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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틴 아메리카, 준결정의 비밀을 찾아라!


 
“뭐? 윈터 솔져의 공격으로 닉 퓨리가 쓰러졌다고?”
강력한 적 윈터 솔져의 등장으로 어벤져스의 수장 닉 퓨리가 쓰러지고 쉴드는 최악의 위기에 처한다. 캡틴 아메리카는 과연 위기에 빠진 쉴드와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윈터 솔져에 대항하려면 더욱 강력한 방패가 필요한데…. 엇? 이건? 퓨리가 내게 메시지를 남겼어!”

닉 퓨리가 남긴 수수께끼를 풀어라!

우선 닉 퓨리의 메시지를 들어 봐야겠군. ‘방패를 강화할 신물질을 찾아라. 눈 결정, 소금, X선, 노벨물리학상, 에스허르, 펜로즈.’ 엥? 이게 메시지의 전부야? 이게 대체 무슨 뜻이지? 분명히 단어들이 공통적으로 가리키는 것이 있을 텐데….

 


1. 결정학의 출발

그럼 방패를 강화할 신물질의 후보가 결정 구조라는 건가? 방패를 강화할 물질을 고르는 거니 신중해야 하는데…. 결정학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봐야겠어. 뭐? 결정학에서는 원자의 배열이 매우 중요하다고?

규칙적인 물질 vs 불규칙적인 물질


물리학자들은 물질을 이루는 원자의 배열이 규칙적인지, 불규칙적인지에 따라 두 가지 기준으로 물질을 분류한다. 즉, 물질이 어떤 구조로 돼 있는지는 물질의 특성을 파악하는 데 있어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오른쪽 사진에서 원자의 배열이 규칙적인 물질과 불규칙적인 물질은 무엇일까?

정답은 소금, 눈, 다이아몬드는 원자의 배열이 규칙적인 물질이고, 물과 유리는 불규칙적인 물질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나 분자를 하나의 둥근 입자라고 가정하고, 입자를 배열할 때 규칙성을 가지면 ‘결정질 물질’이라고 하고 불규칙적이면 ‘비정질 물질’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소금은 정육면체 형태로 원자들이 배열해 있고, 눈은 육각형 형태로 원자가 배열해 있으며, 다이아몬드는 4개의 탄소 원자가 정사면체를 이루며 가로, 세로, 높이의 방향으로 연속적으로 배열된 결정질 물질이다. 이에 비해 물과 유리는 원자의 배열이 매우 불규칙적으로 나타난다.

즉, 결정은 직사각형, 정육각형, 정사각형, 정삼각형의 형태로 원자나 분자의 기본 단위가 연속적으로 배열돼 있는 물질이다. 결정을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면, 원자나 분자가 대칭구조를 나타내며 빈 공간 없이 꽉 채운 모양을 하고 있다.
 

X선으로 원자의 배열을 들여다보다!

원자나 분자의 배열이 규칙적인지, 불규칙적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1895년, 독일의 물리학자 빌헬름 뢴트겐은 다른 실험을 하다가 우연히 X선을 발견했다. 당시 X선은 사람의 살을 뚫고 들어가 뼈를 볼 수 있는 놀라운 능력으로 일대 파란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X선이 볼 수 있는 건 뼈뿐만이 아니었다.

1912년,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는 최초로 X선 회절 실험을 수행해 결정의 회절무늬를 볼 수 있었다. X선 회절무늬란 무엇일까? 물질에 X선을 쏘면 X선이 원자와 부딪혀 이동하던 방향을 꺾거나 반사된다. 이렇게 빛이나 전자기파가 다른 물질과 부딪히면서 방향을 바꾸는 것을 ‘산란’이라고 한다. 산란된 X선들은 서로 간섭을 일으키며 특정한 모양의 점들을 만들어내는데, 이것이 바로 ‘회절무늬’다.

회절무늬는 분자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결정의 규칙성이 뚜렷할수록 또렷한 점으로 나타나고, 불규칙적이면 둥근 띠 모양으로 나타난다. 즉, 무늬를 분석하면 물질이 어떤 구조인지 알아낼 수 있다.

라우에는 소금에 X선을 투과시켜 소금 결정이 만드는 회절무늬를 얻어냈다. 이 발견으로 인해, 결정 내에 규칙적인 배열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실험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같은 해, 영국의 물리학자 헨리 브래그와 로렌스 브래그 부자는 라우에가 최초로 발견한 X선 회절 현상을 간단한 방식으로 만들어 결정 구조를 좀 더 쉽게 얻어내는 공식을 만들었다.

X선의 발견과 회절 현상에 대한 연구 덕분에 물질 속 원자 배열이 규칙적인지, 불규칙적인지 알 수 있게 됐다. 이 공로를 인정 받아 뢴트겐은 1901년, 라우에는 1914년, 브래그 부자는 1915년 각각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2. 결정은 수학의 집합체

회절무늬를 통해 결정의 원자 배열이 규칙적인지, 불규칙적인지는 알았어. 하지만 실제 원자가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는 도통 모르겠네. 여기 퓨리의 메시지가 또 도착했군. 뭐? 실제 원자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학 원리가 필요하다고?

X선 회절무늬로 원자 모형을 들여다보다


물질에 X선을 쏘면 회절무늬가 생긴다. 결정의 경우에는 밝은 점이 대칭 구조를 보이며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 때문에 회절무늬를 통해 실제 원자가 어디에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어느 정도 알 수 있다.

우선, 회절무늬의 대칭성으로부터 단위세포의 형태를 알 수 있다. 단위세포란 어떤 물질의 원자나 분자 배열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결정은 직사각형, 정육각형, 정사각형, 정삼각형의 형태로 원자나 분자의 기본 단위가 연속적으로 배열돼 있는 물질을 말한다. 여기서 직사각형, 정육각형, 정사각형, 정삼각형이 단위세포에 해당한다. 만약 X선 회절무늬를 가로, 세로, 높이 3방향에서 찍어 봤을 때 전부 4회 대칭 구조(정사각형)가 나온다면 단위세포가 정육면체 구조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밝은 점들 사이의 거리로부터 단위세포의 크기도 유추할 수 있고, 밝은 점의 세기가 줄어드는 형태를 보면 단위세포 내의 원자의 위치도 알 수 있다. 만약 아까 위에서 살펴본 X선 회절무늬에서 밝은 점 사이의 거리가 멀다면 정육면체의 크기가 작다는 것을 뜻한다. 또 밝기가 줄어드는 형태를 수학적으로 계산하면 정육면체 내에 원자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결정이 아닌 경우(준결정), 밝은 점의 형태만으로는 실제 원자가 어디에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 완전히 알 수 없다. 같은 회절무늬라도 다른 원자 모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는 어떤 물질의 전자가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 알아야 한다. 전자는 원자핵 주위에 구름처럼 퍼져있기 때문에, 전자의 분포를 알면 원자가 어떻게 배열돼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전자가 어떻게 분포해 있는지 알려주는 함수(전자밀도 함수)를 f(x)라고 하자. 양자역학을 이용해 밝혀낸 회절이론에 따르면, 회절무늬로 나타나는 빛의 세기를 측정하면 전자밀도 함수 f(x)를 푸리에 변환한 함수 g(k)의 크기를 알 수 있다. 푸리에 변환은 프랑스의 수학자 푸리에가 발견한 것으로 신호 해석, 화상 처리 등의 분야에 널리 쓰이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원래 함수를 파장이 다른 여러 개의 함수의 합으로 표시할 수도 있고, 반대로 파장이 다른 여러 개의 함수를 합해 다시 원래의 함수로 구할 수도 있다.

g(k)를 온전히 구하면 f(x)를 구할 수 있지만, 실험을 통해 알 수 있는 건 g(k)의 절댓값, 즉 크기뿐이다. 따라서 g(k)의 크기만으로는 f(x)를 온전히 구할 수가 없다. 온전한 전자밀도 함수 f(x)를 구하려면 추가 정보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과학자들은 원자를 현미경으로 관측하거나 추가적인 실험을 한 뒤, 정보를 종합해 실제 원자가 어디 있는지 추정한다.

초기에는 X선 회절무늬로부터 결정 구조를 알아내기 위해 직접 손으로 계산을 했기 때문에 십 수년이라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다가 1950년대 들어 인간보다 계산 속도가 빠른 컴퓨터가 등장하면서 결정 구조를 알아내는 데 걸리는 시간이 획기적으로 짧아졌다. 이제는 수 시간 만에 복잡한 결정의 구조도 해석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결정 구조를 단숨에 해석할 수 있게 되면서, 이미 존재하는 결정 구조에 새로운 원자를 바꾸거나 제거하는 방법으로 신물질을 만드는 쉬운 길이 열렸다.
 
     

3. 새로운 결정, 준결정의 발견

아무리 조사를 해도 내 방패보다 더 특별한 금속은 못 찾겠군. 내 방패는 마블 최강의 금속 비브라늄과 강철 합금으로 만들어져서 충격을 받을수록 더 단단해지는 특징이 있다고. 내 방패와 어울릴 만한 뭔가 새로운 물질은 없을까 뭐? 새로운 결정, 준결정이 발견됐다고

준결정의 발견, 논란에 휩싸이다


1982년 4월, 미국 국립표준기술연구소의 한 연구실. 전자현미경으로 알루미늄-망간 합금의 결정 구조를 관찰하던 연구원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5회 대칭구조를 이루는 회절무늬를 관찰했기 때문이다. 당시 5회 대칭구조를 가지는 결정은 없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지만 연구원이 본 회절무늬에 선명하게 찍힌 밝은 점은 분명 이 물질이 결정이라는 것을 나타내고 있었다.

이 이상한 결정의 정체는 바로 ‘준결정’이다. 그리고 준결정을 발견한 주인공은 댄 셰흐트만 교수였다. 처음에 그는 자신도 실험 결과를 믿을 수 없어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다른 각도에서도 찍어 봤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고민 끝에 동료들에게 자신이 발견한 ‘이상한 결정’에 대해 말했지만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소속 연구실에서는 그가 이상한 주장으로 연구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그를 연구실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심지어 당시 연구소 소장은 그에게 결정학 교과서를 손에 쥐어 주며 결정학의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라는 쓴소리까지 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라이너스 폴링도 1987년까지 “준결정은 없고, 준과학자만 있다”는 말로 셰흐트만 교수의 발견을 무시하며 준결정을 강하게 부정했다.

이처럼 준결정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셰흐트만 교수의 학설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셰흐트만 교수는 결국 준결정의 존재를 찾아낸 공로로 2011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5중 대칭이 나타난 준결정의 회절무늬. 가운데 밝은 점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10개의 점이 관찰된다

준결정, 그 논란의 원인은?
 

당시 결정이란 위 그림과 같이 직사각형이나 정육각형, 정사각형, 정삼각형처럼 기본 격자가 반복된 구조라고 알려져 있었다. 이런 구조는 수학적으로 이동 대칭성을 갖는다. 즉 직사각형, 정육각형, 정사각형, 정삼각형이 상하좌우 어디로 대칭 이동을 해도 그 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이동 대칭성이 있으면 회전 대칭성도 갖는다. 예를 들어 정육각형은 내각이 120°이기 때문에 120° 회전을 해도 그 구조가 변하지 않고 같은 모양이 3번 나타난다. 마찬가지로 정사각형은 90°(직사각형은 가로 세로 길이가 다르기 때문에 180°) 회전을 해도 그 구조가 변하지 않고 같은 모양이 4번(직사각형은 2번) 나타나고, 정삼각형 구조는 60° 회전을 해도 그 구조가 변하지 않고 같은 모양이 6번 나타난다.

이렇게 하나의 도형을 360° 회전할 때 같은 모양이 반복되는 구조를 ‘대칭 구조’라고 부른다. 즉, 직사각형은 2회, 정육각형은 3회, 정사각형은 4회, 정삼각형은 6회 회전 대칭 구조를 갖는다.

하지만 정오각형으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대칭 구조가 나타날 수 없다. 정오각형의 내각은 108°로, 평면을 전부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결정학에서는 회절무늬에서 2, 3, 4, 6회 회전 대칭 구조만을 허용하고 그 외의 대칭 구조는 없다는 것이 정설로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셰흐트만 교수가 금지된 5회 대칭 구조를 나타내는 준결정을 발견했을 때 학계의 반발이 거셌던 것이다.

하지만 셰흐트만 교수는 소신을 갖고 끝까지 주장을 포기하지 않았다. 실험을 반복하며 계속 과학적 의미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일반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준결정 구조를 발견하고 실험적으로 증명해 결정학에 새로운 장을 개척한 공로’로 노벨상을 탈 수 있었다.
 
결정에서 금지된 5회 대칭 구조

4. 준결정, 타일링으로 증명하다

과학적으로 발견은 됐지만 오랜 논쟁의 대상이었던 준결정이라…. 하지만 수학자들이 이론적으로 증명한 덕분에 결국 인정받게 되었군. 그럼 준결정을 수학적으로 증명한 수학자들을 직접 만나 볼까?

1. 비주기 타일링의 시작


수학자들은 1960년대부터 주기적으로 반복되지 않으면서 공간을 가득 채우는 타일을 찾기 위해 연구해 왔다. 이를 ‘비주기 타일링’이라고 한다.
비주기 타일링에 대한 연구는 1961년, 미국의 수학자 하오 왕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유한 개의 타일이 주어졌을 때, 전체 평면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는지 없는지 알려 주는 알고리즘이 있을까?’란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연구를 통해 만약 주어진 유한 개의 타일이 공간을 빈틈없이 채울 수 있을 때, 주기적으로 채울 수 있는 방법이 항상 있다면 이 알고리즘은 존재한다고 정리했다.
하지만 1966년 그의 제자 로버트 버거는 공간을 비주기적으로만 채우는 유한 개의 타일들을 찾아냈다. 로버트 버거의 타일로는 주기적으로는 공간을 채울 수 없고 비주기적으로만 채울 수 있었다. 즉, 주기적으로 결코 채울 수 없는 로버트 버거의 타일이 등장하면서 하오 왕의 추측이 틀렸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이때 버거가 쓴 타일 종류의 개수는 2만 개가 넘는다. 이후 수학자들은 타일의 종류를 줄이기 위한 연구를 계속했다. 1971년에는 라파엘 로빈슨이 6종류의 타일로 만들어진 비주기 타일을 소개했고, 이후 많은 비주기 타일이 발견됐다.

2. 준결정의 구조를 밝힌 펜로즈 타일링의 등장

1974년에는 영국의 수학자이자 천체물리학자인 로저 펜로즈가 2개의 타일 종류로 이루어진 비주기 타일링을 선보였다. 펜로즈 타일링은 비주기 타일링 분야는 물론 준결정의 구조를 밝히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그는 좁은 마름모와 넓은 마름모 두 종류의 조각으로 비주기적인 타일링 구조를 찾아냈다. 하지만 당시는 아직 셰흐트만 교수가 준결정을 발견하지 못한 때였다. 따라서 펜로즈 타일링은 그저 수학의 유희 중 하나로 남아 있었다.
1982년 결정학자 앨런 맥케이는 펜로즈 타일링으로 주기적으로 반복되지 않는 원자의 배열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을 실험으로 옮겨 펜로즈 모자이크의 각 교차점에 원자를 배열하고 회절무늬를 조사했다. 그 결과 5중 회전 대칭 형태가 나타났고, 맥케이의 연구는 훗날 셰흐트만 교수의 준결정 실험 결과를 인정하는 중요한 이론적 근거가 됐다.
셰흐트만 교수가 준결정 구조를 발견한 건 1982년. 하지만 이 사실을 학계에 발표한 건 1984년의 일이다. 같은 해 폴 슈타인하르트가 펜로즈 타일에 원자를 배열했을 때 나타나는 회절 패턴을 수학적으로 계산했다. 그는 이 계산을 통해 준결정이 펜로즈 타일링과 구조가 같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3. 결정의 정의를 바꾸다!

셰흐트만 교수가 준결정을 발견하고 이것이 실험적, 수학적으로 입증되자 국제결정학연합회는 1992년 결정의 정의를 바꾸기로 한다. 기존 정의는 ‘결정은 구성하는 원자, 분자, 또는 이온들이 일정하게 정렬되고 삼차원적으로 반복되는 형태를 가진 물질’이었다.
하지만 이제 결정이란 ‘본질적으로 구별되는 회절무늬 형태를 가진 고체’라고 정의된다. 또한 준결정체란 ‘금지된 회전 대칭성을 지니면서도 장거리 이동 질서를 지닌 물질’이라고 정의된다.

4. 겹침 타일 이야기

준결정이 왜, 어떻게 해서 펜로즈 타일링의 구조를 갖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문제에 대한 실마리는 1991년에 나왔다. 러시아의 수학자 세르게이 부르코프는 평면에서 비주기적인 타일링을 하기 위해 꼭 두 가지 타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 기존 타일링에서 금지됐던 겹침을 허용하면, 한 가지 십각형 격자만으로도 비주기성이 생길 수 있음을 밝혀낸 것이다. 이어서 1996년에는 독일의 수학자 페트라 군멜트가 한 가지 ‘장식된’ 십각형을 특정한 겹침 규칙에 따라 결합하면 펜로즈 타일링을 만들 수 있음을 증명했다. 두 십각형은 장식 가운데 음영 부분만 겹친다면 서로 겹쳐도 된다.
실제로 물질 속 원자들이 각각 떨어져 있는 경우는 드물다. 원자들이 결합할 때 일정 부분 서로 겹쳐지기 때문이다. 비주기 타일링에서 일정한 규칙에 따라 타일이 겹쳐지는 것을 허용하면서, 펜로즈 타일링은 준결정의 구조를 연구하는 데 본격적으로 적용될 수 있게 됐다.

5. 단 하나의 돌로 공간을 채운 테일러-소콜라 타일

대학교에서 수학을 전공한 호주의 한 평범한 주부 테일러 씨는 학생 때 접한 ‘단 하나의 돌’이란 문제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후 큰 종이에 직접 그림을 그려가며 줄곧 이 문제를 연구해 왔다. ‘단 하나의 돌’ 문제란 단 하나의 조각으로 비주기 타일링을 할 수 있을지 묻는 것으로, 많은 수학자들에게 관심을 받아온 문제이다.
끈질긴 관심과 연구 끝에 2010년 그녀는 단 하나의 조각을 사용해 비주기적인 타일링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한다. 테일러씨는 단 하나의 조각을 만들기 위해 거울 반사된 두 개의 육각형을 사용했다. 이 육각형에는 검은 선과 빨강, 파랑 띠가 그려져 있는데, 두 육각형으로 주어진 조건에 따라 공간을 채워 나가면 비주기적인 타일링이 만들어진다. 이 육각형의 검은 선과 색깔 띠를 조각으로 변형하면 단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타일링이 완성된다.
이에 테일러 씨는 자신의 발견을 듀크대 물리학과 소콜라 교수와 함께 증명해 논문으로 제출했다.
테일러-소콜라 타일이 ‘단 하나의 돌’ 문제를 푸는 시작점이 된 건 분명하지만 여전히 한계를 갖고 있다. 수학자들은 ‘단 하나의 돌’이 복잡한 도형이 아닌, 위상적으로 원이나 사각형과 같은 간단한 도형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수학자들은 거울 반사를 한, 두 개의 육각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테일러-소콜라 타일이 완전한 답은 아니라고 본다. 이 때문에 아직까지 ‘단 하나의 돌’에 대한 완벽한 해답은 찾지 못한 상태이다.

5. 준결정의 숨겨진 비밀, 황금비

펜로즈 타일링을 이해하면 준결정의 구조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군. 준결정의 비밀을 풀기 위해 수학자들과 과학자들이 펜로즈 타일링에 그렇게 주목하는 거였어. 준결정에 또다른 특별한 비밀은 없을까?

Quiz 1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수태고지>;와 펜로즈 타일링의 공통점은?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수태고지>;(1472~1475)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성모의 집으로 찾아가 그녀가 예수를 잉태했음을 알리는 성경 말씀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은 황금비를 활용해 그려진 것으로도 유명하다.

황금비는 인간이 인식하기에 가장 균형적이고 이상적으로 보이는 비율이다. 정오각형의 각 꼭짓점을 대각선으로 연결하면 내부에 별 모양이 생기고, 별 내부에 또다른 정오각형이 만들어진다. 그리스의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이 정오각형의 내부에서 교차하는 각 대각선이 약 1:1.6으로 분할되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이 황금비의 개념이 생겨난 시초다. 이후 유클리드가 황금비에 대한 이론을 구체화하고 1.618을 황금비로 활용한다.

펜로즈 타일링에서도 황금비를 찾을 수 있을까? 펜로즈 타일링 중 하나는 위의 그림처럼 ‘연’과 ‘화살촉’이라는 두 도형으로 구성된다. 이 두 도형은 2개의 이등변삼각형들로 이루어진다. 빗변과 밑변의 비가 황금비인 이등변삼각형은 ‘황금삼각형’이라 불리고, 빗변과 밑변의 비가 $\frac{1}{황금비}$인 이등변삼각형은 ‘황금 그노몬’이라 불린다. 이 두 도형은 내각이 72°와 108°인 마름모에서 긴 대각선이 황금비로 나뉘도록 분할해서 만들 수 있다. 화살촉-연 타일링의 특성 중 하나는 연 조각의 수가 화살촉 조각의 수보다 1.618배 많다는 것이다.

펜로즈 타일의 또다른 한 쌍은 하나는 뚱뚱하고 다른 하나는 홀쭉한 마름모로 이루어진다. 여기서도 홀쭉한 마름모보다 뚱뚱한 마름모가 1.618배 많다는 특징이 나타난다. 즉, 펜로즈 타일링 역시 황금비와 뗄 수 없는 사이다.

Quiz 2 다음 토끼들과 준결정 표면 현미경 사진의 공통점은?
 

여기 토끼 무리가 살고 있다. 이때 어른 토끼 한 쌍은 매달 새로운 새끼 한 쌍을 낳고, 이 새끼 토끼 한 쌍은 다음달 어른 토끼 한 쌍으로 자라 그 다음 달 다시 새끼 토끼 한 쌍을 낳는다.

따라서 어떤 달의 어른 토끼 쌍의 수는 지난 달의 어른 토끼 쌍의 수와 지난 달에 태어나 어른이 된 새끼 토끼 쌍의 수를 더한 것과 같다.(어른 토끼 쌍 = 지난 달 어른 토끼 쌍 + 지난 달 새끼 토끼 쌍) 그런데 지난 달에 태어난 새끼 토끼 쌍의 수는 그 전달(두 달 전)의 어른 토끼 쌍의 수와 같다(지난 달 새끼 토끼 쌍 = 두 달 전 어른 토끼 쌍). 따라서 어떤 달의 어른 토끼 쌍의 수는 지난 달과 두 달 전 어른 토끼 쌍의 수를 더한 것과 같다.(어른 토끼 쌍 = 지난 달 어른 토끼 쌍 + 두 달 전 어른 토끼 쌍) 즉, 어른 토끼 쌍의 수는 다음 수열을 이룬다.

1, 1, 2, 3, 5, 8, 13, 21, …

새끼 토끼 쌍의 수는 어른 토끼 쌍의 수에 비해 한 달이 밀린 채 똑같은 수열을 이룬다.

0, 1, 1, 2, 3, 5, 8, 13, …

19세기의 프랑스 수학자 에두아루 루카스는 이 수열에 ‘피보나치 수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피보나치 수열은 각 항이 앞의 두 항의 합과 같다는 특징을 갖는다.

준결정 표면에서도 피보나치 수열이 관찰된다. 박정영 카이스트 교수는 2005년 미국 로렌스버클리 국립연구소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던 중, 준결정 표면의 원자 배열이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는 것을 발견했다.

어른 토끼 쌍을 L, 새끼 토끼 쌍을 S라고 하면, 피보나치 토끼 수열은 다음 표와 같이 바꿔 쓸 수 있다.
 

한편 알루미늄-니콜-코발트 합금의 원자 구조를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원자들 사이에 넓고 좁은 간격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넓은 간격을 L, 좁은 간격을 S라고 하고 그 배열을 순서대로 써 보면 피보나치 토끼 수열을 LS로 바꿔 쓴 것과 정확히 일치한다.

박정영 교수는 이 준결정 표면의 원자 배열이 피보나치 수열을 따르며, 원자들이 주기적으로 배열할 때보다 마찰력은 8분의 1로 줄어드는 것을 밝혀냈다.

재미있는 것은 피보나치 수 역시 황금비를 이룬다는 사실이다. 피보나치 수열에서 바로 인접한 앞 뒤 두 수의 비를 계산해 보자. 그럼 피보나치 수열에서 점점 뒤로 갈수록 인접한 두 피보나치 수의 비가 황금비에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2=1.500
5/3=1.666…
8/5=1.600

377/233=1.618026


6. 준결정이 응용되는 분야는?

이제 준결정이 얼마나 특별한 물질인지 잘 알겠어. 그래도 준결정이 내 방패를 강화할 물질로 적합할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따져봐야겠지. 내가 어디서 준결정을 얻을 수 있는지, 그리고 준결정이 어떻게 응용되고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어!

1 자연 상태의 준결정 발견


2009년, 러시아에서 자연상태의 준결정이 발견됐다. 폴 스타인하트 교수는 이탈리아의 박물관에서 암석의 X선 회절 사진을 찍다가 준결정 구조를 발견하고 이 암석이 어디서 발견된 것인지 역추적했다. 그는 러시아 툰드라 지방의 강에서 암석이 발견된 것을 알고, 직접 러시아의 강들을 조사해 암석들을 추가로 발견한다.
조사 결과, 이 준결정 암석은 우주에서 날아온 운석인 것으로 판명된다. 이전에는 준결정이 실험실에서 탄생한 금속 합금 형태로만 존재했지만, 이제 준결정이 자연 상태로도 존재함이 밝혀진 것이다.

2 신소재 개발

준결정은 마찰력이 작아 잘 마모되지 않고 강도가 커 면도날이나 수술용 바늘 같은 고강도 강철을 만드는 데 응용되고 있다. 또한 가볍고 단단하면서도 열이 잘 통하지 않는 성질도 갖고 있기 때문에 프라이팬 표면 코팅에도 응용된다. 앞으로 골프채, 엔진, 휴대전화 케이스 등의 표면 코팅에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준결정은 산업적으로는 활용도가 떨어지는 편이다. 이는 준결정의 원자 모형은 물론, 안정성의 원인이나 전자 구조에 대한 이해가 많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준결정이 산업적으로 다양하게 응용되려면 아직 풀리지 않은 많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3 준결정 구조의 응용

인터넷을 하거나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광케이블이 쓰인다. 광케이블은 전기 신호를 광신호로 바꿔 정보를 전달하는 선을 말한다. 광신호는 전기 신호와 비교하면 빠르게 많은 정보를 전달할 수 있지만, 멀리 이동하면 이동할수록 중간에서 정보가 사라지거나 손상되는 것을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빛 정보의 손실을 막기 위해 과학자들은 ‘광자 띠 틈’이란 물질을 연구하고 있다. 광자 띠 틈이란 빛이 모든 방향으로 전파될 수 없는 영역을 말한다. 즉, 빛은 이 영역에서 다른 방향으로 전파되지 못하기 때문에 정보의 손실 없이 안전하게 원하는 방향으로 전달될 수 있다. 또한 광자 띠 틈 안에 빛을 가두면 정보를 저장할 수도 있다. 따라서 광자 띠 틈이 크면 더 많은 광신호를 안전하게 전달할 수 있다.
과학자들은 현재 준결정체의 구조를 응용하면 광자 띠틈을 크게 할 수 있다고 보고, 그 방법을 연구 중이다.

4 새로운 준결정을 찾아라!

셰흐트만 교수에 의해 정20면체 대칭성의 알루미늄-망간 준결정체가 만들어진 뒤 8각형, 10각형, 12각형 대칭성을 갖는 준결정 물질 수백 가지가 만들어졌다. 모두 당시에는 고체의 결정을 이룰 수 없다고 알려진 구조들로, 새로운 준결정이 계속 발견되며 결국 결정학 교과서를 새로 써야 했다.
지난 해 12월에는 일본 쥬오대학 이공학부 물리학과, 물질재료연구기구, 도호쿠대학 다원물질과학연구소, 영국 리버풀대학 공동 연구팀이 세계 최초로 단일 원소로 이루어진 3차원 준결정 구조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간 많은 준결정은 2개 이상의 원소로 이루어진 합금으로 제작됐는데, 많은 원소로 만들수록 결정 구조가 복잡해져 준결정을 이해하는 데 걸림돌이 돼 왔다. 하지만 이번에 단일 원소로 만든 준결정이 만들어지며 앞으로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한 지난 해 6월에는 미국 자원부 산하 아메즈 연구실의 과학자들이 새로운 희토류 정20면체 준결정을 발견했다. 그리고 10월에는 독일 마틴루터대 볼프 빌드라 연구진이 부도체, 반도체, 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보이는 특별한 구조의 금속 준결정 산화물을 발견했다. 이 물질은 최근 태양전지용 대체 소재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연세대 준결정재료연구단 김도향 교수가 2002년 준결정 구조로 마그네슘 합금 소재 개발에 성공했다. 이 물질은 기존 마그네슘 합금에 비해 강도와 늘어나는 정도가 높아, 고온에서 가공하는 능률을 획기적으로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드디어 방패를 강화할 준결정의 비밀을 모두 풀었군. 이제 쉴드 연구실에 가서 방패를 강화해 달라고….
잠깐!
엥? 닉 퓨리? 큰 부상을 입었다더니…. 멀쩡하잖아?
윈터 솔져 대비 훈련에 통과한 걸 축하하네. 캡틴, 이번에는 진짜 윈터 솔져의 움직임이 포착됐다네. 윈터 솔져가 쉴드를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힘써 주게.
뭐야! 그럼 내 방패는?
이미 다 준비해 뒀지. 방패의 성능은 곧 개봉하는 영화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에서 확인하라고. 바로 출동!

2014년 04월 수학동아 정보

  • 김정(ddanceleo@donga.com) 기자
  • 도움

    정형채 교수
  • 도움

    이정엽 교수
  • 도움

    박정영 교수
  • 사진

    소니 픽쳐스 릴리징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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