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각광받는 대덕연구단지
우리나라 초유의 기술도시(Technopolis)가 탄생하고 있다. 지난 74년 건설이 시작된 이래 진척이 부진했던 충남대덕연구단지가 최근들어서 부쩍 활기를 띠고 있어 머지않아 과학기술의 메카로 등장할 전망이다.
KAIST와 종합과학관 등 '거물급' 과학시설의 입주가 확정된 데다가 삼성그룹을 비롯한 럭키금성 선경 한국화약 코오롱 등 민간기업들이 종합연구소를 세울 것으로 알려져 기대를 모으고 있는 것.
대던연구단지는 그 규모와 내용으로 볼 때 한국 과학기술의 중심지가 될 것이 틀림없고 보면, 앞으로의 발전여하에 따라 우리나라의 과학은 물론 경제·산업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한국의 테크노폴리스 대덕연구단지가 위치한 곳은 충남 대전시 중구 도룡동일대.온천으로 이름난 유성에서 동북쪽으로 곧게 뻗은 4차선도로를 자동차로 10여분 달리면 4,5층 높이의 연구소 건물들이 나타난다.
27.8㎢(8백40만평)의 연구단지는 연구 및 교육시설지 3백88만평(46%),주거지 59만평(17%) 녹지 3백93만평(47%)으로 구성돼 있는데 연구·교육시설지의3분의 1만이 이용되고 나머지 땅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대덕단지의 주인공, 연구소들의 면모
대덕에 연구소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단지기반 조성공사가 착공된지 4년후인 78년4월. 한국표준연구소 한국화학연구소 한국에너지연구소대덕공학센터 한국기계연구소대덕선반분소 등 4개 정부출연연구소가 함께 입주했고, 민간연구소로는 쌍용 중앙연구소가 79년3월에 처음 입주했다.
이어서 동력자원연구소대덕분소(79.7)럭키중앙연구소(79.10) 한양석유화학연구소(79.10) 한국전자통신연구소(83.3)한국인삼연초연구소(84.3) 등이 차례로 입주, 연구단지를 형성했다. 이들 10개의 연구소는 정부출연연구소나 민간연구소나 할 것 없이 모두 대덕단지가 조성되기 시작한 이후에 설립된 연구소들이다.
이들 연구소 외에도 대덕연구단지 안에는 충남대 과학기술대 전산전문대 등이 입주해 있는데, 이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한국표준연구소(75·12 설립)
설립당시 거의 전무한 상태였던 길이 질량 시간 등 기본단위의 표준을 본궤도에 올려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선진국 표준기관들과 자료를 교환할 정도에 이르렀다. 길이 질량 온도 음향 방사능 등의 국가측정표준을 유지·보급하고, 정밀측정기술을 연구 개발해 산업계에 기술지원을 하며 정밀측정 고급기술 인력의 양성을 위한 교휵훈련을 맡고있다.
△ 한국화학연구소(76·9 설립)
60~70년대에 거의 완제품으로 수입하던 각종 화학제품을 80년초부터는 여러가지 원제합성공정을 개발,의약품 농약 염료의 원료생산 및 이를 수출까지 하는 주역을 맡고 있다.
△ 한국기계연구소선박분소(76·11 설립)
선박의 유체역학 및 구조연구, 선형조선기술의 개발과 선박설계, 선박 및 선박용품의 시험평가, 조선소에 대한 기술지원 등의 일을 한다.
△ 한국에너지연구소(76·12 설립)
에너지원 가운데 핵에너지만을 따로 떼어 핵원료의 국산화, 핵원료의 주기(週期) 기술개발 등의 업무를 대덕공학센터에서 맡아왔다. 연구소의 본소가 84년4월 대덕으로 옮겨져옴에 따라 연구소 기능의 대부분이 대덕으로 집중됐다. 성격상 구체적인 업적이 잘 알려져있지 않아며, 보안이 철저해 대덕단지 안에서도 특수한 연구소로 꼽힌다.
△ 한국동력자원연구소(76·5 자원개발연구소 발족)
태양에너지 풍력 小수력 등 핵에너지를 뺀 모든 에너지의 이용기술 개발, 대체에너지의 연구 및 에너지정책 연구 열기기 시험검사 등의 기능을 수행한다. 86년까지 모든 등대의 전원을 태양전지로 충당하기로 하는 연구가 특히 활발하다.
△ 한국전자통신연구소(77·12 설립)
전기통신기기와 기술을 개발하고, 전력·통신망 계획운영및 계통의 조사연구개발, 전기.통신 시스템운용 기술의 개발을 수행한다. 지금까지 3백여개가 넘는 연구과제와 씨름해왔는데 대표적인 기술은 전전자식(全電子式)교환기의 개발.이미 이 전전자식 교환기는 서대전전화국과 유성전화국에 설치,이용되고 있다.
△ 한국인삼연초연구소(81·1 설립)
인삼 연초의 제조에 관한 시험연구, 연초의 가공·제조기계 및 장치의 국산화개발이 주임무.
△ 쌍용중앙연구소(75·11 설립)
시멘트에 관한 기초연구와 내황산염시멘트 중용열시멘트 초속경시멘트 등 신제품개발 그리고 파인 세라믹 등 정밀요업의 연구·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금년에 7억원의 예산을 들여 정밀요업연구동을 신축할 계획이다.
△ 럭키중앙연구소(79·3 설립)
석유확학 및 고분자분야의 기술개발, 유지제품의개발,정말화학 기술개발, 유전자공학 연구 등이 주업무.특히 유전자공학부문에서 순수유전공학방식에 의해 간염백신을 개발했다.
△ 한양석유화학연구소(79·1 설립)
플라스틱 가공기술의 개발 및 업계에의 기술보급업무를 맡고 있다.
△ 충남대학교(52·5 설립)
7개 단과대학과 대학원 가운대 의대 및 부속병원을 제외한 공업교육 문과 이과 경상 법 농대 대학원이 78년8월부터입주해왔다. 대덕연구단지의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데, 교직원·학생이 약1만3천여명에 달한다.
△ 과학기술대학(86·3 개교)
과학기술원 산하의 과학영재교육기관으로 설립, 16만평의 대지에 2만9천여평의 건물이 들어섰다.85년10월 특별전형을 통해 우수한 학생들을 모집해 앞으로의 발전이 주목되고 있다.
△ 전산전문대학(81·3 설립)
층남경상전문대학으로 개교,82년3월에 대덕단지로 입주했다.
기대모으는 종합과학관
이상의 연구소와 대학들 이외에 대덕단지에 입구하게 될 각종 연구소·기관들로는 한국과학기술원 한국전력기술연구소 조폐공사기술연구소 종합과학관 국립천문대 한국화약그룹종합연구소 선경종합연구소 한일합섬기술연구소 등 23개나 된다.
이들중 특히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87년말 준공될 종합과학관. 발전하는 과학지식의 전파와 과학의 대중화를 위한 과학교육의 매체로서 활용될 예정이다.
주요시설로는 상설전시관 특별전시실 천체과학실 옥외전시장 노천극장이 손꼽히는데, 상설전시실에는 자연과학 및 산업기술 전반에 대한 실물 모형 사진 등이 전시되고 특별전시실에는 과학전람회에서 입상한 작품과 발명품 및 새로운 기술로 개발된 신제품을 전시하게 된다.
종합과학관은 규모면에서 일본의 동경국립과학박물관과 미국의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 등과 맞먹는 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현재 골조공사가 한창 진행중인데, 88년 개관하면 대덕단지의 명소로서 관람객이 줄을 잇게 될 것이다.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대덕연구단지는 '90년까지 첨단과학기술의 연구개발과 인재의 교육 및 모든 종사자들의 의식주 문화 복지생활 등이 그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상주인구 5만명 규모의 도시'인데, 연구소는 40여개가 적정수준인 것으로 어림잡고 있다.
의욕적인 정부의 건설촉진책
정부는 목표달성을 위해 획기적인 개발정책을 펴나 가겠다는 것인데 특히 예산의 투자규모가 두드러져 보인다. 즉, 74~84년간의 정부투자총액이 2천3백70억원인데 비해 85년 7백55억, 86년 1천2백78억, 87~88년에 8백93억원으로 돼있다.
이같은 투자계획은 당초 74년부터81년까지 8개년 계획으로 내자 3백31억원과 외자 2천8백만달러를 투입, 국립보건원 등 12개 국공립 및 정부출연연구소와 다수의 민간연구소를 유치하려던 게 2년이 채 못가 축소조정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것을 상기할 때 제2의 대덕단지건설계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기술도시인가, 과학공원인가
대덕연구단지의 건설청사진을 보면 자못 화려하고 의욕적임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덕단지가 모범적인 기술도시로서 설계·추진되고 있는가에 의문을 가지게 된다. '기술 도시'라고 하기에는 걸맞지 않는 곳이라는 지적도 있다.
현대적인 의미의 기술 도시는 연구개발의 결과가 기업으로 연결되고 여기서 실용화된 제품들을 현지주민들이 직접 쓰게 함으로써 최신과학기술을 일상생활에 직결시키는 시스템을 말한다.
70년대 이후 연구소와 대학 첨단기술기업이 공존, 최신과학기술을 기업화하는 과학기술공업단지 성격의 기술도시가 대거 등장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실리콘 밸리가 꼽힌다.
이와는 개념이 약간 다른 게 연구학원단지. 60년대에 미국 유럽 등에서 본격적으로 건설된 것으로 연구개발과 교육을 위주로 한다는 특징이 있다. 소련의 노보시비르스크과학도시, 프랑스의 남(南)일드연구학원도시 등이 그 좋은 예.
따라서 대덕연구단지는 그 성격상 현대적인 기술도시라기 보다는 연구학원단지에 더 가까운 셈이다.
기술도시로서의 대덕단지에 대한 또 하나의 시비거리는 '도시'로서의 유기적인 기능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당초 대전의 유성도시로서 건설하려던 계획이 제대로 되질 않아 도시가 갖추어야 할 각종 시설이 결여된 '삭막한 동네'일 뿐이라는 게 현지 연구원들의 지적이다.
이런 사정을 반영한 것이 대덕단지의 대전시 편입이다. 83년2월 연국단지가 대덕군에서 떨어져나와 대전시 중구에 편입된 것은 독립된 기술 도시로의 개발계획이 수정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최근 정부가 대덕단지를 '쾌적한 환경의 과학공원단지'로 개발하겠다고 강조하는 것도 기술도시에서 과학공원(Science town)으로 개념이 변했음을 시사한다.
생활편의시설 확충이 시급
기술도시가 됐든 과학공원이 됐든 연구분위기가 조성되고 생활여건이 갖추어져야 한다는 게 대덕단지내 연구원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그동안 대덕으로서의 연구소 이전이 부진했던 이유중의 하나가 연구원들의 대덕입주기피였고 보면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것이 생활 환경임에 틀림없다.
서울 등 대도시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대덕으로 옮겨오려면 그에 따른 여건조성이 필수적인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전혀 안돼 있었던 것.
현재 주거문제 자체는 그런대로 해결되고 있다. 각 연구소별로 연구원들을 위한 아파트 등 숙소를 제공해주고 있고 대전시내에서 통근을 해도 무리가 없기 때문.
럭키중앙연구소의 경우, 사택(26·28·35평형)을 연구원들에게 제공하고 있고, 아파트(26평형)에는 독신자3명이 기거토록 하고 있다. 사택과 아파트를 합쳐 2백명 가량을 수용하고 있어 전체인원(연구직 2백30명, 행정직 71명)중 상당수가 혜택을 받고 있다.
럭키중앙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전기·전화·난방비의 일부를 보조받고 있어 주거비용은 서울에서보다 훨씬 싸게 목히는 셈"이라고 털어놓기도 있다.
연구원들이 실생활에 가장 애로를 느끼는 것은 다름아닌 소비·교통·오락 등 생활편의시설의 부족. 현재 단지 안에는 소규모의 수퍼 2군데, 세탁소 2개소, 이·미용실 2개소, 우체국·은행 각1개소 식당 2개소 (한식집1 1, 중국음식점 1)등이 전부다.
단조로운 연구생활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만한 술집이나 다방은 물론, 병원·약국과 일체의 오락시설이 없는 실정이다. 퇴근 후 여가시간을 즐기기 위해선 유성이나 대전시내까지 나가야만 한다.
여가생활은 그만 두더라도 생활필수품을 제때 손숩게 구하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애로점으로 꼽힌다. 2개소의 작은 수퍼로는 충분치 못할 뿐더러 물건값도 비싸다는 것이다. '한꺼번에 물건을 많이 사다놓고 쓰는' 연구원이 대부분이라는 얘기에서도 이런 사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이같은 점을 감안해 시내버스 노선을 단지내로 끌어들이고, 쇼핑버스를 운영하고는 있으나 역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시내버스라야 20~30분씩 기다리기 일쑤고, 대전시내까지는 40~50분이나 걸리기 때문.또 시간에 맞춰 쇼핑버스를 이용한다는 것도 번거롭다는 것.
자녀교육 역시 대덕연구단지가 안고 있는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 연구원들이 대덕에 옮겨오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게 대부분의 연구원들 얘기다.
자녀교육의 애로점
현재 단지 안에는 연구원 자녀를 위해 초·중·고교 각1개씩 설립돼 있고, 이전부터 있었던 국교3, 중학교 1개교를 포함해 모두 7개의 학교가 있다.
이중 연구원 자녀가 약 48%를 차지하는 대덕국민학교(79년 10월 개교)는 대도시의 국민학교에 견주어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어린이들의 가정환경이나 학력수준이 '대도시형'일 뿐 아니라 연구단지내의 학교에 걸맞게 과학서클활동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
컴퓨터부 조사채집부 자유탐구부 과학공장부실험관찰부 등 서클활동이 그것인데, 특히 컴퓨터부의 경우 32대의 컴퓨터를 갖추고 집중적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4, 5, 6학년이 되면 누구나 주당 1시간씩의 컴퓨터교육을 받기 때문에 이 학교 졸업생은 거의가 컴퓨터의 기초를 익힌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교육의 문제는 주로 중·고교와 대학으로 귀착되는데, 이 대목에서는 연구원들의 불만을 해소시켜주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중학교의 경우, 연구원 자녀는 대덕시내의 어느 학군이라도 선택해서 진학할 수 있도록 하고는 있으나 눈높은(?) 연구원들에게는 아무래도 미진하기 마련이다.
연구원들의 발길을 막는 이같은 불편한 점들을 해소하기 위해 각종 편의시설을 갖춘 종합복지관이 금년 4월경에 완공될 예정이고,90년까지 국민학교·중학교 각1개교씩 증설한 계획인데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는지 관심을 끌고 있다.
쾌적한 연구소와 편리한 생활환경이 대덕연구단지의 외형적인 발전과 관계가 깊다면, 협동연구체제의 구측 등은 연구활동 자체의 성패를 가름하는 중요한 요소라 하겠다. 비슷한 분야의 연구소끼리 몰려 있는 이점을 최대한 활용, 우수한 연구결과가 양산돼야 한다는 얘기다.
협동연구체제 갖춰나가야
이상광단지관리소장은 "연구원들끼리 자주 만나다보면 저절로 자료교환 등 협조가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현재 비슷한 성격의 연구소 사이에는 세미나도 함께하고 있고, 전연구기관의 연구원들이 모여 체육대회도 하는 등 분위기가 조성돼가고 있다"면서 연구단지의 협동연구가 잘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도서관 등을 통한 자료의 공동이용과 교환, 합동연구프로젝트의 개발 등 좀더 적극적인 협동체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또 과학기술대 충남대 등과의 학술교류, 연구원의 출강 등도 같은 맥락에서 중요시되고 있다.
아뭏든 정부와 민간기업의 과학기술 육성정책이 한창인 요즘 대덕연구단지의 발전은 지상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대전시의 도시기능을 적절히 이용. 연구단지개발이 다시는 우여곡절을 겪지 않아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