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를 맞아 그동안 좋아했던 나예림 양에게 감동 이벤트와 함께 고백하기로 마음 먹은 손재주군. 어떤 이벤트를 할까 고민하다가 요즘 영국에서 남학생들 사이에 뜨개질 동아리가 열풍이라는 기사를 본다. 한 번도 뜨개질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평소 손재주 좋다는 소리를 들어오던 터라 뜨개질에 도전해 보기로 마음을 먹는데….
“좋아! 직접 만든 목도리로 내 마음을 전해야지! 나예림! 내 마음을 받아 줘~!”
기본상식
뜨개질은 수학과 닮은꼴
안녕, 난 손재주라고 해. 이름 덕분인지 난 꽤 좋은 손재주를 갖고 있지. 뜨개질도 손으로 뜨는 거니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일단 난 뜨개질에 대한 기본 정보부터 찾아보기로 했어. 뜨개질은 한 가닥의 실을 매듭지어 엮어 나가며 천을 만드는 기술이야. 처음엔 바구니나 그물을 뜨는 데 사용되다가, 4세기 경 고대 이집트에서 뜨개질로 샌들을 만들어 신었다고 해. 이후 스페인을 통해 유럽 각지로 퍼져 나간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
시대가 변하며 직접 손으로만 뜨던 뜨개질에 기계화가 이루어져. 1589년 영국의 윌리엄 리가 발로 밟아서 뜨는 양말 편물기계를 발명하거든. 하지만 뜨개질 기계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손뜨개의 매력은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어. 사람들은 손으로 만든 수공예품의 가치를 인정하기 마련이거든. 예림이도 내가 직접 만든 목도리를 선물 받으면 분명 감동할 거야!
손뜨개는 바늘에 따라 대바늘뜨기와 코바늘뜨기 등으로 나뉘어. 교실에서 두 개의 나무 바늘을 부지런히 움직여 털실로 목도리를 뜨는 친구들을 본 적이 있는데, 이게 대바늘뜨기래. 코바늘뜨기는 코바늘 하나로 손가락에 실을 걸며 작품을 만드는 방법이라는군. 난 아무래도 전에 본 적이 있는 대바늘뜨기로 목도리를 떠야겠어.
이제 본격적으로 뜨개질을 배워 보기로 하고 고수를 찾아 나섰어. 어렵사리 찾아간 뜨개질 고수의 방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어.
“수학을 모르는 자, 뜨개질을 할 수 없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뜨개질이랑 수학이 무슨 상관이라고? 난 코웃음을 치며 외쳤어.
“뜨개질에 무슨 수학이! 그까이꺼 대~충 뜨면 되지!”
기본수업
간단한 계산으로 뜨는 뜨개질
내가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뜨개질 고수는 나를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참이나 꿰뚫어봤어. 그러더니 목도리는 직사각형으로 쭉 길게 뜨기만 하면 되니 목도리를 떠 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어. 그리곤 한 마디 툭 던졌지.
“겉뜨기 두 번, 안뜨기 두 번씩 번갈아 가면서 42코짜리 목도리를 만들어 보세요.”
겉…, 안…, 코? 엥? 이게 무슨 말이지?
코는 목도리 너비, 단은 목도리 길이!
뜨개질은 바늘로 실을 한 코 한 코 떠서 작품을 만든다. 뜨는 법은 겉뜨기와 안뜨기가 기본이고, 이를 응용한 겹쳐뜨기, 모아뜨기 등 여러 뜨기법이 있다. 물론, 겉뜨기나 안뜨기만으로도 목도리를 뜰 수 있다. 하지만 겉뜨기, 안뜨기를 번갈아 뜨거나, 여러 뜨기법을 섞어서 만들면 멋진 무늬가 있는 목도리를 만들 수 있다.
일단 뜨개질 고수의 말대로 겉뜨기 2번, 안뜨기 2번을 하면 총 4코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42코를 다 뜨면 한 단이 완성된다. 콧수는 목도리 너비를 결정하므로, 만약 너비가 더 넓은 목도리를 만들고 싶다면 46코나 50코 정도로 콧수를 늘리면 된다. 또한 단수는 목도리 길이를 결정하므로, 원하는 길이만큼 단수를 늘리면 목도리가 완성된다.
겉뜨기, 겉뜨기, 안뜨기. 안뜨기,(…10번 반복 = 40코) + 겉뜨기, 겉뜨기= 42코(1단)
안뜨기, 안뜨기, 겉뜨기, 겉뜨기,(…10번 반복 = 40코) + 안뜨기, 안뜨기= 42코(2단)
비례식으로 뜨는 뜨개질
단순한 작품이라면 책에 실린 콧수와 단수대로 뜨면 된다. 하지만 모자나 스웨터처럼 사람마다 사이즈가 다르거나 복잡한 뜨기법을 적용하려면 ‘게이지’를 구해야 한다.
게이지란, 일정한 면적 안에 들어가는 평균 콧수와 단수를 말한다. 게이지는 실과 바늘의 굵기, 뜨는 사람의 손놀림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자신이 사용할 실과 바늘로 미리 견본을 떠 봐야 한다. 보통 가로, 세로 10cm 안에 몇 코, 몇 단인지 세서 게이지를 구한다. 게이지가 나오면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크기에 비례해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예를 들어 게이지가 30코 40단이고, 가로 9cm, 세로 6cm짜리 직사각형 컵받침을 만들려면 몇 코, 몇 단을 떠야 할까? 답은 간단한 비례식으로 구할 수 있다.
10cm : 30코 = 9cm : x코 x=27(코)
10cm : 40단 = 6cm : y단 y=24(단)
게이지를 활용해 실 사기
뜨개질을 하려고 실을 사러 갔는데, 실을 몇 타래나 사야 할지 몰라 난감할 때도 게이지를 활용한다.
➊ 만들고자 하는 작품을 실물 크기로 제도한 뒤, 가로, 세로 10cm인 사각형을 그린다.
➋ 사각이 아닌 가장자리 부분도 서로 합쳐서 10cm짜리 사각형이 몇 개가 되는지 어림잡아 작품 전체의 사각형 개수를 구한다.
➌ 미리 떠 둔 가로, 세로 10cm 견본 천의 무게를 측정하고,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사각형 개수를 곱하면 필요한 실의 무게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견본 무게가 5g이고, 만들고자 하는 작품의 사각형 개수가 40개라면 작품에 필요한 실의 무게는 5g X 40개 = 총 200g이 된다. 겨울 실은 1타래가 100g 정도이다. 따라서 겨울 실 2타래를 사면 된다.
뜨개질이 지능을 높여 준다?
뜨개질과 지능의 관계를 연구한 여러 교육학 논문에 따르면, 뜨개질이 지능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먼저 무엇을 뜰 것인가 생각하고 조사한 뒤, 작품을 떠 가는 과정에서 눈과 손을 동시에 이용하는 능력과 소근육의 운동 능력이 길러진다. 또한 뜨개질 기호를 인식하고 바늘이 들어가는 위치,실을 돌리는 방향 등을 이해하고 실행함으로써 공간 지각력도 얻을 수 있다. 실제로 뜨개질을 하려면 콧수와 단수 등을 계산하고, 2차원의 뜨개질 도안을 보고 3차원으로 상상하면서 떠야 한다. 이 과정에서 논리력과 수학적 사고력, 공간 지능 향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tip 게이지 표시 방법
실을 사면 물건 태그에 아래와 같은 표시가 적혀 있다. 이 표시의 의미는 이 실을 3.5mm 바늘로 뜨면가로, 세로 10cm 안에 평균 24코 32단이 나온다는 뜻이다.
고급수업
수학 공식으로 뜨는 뜨개질
뜨개질 고수는 내가 목도리를 뜨는 동안 게이지니, 비례식이니 계속 설명을 했어. 하지만 난 손재주도 좋고 간단한 계산 정도야 고수의 설명을 듣지 않고도 할 수 있어서, 고수의 설명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지. 자신만만한 나의 표정에 뜨개질 고수가 이번엔 삼각숄과 모자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어.
피타고라스의 정리로 뜨는 삼각숄
손재주 군은 직각이등변삼각형 모양의 숄을 뜨기로 했다. 삼각숄을 짤 때는 역삼각형 형태로 뜨기 때문에, 아래 그림과 같이 직각 부분을 시작으로 콧수와 단수를 늘리며 삼각숄을 점점 크게 만들면 된다. 손재주군은 여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했다.
숄을 만들려면 먼저 원하는 숄의 너비를 정해야 한다. 예를 들어 원하는 숄의 너비가 100cm라면, 숄의 높이는 직각이등변삼각형의 성질을 이용해 구할 수 있다.
숄의 높이는 떠야 할 단수, 너비는 콧수를 의미한다. 숄의 너비와 높이를 구했으니, 이제 게이지를 이용해 숄의 콧수와 단수를 구할 수 있다. 고수는 게이지가 20코 30단이라고 알려 준다.
‘게이지? 아까 고수가 게이지니 뭐니 한참 말한 것 같은데…. 에잇, 그까이꺼 대~충 삼각형으로 뜨면 되지!’하지만 손재주가 만드는 숄은 점점 비뚤어지기 시작했다.“악! 어떻게 하지?!”
tip 과학에도 활용된 뜨개질
원광대학교 기계자동차공학부 조영삼 교수 연구팀은 지난 4월 뜨개질을 이용한 3차원 세포지지체 제작 방법을 연구 논문으로 발표했다. 세포지지체는 손상된 장기나 기능을 잃은 피부 등의 세포를 배양해 복원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연구팀은 생분해성 고분자를 긴 섬유 형태로 제작한 뒤, 뜨개질 기법을 이용해 다양한 3차원 세포지지체를 만들어 냈다. 첨단 과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뜨개질이 의학 분야에도 활용되고 있다.
원의 공식으로 뜨는 모자
손재주 군은 망친 삼각숄은 그만 두고, 이번엔 모자를 만들어 보기로 한다. 그리고 아까 뜨개질 고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듣지 않은 걸 후회하며 이번엔 제대로 배우기로 다짐한다. 뜨개질 고수는 모자를 만들려면 원의 공식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뜨개질에 웬 원의 공식?!
뜨개질 고수의 처방
모자를 만들려면 일단 머리 둘레를 재야 한다. 이 때 모자를 어느 높이만큼 짜야 할지 짐작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 원의 공식이 사용된다. 머리를 반구형이라고 가정하면, 반지름을 구해 모자의 높이를 구할 수 있다. 머리 둘레가 57cm일 때, 머리 둘레 = 2×반지름×3.14, 57cm = 2×x×3.14, x ≒ 9, 모자의 높이는 약 9 cm가 된다. 이제 게이지를 이용해 콧수와 단수를 정하자. 머리둘레는 코, 높이는 단이므로 게이지가 18코 30단일때, 10cm : 18코 = 57cm : x코, x ≒ 103코10cm : 30단 = 9cm : y단 , y = 27단, 즉 103코 27단을 뜨면 된다. 하지만 이대로 쭉 짜면 반구형이 아니라 원통 모양이 되므로, 원통 모양의 둘레를 8~12등분으로 나눠 각 조각마다 콧수를 점점 줄여가며 떠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위로 올라갈수록 둘레가 작아져 모자 형태가 된다.
뜨개질 속 수학을 인정하고 나자, 난 뜨개질 신동으로 거듭나게 됐어. 스웨터와 조끼, 장갑, 가방 등 다양한 작품들이 내 손끝에서 탄생했지. 한참을 뜨개질에만 전념하다가 불현듯 예림이가 떠올랐어. 아뿔싸! 크리스마스는 이미 지나가 버린 후였고, 그녀 곁에는 벌써 다른 사람이 있더라고.
“흑~, 예림아! 늦었지만 이 목도리 선물받고 내 사랑을 받아 주면 안될까? 응?”