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암물질의 적극관리, 조기진단, 수술기술향상, 예방, 이 네가지가 병행돼야 암을 줄일수 있읍니다"
'어떻게 하면 오래 살 수 있을까' 하는 것과 '어떻게 암(癌)에 걸리지 않을까'하는 것은 동의어(同義語)는 아닐지라도 매우 깊은 관련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암으로 인해 죽어가거나 고통받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또 고도로 발달된 현대의학으로도 아직 암을 정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과연 암은 정복될 수 있을까. 오늘날 암치료수준은 어디까지 왔을까. 최근 국제암학회(헝가리 부다페스트)와 국제병리학회(오스트리아)를 다녀온 원자력병원장 윤택구박사(54·尹鐸求)를 만나 원자력병원과 암에 관한 얘기를 들어봤다.
도봉구 공릉동의 새로 지은 원자력병원으로 윤박사를 찾았을 때는 아침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결재받으러 오는 사람, 협의하러 오는 사람 등으로 원장실이 매우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무척 바쁘신 것 같은데, 하루 일과가 어떻게 짜여 있읍니까?
"원자력병원을 새로 지은데다 규모도 확장되는 바람에 업무량이 대딘히 많아졌읍니다. 수시로 결재를 해야 하고, 회의도 많아서 어떤 날은 7, 8차례나 됩니다. 게다가 금요일을 제외한 일주일 내내 아침 7시반부터 세미나에 참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침 7시20분에 출근하면 별로 외출할 틈도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셈입니다."
―새로 지은 원자력병원의 규모가 국내의 어느 종합병원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어 보이는데요. 원자력병원의 내력이랄까, 특징은 어떤 것입니까.
"현재의 원자력병원은 마치 '국립암센터' 같은 기능과 규모를 갖추고 있읍니다만, 원래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의학에 활용하겠다는 취지에서 원자력연구소 산하 방사선의학연구소로 출발했었지요. 이때가 62년도였고, 병원업무를 시작한게 68년의 일입니다. 그후 계속해서 병원규모가 커지고 또 암환자가 늘어남에 따라 2년전 도봉구 공릉동에 현대식병원을 신축한 것이 오늘날의 원자력병원입니다.
이 병원을 짓는데 5백억원의 총경비가 들어갔어요. 그중 2백억원이 각종 의학장비들의 설치에 들어갔을 정도로 비싼 장비들이 많습니다. 의학용 마이크로트론이나 사이크로트론 중성자치료기 등이 대표적인 시설입니다. 현재 5백병상을 갖춘 종합병원으로, 반드시 암환자가 아니더라도 진료 대상이 됩니다. 일반병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암에 대한 연구 및 치료가 전문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윤박사께서 보시기에 우리나라의 암치료수준은 선진국과 비교해볼 때 어느 정도나 되겠습니까.
"네가지면에서 따져볼 수 있겠는데요. 우선 발암물질을 어느 정도로 관리하고 있는 가가 문제가 되겠고, 둘째로 암의 조기진단이 얼마나 계몽 실천되고 있는가, 세째 수술방법의 연구 발전에 국내인력이 얼마나 기여하고 있나, 네째 적극적인 예방법의 연구수준이 어디까지 왔나 하는 것입니다.
초기환자치료는 수준급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경우는 조기에 진단된 암환자를 치료하는 데는 수준급이라 봅니다. 그러나 치료방법이나 예방법 등의 연구는 참여인력이 거의 없어서 불과 1백명 내지 1백50명 정도에요. 일본의 경우 암학회의 회원이 2천여명이나 되고, 학회가 한번 열리면 연구논문이 1천편쯤 발표되는 것과는 큰차이가 있지요.
암조기발견만 해도 세계추세와는 큰 격차가 있어요. 제가 우리나라 암협회의 회장으로 있는데, 2백명의 회원이 연 2천원씩 내는 회비로 일년에 봄·가을 두차례 계몽강연하는 게 고작입니다. 정부지원도 한푼 없고요. 이에 비해 미국은 암교육을 받은 자원봉사자가 전국적으로 조직돼 가가호호방문하면서 계몽활동을 펴고 있읍니다. 이때 예산은 3분의 2가 시민들의 자발적인 기부금이고 나머지는 정부지원입니다."
―조기진단 얘기가 나왔읍니다만, 보통 사람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조기에 암을 진단해 낼 수 있을까요. 정기적인 검진을 받는다면 좋겠읍니다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네, 몇가지 요령을 말씀드리지요. 별뚜렷한 이유도 없이 소화가 안될 때, 이런 상태가 3주일 이상 계속된다면 반드시 확인해볼 필요가 있읍니다. 또 코와 같이 출혈이 없어야 할 부분에서 출혈이 생기면 일단 의심을 해보아야 합니다. 사마귀나 혹이 갑자기 커진다거나 헐어버릴 경우에는 암의 초기상태일 수가 있읍니다."
―조기에 진단이 됐든 혹은 뒤늦게 발견했든간에 일단 암에 걸리면 완치되기가 쉽지 않은데요, 오늘날의 암치료기술은 어디까지 와있읍니까.
"혈액속에 투약하는 방법과 방사선으로 암세포를 죽이는 방법이 흔히 쓰이고 있읍니다만 아직 암세포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눈달린 약이나 광선'은 개발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유전 공학적인 방식으로 암치료를 해내야 하리라고 봅니다. 이것은 암세포를 떼내 정상세포에 동화시킨 다음, 다시 암세포에 넣어 이를 정상세포로 만드는 원리인데요. 현재 20여년 계획으로 연구하고 있읍니다.
―아직은 결정적인 치료법이 개발돼있지 못한다는 얘기 같은데요. 한마디로 말해서 암의 정복은 가능할까요?
"현재의 수준에서는 일단 암환자가 된 사람이 낫는다 해도 '당신은 완치됐도'라고 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 5년생존이다. 몇년생존이다 하는 식으로 말하고 있지요. 이는 아직 현대의학의 능력으로는 완치된 환자 몸속에 암세포가 단 한개도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언젠가는 정복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암이 언젠가는 정복된다고 믿고 있읍니다. 17세기에 현미경이 나왔고, 암이 세포의 병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게 1870년 무렵이었읍니다. 그리고 최초의 약물요법이 시행된 것이 1943년이에요. 실제로 적극적인 암퇴치노력은 겨우 40여년 남짓한 정도입니다. 1930년대에 암환자 5명가운데 1명이 5년생존이었읍니다만, 50년대에는 4명중 1명, 60년대에는 3명중 1명, 그리고 80년대에는 2명중 1명이 5년생존을 하고 있읍니다. 40년대 이후 매10년마다 약 10%씩 정복률이 향상돼온셈입니다.
결핵만 해도 결핵약이 나온 것은 1940년대 이후였어요. 그리고 당시에는 암은 몰라도 결핵만큼은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는데, 오늘날 어떻게 됐읍니까. 저는 조물주가 암유발물질을 창조했다면 예방물질도 아울러 창조하지 않았겠냐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아뭏든 암도 언젠가는 인간에 의해 완전 정복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윤박사께서 얼마전에 발암물질을 두달이면 확인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실험방법을 개발했다고 해서 국내외에 주목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네, 지금까지 어떤 화학물질의 발암성 여부를 확인하려면 발암물질에 극히 민감한 신생쥐를 이용했읍니다만, 그 실험기간이 1∼3년이나 걸렸읍니다. 이번에 개발한 실험법은 생후 24시간 이내의 신생쥐를 사용했고, 실험쥐에 주사하는 발암물질의 용량을 종래 40∼1백마이크로그램(마이크로는 1백만분의 1)에서 5백∼1천마이크로그램으로 늘린 게 핵심기술입니다.
이렇게 해서 9주일이면 발암성 실험을 해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것인데요, 앞으로 발암성이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물질을 짧은 시간내에 대량으로 검색해낼 수 있게 돼 카페인이나 페니실린 아플라톡신 등의 발암성을 규명해 줄 것으로 전망됩니다. 또 홍삼의 항발암물질을 찾아내는데도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을 겁니다."
―홍삼 얘기가 나왔읍니다만, 윤박사께서는 82년도에 국제암예방학회에서 '홍삼의 암예방작용'이라는 논문을 발표해 크게 주목을 받았고 또 이업적으로 금년에는 3·1문화상 학술상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읍니다. 홍삼과 암예방에 관해 설명을 해주시지요.
홍삼의 항암효과 밝혀
"홍삼이나 인삼은 전통적으로 효험있는 약제로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것에 암발생을 억제하는 성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 문제를 규명하기 위해 실험쥐가 3천마리나 동원했읍니다. 실험방법은 먼저 발암물질을 쥐에 주입시킨 뒤 홍삼가루를 녹인 물을 7개월 내지 1년3개월간 먹이는 것이었읍니다. 그 결과 악성종양의 억제효과 20∼40%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읍니다. 그런데 홍삼의 이같은 효능은 밝혀졌읍니다만, 원래가 인삼류는 비싸지 않습니까. 따라서 우리가 흔히 식탁에서 대할 수 있는 것들중에 이같은 암억제물질이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연구중입니다."
1980년 8월 원자력병원장에 취임한 윤택구박사는 20여년간 암연구를 해온 이 방면의 권위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나라 의학계의 원로이자 서울대총장을 역임한 윤일선(尹日善) 박사의 자제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부자간에 전공도 비슷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다른 가족들은 의학계에 관계하고 있지 않습니까.
"제 아버님 전공이 병리학인데, 저역시 마찬가집니다. 가족중에는 동생이 소아과 교수로 있고, 아들 셋 중에서 둘이 의학을 전공했읍니다. 그러고 보면 3대에 걸친 의사집안이 되겠군요."
6척장신(185cm)의 윤택구박사는 계속되는 질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자세한 답변을 해준다. 암도 결국은 정복될 수 있다고 재삼 강조하는 모습에서 커다란 기대감을 갖게도 한다. 마지막으로 원자력 병원장으로서 그리고 암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암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달라고 부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암환자에게 사실대로 얘기해주지 않고 쉬쉬 하는 게 보통입니다만, 그보다는 당사자에게 알려주는게 바람직합니다. 그래서 환자 스스로 각오를 하고 더욱 힘을 내 치료에 협력해야 합니다. 비관하기보다 용기를 내서 암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 기회에 강조할 것은 암이 절대로 유전되거나 전염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해두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