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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 타디그레이드 피플

 

지난 줄거리

선과 미아는 함께 공립 도서관의 유리 부스 안으로 들어 간다. 유리 부스에는 과거 데이터를 검색할 수 있는 컴퓨터가 있다. 인간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과거 데이터에 접속한 선은 우연히 마이클 잭슨을 찾아낸다. 둘이 함께 마이클 잭슨의 영상을 보다가 갑자기 정전이 되고 우나와의 연결도 끊긴다.

 

“우나 쌤?”

역시 우나에게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즈음 도서관 여기저기에 포진해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의 움직임 또한 심상치 않게 변하고 있었다. 묘한 분위기를 감지한 미아가 부스에서 나와 무리 중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검은 옷의 사람이 심각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나 선생과의 통신이 먹통이 됐어. 메디움 시티 전체가 마비야.”

“네? 갑자기 왜요?”

“그건 몰라. 뉴로어스에 접속할 수도 없으니 다른 도시정부의 상황도 알 길이 없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귀찮다는 듯 대충 대답하고는 다른 쪽으로 바삐 이동했다. 선은 부스 입구에 서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미아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아는 고개를 저으며 부스로 다시 돌아왔다.

“우나 쌤이랑 통신이 끊어졌대.”

선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혹시 아까 그 정전과 관련이 있는 건가?”

“그럴지도 몰라. 지금으로서는 여기서 기다리는 수밖에 없겠어.”

미아의 말에 선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아와 선은 우나와의 통신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면서 도서 열람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도시 전체의 무선 통신은 끊어졌지만, 공립 도서관 내부의 폐쇄 통신망은 정상 작동하고 있었기에 도서관 안의 자료를 찾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고서적 레플리카를 한참 들여다보던 선은 문득 건너편에 앉은 미아의 모습을 바라봤다. 미아가 읽고 있는 책의 책등에는 멋스러운 문체로 마이클 잭슨이라는 글자가 큼직하게 박혀있었다.

“미아.”

선의 부름에 미아가 고개를 들었다.

“왜?”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미아는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눈썹을 살짝 위로 치켜떴다. 뭐든 편하게 말해보라는 비언어적 의사소통이었다. 선은 펼쳐둔 페이지의 끄트머리를 만지작거리다가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너는 아까 어떤 자료를 검색했었어?”

“아까? 아아”

미아는 말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뒤 대답했다.

“지상에 살던 귀여운 동물들그런 걸 찾아봤어.”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선의 입이 벌어졌다.

“넌 자연인에 대해서 알고 싶다며? 왜 인간이 아니라 동물을 찾아봤어?”

“왜긴. 네가 사람보단 동물을 좋아하는 것 같길래. 원래 자연인은 사람보다 동물을 더 좋아하나 궁금해서 찾아본 거야. 그런데 선, 너 쿼카 닮았단 소리를 많이 듣지 않아?”

미아의 뜬금없는 질문에 당황한 선이 고개를 뻣뻣하게 저었다.

“아, 아니? 그런 얘길 들은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그래? 엄청 닮았는데. 다들 쿼카라는 동물을 잘 몰라서 그러나 보다. 나도 이번에 백업 데이터 살펴보다가 처음 알았어. 순둥순둥하게 생겨가지고귀엽더라.”

미아는 원래 읽던 책으로 다시 시선을 옮겼다. 선은 혼란스러웠다. 지금껏 살면서 우나로부터 그런 말을 들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또 그런 말을 해줄 만한 다른 사람은 아예 곁에 없었다. 선의 머릿속이 아주 복잡해졌다. 사람에게 동물을 닮았다고 말하는 것에는 어떤 숨겨진 의미가 있는 걸까?

그때 미아가 도서관 벽면에 설치돼 있는 구형 아날로그 시계를 쳐다봤다. 사이보그 중에 아날로그 시계를 읽는 이는 매우 드물었기 때문에 조금 특이한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시계를 보고 시간을 확인한 미아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조우의 날 행사 시작 시간이 지났어. 우나 쌤과 인류의 만남을 축하하는 날인데, 정작 쌤과 통신이 되지 않으니 행사를 진행하는 의미도 없고캡슐 열차도 전부 멈췄을 테니 교육구로 돌아갈 수도 없고우리 어쩌지?”

“글쎄”

그때 도서관 내 스피커를 통해 잡음이 잔뜩 낀 안내 방송이 들려왔다.

“안내 말씀드립니다. 현재 메디움 시티 전 지역에 비상 절약령이 발령됐습니다. 메디움 시티 중앙구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지금 바로 중앙 광장 분수대로 오셔서 비상 매뉴얼과 구호식품을 받아 가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안내 말씀드리겠”

미아와 선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비상 절약령이라니! 오늘 신선 식품을 나눠주는 날이잖아요!”

“도대체 우나 시스템은 왜 먹통이 된 겁니까? 뭐라고 설명을 좀 해주십쇼!”

“아니, 중앙구 주민만 구호물자를 나눠준다고요? 오늘 조우의 날 행사 때문에 타 구역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이 와서 발이 묶였는데,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처사입니까? 예?”

미아와 선이 공립 도서관을 나와 메디움 시티 중앙 광장으로 가봤을 때, 광장은 이미 중앙구 거주자들과 조우의 날 행사 참여를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가득 차 북적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분통을 터트리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공무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몰려든 사람들을 상대하느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시장님 나오셨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의 경호를 받으며 한 중년 남성이 거들먹거리는 걸음걸이로 중앙 광장 분수대로 다가왔다. 시장이라 불린 그가 분수대에 가까이 다가서자 분수 모양의 홀로그램은 스르르 사라지고 평범한 단상의 형태만이 남았다. 그는 큼큼 헛기침을 하면서 단상 위로 올라갔다. 하급 공무원들이 급조해서 만든 듯한 고깔 모양 확성기를 시장의 입 근처에 가져다 대는 모습은 퍽 안쓰러워 보였다. 평소대로라면 우나 시스템을 통해 음성 전파를 쏘면 그만이었을 텐데.

시장이 말했다.

“시민 여러분, 진정하십시오! 그리고 안심하십시오! 우리 시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정보 요원들이 이 사태의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이에 따라 우리 시는 우나 시스템의 통신이 복구될 때까지 비상 절약을 통한 시민 보호 정책을 개시하기로 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웅성거렸으나 그 소리가 상당히 수그러들었다. 시장은 만족스러운 듯 손을 뻗어 청중을 달래듯 허공을 툭툭 치는 제스처를 보였다.

“우나 시스템의 통신 두절 사태는 지상의 *지자기폭풍으로 인한 일시적인 현상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잘 아시다시피 우나 시스템은 완벽합니다. 다만 복구 프로세스에 일정 시간이 소요되므로 그때까지 에너지 식품과 전력 소비량을 최소화해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고자 함이니, 시민 여러분께서 불안해하실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광장의 시민들이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뉴로어스에는 언제 접속할 수 있어요?”

“우나 시스템이 복구되는 시기에 바로 접속할 수 있을 것입니다.”

“캡슐 열차는 언제부터 기동하나요?”

“그 또한 우나 시스템이 복구되는 시기에 바로 이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상에서 내려오는 식재료 곤돌라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까?”

“브리핑은 이상입니다. 더 이상 질문을 받지 않겠습니다.”

시장은 그대로 돌아서 단상에서 내려갔다. 텅 빈 단상 위에 홀로그램 물줄기가 다시 솟아오르며 기존의 분수 형태로 변화했다. 목소리를 높여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을 무시한 채 시장은 검은 옷 입은 남자들에게 둘러싸여 잰걸음으로 사라져갔고, 광장에 남은 하급 공무원들이 사람들을 향해 구호식품을 배부하기 시작했다.

미아가 말했다.

“식사용 캡슐을 나눠주는 모양이야. 혹시 모르니 우리도 받자.”

“난 괜찮아, 아침에 선생님한테 이걸 받았거든.”

선은 아침에 배달을 받았던 샌드위치를 가방에서 꺼냈다. 그것을 본 미아가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근처에 있던 다른 이들이 더 빠르게 반응을 보였다.

“뭐야? 오늘 신선 식품을 배부했어?”

“신선 식품? 행사가 취소돼서 못 받는 거 아니야?”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선의 주변에 기웃대기 시작했다. 미아가 재빨리 선의 샌드위치를 가방 속으로 다시 밀어 넣었지만, 누군가 신선 식품을 가지고 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지기 시작해 자석처럼 사람들을 끌어들였다. 광장 한쪽의 혼잡도가 높아지자 경광봉을 든 공무원들이 나타났다.

공무원 중 하나가 물었다.

“유출된 신선 식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던데, 그게 누굽니까?”

사람들이 눈치를 봤다. 그리고 그중 몇 명이 손가락으로 선을 가리켰다. 공무원이 엄한 표정으로 선의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왔다.

“정말로 신선 식품을 가지고 있나?”

“그게”

우물쭈물하는 선의 가방을 빼앗다시피 채어 든 공무원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꺼냈다. 포장된 샌드위치가 나오자 공무원의 표정이 일순 험악해졌다. 미아가 황급히 공무원과 선 사이를 가로막고 섰다.

“이건 훔친 게 아니라 정당하게 받은 거예요! 우나 쌤 한테서요!”

“우나 선생이 이걸 이 아이에게만 줬다고? 거짓말 같은데.”

“정말이에요. 이 친구는 자연인이라서 신선 식품을 먹어야 해요. 이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구요. 통신이 재개된 다음에 우나 쌤을 통해서 확인해보세요.”

“잠깐만, 설마 지금 구태인을 자연인이라 표현한 건가? 이봐, 학생!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페널티를 줄 수도 있어!”

미아와 공무원의 실랑이를 지켜보던 광장의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뭐야? 구태인이었어? 구태인은 맨날 저런 신선 식품을 먹나 봐! 진짜 불공평해!”

“내 이럴 줄 알았어! 우리가 낸 세금을 구태인한테 다 퍼주고 있었다니까!”

“구태긴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야! 여기가 자연이었다면 그냥 도태됐을 것을!”

선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지금까지 ‘그냥 사람’으로 인식됐던 광장의 수많은 얼굴이 갑자기 무서운 포식자처럼 보였다. 한 마디, 한 마디 돌멩이처럼 던져지는 말에 혼미해지는 정신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을 때, 갑자기 누군가에게 손이 꽉 잡히는 감각이 느껴졌다. 선은 번쩍 정신이 들었다.

 

 

미아가 선의 손을 붙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선은 얼떨결에 미아의 뒤를 따라 뛰었다. 앞서 달려 나가는 미아의 뒷모습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메카닉 시신경을 가진 것도 아닌 선으로서는 난생처음 느껴보는 아주 기묘한 감각이었다.

미아는 지치지도 않고 뛰고 또 뛰었다. 누구도 마주치지 않는 곳까지 쉬지 않고 뛸 작정인 듯했다. 처음에는 미아의 뒤를 따라 뛰는 것이 즐거웠던 선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혼절할 지경이 됐다. 그런데 자신의 숨소리만으로 가쁘게 진동하던 선의 고막에 예상치 못한 그리운 목소리가 덧씌워졌다.

“선내가 있는 곳으로오세요”

그 목소리는 분명 우나였다. 어렴풋이 들렸지만 우나가 분명했다. 선은 자신의 한쪽 귀에 이어폰이 여전히 끼워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넘어가기 직전의 숨을 억지로 짜내어 외쳤다.

“미아잠깐잠깐만”

미아가 돌아봤다. 종이 인형처럼 팔랑거리며 끌려오는 선의 모습을 보고 아차 싶었는지 미아는 그제야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흐느적거리며 미아의 뒤를 따라오던 선은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미안해, 선! 괜찮아? 내가 너무 배려 없이 뛰었지?”

“괘괜찮아허억근데선생님허억목소리를허억들었어”

“너 너무 힘들어서 헛것을 들었구나? 잠깐 기다려봐. 내가 물 떠올게!”

선은 혼자 뛰어나가려는 미아의 팔을 꽉 붙잡았다. 미아가 멈칫하고 돌아봤다.

“급수대가 바로 이 근처에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아니, 그게 아니라나 정말 괜찮아”

“너 진짜 탈수로 쓰러진다니까?”

“나 마지막으로 물 마신 지한 일주일밖에 안 됐어. 아직 멀쩡해.”

“뭐?”

미아는 선을 쳐다보며 헛웃음을 지었다.

“너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니?”

“농담? 아닌데”

선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는 콩닥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아는 살짝 찡그린 얼굴로 다가와 선의 상태를 살폈다. 그렇게 힘겹게 끌려온 사람치고는 선은 전혀 땀을 흘리지 않고 있었다. 선의 모습을 면밀히 살피던 미아의 얼굴이 급격히 굳어졌다. 

 

 

용어 설명

*지자기폭풍 : 지구 자기장이 급격히 변화하는 현상으로, 전자기기의 교란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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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소설 민이안
  • 진행

    김진화 기자 기자
  • 일러스트

    lemarr
  • 디자인

    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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