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 같은 자연재해를 막는 데 수학연구가 한몫을 한다. 하지만‘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처럼 아무리 좋은 수학연구가 있어도 몰라서 쓰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 이런 이유로 응용과학과 관련된 보배 같은 수학연구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외국 영화나 책을 볼 때 언어가 달라서 불편을 겪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컴퓨터를 이용해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언어가 달라서 생기는 불편을 극복해야 한다.
특히 최근처럼 여러 분야의 전공자가 모여 연구를 진행하는 융복합 연구에서는 다른 전공을 잘 몰라서 생길 수있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수학적인 이론과 방법을 활용할 경우 수학 공부를 게을리 할 수 없다. 문제가 생기면 그만큼 연구에서 뒤쳐지고, 오류가 생길 가능성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융복합 연구를 하기가 힘들다. 해법이 없을까? 인터넷을 이용하면 영어나 일어를 우리말로 바꾸거나 우리말을 영어나 일어로 바꿀 수 있다.‘구글 번역기’와 같은 통역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다.
수학연구를 보배로 만드는 환경 갖춘다
프로그래밍 언어가 달라도, 수학적인 이해가 부족하더라도 수학적인 원리가 활용된 프로그램을 누구나 쉽고 빠르게 쓸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만들면 어떨까? 그러면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이하 수리연)의 수치프로그램연구팀은 ‘NIMSOFT(Numerical and Integrated Multi-language Supporting Operational Functions and Toolkits)’라는 코드명을 가진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를 지원하는 통합 연산 함수와 도구 모음이다. 이것은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해 컴퓨터로 연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도구다.
“NIMSOFT는 수학을 바탕으로 구성된 계산 프로그램 모음을 통합해 연구자가 개발과 연구를 쉽게 하도록 돕고, 연구자간의 협력과 효율을 높여 연구 시간을 단축시켜 줄 겁니다. 수치계산에 최적화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하는 통합환경이 NIMSOFT의 본모습이죠.”
수치프로그램팀 오정근 팀장의 설명이다. 그는“‘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좋은 연구가 있어도 이를 몰라서 쓰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다”며,“누구나 쉽고 빠르게 자신에게 알맞은 수학연구를 찾아 보배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전공과 프로그래밍 언어가 장벽
실제 여러 분야가 협력해서 연구를 진행하는 ‘거대 강입자가속기(LHC)’나‘레이저간섭계 중력파관측소(LIGO)’와 같은 거대과학 프로젝트에서는 적합성보다는 연구자 개개인의 편리성에 맞춰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연구결과를 통합해 하나로 만들 때 다른 언어로 바꾸는 작업에 많은 시간이 낭비되는 실정이다. 우리나라 기상 연구에서도 응용수학자와 기상학자가 공동연구를 진행하면서 프로그램 언어 등이 달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지형에 딱 맞는 날씨 예측 프로그램을 개발한다고 하자. 여기에는 이론의 바탕이되는 수학, 공식을 계산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이 공식을 컴퓨터 언어로 바꾸는 프로그래밍을 할 수있는 연구자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 연구에 수십에서 수백 명의 연구자가 참여한다. 게다가 날씨 예측에는 물리, 화학, 수학 등 다양한 학문의 지식이 필요하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협력하는 융복합연구의 대표적인 예인 셈이다. 수학 전공자가 아니더라도 수학적인 원리를 이해해야 하고, 수학자는 다른 학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이렇게 되면 시간도 많이 들고 그만큼 손실도 커진다.
기존에 개발된 프로그램을 응용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보통은 기존에 개발된 프로그램이나 함수를 활용한다. 그런데 수학적으로 개발된 프로그램은 목적에 따라 설계나 구성이 다르다. 따라서 해당 프로그램과 수학을 잘 아는 사람이‘통역’을 해주지 않으면 활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연구팀이 개발하는 NIMSOFT가 이런 통역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외국 연구자들도 공감하는 NIMSOFT”
“8개월간의 집중적인 회의를 거쳐 NIMSOFT 아이디어를 완성해갈 때 이런 것이 필요하다고 자신했지만 남들이 하고 있진 않아 한편으로는 불안했어요. 그런데 학회나 학술전시 같은 행사에서 국내외 연구자와 얘기하면서 그들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연구팀의 방향이 맞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안심할 수 있었죠.”
연구팀의 전기완 박사는“세상에 없는 새로운 연구를 할 때는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다”며 연구팀의 연구 방향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소개했다.
프로그램 개발은 수리연의 역할이 아닌 것 같은데, 왜 NIMSOFT를 개발할까? 수학이론을 토대로 구현된 프로그램의 모음이기 때문이다. 특히 수학자가 없으면 프로그램 개발과 검증 단계에서 발생하는 수학적인 오류를 확인할 수 없다. 이렇게 되면 이름만 거창할 뿐 실질적인 가치가 없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최종 사용자를 고려할 경우 수학자와 과학자, 공학자가 모여 있는 융복합 연구소인 수리연이 최적의 기관인 셈이다.
오 팀장은“이 연구의 핵심 아이디어는 LIGO에서 힌트를 얻었다”며“실제 관련자료를 분석하면서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LIGO 연구단은 70여 개국 800여 명의 연구자가 참여해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이 연구에서 파이프라인이라 불리는 분석용 소프트웨어는 파이썬, C, C++, 매트랩(matlab) 등 다양한 프로그래밍 언어로 개발된다.
4가지 창의연구과제에 먼저 적용
연구팀은 수치프로그램과 관련해 현재 4가지 주제의 창의연구과제, 즉‘기상·기후변화 모델’‘재난위험 모델’‘핵융합 플라즈마 시뮬레이션’‘극한 천체 시뮬레이션’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수학자의 도움을 받아 각 분야에서 쓰이는 모형을 기존보다 더 빠르면서 정확하게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각 분야에서 수학을 활용한 융복합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
오정근 팀장은“각 분야에서 편미분방정식을 비롯한 다양한 수식과 프로그래밍 같은 컴퓨터 기술이 활용된다”며“수학과 프로그래밍을 잘 이해할수록 모형 개발에 유리하다”고 말했다. 가장 최신의 수학적인 방법론을 바탕으로 한 프로그램을 응용하거나 새롭게 이용하면 빠르면서도 더 정확한 모형을 개발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많은 과학 분야에서 최신 수학연구 결과를 가져다 활용할 경우 기존에 개발된 프로그램이나 예측모형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만들 수 있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수학과 그 응용방법을 잘 몰라서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2010년부터 시작된 NIMSOFT와 관련된 연구는 현재 초기단계다. 올해 간단한 형태의 시험버전의 프로그램을 선보여, 진행 중인 창의연구과제에 적용할 계획이다. 오 팀장은“슈퍼컴퓨터 컨퍼런스 같은 큰 학회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며“2013년까지 과학자들이 실제 사용할 수 있는 기본 환경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재난 위험 예측에도 중요”
‘홍수 재난 평가 프로그램’은 자연현상을 모형화한 편미분방정식을 이용해 홍수피해를 예측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많은 것을 단순화한 수정 모형을 쓴다. 모든 현장상황을 고려한 원래 모형으로 계산하면 많은 시간이 걸려 강우예보 뒤 짧은 시간 안에 홍수를 예측하거나 실시간으로 예보할 수 없어서다. 이처럼 현장에서는 경험을 토대로 가장 효율적이면서도 믿을 만한 단순 모형을 쓴다. 하지만 기존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서도 정확할지는 알 수 없다.“누구도 1997년과 2007년 경제위기를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경제현상이 과거와 달라 기존에 개발된 경제모형으로는 예측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다른 분야에서도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연현상을 연구하는 응용과학 분야도 마찬가지죠.”오정근 팀장은 “기존보다 더 빠르면서 정확한 예측 모형이 있으면 미래를 잘 대비할 수 있다”며 이렇게 설명했다. 홍수 같은 재난 위험도 예측에서는 잘못될 경우 수많은 생명이 위험해져 정확도가 더 중요하다. 연구팀이‘재난 위험도 예측 모델’개발에 나선 이유다.
* 중력파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질량을 가진 물체가 움직일 때 나오는 파동.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