할 묘수풀이에는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있읍니다. 당시 피라밋을 설계하고 감독한 건축가의 인간됨됨이, 즉 그 사람의 기질 성격 신분 등등도 우리는 참고해야만 합니다. 왜냐 하면 보통 천재가 아니었을테니까요. 기하학적인 치밀함, 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은 완벽한 축조기술, 내부와 외부로 통하는 여러갈래의 통로 등을 보면 알 수가 있읍니다.

어느 정도 정확했는지 예를 들어봅시다. 피라밋건축에 있어 한변의 길이가 2백30.35m인데 각변의 최대오차는 4.5mm에 지나지 않읍니다. 오늘날에도 이 정도의 오차를 내며, 그렇게 큰 건축물을 세우기 어렵읍니다. 짐작하기로는 설계자가 한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즉, 외부설계 건축가가 따로 있었고 내부를 맡은 사람이 또 한사람 있었던 것 같읍니다. 물론 외부설계자는 대지의 신으로부터 축복을 받은 영웅으로 추앙되었을 것이고 반면에 내부설계자는 비밀유지를 위해 악어밥이 되었을 것입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내부는 완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을 수 밖에 없었읍니다. 마냥 신비해 보이기만했던 것들이 나름대로 이유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가령 무엇보다도 먼저 얼른 눈에 띠는 기묘한 점들을 봅시다. 입구의 상인방들은 천정에 비해 엄청나게 치수가 큽니다. 첫번째 복도를 지나면 갑자기 복도보다 8배나 높은 큰 회랑이 나오기도 합니다. 또 내리닫이 창이 있는 방은 왕의 방이 제대로 잠겼는지 검사하는 방이고 따라서 왕의 묘혈을 지키는 최후의 안전장치인데 전혀 그러한 마지막 안정장피의 역활을 못하게 지어져 있읍니다. 왜냐하면 작은 사다리만 있으면 충분히 넘어갈 수 있게 되어 있으니까요. 또 믿어지지 않는 것은 왕의 방뒤에 몇층으로 겹쳐져 있는 헛간에는 무려 2천5백t정도의 화강석 덩어리들이 쌓여 있는데 무엇에 쓰인 것인지 알 수가 없읍니다.

당시 건축가는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내부를 미로처럼 교묘하게 설계했읍니다. 우리가 처음 검증해보려고 했던 것도 바로 그러한 흔적들이었읍니다.

우선 우리는 이른바 '왕비의 방'으로 불리는 곳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대상으로 삼았읍니다. 이 복도의 벽을 이루고 있는 돌들에 최고의 견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의당 굄돌을제거시켜 놓아야 했을텐데 오히려 십자굄돌로 하나하나 쌓아올린 것들이었읍니다. 결국 이 복도를 탐사한 우리는 동혈(洞穴)로 향하는 또다른 문이 별도로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읍니다. 이 동혈들은 죽은 왕이 먹을 식량과 가구 등등 필요한 일체의 물건들을 저장해 두던 창고들이었읍니다."

질 도르미용과 장-빠트리스 과뎅 두사람은 그 옛날 피라밋의 두 건축가처럼 서로 도와가며 일을 했다. 도르미용은 사려깊고 이론적인 수치계산에 밝은 사람이었고 '장'은 선축실무자이자 착정전문가이기도 했다.

이론과 실제적인 기술로 무장한 이들은 종래 고고학자와 이집트 연구자들의 학설을 뒤집으려고 장비를 갖추고 피라밋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장 과뎅 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는 쿠푸왕의 피라밋을 재발견하고 싶었읍니다. 금은보화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같은 건축가로서 4천6백년전 직접 피라밋을 설계하고 지은 이집트 건축가의 신비에 가까운 기술과 치밀함을 밝혀내려는 것이었읍니다. 이집트 건축가가 왕의 방위에 그렇게 육중하고 복잡한 건축물을 세웠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읍니다. 2천5백t의 화강석들이 아무 이유없이 60m의 높이로 쌓여있을 리가 없읍니다. 필시 어떤 곡절이 있는 것입니다. 그 육중한 무게를 단 2개의 상인방이 버티고 있는 것도 기묘합니다만 탐사가 더진행되면 그 비밀도 밝혀질 것입니다."

 


피라밋 무게중심아래 왕의 묘소가

"게다가 이 왕의 방은 전체 피라밋의 무게중심, 다시 말해 정중앙에 위치해 있읍니다. 이집트 건축가가 선과 각도에 대해 갖고 있던 치밀한 감각은 혀를 내두를 정도입니다. 단순히 그러한 신기에 가까운 기술을 현장에서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큰 감동을 주었읍니다."

착정기는 신경을 거스리는 소리를 내며 계속 돌아갔다. 세번째 작업을 끝낸 결과 착정기는 모래층에 닿았다. 2.12m를 파들어갔다. 기술적으로 볼 때 착정기는 더 이상 작동시킬 수가 없다. 모래층 너머에 있는 암벽을 뚫고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두사람의 목표는 달성되었다. 고대 이집트의 건축가는 20세기의 두 건축가에게 비밀을 밝혀낼 수 있는 충분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특, 왕의 방을 완전히 밀봉시키기 위해서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미끄러뜨리는 메카니즘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다.

왕의 방위에 쌓여 있는 엄청난 무게의 화강석들에서는 여러 군데 균열이 발견되었고 침하작용이 진행중에 있음이 확안되었다. 침하작용은 일단 시작되면 가속도가 붙게 마련이다. 엄청난 무게의 돌덩이들이 무너져 언제 어떻게 쿠푸왕의 방을 함몰시킬 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다. 내일 무너져 내릴수도 있다.

영원히 살고 싶어했던 쿠푸왕은 피라밋을 건설하게 했다. 과연 그의 꿈은 이루어진 것일까? 영면을 방해하는 자들을 막기위해 엄청난 돌들이 내려앉아 잠들고 있는 왕을 다치게 하지 않는한 그의 꿈은 이루어진 것이리라. 그러나, 영면을 지키기 위한 그 돌들이 오히려 왕을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할때 그의 꿈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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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03월 과학동아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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