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록담 북쪽 기슭에 울창한 구상나무가 왜 남쪽에는 드문가. 한라산의 고산식물이 지리산 설악산보다 우세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라산의 식생(植生)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뚜렷한 수직분포를 나타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해발고도가 1천9백50m에 달하므로 기온의 변화폭이 큰 데다가 한반도의 남단에 위치한 지리적 특징 등 의 영향으로 다양한 식물이 생태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한라산과 제주도일대에 무려 1천7백95종이나 되는 자생식물이 분포돼 있고 특산·희귀식물이 3백여종류나 되는 것도 이같은 특징에서 비롯된다.
한라산의 식물분포를 이야기할 때 흔히 제시되는 것이 해발고도에 따른 식물분포상이다. 1914년 처음으로 이 문제를 다룬 일본의 '나가이'(中井)는 한라산 전체를 7개의 대(帶)로 나누고 북사면의 1600~1950m와 남사면의 1800~1950m를 관목림대로 보았다. 이외에도 '모리'(森)(1928) 오계칠 차종환 등 여러 학자들이 나름대로 수직분포도를 제시하고 있는데 모두가 조금씩 다르게 보고 있다.
예를 들어 '나가이'와 '모리' 등 일본인 학자들은 한라산의 가장 높은 지대를 고산식물대로 보고 있으나 오계칠교수는 북사면 1천6백m 이상, 남사면 1천7백m 이상을 아고산대(亞高山帶)의 관목림으로 보고하면서 고산식물대를 인정치 않고있다.
'해발고도와 식물분포상'에 있어서 또하나의 쟁점(혹은 의문점)은 한라한 고지대의 대표적인 수종인 구상나무지대를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점이다.
조사에 의하면 한라산 구상나무림은 북사면에서 약 1천3백m이상, 남사면에서는 약 1천4백m이상의 지대에 출현하고 있다. 그리고 백록담 정상의 북사면으로는 바로 구상나무림이 우세하게 펼쳐지고 있으나 남쪽과 서쪽 비탈로는 상대적으로 드물게 자라고 있다. 결국 백록담을 기준으로 북쪽기슭이 남쪽기슭보다 훨씬 많은 구상나무림으로 돼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김문홍교수(제주대)는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먼저, 인위적인 작용으로 본래의 식생이 파괴돼버렸을 가능성이다. 즉, 원래 구상나무들이 많았으나 고지대의 방목지개발을 위해 인위적으로 불을 놓은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인데, 이는 한라산 남쪽으로는 주로 평지보다는 계곡지대에 구상나무가 남아있는것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는 것. 북쪽에 비해 남쪽이 건조한 것도 산불이 나기 쉬운 조건이라는 얘기다.
또다른 이유로는 바람에서 찾고 있다. 4월에서10월에 이르는 생육기에는 주로 남풍이 불어오는데, 이로 인해 토양의 수분이 증발하고, 잎에서도 증산작용이 일어나므로 식물이 자라기에 안좋다는 것이다. 아뭏든 한라산의 북(또는 동)과 남(또는 서)에서 구상나무림이 현저하게 다른 분포를 보이고 있는 점은 학술적으로 규명이 되어야겠다. 그 결과 인위적인 것으로 원인이 밝혀진다면 식생파괴의 생생한 사례로서 문제점이 지적돼야 할 것이다.
한라산의 식생문제에서 또하나 흥미거리는 암매시로미 산솜다리(에델바이스)등의 고산식물이 있다는 사실이다. 1천9백50m정도의 산이면 이같은 고산식물이 없는게 보통인 점에 비추어 예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높은 산이나, 지리산 설악산 등에도 위에 언급한 고산식물이 대개의 경우 없다고 한다.
사실상 기후대로 본다면 남쪽에 위치한 한라산 보다는 북쪽의 설악산이나 지리산에서 더욱 고산성 식물이 발달해야 어울릴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한라산에 희귀한 고산식물이 살고 있을까.
김문홍교수에 의하면 이는 한라산이 연봉(連峯)이 아닌 단순고립봉 형태로 생겼기 때문이 아닌가 보고 있다. 해발고도가 1백m 올라감에 따라 기온은 0.6도씩 떨어지지만, 산봉우리가 연이어 있을 경우 밑에서부터 타고올라간 바람은 푄현상에 의해 봉우리를 통과해 내려라면서 오히려 기온이 상승된 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산아래쪽의 따뜻한 곳에서 자라는 식물들이 정상부쪽으로 기어 올라오게 되고, 따라서 고산성 식물의 발달이 위축된다는 것이다.
한편 한라산일대의 식생과 관련해 잘못 알려진 것들도 적지 않은데 그중 대표적인 게 '철쭉'과'갈대'이다.
한라산의 1300~1400m 지대를 중심으로 진달래지대가 펼쳐져 봄이면 장관을 이루는데 흔히 이를 철쭉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봄에 열리는 한라산의 철쭉제도 실은 진달래제라 해야 맞는 셈이다. 이 지대에는 철쭉은 아예 없고, 대부분이 진달래이며 산철쭉이 드물게 자라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제주도(한라산)의 초원군락을 대표하는 것이 억새군락이다. 한라산의 중산간지대인 산굼부리 분화구 주위를 보면 억새군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갈대숲으로 잘못 알고 있다. 억새는 제주도와 같은 화산회토지대에 주로 자라므로 그 분포가 전혀 다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