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에서 A+ 학점을 받는 학생은 누구인가.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에 근무하던 이혜정 박사는 서울대 2, 3학년 재학생 중 두 학기 연속으로 평점 4.0을 넘긴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부 방법, 생활습관 등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응답자의 87%가 교수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받아적고(농담과 기침도 포함돼 있다), 시험에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견보다 교수의 의견을 선택한다고 답했다. 강의를 비판적이나 창의적으로 본 학생보다 수용적인 태도로 교수의 생각을 흡수한 학생이 더 좋은 성적을 얻은 것이다. 이른바 ‘한국형 천재’가 만들어지는 수순이었다.
놀랍지만 한편으로 당연한 결과였다. 그동안 한국의 교육은 암기와 계산을 잘하는 인재를 키우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표적으로 대학수학능력시험 수학 영역에서 높은 성적을 얻으려면 하나의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보는 능력보다는 100분 안에 30문제를 오류 없이 풀어내는 능력이 유리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으로 시작된 정보의 홍수와 디지털화는 이런 교육방식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의 유통기한은 점차 짧아지고, 모든 정보가 디지털화된 세상에서 필요한 지식을 머릿속에 담고 빠르게 답을 내놓는 식의 능력이 꼭 필요할까.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으로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에 한국형 천재가 설 자리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세기 한국형 천재의 시대에서 혜택을 누린 세대가 바로 본인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21세기형으로 생각의 회로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시대의 핵심은 통섭(consilience)이다. 통섭은 미국 동물행동학자 에드워드 윌슨이 제시한 개념으로 다양한 지식을 융합하는 범학문적 연구를 말한다. 디지털화되는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도 통섭의 미학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이미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을 통해 학문의 경계가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20세기식으로 말하자면 인공지능과 바둑을 동시에 설명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던 순간이다. 물론 그런 맞춤형 전공자는 많지 않았고 새로운 분야를 빠르게 습득해 자신만의 스토리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빛을 발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인재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였다. 저자는 전문적인 지식 자체보다 지식을 만들어내는 플랫폼이 중요해졌다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시대를 향한 한국 물리학자의 냉철하면서도 희망적인 통찰을 책 속에서 확인해 보자.
냉전시대였던 1983년,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소련을 겨냥하는 ‘전략방위구상(SDI)’을 제안했다. 핵 아마겟돈을 피하려면 우주에서 핵미사일을 격추하기 위한 탄도탄 요격미사일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이 작전은 일명 ‘스타워즈’로 불렸다. 당시는 스타워즈 시리즈가 소설, 만화, 비디오 게임 등으로 출시되며 대중문화를 선도하던 때다.
SF작품에 등장하는 무기를 실현시키겠다는 이 계획은 수많은 SF 마니아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심지어 소련의 탄도 미사일을 방어하기 위한 전략 계획의 이름도 ‘프로젝트 엑스칼리버’였다. 아서왕의 신검 엑스칼리버처럼 X선 레이저가 공중에서 적군의 미사일을 격추한다는 아이디어였다. 계획을 수립하는 데도 실제 SF작가들이 직간접적으로 참여했다.
한편으로 이 계획은 정치인과 과학자들의 비판을 받기도 했다. 작전 자체가 SF처럼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는 주장이었다. 아무튼 SF작품이 미국의 군사계획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SF가 현실 세계와 뒤섞인 사례는 이외에도 얼마든지 있다. 현실 세계와 SF 세계는 독립적이지 않다. 저자인 셰릴 빈트와 마크 볼드는 우리의 삶을 바꿔놓는 SF에 대해 알기 위해 장르의 흐름을 되짚어보기로 한다. 그들은 작품을 시대별로 나누고 각 시대가 SF를 어떻게 정의했고, SF라는 창을 통해 세계가 어떻게 바뀌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우리에게 앞으로 펼쳐질 미래를 고민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저자는 그간 SF가 구축한 세계가 현실에 반영된 네 번의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고 말한다. 1939년부터 시작된 ‘2차 세계대전’, 이후 우주 경쟁으로 대표되는 ‘냉전’, 1960년대 촉발된 ‘인권 운동’, 21세기 발생했던 ‘9·11 테러’ 등이다. 이 책은 SF라는 장르를 알고 싶은 독자들을 위한 미니맵이다. 각 시대별로 분류된 작품 속 나에게 꼭 맞는 퍼스널 ‘SF작품’을 찾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