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과학 기술은 당장의 효과는 적을지 모르지만 관련 산업에 미치는 부추김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대덕연구단지 북쪽끝 논두렁에 덩그마니 둥근 돔이 하나 있고 이제 막 치장을 끝낸 하얀 건물 하나가 앙증맞게 자리잡고 있다. 나중에 눈에 띈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부설 천문우주과학연구소'라는 간판보다는 외계에서 오는 전파를 수신한다는 우주전파관측소의 돔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거대한 우주에 눈을 돌리는 것일까.
천문 우주 과학연구소는 기존의 국립천문대를 확대 개편한것으로 올해 3월 이곳 대덕으로 이사했다.
소장 김두환박사, 41세라는 나이는 알고 왔지만 만나보니 그 나이보다도 젊어 보였다. 더우기 별을 관측하는 사람으로서 좀 로맨틱한 체취를 풍길것으로 예상했었으나 패기 만만한 젊은 사업가 같은 풍모였다.
개인적 얘기는 뒤로 미루고 우선 이연구소가 국립천문대와 다른게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새로운 계획을 갖고 있는지 부터 물어봤다.
2천억불의 시장에 우리도 끼어야지
"우주과학의 시대가 펼쳐진지 30년이 지났어요.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이 발사된 것이 지난 57년이고 인간의 달착륙이 실현된 것이 69년이니까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천문 분야는 국립천문대와 일부대학에서 한정된 연구가 진행되었을뿐이고 우주과학분야는 민간기업체 차원에서 부분적으로 연구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를 유기적으로 연결하여 국가차원에서 중장기계획을 세우고 사업수행을 전담할 연구기관 하나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국립천문대를 확대개편해 이 연구소를 차린것인데 과거의 천문대가 국립기관이고 우리연구소가 정부출연기관이라는 것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것입니다. 연구원들의 보수도 2배이상일뿐 아니라 다른 연구기관과의 공동연구도 가능하고 국제기구와 협력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첨단과학기술이 자연스럽게 접목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말이 이어진다.
"우주산업은 지난 5년간 세계적으로 연평균 25%의 지속적 성장을 해왔읍니다. 오는 90년에 1천억불, 2000년에는 2천억불의 큰 시장규모가 예상되지요. 우리가 잘알고있는 우주왕복선을 이용한 우주과학실험, 통신 및 방송, 자원탐사, 천체 및 기상관측 등의 우주개발활동은 대단하다고 볼수 있읍니다. 우리도 이와같은 우주산업시장에 부분적으로라도 참여해야 합니다."
우주연구는 절대 낭비가 아니다
-우리 국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천문우주분야에 대한 투자는 '밑빠진 독에 물붙기'식이 아닌가 하는데 소장님 생각은 물론 다르겠지요?
"그야말로 단견입니다. 우주과학기술은 첨단기술의 복합체입니다. 당장 어떤 효과를 내기는 어려워도 관련산업의 발전을 비약적으로 부추길 수 있는 특징이 있읍니다. 우주왕복선의 발사는 신소재, 반도체 등 온갖 첨단기술이 다 동원되는 종합예술의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요. 이웃나라 일본이 몇천억엔 투자해서 핼리탐사위성을 2대씩이나 쏘아올린 것은 태양계생성의 비밀을 풀겠다는 뜻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첨단과학분야의 복합체인 천문우주분야의 관련산업 파급효과를 노렸다고 볼 수 있지요. 특히 방위산업과의 관련은 보다 직접적으로 볼 수 있읍니다."
그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 선진국은 제외하고 인도나 인도네시아의 예를 들면서 우주개발사업이 왜 절실한지를 역설한다.
"인도가 과학위성 RS-1을 발사란 것이 81년입니다. 또한 ESA(유럽우주기구)협력으로 통신위성 '애플'도 발사했읍니다. 인도네시아가 비록 미국 로케트를 이용했지만 국내용 정지통신위성을 띄운것이 76년입니다. 우리는 오히려 너무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통신위성 시대에 대비한다
요사히 매스컴에 자주 등장하는 우리나라통신위성 보유에 관해서는 "늦어도 90년대 중반까지는 보유할 계획을 갖고 있읍니다. 물론 우리 기술로 자체 개발한 것은 아니지요. 외국에서 구매할 때 적절한 기술이전을 이룩하려면 이에 대비한 시스템엔지니어링 기술을 축적해야 하는 것이 선결과제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서 우리기술로 개발한 통신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기간을 2000년까지로 봅니다. 그전에 좀 싼 비용으로 개발할 수 있는 과학위성을 발사해보는 것이 필요하겠지요"라고 답한다.
-인력확보에는 어려움이 없겠읍니까.
"지금 현재 미국이나 유럽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 천문우주과학자가 40여명 됩니다. 우리나라에서 정부출연연구소의 설립으로 연구원 확보조건은 좋아졌다고 볼 수 있읍니다. 매년 박사급 3-4명씩이 귀국할 것으로 예상되지요. 이제까지 국내에 자리가 없어서 안들어왔지 좋은 조건이 있는데 왜 안들어오겠읍니까" 앞으로는 국내인력도 사장시키지 않고 활용하겠다고 한다. 그는 현재 천문학과 출신 상당수가 다른 분야로 자리를 옮겨 아까운 고급인력이 낭비되었던 경향을 지적하면서 "90년까지 천문, 우주분야 각각 16명씩의 박사를 포함해서 총55명의 연구원을 확보할 계획입니다. 2천년까지는 3백명이 넘는 연구원이 필요하지요" 라며 체계적 인력수급계획표를 내놓는다. 86년 4월 현재, 김소장과 우주전파관측소 소장 조세형박사를 비롯 천문분야에만 17명의 연구원들이 일하고 있다.
천문문야와 우주분야는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는 "천문학자들에게는 지구를 둘러싼 대기가 얄미운 장애물이지요. 천체관측을 하다보면 대기를 뚫고 밖으로 나가서 관측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다보면 인공위성을 띄워야 되고 우주과학이 필수적으로 필요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주공간 및 지구 주변공간의 해명을 요구하는 천문지식의 발달은 자연히 로케트 및 과학위성, 관측 시스템의 연구개발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문학과 우주과학은 굳이 용어로 구별할 필요는 없겠지요." 라고 답한다.
신문기사를 교과서 삼아
-소장님은 천문학 중에서도 특히 어떤 분야를 전공했읍니까.
"천문학은 크게 2대별 됩니다. 하나는 별의 위치를 관측하는 위치천문학이고 또하나는 물리현상 즉 별이 어떻게 생성되고 진화하는지를 연구하는 천체물리학이지요. 저는 천체물리학을 전공했읍니다. 전공과는 별도로 일본 유학시절 특히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천문대의 운영시스템입니다. 1백년이상의 역사를 가진 동경대학교 부설. 동경천문대의 운영 시스템에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 지금 천문우주과학연구소의 책임을 맡게된 계기가 됐는지도 모르겠읍니다."
내친김에 어떻게 해서 천문학을 공부하게 됐느냐고 물어보았다. 아마 기계나 전자등을 전공한 학자보고 왜 그방면을 택했느냐고 하면 그야말로 '우문'일 것이다. 그는 천문·우주관계는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흔한 분야가 아니다.
그는 한참을 망서리더니 잠깐 기다리란다. 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고서(古書)냄새가 풀풀 풍기는 스크랩북을 들고왔다. 제목은 '우주과학'. 부산 경남중학 1학년 때부터 경남고등학교 시절까지 우주·천문에 관한 모든 신문기사를 스크랩해논 것이다.
첫장을 넘기니 최초의 인공위성 스프트닉1호부터 우주개발의 역사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50년대 말 60년대 초반에는 우리나라에 천문학관계 서적은 전무했읍니다. 신문에 나오는 우주개발 관계 기사만이 유일한 한글 교과서였기 때문에 이를 스크랩하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였읍니다. 동아일보, 조선일보, 국제신보, 부산일보 없는 신문이 없다.
자연스럽게 성격이야기가 나왔다. 자신의 성격은 '정치적'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말을 하고나서 껄끄럽게 느꼈던지 '활동적'이라고 정정한다. "매사에 도전적인 관계로 주위의 친구들과 부딪치는 일이 많았읍니다. 적극적이라기 보다는 독선적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정도였지만 스스로 외톨박이를 자처해 바닷가나 산을 찾는 일이 잦아지고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습관이 붙었읍니다. 원래 활발한 성격이 성장과정 속에서 잠시나마 내성적으로 변하면서 우주의 신비에 매달리게 된 것같습니다. 지금은 양면성을 갖고 있지요" 아뭏든 자신의 성장과정을 논리있게 설명해내는 것이 전형적인 이(理)학자답지만은 않았다.
-천문우주과학연구소가 주도해서 국내의 우주개발연구를 진행하겠다고 했는데 그 구체적 계획은 어떻습니까?
"저희는 3단계로 사업계획서를 작성해 놓고 있읍니다. 먼저 1단계로 올해부터 90년까지를 기본연구시설 및 장비와 인력연구 확보를 기본전략으로 세워놓고 91년부터 95년까지의 2단계는 자체기술을 축적하기 위한 연구를 본격화 시키려 합니다. 이를 위해 서는 앞에서 말했던 대로 국제공동연구에 참여하고 세부적 계획으로는 인공위성추적망원경을 제작하여 우주전파 수신장치를 개발할 예정입니다. 96년부터 2천년까지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연구개발의 선진화를 이룩하기 위해 2.5m 대형망원경을 개발설치하고 자체 기술에 의한 통신위성을 개발하려합니다"
김소장의 책상 위에는 사업계획서 초안들이 수북히 쌓여있었다. 자신의 연구활동 보다는 전체 천문우주인력의 연구활동 보장을 위한 여건확보를 위해 전심전력하는 것이 보람된 일이라며 1주일 또는 열흘씩 집에 가지 못하고 연구실 소파 위에서 새우잠을 자는 것이 전혀 불편하지 않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