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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밌는 수학'으로 일본을 뒤흔든 베스트 셀러 작가, 사쿠라이 스스무

 

최근 일본 수학 문화를 취재하기 위해 일본 도쿄에 있는 대형 서점 두 곳을 찾은 기자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어요. 우리나라 서점에는 수학책 책장이 많아야 2, 3개지만, 두 곳 모두 5개의 책장에 걸쳐 수학책이 진열돼 있었거든요. 게다가 2, 30대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수학책을 탐독하는 모습이 생경해 더욱 놀라웠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많은 필즈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저력이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대중도 수학을 즐기는 일본 문화를 파헤쳐보고자 수학책을 무려 71권이나 낸 사쿠라이 스스무 일본 베스트셀러 작가를 도쿄에서 만났습니다.

 

수학의 중요성 알리는 사이언스 네비게이터

 

약속한 인터뷰 시각인 오후 3시 기자는 도쿄의 한 호텔 카페에 미리 와서 사쿠라이 작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카페가 꽤 넓어서 그가 어디서 올지 몰라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기자의 시선을 확 끄는 옷을 입은 남성이 걸어왔습니다. 가운데에 대문짝만하게 π가 찍혀 있는 티셔츠였거든요.

 

“안녕하세요. 사쿠라이 작가님 맞으시죠? (티셔츠를 가리키며) π를 보고 딱 알아봤어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으쓱대며 “제가 디자인한 옷이에요. 일본 유니클로에서 지금도 판매하고 있어요”라고 설명했어요. 

 

사쿠라이 작가는 일본의 수학 대중화에 앞장서는 대들보 같은 인물이에요. 이렇게 수학에 관한 굿즈를 제작할 뿐 아니라, 20년째 수학책을 쓰고 강연하고 있거든요. 그의 책 중 일부는 우리나라에도 출간됐어요.

 

우리나라도 최근 과학이나 수학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강연자나 크리에이터가 늘고 있는데요. 사쿠라이 작가는 2000년에 자신을 ‘사이언스 네비게이터(Science Navigator)’라고 칭하며 이 일을 시작했습니다. 영어로 ‘선원’이라는 뜻을 가진 네비게이터를 별칭으로 쓴 이유는 16세기 영국 수학자 존 네이피어를 알리기 위해서예요. 당시 정확하지 않은 천문학 지식으로 길을 찾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 선원이 많았는데, 네이피어가 ‘로그’를 발명해 천문학자의 계산을 쉽게 만든 덕분에 많은 이의 생명을 구했어요. 이처럼 수학이 사람의 생명을 구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해서 도쿄공업대학교 수학 전공으로 학사부터 박사 학위까지 땄어요. 대학원을 다닐 때 틈틈이 수학 학원에서 입시 수학을 가르쳤는데, 너무 보람되더라고요. 제 설명을 듣고 수학을 좋아하는 학생들을 보며, 전 세대에 걸쳐 수학을 좋아하게 만드는 일을 제 업으로 삼고 싶었어요.”

 

박사 학위를 딴 뒤 한 대학교의 박사후연구원 제안을 거절하고, 바로 일본 전역을 돌아다니며 강연에 나섰습니다. 음악, 미술, 정치 등에서 수학적인 요소를 찾고 도서관에서 전 세계 수학자에 대해 조사하며 수학 강연을 기획했어요. 유치원생, 교사, 노인, 학생 등 대상도 다양했지요. 강연으로 이름을 알리며 여러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학의 가치를 전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강연을 ‘매스 엔터테인먼트 쇼(Math entertainment show)’라고 불러요. 수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재밌는 수학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무대에 서기 때문이에요. 그의 목표는 수학 이야기로 관객이 ‘감동’받게 하는 것이에요.

 

“지금도 일본 청소년 사이에 수학은 입시 도구 혹은 남과 경쟁하는 수단이라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학교에서 수학에 감동하긴 쉽지 않아요. 우리가 음악, 스포츠에서 느끼는 감동을 수학에서도 느끼길 바라요.”

 

2006년 사쿠라이 작가는 강연 내용을 모아 첫 수학책을 출간한 뒤 꾸준히 수학책을 내다 2010년 책 <;잠 못 이루는 수학>;을 발표합니다. 이 책이 10만 부가 팔리며 단번에 베스트셀러가 돼요. 신용카드, 맨홀 뚜껑처럼 우리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대상에 수학을 어떻게 적용했는지 다뤘지요. 이후 7권에 걸쳐 시리즈로 출간된 이 책은 <;재밌어서 밤새 읽는 수학 시리즈>;로 우리나라에도 번역돼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성공 비결을 묻는 질문에 그는 “대중이 수학을 쉽게 느끼게끔 하는 데 최대한 집중했다”고 했어요. 내용이 어렵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제목을 고안했고, 귀여운 느낌이 나는 일러스트를 많이 사용했다고 해요. 그런데 사쿠라이 작가는 “이 책의 내용은 겉과 달리 어렵고 전문적”이라고 단언했어요. “프레데리크 쇼팽의 곡이 피아노로 치기 어렵다고 해서 간단한 곡으로 바꿔 치는 건 진짜 쇼팽 곡을 친 것이 아니에요”라면서, “수학은 원래 어려워요. 그래서 그 사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것도 중요해요”라고 덧붙였습니다. 

 

 

라디오 만들며 수학에 의문 갖다 

 

현재 그는 주제를 다양화하며 책을 쓰고, 온라인 강연을 기획하고 촬영하는 데 여념이 없습니다. 가장 집중하는 주제는 프로그래밍 언어인 ‘파이썬’을 이용해 피보나치 수열을 구현하고, 소수 판별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 등 수학적 원리를 알려주는 거예요. 

 

“어떤 일을 빠져들 만큼 사랑하려면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자극으로 그 일을 느껴야 해요. 음악에선 악기 소리가, 스포츠에선 선수들의 치열한 경기 광경이 자극일 수 있어요. 수학에선 파이썬이 그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파이썬은 ‘최고의 수학 교과서’예요. 파이썬을 이용하면 배운 수학 개념을 코드로 입력하고 수정해보며 수학의 실용성을 깨달을 수 있어요.” 

 

그는 이 일을 오래하는 원동력으로 어린 시절 수학에 대한 강렬한 기억을 꼽았어요. 10세 때 사쿠라이 작가는 라디오를 직접 만들어 보며 이때 활용하는 공진주파수 공식인  f=\frac{1}{2\pi \sqrt{LC}} 을 알게 됐어요. 이때 ‘왜 여기 π가 등장하지?’라고 의문을 가지고 혼자 π의 역사와 의미를 탐구했어요. 이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이론과 그 핵심 아이디어를 기술한 방정식인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도 π가 들어가는 걸 보고 ‘세상은 수학으로 이뤄져 있다’라는 사실을 강하게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이 생각에 변함이 없어서 이를 널리 알리는 것이  인생의 목표래요.

 

인터뷰 동안 사쿠라이 작가는 기자에게 한국의 수학 문화에 관해 질문했어요. 한국에서도 수학을 멀리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는 기자의 말에 크게 안타까워 했어요. 그러면서 일본과 한국 모두 한자어로 수학이라는 용어를 쓴다는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습니다. 영어 단어 ‘Mathematics’의 의미를 잘 살리는 용어로 대체돼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그는 “이 단어의 어원은 그리스어 Mathemata(배우다)로 인간으로서 배워야 할 것이라는 뜻”이라며, “수학(數學)은 ‘수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수가 있는 것만 수학이라는 편견을 심어주고 수학이 다루는 세계 전체를 설명하지 못해요”라고 설명했어요. 

 

“수학의 세계는 넓어요. 무한의 세계부터 논리까지 다양합니다. 일본을 비롯한 한국의 많은 독자에게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제 자리에서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2023년 12월 수학동아 정보

  • 글 및 사진

    일본 도쿄 = 이채린 기자
  • 기타

    통역 김경도(일본 가쿠슈인대학교 수학과 박사과정생)
  • 디자인

    정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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