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 내부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주말이라 그런지 평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대기실 의자를 메우고 있었다. 입구로 들어선 정장 차림의 설진은 서둘러 번호표를 뽑았다. 30번을 훌쩍 넘기는 대기 번호를 받은 설진은 순간 인상을 확 구겼다. 대기실 중앙에 놓인 거대한 철제 시계는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열두 시에 예정된 프로젝트 미팅을 생각하자 설진의 마음이 한층 다급해졌다.
[몸이 너무 무거워서 어딜 나가보질 못해. 의사 선생님도 빠르면 이번 주에 양수가 터질 수 있다고 가급적 외출은 자제하라네. 바쁘겠지만 내일 구청에 들러서 아버지 내세 좌표 확인해줘. 써야 할 게 많을 거야. 아버지의 인적 사항을 사진으로 찍어서 같이 보낼게.]
어젯밤 누나 하윤으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문자를 다시 확인하던 설진은 문득 짜증이 치밀었다. 늘 이런 식이었다. 항상 누나에게는 사정이라는 게 있었고, 설진은 그 사정이라는 것 때문에 발생한 틈을 온몸으로 메우는 존재였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애정은 언제나 누나 쪽을 향해 기울어 있었다. 설진에겐 이상하리만치 냉정하면서도 누나에겐 줄곧 넓은 아량을 베풀곤 했던 아버지였다. 하지만 정작 죽은 아버지의 내세 좌표를 받으러 온 이는 설진이었고, 그는 이러한 현실이 몹시 못마땅하다고 느꼈다.
한참 동안 속으로 투덜거리던 설진은 결국 아무런 대화도 나누지 않는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색의 알루미늄 의자는 한기가 돌 정도로 차가웠다. 설진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구청 내부는 과할 정도로 드넓었고 층고는 높았다. 돔구장 형태로 지어진 건물은 그 특유의 폐쇄성 때문인지 흡사 지하 벙커 같은 느낌도 자아냈다. 견고한 철옹성 같은 이 공간은 거대한 크기에도 불구하고 조그마한 창문 하나가 없었다. 햇빛이 철저히 차단당한 내부는 오직 수천 개의 시퍼런 형광등 불빛으로만 밝혀지고 있었다.
설진은 이곳이 어쩌면 멸균실은 아닐까 하는 생각했다. 광활한 공간을 메우고 있는 건 오로지 인간과 기계뿐이었고, 딱딱한 대리석 바닥을 밟는 직원들의 구둣발 소리와 날카로운 번호표 기계음만이 무거운 적막을 깨고 있었다. 이 같은 분위기 때문인지, 대기실이 가득 찰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북적거림보단 묘한 서늘함이 감돌았다.
설진은 시퍼런 정적 아래에서 미팅 자료를 다시 검토해 보기로 했다. 이틀 뒤에 성사될 프로젝트 파이낸싱 계약 건을 생각하면 이들의 집단적인 무관심 따위는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런 시선도 던지지 않는 그들에게 고마움까지 느껴질 지경이었다.
직원은 자신의 무테안경을 융으로 닦아 내고 있었다. 삼십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그는 쭉 찢어진 눈매를 갖고 있었는데, 눈가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맺혀 있었다. 고객을 불러 놓고 제 할 일만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설진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설진이 노크하듯 접수대를 두어 번 두드리자, 그제야 안경 닦기와 같은 대단한 일을 종료하며 무슨 용무냐고 물어 왔다. 거만한 손놀림으로 키보드를 치기 시작하는 직원이 설진에게 시선을 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 마치 직원 강령에 ‘고객과 시선은 절대 마주치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기라도 한 듯, 지극히 사무적이고 기계적인 태도로 설진을 대했다.
“내세 좌표 확인이요. 빨리 처리해줘요, 급하니까.”
설진은 누군가에게 지는 것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족제비같이 생긴 직원이 감히 자신에게 불친절로 응대한다는 건, 그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실제로 한시가 급한 설진이었지만 그것보다 이리도 천하태평한 직원의 태도를 어떻게든 고쳐 놓고 싶었다.
직원은 쏴붙이듯 대꾸하는 설진의 태도가 내심 흥미로웠는지, 그제야 설진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두꺼운 렌즈 탓에 아까보다 동공이 조금 더 작게 보였다. 그것은 이 작자의 심리를 파악하기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설진과 시선을 마주친 직원은 순간 피식 웃더니, 이내 서류철에서 대여섯 장 정도의 서류를 꺼내 내밀었다. 직원의 조롱 섞인 미소에 설진은 순간 눈알을 부라렸으나, 이 인간을 붙잡고 기 싸움을 벌이기엔 시간이 다소 촉박했다. 설진은 그냥 얼른 해치우고 나가버리자는 심산으로, 서류를 홱 낚아채는 정도로만 대응했다.
‘전생 신상 정보’라고 큼지막히 인쇄된 서류에는 기입해야 할 여러 항목들이 있었다. 생전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생몰 연도, 내세 등급과 사망 당일의 자산과 같이 수치화할 수 있는 모든 정보들을 적어야 했다. 오늘은 설진의 아버지가 죽은 지 50일 되는 날이었다.
설진은 지난 49일 동안 죽은 아버지를 떠올렸던 적이 있었는가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그러한 기억은 없었다. 내세관리청에서 분류가 진행되는 무려 49일의 시간 동안 아버지에 대해 일말의 감정도 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오늘 구청을 방문한 일도 얼른 끝내 버려야 하는 귀찮은 잡무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다. 설진은 아버지의 생애를 대충 숫자로 요약해서 빈칸을 빨리 채워 나갔다.
내세 등급란에 13804라는 숫자를 기입했다. 설진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부여받은 마지막 점수였다. 막상 본인의 손끝으로 아버지의 등급을 적고 나니 그의 죽음이 조금은 피부로 와닿는 것 같았다. 하지만 설진은 이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안스리움은 나름 고상한 식물인데 어련히 잘 살아가겠지 하며 단순하게 생각해 버렸다. 그럼에도 13804라는 낮은 수치가 도통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설진은 휘갈겨 쓴 글씨들로 겨우 채워진 서류 뭉치를 직원에게 건넸다. 좀 전의 앙금이 다 풀리지 않았는지 괜스레 손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며 직원을 재촉했다. 하지만 직원은 산만하게 구는 설진에게 어떤 관심도 주지 않는 방식으로 반격했다. 보란듯이 키보드 자판 하나하나를 느적느적 눌러 댈 뿐이었다. 설진은 이 역겨운 나무늘보에게 한바탕 큰소리를 치고 싶었으나 ‘위잉’ 하는 짧은 소리가 그를 겨우 제지했다. 아버지의 내세 정보가 종이 한 장에 출력된 것이었다. 칠십 년 인생이 얇은 종잇장에 압축되는 순간이었다. 설진은 아주 잠깐 그 과정을 멍하니 바라보았지만, 이내 직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싸늘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나, 직원은 그저 출력된 용지의 끄트머리만을 살짝 집어 올려선 던지다시피 건네줄 뿐이었다.
“좌표는 여기에 다 나와 있구요. 주소상으로는 필리핀 바콜로드 지역이네요. 데이터를 보면 원예용 재배 목적으로 발아됐다고 하는데. 이건 뭐 워낙에 변수가 많으니까.”
직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부분에는 ‘@10.676846, 122.951476’이라는 기괴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얼핏 내세 좌표에 대해 들어 보긴 했으나, 이리도 투박한 숫자만 덜렁 주어지는 상황에 대해선 설진도 예상하지 못했다. 괜히 직원의 일 처리가 의심스러워진 설진은 절호의 기회다 싶어 그에게 따지고 들었다.
“원래 이렇게 틱 하고 숫자만 던져줍니까? 구체적인 위치도 알려주셔야죠. 이것만 보고 어떻게 찾아갑니까. 이렇게 종이 한 장 주는 걸로 민원이 해결되느냔 말입니다.”
애초에 본인이 찾아갈 생각도 없었지만 직원을 코너로 몰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하지만 직원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심지어 약간의 조소가 서린 표정으로 답했다.
“그거야 그쪽에서 방법을 찾으셔야지요. 요새 내세 좌표 위치 알려주는 사이트도 많던데. 우리는 거기까지 처리를 못해요. 얼마나 민원이 많은데요. 그래도 다행이네요. 곤충으로 배정받았으면 좌표도 의미 없어요. 어디 가서 찾지도 못해요, 그거는.”
“아니, 찾는 건 우리가 찾는 거고. 여기서 민원을 처리할 거면 똑바로 효율적으로 하란 말입니다. 바쁜 사람 굳이 찾아오게 해서는 두 번 일하게 만들고 말이에요.”
“다른 용무 없죠?”
마지막으로 설진을 올려다본 직원의 표정은 싸늘했다. 설진은 순간 멍해져 아무런 대답도 못했다. 그 사이 직원은 이미 다음 순번으로 번호를 바꿔 버렸다. ‘띵’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설진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 그는 이보다 최악인 장소는 없을 것이라 확신하며 구청 밖으로 빠져나갔다.
씩씩거리며 구청을 빠져나온 설진에게 마치 기다렸다는 듯 휴대폰 진동음이 울렸다. 누나 하윤의 전화였다.
“고마워 설진아. 내가 갔어야 되는데 미안해 정말. 구청에선 뭐래?”
마음 같아선 아무런 대답도 해 주기 싫었지만 귀찮은 일을 누나에게 빨리 넘겨 버리는 편이 나을 것 같다고 설진은 생각했다.
“필리핀이래. 바콜로드인가 비콜로드인가. 아무튼 그쪽이고 자세한 주소는 인터넷에서 찾아보라네. 이제 남은 뒷일은 누나 쪽에서 좀 해결해줘. 내가 다음 주까진 너무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그래, 그나저나 엄마랑은 연락해 봤어? 엄마도 오늘 아버지 내세 좌표가 나오는 날인 거 알고 있을 텐데.”
“못 해 봤지. 내가 정말 다른 곳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 미안. 누나도 힘들겠지만 매형이 다른 친구들한테 부탁해서라도 마무리해 줘. 좌표번호 문자로 보내 놓을게. 이제 곧 미팅이라서. 끊을게.”
하윤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끊어 버린 설진은 여전히 화가 덜 풀린 듯 보였다. 자신에게 일을 전가시킨 누나나, 그로 인해 만나게 된 불쾌한 직원 녀석이나, 자식으로서 아버지의 내세를 신경 써야만 하는 불편한 채무 의식이 그를 업무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자신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들에 진절머리가 났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라는 옛말이 틀린 것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 남겨진 이들이 망자의 내세까지 신경을 쓴다는 건, 매우 불합리한 일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월권 행위라고까지 설진은 생각했다. 그렇게 스스로를 겨우 다독이며 미팅이 예약된 시내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